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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4-30 18:55
ㆍIP: 223.xxx.32
먹고 또 먹고 못 먹을 것이 없네
먹고 먹고 또 먹고 , 못먹을 것 없네  4

      권영심

제 철 음식  (1)

제 철 음식을 먹고, 자신의 고장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먹는 것은 예전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수송 보관 의 방법이 발달되지 않아, 먼 곳의 산물 을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염장을 하거나 말리는 방법으로 식재료를 보관했습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식으로 그 시기에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바로 그 시기에 가장 많 이 잡히고 가장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입 니다.   그렇게 먹어보니 그 때가 가장 맛있고 몸에도 좋은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겠지요.  지금 우리 가 서슴치 않고 먹는 모든 음식은 수 천 년 전의 기억의 축적입니다.
즉 지금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이 땅의 조상들이 그 옛날에 먹었던 음식 이라는 것이지요.

제 철 음식을 유달리 밝히고 찾아 먹는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을 여럿 보았는데 울아바지가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지요.
봄엔 도다리미역국과  애탕국 ,여름엔 민어맑은탕과  보신탕 ,수박화채, 가을 엔 추어탕과 두텁떡,겨울이면 콩비지와 만두와 냉면이  반드시 있었습니다.
그 중 내가 못먹는 것은 보신탕과 추어 탕 뿐입니다.   나는 이 음식들이 끔찍하 게 싫고 지금도 근처에 가지 않습니다 .
여름에 아버지가 밤 늦게까지 보이지 않으면 그 날은 보신탕을 먹은 날이었지 요.  내가 너무나 싫어하다 못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 경기를 일으키곤 했기에 아버지는 그 날은 아예 나를 안 보곤 했습니다.

울 엄니는 나를 유별시런 년이라면서 눈을 흘겼습니다 ㅎㅎ.  봄의 애탕국을, 울아버지는 양반의 음식이라고 했습니 다.   소고기를 육수내어 맑은 국물을 만들어 된장을 약간 풀고, 끓을 때 쑥완 자를 넣어 희고 노란 지단의 고명을 얹 어 내는 애탕국은 하얀 그릇에 참 아름 답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쑥완자를 만 들기가 보통 수고로운 것이 아닙니다.   손바닥만한 조기를 가시와 뼈를 발라내
고 살만 남겨서 생선대가리와 함께 곱게 다집니다.   생선대가리에서 가장 맛있 는 진미가 나오기에 그것을 온전히 먹기 위한 것이라고 아버지가 가르쳐 주었습 니다.   조기 다짐이 끝나면  다듬은 쑥 을 다져서 잘 섞습니다.  쑥향이 조기의 비릿한 냄새를 감싸주는데 향기롭다고 해야할까요?

그 다음 적당한 양푼에 밀가루와 쌀가루 를 반씩 섞어, 소금 후추 생강 마늘을 넣 어 준비한 후 다짐한 것을 넣어 치대야 합니다.   다 치대고 나면 찰기가 생기는 데  그 때 새알심만하게 만들어 쌀가루 위에 굴려 끓는 국물에 넣습니다 .
이렇게 만든 애탕국을 봄에 서너번 먹고  나면 어느새 여름이 옵니다.   민어맑은 탕은 여름내내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린 생선을 싫어하던 나도 이 민어탕은 참 잘먹었습니다.  무우를 적당한 크기 로 썰어 참기름과 마늘을 넣어 볶은 후 쌀 씻은 물을 받아 붓습니다.   끓을 때 손질된 민어와 대파를 넣고 푹 끓여내어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는데 참 달았습 니다.

지금의 이상스런 단 맛이 아니라 고운 단맛.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단맛이었 습니다.   그런데 지금 민어탕을 이렇게 끓이면 예전의 맛이 아닙니다.
내 입맛이 변한 것일까요?
여름 밤마다 거의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가게 문을 다 닫으면 커 다란 다라이가 우리 가게 빈 매대 위에 놓이고 누군가는 수박을, 누군가는 통 얼음을 가져 옵니다.  마대를 깁는 긴 바 늘과 망치를 내오는 사람은 울아버지지 요.   아버지는 너무나 능숙하게 바늘과 망치로 얼음을 쪼개고,몇 개의 수박들이 잘라져 숟가락으로 그 붉은 살들을 얼음 위에 쏟아 놓습니다. 마지막에 설탕을 두 국자 넣고 휘이 저으면 화채는 완성 입니다. 그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화채를 먹으며 여름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웃고 떠들던 어른과 아이들... 밤에 오줌 싼다며 나무라면서도 어른들은 마지막 국물까지도 먹는 아이들을 막지 않았습 니다.  이제 그런 여름밤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고 그 수박화채도 먹지 못하겠 지요.  그래서 그 때 먹었던 음식은 그  날의 기억을 단단히 붙들고 우리의 추억 속에 언제나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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