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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은경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은경
ㆍ작성일 2014-07-30 20:25
ㆍIP: 211.xxx.28
여자, (이름을 잊고 산 세월)


 

요즘은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 하고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곳곳에서 대단합니다.
학교 선생님은 물론 사법고시 학생 수에서도 여자가 남자를 앞선 지 오래라고 합니다.

학창시절 아빠는 늘 그러셨습니다.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가 없다. 집에서 살림하면서 콩나물값이나 계산할 정도면 된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시대 대부분 가장의 일반적 사고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우리 집은 딸 다섯에 아래로 남동생이 둘입니다.
아빠의 이런 완고한 교육관 때문에 다섯 자매는 모두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남동생들에겐 후하셨던 아빠셨습니다.

예전 여자들은 참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주변에서 본 여자들은 모두가 무슨 댁으로 불렸지, 자신의 이름도 없었습니다.
우린 단순히 이름이 그런가 보다 생각을 했습니다.
여자들은 떠나온 고향이나 사는 곳을 빗대서 “전주댁.” 하거나 첫아이의 이름에 빌려서 아무 게 엄마
이렇게 편하게 호칭을 했지만, 정작 그분의 이름이 무엇인지 주위에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엄마도 큰언니의 이름을 빌려 “미경 엄마,”로 불렸습니다.
돌아보면 여자의 존재감이 미미하던 세월을 여자들은 살아온 셈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못난이로 불렸습니다. 동네 오빠들도 모두 그렇게 불렀습니다.
다섯째 딸로 태어나 따뜻한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사랑이 받고 싶었던 나는 늘 징징거리는 것으로
관심을 끌려고 했나 봅니다. 늘 징징거리는 다섯째 딸, 지금 생각하면 못난이 호칭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어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불러주던 내 이름, 이은경은 학교에서나 잠깐 사용되고 잊히던 이름이었고,
“못난이,” 이게 어린 시절 내 이름입니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식장 입구와 단상에 신부 이은경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던 내 이름 석 자,
이때를 제외하면 또 이름 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새댁하고 부르거나, 시댁에선 새아기, 하고 불렸지만 그것도 잠시 첫아이를 낳고부터는 큰아이의 이름에
엄마가 붙어 아무 게 엄마가 내 새 이름이 되어 나 자신에게도 너무도 익숙한 내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는 내 이름에 혼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나 식구들은 여전히 큰아이의 이름을 앞에 두고 누구엄마라고 부르는데
근래에 알게 된 사람이나 막내와 연관되어 알게 된 사람은 막내의 이름을 앞에 두고 누구엄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막내가 운동(축구)을 시작하고부터는 막내 이름에 붙은 아무 게 엄마로 불리는 일이 부쩍 잦아졌습니다.
일해야 하는 남편들 대신, 엄마들이 일이 있으면 모이게 되고 온통 아무 게 엄마들 뿐입니다.
어디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자는 없습니다.
이렇게 못난이에서 큰아이 엄마로 또, 작은아이 엄마로 내 이름은 바뀌었습니다.

이젠 애들도 크고 잔손 갈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이름만 잊고 산 것이 아닙니다.
뭐하나 나 자신을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지 못하고 허둥대며 산 세월입니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의 내면을 살찌우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도예를 배워 전시회도 열고, 글을 써 등단도 하고,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하며 새로운 삶의 재미를
느끼며 의욕이 넘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활동의 전면에는 떳떳한 내 이름이 있습니다.
아무 게 엄마가 아닌, -도예가 이은경- 이거나 -작가 이은경-
다시 찾은 자랑스러운 내 이름 석 자입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름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름을 잊고 산 세월 속에서도 유일하게 내 이름을 잊지 않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 있습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이면 어김없이 예쁜 꽃다발 속 카드로 내 이름을 잊지 않게 일깨워 준 남편,
-이은경 축하해- 아니면 -이은경 사랑해-
오랜 세월 남의 이름으로 살았지만, 내 이름을 잊지 않게 해준 사랑입니다.
머지않아 아무 게 엄마로 불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애들도 성장하고 제 갈 길을 갈 테니까요,
남은 세월은 열심히 노력해서 제 이름을 살찌우려 합니다.
도예가 이은경으로, 작가 이은경으로 자랑스러운 엄마와 아내가 되려 합니다.
그동안 제게 이름을 빌려 준 큰아들, 작은아들, 이름을 잊지 않게 사랑을 준 남편에게 제가 줄 수 있는
작은 보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름아이콘 이순향
2014-07-31 10:04
회원사진 		맞아요....이름을 불릴 일이 별로 없지요...이제부터는 작가, 도예가로써의 '이은경'이라는 예쁜 이름이 많이 불리워지길 바랍니다...^^*
   
이름아이콘 정찬열
2014-08-01 23:27
회원사진 		이은경씨 아니 이은 경작가님 "여자"(이름을 잊고 산세월)뜻깊은글에
다시한번 이은 경 작가님의 즐겁고 행복한 주말되세요
   
이름아이콘 이은경
2014-11-10 21:31
 《Re》이순향 님 ,
용기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잘 하고 있는지 자신감이 없을 떄도 많습니다.
이순향 작가님의 격려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이름아이콘 이은경
2014-11-10 21:32
 《Re》정찬열 님 ,
정찬열 작가님,
따뜻한 댓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께서도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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