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8-06-01 11:05

ㆍIP:

그 여자
그 여자 / 임정수

그때 당시에 우리는 2층에서 살았었다.
2층은 햇볕도 잘들고 밝았으며
옥상을 편리하게 자주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1층엔 세를 내주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쳐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집에서 살다가 이사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갔기에
가끔씩 한지붕 아래에서 살다간 사람들을 만날때면
집터도 좋겠지만 집주인이 더 좋아서 세입자들이 잘 풀리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곤한다.

미우나 고우나 서로 맘 상하지 않고
한가족처럼 몇 년간을 한지붕 아래에서 살다보니 그만큼 정도 들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열심히 저축하고 알뜰히 살아서
잘 풀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장만하고 잘되어서 이사를 갔지만,
한 사람만은 예외였던 것 같다.

그사람은 딸만 둘이었으며 남편은 외항선을 타는 선원으로
한번 출항하면 3개월에 한번, 6개월에 한번씩 육지로 나오곤 했었는데,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남편보다는 그 사람,
그 여자가 이해되질 않는 것이다.

우리집에서 꼬박 3년를 살다가 이사갔다.
남편은 외항선의 선원으로 바다로 나가 있다지만,
그여자는 이사를 온 첫날부터 1년간은 24시간 내내 잠도 안자는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박을 했다.

도박에 미쳤거나 중독인가도 생각했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남자 관계가 그렇게도 복잡한지는 몰라도
매일 수십여명의 남자가 찾아왔고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매일 밤마다 동네 파출소의 순찰차가 우리집으로 출동하여
순찰 일지에 사인을 하고 갈 정도로 우리집은 동네에서 제일 시끄러웠던 것이다.

"에헤~이~ 또 이집이네."
"아저씨! 또 왔능교?"
"아지매요, 조용히 좀 사소, 또 신고 들어왔잖아요."
"미안함미데이."
"나참~"

나 뿐만 아니라 주위의 동네 사람들은
1년 동안은 잠 한번 편하게 잘 수가 없어서 늘 잠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으니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갈 줄로 믿는다.

그러다 2년째는 좀 나은 듯 했다.
이사온 첫날부터 1년 동안은 술에 취해서 24시간 떠들고 도박을 했었지만,
그 다음해엔 1년 동안 조금 얌전해졌으니 2% 정도는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땠냐구?
그 다음해엔 24시간 동안은 떠들거나 하진 않았고,
01시부터 22까지만 떠들고 도박을 했으니 두시간 정도는 조용했다.
그 시간대엔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온 동네 사람들은 취침에 신경을 집중하여야만 했었다.
그 시간대를 놓히면 잠이 들 수 없었으므로...

그리고 이사 가기 전 1년 동안은 아주 얌전해졌다.
어떻게 얌전해졌을까?
첫해엔 24시간내내 조용할 날이 없었고,
다음 해엔 밤 10시까지만 떠들었으며
이사 가기전 1년 동안은 01시부터 저녁 8시까지만 시끄러웠으니
정말 사람이 많이 된 듯 싶은 것이 한편으론 신기하기까지 했었다.

너무나 얌전해진 탓에 동네 사람들은 저 집이 떠들고 시끄러워야 잠을 잘텐데,
갑자기 조용해지니 적응이 안되어 더 잠이 안온다고 할 정도였다.
하긴, 나부터도 적응이 안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했을까.

언젠가 1층에 도둑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큰방에선 술마시고 고스톱을 치느라 떠들고 정신이 없었는데,
아이들이 잠을 자는 작은 방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털피라고 해야하나..
남자같은 성격인데다 다소곳하거나 얌전치 못한 탓에 덜렁대는 성격...

암튼 도둑이 들었었고
멋모르는 도둑은 겁도없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으러 들어왔으니
제 무덤을 제가 팠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새벽에 전화가 걸려와서 내려가보니 낯선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는데
얼마나 얻어 터졌으면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술에 취해 고스톱을 치느라 몰랐고,
그여자 혼자에게 그렇게 심하게 맞았다고 한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도둑이란다.
정말이지 그여자가 조선 시대쯤에 태어났었더라면
장수라도 대단한 장수였음에는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세상 무서운 게 없었고 두려운 게 없었던 여자,
그 여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여자로 보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을 줄로 믿는다.

언젠가 이런 적도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그것도 대낮도 아닌 밤중에
더운 날씨 관계로 거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밖이 보이지 않도록 발이라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발을 내리지도 않고 방충망만 설치된 방충창만 슬쩍 닫아 놓은채
금방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발가벗은채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서있는게 아닌가.

앞집에선 다 보였을 것이다.
더운 날이니만큼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기에...
무심코 계단을 내려오다 환한 집안에 열려진 거실,
홀딱 벗고 서 있는 그여자...
정말이지 눈뜨고는 못봐줄 광경이었다.

사실, 평소엔 여자로 보이지도 않았고 전혀 관심밖이었지만,
그렇게 홀딱 벗고 서있는걸 보니 한마디로
'미~친나..?'
그렇게 밖에는 생각이 들질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란 자고로 얌전하고 다소곳해야 여자다운 맛이 나며
야한 옷을 입어도 보일듯 말듯 속살이 조금만 내비치는...
그정도는 되어야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해서 아예 홀딱 벗고 서 있으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었다.

솔직히, 그 상황에서 누군들 말을 할 수 있었으랴.
조용히 못 본척 넘어갈 수 밖에...

친정 엄마가 수술을 해야하는데 돈이 모자란다며
전세금중 일부만 내어줄 수 없냐고 사정사정해서 몇백만원을 내어 줬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사기꾼같은 남자에게 잘못 걸려
몸 주고 돈주고....결국은 남편과도 이혼을 하곤 이사를 가고 말았다.

어찌되었건 그여자가 이사를 가고도 1여년간은 적응이 안되었지만,
그후론 너무나 조용히 잘 살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정말이지 떡이라도 한말쯤 해서 동네 잔치를 벌이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우리집을 거쳐간 사람 중 어떤이는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갔었는데,
주택에서만 살다가 아파트로 처음 이사를 갔더니
여기에서처럼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어 다녀서
입주민들로부터 관리실로 항의 전화가 걸려오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달도 못 버티고 아파트에서 쫓겨나다시피 주택으로 이사를 갔는데
우리집 생각이 간절하더란다.

얼마전 2층에 젊은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철없는 아이가 별나서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다
한집에 사는 다른 세입자들과 마찰이 있어서 싸우고 왔다며 속상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참 안되었다.

너댓살의 남자 아이가 하나 뿐인데도
어찌나 별난지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는 것 같았다.

밤새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니 새벽 3시엔 나가야 하는 나로선
잠을 잘 수가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선잠을 자곤하지만,
문득 오래전 우리집에서 살다간 그여자가 생각나서 나도모르게 피식 웃고 만다.

나 또한 좁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걸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도 그렇게 밉지만은 않은 것이다.

仁守/정용하: 셋방살이 하다 나간 사람중 역시 특별한 사람만이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 남는가 봅니다
도박에다.. 주변 이웃사람들이 참아 내느라
고생 좀 했겠습니다
하기야 도둑까지 잡아 복날 개잡 듯이 잡아
놓았으니 여걸임이 분명하오이다...ㅋㅋ
셋방살이 이야기는 종종 들었으나 셋방을
준 주인집이야기는 다소 생소한지라 보내는
사람의 입장도 느껴보는 것도 의미가 있네요
잘보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십시요
-[06/01-19:40]-

임정수: 어딜 가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비슷비슷해서
유난히도 눈에 띄는 사람은 꼭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사람일 수록
그 기억은 더욱 오래 가겠지요.

그래서 가끔씩 한 때는 저런 사람들도 있었는데...
스렇게 생각하면서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더군요.

편안한 휴일을 잘 보내셨는지요?

새로운 한 주가 밝았습니다.
이번주에도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 -[06/02-09:45]-

팔자

화선 침투시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