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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4-28 16:08
ㆍIP: 223.xxx.9
먹고 또 먹고 못 먹을 것이 없네
먹고 먹고 또 먹고 , 못먹을것 없네  2

      권영심

봄 주꾸미와 도다리  (1)

인천에 오기 전에 나는 주꾸미를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원래 문어니 낙지니 하는 요상하게 생긴 생물체에 별다른 애정이 없었고 주꾸미는 부산에선 쉽게 볼수 있는 먹거리가 아니었지요.
그런 주꾸미를 두 해 봄에 걸쳐 원도 한 도 없이 먹은 적이 있네요.  인천에 이사 와서 성당 봉사 활동만 하던 시기에, 같 이 활동하던 동생뻘 되는 교우가 동네 초입에 작은 치킨 가게를 개업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했는데 곧 동네 사랑방의 구실을 톡톡히 했지요.  한 시 가까이 되어 성당의 모든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이 가게로 뛰어가서 시원한 생맥주와 치킨을 먹곤 했습니다.  주변의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참 재미있 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중 연안부두에 작은 어선을 갖고있는 양선장은, 오후에 집에 올 때면 그 날 잡은 어획물을 조금 씩 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회도 금방 만들어 먹고, 남은 것은 아무 거나 넣어 매운탕도 끓여 먹었는데 나와 는 전혀 해당 사항없는 음식들 이었습 니다.   얄궂은 농담도 잘하고 욕도 걸게 잘하는 양선장과 그 친구들은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들이었고 친분이 더해지 면서 그들은 나이를 떠나 좋은 동네 친 구들이 되었지요.   양선장은 언제부턴 가 보기에도 야릇하게 생긴 주꾸미를 가져 왔는데,  봄 한 철만 먹을 수 있다는 그 귀한 해물이 나는 징그럽고 싫어 입 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허발을 하고 먹더군요.
매일 또는 하루 걸러 가져오곤 했는데, 그가 호기롭게 비닐 봉지를 내밀면 동생 은 얼른 음식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주꾸미를 가장 맛있게 먹을수 있다는 소위 주꾸미 샤부샤부였는데, 만드는 방법은 완전 초간단.  냄비에 다시마 조 각 두 세개 넣고 물이 끓는 동안 주꾸미 를 대강 씻어 그대로 집어넣고 있는 야채 아무거나 집어 넣으면 그만입니다.

끓기까지 양선장의 무용담을 듣는 것은 양념이고 소주병이 두어병은 비워 집니 다.   고정 멤버가 어느새 형성되어 있었 는데 가위를 쥔 사람은 양선장 입니다.
간장에다 금방 갠 고추냉이를 듬뿍 넣어 준비한 뒤 입맛을 다시면서 기다리는데 그 반짝이는 눈빛들과 소주를 들이키는 모습들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아 먹지 도 못하면서 그 자리에 있곤 했습니다.
그런 나를, 양선장은 얼마나 안타까워 하는지 마치 친오래비가 막내 동생 챙기 듯이 주꾸미 먹어보기를 주구장창 을러 대었습니다.  다리를 먼저 먹고난 뒤 몸 통을 더 익혀 자르면 먹물이 터지면서 국물이 까매지는데 거기에 라면 사리를 넣어 먹고 밥까지 비벼먹고 나서야 주꾸 미 샤브샤브의 대장정이 끝이 납니다.   그 대장정에서 내가 하는 일이 라고는 치킨과 생맥주를 먹는것 뿐.
참 요지부동으로 안 먹었는데 지치지도 않고 먹어보기를 권하는 양선장의 모습이 어느새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울아버지 이후로 내가 뭔가를 못 먹는 것에 그토록 애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문어며 낙지는 먹기는 했고 직접 잡아온 사람이 그렇게 권하는데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자리를 피하기도 했는데 아이를 시켜 부르러 와서 기어이 참석하게 만드니, 도리가 아니었지요.  주꾸미 알이라고 하는 쌀알처럼 생긴 것을, 다리와 함께 접시에 덜어 주는데 모두의 눈이 나만 쳐다 보았습니다 ㅎㅎ.  그래서 좋아하 는 고추냉이 간장을 듬뿍 찍어 난생 처 음으로 주꾸미를 먹었는데 감동적인 맛이었습니다 !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것 같은 알의 식감과 부드러우면서도 졸깃거리는 그 맛은 정말이지 놀라움의 신세계였지요.   맛있다는 내 탄성에 양선장은 아버지같은 웃음을 터트렸고 사람들은 저마다 이제 주꾸미 씨가 마르 게 생겼다고 농담들을 하며 나에게만 권했습니다.  그 때 마신 소주의 맛조차 달았습니다.  까만 먹물에 끌여낸 라면 과 김가루와 참기름을 넣어 비빈 밥맛까 지 알아버린 나를 위한 양선장의 주꾸미 조공은 다음 해까지 이어졌습니다.

복잡한 일로 인해 조업을 그만둔 양선장 이 버려 놓은 입맛 덕분에 한다 하는 주꾸미 전문점,많이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좁은 치킨 가게의 옹색한 주방에 서 끓여내는 주꾸미 샤브샤브의 맛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 는 지금 주꾸미를 잘 먹지 못합니다.
주꾸미 철이 되면 내가 직접  생물을 사다가 지인들과 함께 해먹어도 양선장 이 가져온 주꾸미 맛이 안나니까요.
음식은 추억의 맛이라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요즘 봄주꾸미가 금값입니다.
지난 해보다 어획량이 반도 안된다네요.
오징어도 사라지고 있고 이제 주꾸미도 우리의 식탁에서 없어질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해물의 70%가 수입산이라는 사실...
바다가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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