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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10-19 17:27
ㆍIP: 58.xxx.124
향수를 뒤집어 쓴 남자
향수를 뒤집어 쓴 남자

       권영심 ( 2021 , 10 , 19 )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명성 높은 명품들
을 거의 써 본 것이 딱 한 가지 있는데
바로 향수다.
아마 어릴 때 부터 향수를 무척 좋아했
지 싶은데 그것은 이유가 있다.
나는 이상한 냄새에 굉장히 민감했는데
어떤 때는 고약한 냄새가 가시지를 않아
서 미칠 듯이 괴로울 때도 있었다.
아무리 주변을 청소하고 몸을 씻어도
그 냄새들은 없어지지 않고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때 엄마 화장대에서 향수를 쌔벼서
몰래 코 끝에 묻히곤 했는데 그 진한 냄
새가 다른 냄새를 차단해 주었다.
냄새 때문에 알게 된 엄마가 어린 것이
향수를 뿌린다고 난리를 쳐서 아버지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이유를 물었다.
향수는 어린얘가 쓰는 것이 아니라면서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나는 울면서 냄새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고약한 냄새가 느껴지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무언가
를 아는 듯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그런 냄새를 못 맡고 향수
냄새만 맡을테니 너를 이상하게 볼 것 이라면서 다시는 하지말라고 했다.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는 그후 알게 되었
고 지금도 어느 장소에서 느끼곤 한다.
암튼 그런 이유로 향수를 접한 나는 어
지간한 향수를 거의 다 써보았다.
한 때는 수 십개의 향수를 진열해 놓곤
했으나 지금은 쓰는 것 몇 개 외엔 없다.
예전에는 짙은 향을 좋아했으나 지금은
잔향이 오래 가는 은은한 향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이 나를 스쳐갈 때  느껴지는
향이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때도 있다.
우리 가게엔 개성이 강한 손님들이 많은
데 향수를 뒤집어 쓰고 오는 남자도 있다
그가 처음 온 것은 겨울이었는데 들어서
는 순간부터 향수 냄새가 온 가게를 채웠다.
나도 한 때 써 본 샤넬의 향수였는데 매
우 강한 향이어서 쓸 때 조심스러웠다.
넘버는 지금 잊었는데 양 손목에 살짝
뿌려 비빈 다음 옷깃이나 귀 밑에 발라 도 하루종일 잔향이 남았다.

그런 향수를 얼마나 뿌렸는지 나중에는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남자가 여자 향수를 그렇게 뿌리고 온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남자 향수는 대부분 짙은 무스크 계열이
거나 스파이시해서 선호하는 여성들도
많이 있다.
그런 향수를 적절하게 쓰는 사람은 지나 치기만 해도 좋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너무나 진한 꽃향기의 향수를 뒤
집어 쓰듯이 사용하는 남자라니, 정말
별로였다.
나름 멋을 낸 옷차림에 중후함이 느껴지
는 모습인데 마침 다른 손님도 없어서
그와 말상대를 했다.
맥주 한 병에 소주 한 병, 견과류의 안주
가 그의 메뉴였다.
내가 향수를 알아보자 그는 기쁜듯이
웃었고 수 십 년 째 같은 향수만 쓴다고
했다.
나는 한 병을 사서 몇 년을 썼는데 그는
두 달에 한 병을 쓴다고 해서 정말 놀라
고 말았다.
백미리 한 병에 수 십 만원인데 그런 향
수를 일 년에 여섯 병?

나는 그에게 왜 이렇게 향수를 낭비하느
냐고 약간 비난투로 말했다.
실내에서 이 좋은 향수가 다른 사람들의
두통을 유발하고 기분을 상하게 할텐데
그런 것을 못 느끼느냐고 말이다.
그는 크게 웃으면서 하도 시비를 많이
당해서 손님이 있는 가게는 안 들어가고
일식집에도 안 간다고 했다.
실제로 고급 일식집에 갈 때는 향수는
금지 사항이다.
그것은 무언중에 지켜줘야 하는 예의이
고 심지어는 입장을 거절당하기도 한다.
암튼 그는 향수로 인한 일화를 몇 가지
이야기해 주었는데 참으로 멀쩡한 사람
이었다.
자신의 별명이 친구들 사이에선 샤넬 그
새끼라고 하면서 껄껄 웃었다.
삶에 상당한 내공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향수는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는
약이라고 해서 정말 놀라고 말았다.
그는 그 어떤 냄새도 맡지 않기 위해서
매일 향수를 뒤집어 쓴다고 했다.
그 순간 그도 혹시? 했으나 그는 실제 있는 병을 앓고 있었다.
결혼한 뒤 얼마지나지 않아 발병했는데
원인도 모르고 치유법도 없이 그저 냄새
를 맡으면 구역질이 나면서 심하면 온
얼굴에 발진까지 돋는다고 했다.
세상엔 그런 희한한 병도 다 있었다.

병때문에 이혼도 하고 직장 생활도 못
하고 다행히 부유한 부모님 덕분에 집에
서 격리하듯이 살았단다.
그런데 어느 날 시집 간 누이가 집에 왔
는데 그날따라 향수 냄새가 진했고 그
냄새에 다른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더
라는 것이다.
그는 백화점에서 가장 강한 향의 향수를
구했고 그 때 부터 새 삶을 얻었단다.
주변에선 질색 팔색을 했으나 그는 자신
만의 라이프를 누리면서 지금까지 정말
잘 살고 있다면서 웃었다.
한국에서만 이상하게 보거나 질색을 하
는데 외국에선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터키에 가서 자신만의 특징을 조합한 향
수도 만들었는데 정말 좋은 날에만 뿌린
다고 했다.
혼자의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그는 자신
에게 너무나 당당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본 적이 별로
없다면서 그는 가끔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코비드가 시작된 후 한 번도 안
왔는데 오늘 그가 왔다.
진하고 강한 샤넬의 향의 갑옷을 입고서
말이다.
너무나 반가웠고 그의 향기도 좋았다.
다음 해 내 생일에 샤넬을 선물해 주겠 다고 하니 벌써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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