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은경
ㆍ작성일	2018-01-24 14:38

ㆍIP: 59.xxx.243

뜨개질,

나이가 한살 두살 더 먹어가며 느끼는 것은 예전과 달리 무료함을 느끼는 일이 잦아진 것입니다.

막내 운동 뒷바라지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니던 세월도 이젠 아주 먼 옛날일 같이 언제 그랬던가

싶기도 합니다. 더구나 아들 둘을 한 번에 군대에 보내고 나니 갑자기 너무 할 일이 없어진 듯 허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료함을 느끼기 전에 훌쩍 나와 친구 옷가게에 들려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하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귀찮다는 생각에 외출도 큰맘 먹어야 하게 됩니다.

그동안 도예를 배우려고 대학에서 운영하는 사회교육원을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이것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계속할 것인가를 망설이게 되기도 합니다.

우선 처음에는 만드는 재미에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이런 작품이 쌓여 더 만들기도 어려운 지경이고

언제부터인가 손목이 아파 도예 작업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사실 작품을 만들려면 흙도 사야 하고, 가마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렇다고 개인 공방이 없으니

팔기도 그렇고 지인에게 주기도 그런 애매한 작품이 꽤 여러 점 쌓여 있습니다.

(모르는 분들에게 줘 봐야 하잖은 물건이라 여기고 막 굴린다는 생각에 주기도 꺼려집니다)

뭔가 보람 있는 배울 것이 없을까? 골몰히 생각한 끝에 뜨개질을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뜨개질은 어린 시절 주변에서 흔히 보던 익숙한 작업이기에 이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과학기술대 사회 교육원을 찾아 수강 신청을 하게 되었고, 수업을 들어보니

도예에 못지않은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한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매력이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길 잘 했다는 만족감이 큽니다.

다른 작업과 달리 뜨게는 처음부터 용도와 대상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에게 줄 목도리라거나, 조끼 혹은 스웨터 등으로 완성품을 사용할 사람과 용도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를 든다면 편지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편지를 쓸 때는 받을 분을 머리에 그리며 사연을 쓰게 되듯, 뜨게도 사용할 사람의 모습을

그리며 작업을 하게 된다는 점이 편지 쓰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 한 자 한 자 정성껏 쓴다는 표현을 하듯, 뜨게는 한올 한올 짜내려 간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 자 한 자나 한올 한올은 상대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마음에 대한 표현입니다.

뜨게는 실을 고르는 작업부터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수입니다.

상대와 어떤 색이 잘 어울릴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이 색에는 어떤 옷을 입어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상상도 하게 됩니다. 상대의 나이, 피부색, 심지어는 취향에 대해 이해까지 하게 되는 것이

뜨개질이라 선물을 받는 사람은 돈의 가치를 떠나 정성에 감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뜨개질은 잡념을 없애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좋은 수양법이기도 합니다.

자칫 한 올을 놓치고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은 아깝게 짠 올을 다 풀어야 하는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대충 틀려도 그냥이 통하지 않습니다. 한 올이라도 잘못을 덮고 넘어가면 작업한 것 만큼 어려움이

더 커지게 마련이니, 뜨개질에서 세상 사는 교훈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뜨게는 다시 가 가능하지만 인생은 다시 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뜨게는 입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풀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게 가능하지만,

아쉽게도 인생은 한번 산 삶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도 정적이 감도는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뜨개질을 하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마시다 만 커피의 향이 짙게 퍼지고 있습니다. 두 줄이 만나 서로 좋은 인연으로 얽혀

고운 작품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함과 멋을 준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엄마 나 아주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막내가 부대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고 난 안온함과 행복감

에 더해 뜨개질이 행복합니다.

백낙은

2018-01-26 15:51

이은경 작가님.
작년에 아들 군대 보내시고 올린 글 감명 깊었는데
"뜨게질"을 보고 작가님의 섬세함을 느께게 되었습니다.
도예를 하시다가 뜨게질로 취미를 변경하셨다니 다행스럽게 느낍니다.
저도 취미로 수석을 수집했는데 지금은 손질도 못하고 지저분하답니다.
색소폰도 좀 했지만 너무 힘이 들어 피리를 해 보지만 역시 마찬가지네요.
건강을 위해 다른 취미생활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다소곳이 앉아 뜨게질 하시는 모습 눈에 선합니다.
감성을 살려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추위에 건강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은경	자주 서재를 비워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아들 뒷바라지를 하다 손을 놓고 나니 선뜻 글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의욕이 생길 때 열심히 하겠습니다. 위원장님께서 그런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하기 어려운 것이 취미 생활이니까요, 댓글로 반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백낙은 위원장님,	1/27 10:38

장계숙 2018-01-28 17:17	공감의 글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전 어쩔수 없이 바쁘게 보내야 하는 숙제 같은 시간들이 늘상 기다리는 까닭에 맘도 몸도 여유가 없지만 참으로 부러운 마음으로 배독했습니다. 친구들의 일상을 들어보면 중년의 시간은 참 더디게 흐르는것 같습니다. 그간 아이들 뒷바라지에 여유 없이 보내다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들뜨기도 하고 특별함 없는 일상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저두 딸아이들 방학 동안 뜨개질을 가르쳐 주느라 목도리랑 파우치를 떴습니다. 오손도손 즐거운 시간이였구요. 공백의 시간을 잘 사용하면 보람도 크구요. 글도 쓰시고 취미생활도 하시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시는듯 합니다.

김경렬 2018-01-29 23:41	이은경 작가님! 안녕 하세요. 도자기에 이어 뜨게질까지--- 제가 부러워하는것만 하십니다그려. 자수나 뜨게질같은 걸 배우지 못해서 그런 기술있는분들이 부럽답니다. 예쁜작품 많이 만드시기바랍니다.

김종덕 2018-01-30 12:12	이은경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뜨개질이 편지쓰는 것과 같고, 대상이 정해저 있으며 정성으로 새기며, 이는 인생과 같다. 되물릴 수 없는 인생과의 차이, 한번 놓친것을 그냥 두고 가면 반드시 되돌아 와야 한다는 것,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상훈 2019-01-01 21:53	이은경 작가님, 1년을 넘게 비운 작가 서재에 들어와 새해인사드립니다. 건강은 필수, 원하는 소망도 필수인 만큼 건강을 필두로 올해는 소망 한 가지라도 꼭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서재에서 다시 뵙기를 기다립니다.

아버지,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