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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1-10-06 18:39
ㆍIP: 58.xxx.124
귀신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시대에 따라 귀신도 변한다  6

           권영심 ( 2021 , 10 , 6 )

그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진 않은데 그
정지 언니는 우리집에 약 일 년 정도
있은 것 같다.
고향에서 뭔가 소식이 와서 급히 내려 가지 않았으면 아마 우리 집에 더 있다
가 시집 갔을 것이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둥근 얼굴
모양과 구수한 목소리까지 다 기억나는
것은 왜일까?
그 언니는 다른 언니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는데 엄청나게 미신적이라는
것이었다.
가리는 것, 금기, 해서는 안 되는 말, 여러 비방들과 혼자서 액막음과 액풀이
까지 했다.
그리고 밤새도록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바로 귀신을
본 것이었다.
그 언니는 아기 때 부터 귀신을 보았고
아는 소리를 해서 부모에게 엄청 맞기
도 했단다.
그런데 무병을 앓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
고 단지 보고 듣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으면
형체가 있는 무엇이 스윽 옆에 와서,
누구집 할매가 내일 언제 죽는다고 알려
주었단다.
그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온 동네가 뒤집어졌다.
무당이 신딸로 달라고 하도 여러 곳에서 데리러 와서, 그다지 어려운 집이 아니 었는데도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남의 집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 한다.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언니가 다짜고짜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빤히 바라 보았다.
그러더니 세상에!!! 식칼을 쑥 내밀어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뻔 했다 .
- 야야, 니 밤에 가위 눌리제? 온갖 구신
들이 마구 달라들고 벨 희한한 데를 다
델꼬 가제? 오메야... 시상에, 어째
쓰끄나, 야야, 이 칼을 목 근처 이불 밑에
넣고 자그라 -

내가 제대로 표현을 못 하는데 그 눈빛
과 따뜻하고 구수한 말투, 그리고 내가
가위 눌리는 것을 아버지만 알고 있었는
데 그 언니가 어떻게 안 것일까?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고 언니는 나를
눕게 한 뒤, 자라고 토닥였다.
정말 꿈도 안 꾸고 , 아무것도 보지않고
잠을 자서 깨어서도 놀랐다.
언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고
식칼은 하룻밤 방비일 뿐이라고 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언니는 뭔가
네모지게 접은 것을 내게 주었고 책상
위, 안 보이는 곳에 숨겨 두라고 했다.
나는 언니의 그런 행동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냥
수다가 많은 처녀였다.
그녀의 부적보다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훨씬 강력했는지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나는 밤에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순식간에 펼쳐지는 그 세계에 대해
익숙해 있었고 깨는 방법을 알았다.

그 언니는 더 이상 내게 뭔가를 묻지 않
았고 자신이 보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면
서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 아무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 언니에게서 내가 받은 위안은 말도
못 한다.
이 세상에 뭔가를 보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하도 사람들에게 시달려서인지 그 언니
는 부모님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한 번 나와 함께 가게를 보면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표정이 변하
더니 밖으로 나갔다.
언니가 돌아온 것은 한 시간이나 지나서
였는데 저녁 안 한다고 엄마에게 혼이
났었다.
나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고 언니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전차 종점 못 가서 작은 사거리가 있었 는데, 그 곳에 항상 웅크리고 있던 구신
이 어떤 사람 옆에 따라가는 것을 보았
다는 것이다.
구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확하게 말하
면 지박령이다.
지박령은 어지간한 것으로 그 자리를
떠나는 법이 없다.
이미 갈 곳을 잃었기에 그 장소에서만
있을 뿐이다.

지박령이 어떤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은
뭔가가 그 염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언니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언니는 보고 듣고 했으나 지식이 없었기
에 그저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다.
큰 길을 건너 영선동 고개까지 따라갔으
나 길을 잃을까봐 그냥 돌아왔다는 말에
나는 큰 웃음을 터트렸었다.
워낙 어릴 때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그녀
는 자신이 보는 것을 말하지 않았고 내게도 비밀을 지켜 달라고 했기에 아버
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비밀을 지킨다는 것 보다 만약 아버지가
알았으면 그녀를 당장 시골로 보낼 것이
뻔해서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았
고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화순 어딘가에 식모살이 갔을 때는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 점집에 갔었는데 무당
이 그랬단다.
자기 옆에 있어서 신제자 공부를 마치면
나라가 떠들썩한 큰 만신이 될 수 있다 면서 붙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서운
데 공부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거절했
다면서 웃었다.
불과 일 년 남짓 있었으나 그 언니는 지
금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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