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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은경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은경
ㆍ작성일 2016-04-14 16:29
ㆍIP: 211.xxx.28
아버지와 향수


 막내 남동생이 상해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다녀오며 서울 우리 집에 들렀습니다.

아버지에게 보내드릴 향수를 어떻게 전할까 하던 차라 동생에게 아버지께 전해드리라고

물건을 전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며칠 전이 아버지 생신인데, 그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고

기억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생신이 며칠 지나서야 아차! 하고 깜빡했던 것입니다.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은 예전 같으면 당장 전화로 야단을 치실 분인데, 그냥 조용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버지도 예전 같지 않으시구나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아버지는 늘 향수를 뿌리고 다니십니다. 그것도 꼭 특정 상표를 고집하시고,

사러 가기가 귀찮다고 딴 것을 사 보내면 당장 그건 나빠서 못 쓰겠다고 퇴짜를 놓으시는

그런 분이 십니다. 더구나 향수를 사 보내드린 지 꽤 되었기에 이제나저제나 하던 차이기도

해서 일부러 가게에 들러 향수를 사서 동생 편에 보내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른 건 몰라도 향수만큼은 딸 중에 막내인 제게 사 달라고 하십니다.

왜 딸이 여럿인데 꼭 내게 부탁하시냐고 여쭤 보진 않았지만, 액세서리를 좋아하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셨으리라 나름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백구두와 백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정도로 멋을 부리시던 분입니다.

그런 취향을 큰 남동생과 제가 약간 닮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사 달라고 하시니 사 드리기는 했지만, 향수를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었습니다. 이해가 없으니 자발적으로 기분 좋게 사드린 향수는 아니었습니다.

요즘 들어 아버지가 참 안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집안의 폭군같이 늘 어렵기만 하고 가까이 다가가 지지 않던 아버지인데, 요즘은 아무도

살갑게 대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 소외된 모습으로 계시는 아버지가 측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못해 자칫하면 노인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아직 아버지에게서 노인 냄새가 난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엄하게 하셨지만, 7남매라는 적지 않은 자식을 낳아 기르시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자식을 길러보니 깨닫게 됩니다.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자식 모두를 잘 기르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저는 둘을 기르면서도 자식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자식을 길러봐야 부모 맘을 안다는 얘기가 있나 봅니다.

 

아마 향수를 전해 받으면 전화가 오겠지요, -막내야 향수 잘 받았다- 하시면서,

아직도 향수를 뿌리시고 다니는 아버지, 건강하시다는 표시이기도 하겠지요, 그런 멋쟁이 아버지에게

향수나마 사 드릴 수 있는 저는 아버지의 행복한 딸이기도 합니다.
이름아이콘 김경렬
2016-04-14 17:07
 이은경 작가님!
아버님께서 멋지고 예쁜 막내딸 참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옛날 아버지들은 지금 아버지 처럼 자상하고 살갑지 않으셨지요.
권위적이고 체면을 중시 하시던 풍습이라서~~
아버님께서 년만 하시겠어요.
향수를 애용 하시는 멋쟁이 십니다.
살아실제 잘해 드리세요. 부럽습니다.
나이들어 보니까, 재물보다 마음이더 중요 하드라구요.
살가운 안부한마디. 그거 한마디면  며칠을 두고 즐거운 마음입니다.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는다는말, 그만큼 즐거움의 포만감이 대단한거지요.
의미깊은 글 배독하면서 저도 잠시 아버지의  추억에 잠겨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름아이콘 백낙은
2016-04-15 14:50
회원사진 		이은경 작가님.
멋진 귀 신사 아버님이 계시군요.
저도 좀 멋을 부리고는 싶은데 한 번도 그러지를 못했답니다.
요즘 아버님이 좀 소심해 지셨나 보네요.
그래도 큰 소리 치실 때가 좋답니다.
나중에는 그 소리 들으려 해도 듣지 못하고
그 향수 사달라시는 전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아버님도 엄하셨지만 그래도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시면 기분 좋은 일도 생기고요.ㅎㅎㅎ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되새김질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안하소서.
   
이름아이콘 이은경
2016-04-16 12:55
 《Re》김경렬 님 ,
김경렬 작가님의 따뜻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저도 나이가 들며보니 아버지에 대해 마음이 찡할 때가 많습니다.
예전 분이라 권위의식 때문에 가족에게 다가오지 못하시고,
작가님 말씀대로 살아계실때 잘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게 잘 안되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름아이콘 이은경
2016-04-16 12:58
 《Re》백낙은 님 ,
자상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아버님 같으신 작가님의 말씀이니 더더욱이요,
말씀대로 언젠가는 향수 사 달라는 전화가 오지 않겠지요,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 합니다.
작가님 좋은 말씀 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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