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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5-05 16:35
ㆍIP: 211.xxx.180
먹고 또 먹고 못 먹을 것이 없네
먹고 먹고 또 먹고,못 먹을 것이 없네  9

         권영심

기근을 이겨내게한 음식들   (3 )

지금 우리는 죽을 환자식으로 먹거나 간식, 또는 특별식으로 먹습니다.
간편히 먹을 수 있고 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에 프렌차이즈 죽 대리점들도 많이 생기고 있어,맛있는 죽을 먹는데 어려움 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이라면 지금 도 이를 갈며 고개를 내젓는 세대가  아 직 우리나라에 생존해 있습니다.
하얀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것 이 지금도 꿈만 같다고 하시는 어르신 들... 대체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았기에 그랬을까요?  춘궁기가 아니라도 대부 분의 우리 어머니들은 늘 굶주렸습니다.
음식을 만들 때 아예 자신의 몫은 생각 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 며느리가 밥을 짓는데 솥뚜껑을 열었을 때 뭔가가 천장에서 떨어져 얼른 그것을 줏어내고 손가락에 묻은 두어개 의 밥풀을 입에 넣었습니다.  때마침 그것을 시어미가 보았고,어른들이 먹을 밥을 먼저 먹었다는 죄로 죽도록 두들겨 맞은 며느리는 광에 갇혀 굶어 죽었다지 요.  이 이야기가 허황되지 않은 것은, 그런 식의 학대를 당한 며느리가 많았다
는 것입니다.  죽이라도 끓이면 온 식구 를 다 먹이고 난 뒤에야, 한 숟가락도 채 남지 않은 죽찌꺼기에 물을 부어 긁어 마셨습니다.  밥이 눌어붙어 누룽지를 만들어 먹으면 고소하고 나름의 맛이 있 지만 눌어붙은 죽의 맛은 아주 고약합니 다.  전복죽이나 소고기죽도 그럴진대, 쌀 한 줌에 나물을 넣어 끓인 죽의 맛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맛을 따진다는 것은 사치일 뿐.
우리의 가난한 어미들은 등짝에 붙은 배 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먹어야 했습니다.  피는 지금은 뽑아 버리는 잡 초지만 예전에는 오곡에도 들었던 엄연 한 곡식이었지요.   피는 밥처럼 만들지 는 못하고 가루내어 죽으로 먹었습니다. 빈민들의 소중한 곡식이었고 그래서 피 죽 한 그릇도 못 먹는 가난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등겨죽도 빈민들이 일상 으로 먹다시피한 죽이었습니다.
쌀 보리 가릴것 없이 곡식을 벗겨내고 남은 껍질을 까불려서, 거친 껍데기를 날려내고 남은 것은 죽으로 끓여 먹었습 니다.

보리 한 줌도 없으면 아낙네는 새벽에 동네의 부잣집에 가서 무턱대고 아무 일 이나 손을 보탭니다.  그러고 나면 여인 의 손에  보리이삭이나 쌀이삭이 한 바 가지 쥐어지고, 그것으로 식구들의 입에 멀건 죽이라도 떠넣게 합니다.  가난한 아비도 그랬습니다.  높은 솟을대문의 기와집은 마당도 많았고 하인들도 많았 으나 구부정한 남자가 새벽부터 마당을 쓸고 있으면, 집주인은 등겨 투성이의 쌀보리라도 한 바가지 내어주는 것이 불문률 이었습니다.  나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였습니다.  시래기죽도 빈민들 의 겨울 음식이었습 니다.  예전에는 지 금 처럼 무청을 버리지 않고, 갈무리해 두었다가 겨울내내 된장찌개며 죽이며 해먹었습니다.  그 무청조차 가난한 이 는 구하기 힘든 것이었고 가을내 남의 집 일을 해주고 얻어 왔습니다.   처마 밑에 말려 두었다가 불려서 쌀보리 한 줌을 넣고 끓여 죽을 해먹었습니다.

빈민의 아이들도 굶지않기 위해 산으로 들로 다니며 무엇이든 잡아 와서 먹었습 니다.  밤이면 개울로 나가서 송진불을 밝히고, 가제며 민물고기들을 잡아 한꺼 번에 넣고 죽을 끓였지요.  그것조차도 잡지 못하는 때엔 뱀,두더쥐,토끼,쥐까 지도 잡아 먹어야 했습니다.  쥐를 먹었 다고 하니 놀랍고 믿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쥐는, 조선 빈민들의 애용하는 식재료였습니다.   궁궐의 창고에도 쥐 가 있을만큼 쥐는 조선 팔도의 어디에나 있었고 부잣집의 광에 사는 쥐들은 통통 하게 살이 올랐으니 배고픈 빈민들에겐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이었습니다.

그 쥐들조차 씻은 듯 가난한 빈민들의 집에서는 살지 않았고, 아이들은 쥐를 잡으러 부잣집의 하수도 구멍을 지켰습 니다.  목구멍에 풀칠조차 할수없는 사 람들이 살기 위해서 잡아먹은 곤충이나 벌레들은 언급하기조차 힘듭니다.
우리는 불과 두어 세대 전에 그런 일들 을 실제로 겪고 살았습니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 구황 작물이 조선에 들 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작물들조차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던, 가긍한 조선의 빈민들이 존재했고 그 경험이 아직도 가슴에 녹아있는  사람들 이 이 시대에도 살아 있습니다. 칠순이
넘은 많은 어르신들의 머리와 가슴에
그 처참한 기억은 송진처럼 엉겨 붙어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르신들이 치매에 걸리면 거의 다
배고픈 아이가 되어 그토록 먹고 또 먹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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