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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3-21 16:23
ㆍIP: 223.xxx.227
나의 노래는 언제 사라졌을까?
나의 노래는 언제 사라졌을까?

          권영심 ( 2022 , 3 , 21 )

언제부터 노래를 부르지않게 되었을까?
노래방에 안 간지도 벌써 몇 년 째인데,
내 노래는 흥을 돋구는 노래가 아니어서
그다지 즐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래 를 잘 부르는 축에 속했고 속상할 때 혼 자 가서 몇 시간 동안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심사를 풀던 때도 있었다.
먼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노래를 참 좋아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잘 불렀고 혼자 즐겨 불 렀었다. 지금의 아이들처럼 유행가를 부 르거나, 어른들의 노래는 전혀 부르지
않았음을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내가 싫
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이나 청승맞은 노래가
싫었고, 아버지도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  유행가는 어른
들의 노래이며, 아이들은 동요나 가곡 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
었다.  그런 아버지의 뜻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상하게도 유행가가 싫었다.

그 성향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한 번
도 어느 가수의 팬이 되어본 적이 없다.
물론 마음에 닿는 노래가 가끔 있고, 그런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으나 지금의
나는 완전히 노래를 잃었다 .

"마리야, 노래 좀 불러보라우 우리 마리
야 노래 들으면 아바지 속이 좀 팬팬해
질 꺼이야 ."

아버지를 따라 빨간 등대나 이송도 바닷
가에 가서 낚시할 때나 걸을 때, 아버지
가 그렇게 노래를 부탁할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아버지가 망향의 그리움에 몹시 슬프거나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라
는 것을 어린 마음에도 알았었다.
나는 아버지의 주크박스 노릇을 톡톡히
했는데, 두어시간을 불러도 끝나지 않을
만큼 많은 노래를 알고 있었다. 동요와
가곡, 외국의 민요 등등,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만큼 나는 많은 노래들을 줄줄
부르고, 내 목소리는 맑고 높게 울려 퍼
져서 주변의 박수도 많이 받았다 .가수
시키라는 말도 들었는데 나는 전혀 아니
었다 .  그저 혼자 부르고 아버지의 옆에
서 부르는 것이 좋았다 .동요의 가사가
너무나 좋았고 가곡의 선율이 부르는 내
귀에 그렇게 녹아 들었다 .

가장 노래를 많이 부르던 때는 집을 떠 나 어느 곳에 머물 때였다. 밤새도록 혼자 노래를 부르면서 날을 밝히기도 했다.  깊은 산사의 밤을 홀로 견디기에 노래와 멍때리기가 제일이었다.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명상을 한다고 했 으나 나는 이미 우주의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그렇게 앉은 채로 아침을 맞기 도 했다. 아니면 노래로 밤을 새웠다. 어둠이 내리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 나 잠을 자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들이 있었다.  악기 하나라도 연주할 수 있었 으면 오죽 좋았을까?   그러나 나는 오 로지 아카펠라였다. 아마 그 시절이 가 장 노래를 많이 부를 때였을 것이다. 부산을 떠나 살면서 노래방을 많이 다닐 때도 있었다.  그래도 혼자 부르는 것을
즐기면서 가곡이나 민요의 가사를 잊지
않았었다 .내게서 노래가 떠난 것이
언제였을까?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가끔 입에 올리 는 노래가 있었다.   그집 앞, 청라언덕,
떠나가는 배 ,은발,가고파, 꽃피는 산골..
그런데 이제는 어느 노래도 가사가 떠오
르지 않고 선율도 맞출 수가 없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이
뒤의 가사조차 기억나지 않고 머리속에
서 뱅뱅 돌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다 잊어 버렸을까?

" 아이고, 마리야 쟈는 머리속에 레코드
판이 들었나비다. 우야믄 저렇게 노래가
줄줄 나오노? 우째 그 노래들을 다 외우
는지 참말로 웃긴대이 ."

사람들이 그럴 만큼 많이 알던 나의 노래들... 이젠 한 곡도 부르지 못한다.
노래방에 가더라도 나올지 의문이다.
노래 한 곡이 아니라 한 소절도 입에 담
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지만,아쉽거나
애틋하지는 않다.  

지금은 좋아하는 올드 팦과 가곡을 혼자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요즘은 9시에 문을 닫아서 못하지만 예전에 새벽까지 장사를 할 때는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서 따라 불렀었다.  우리의 가곡 들을 그렇게 듣노라면 느껴지는 감정이 정말 남다르다. 때로는 그 음악소리에 손님이 들어와서 함께 들으면서 이야기 가 길게 이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를 때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보다 훨씬 복잡한 애절함 이 있다.  노래를 부르면서 나도 몰래 눈
물이 흐를 때도 많았으니 밝고 명랑한 노래는 그다지 부르지 않았지 싶다.
그러나 마음을 감싸주는 정감으로 가득
했던 노래의 힘은 분명히 있었다.
이제 나는 노래를 잃었지만 들을 수는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다. 노래는 내
마음 속을 언제나 유영하면서 기쁨을 주
고 있는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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