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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3-16 15:47
ㆍIP: 223.xxx.52
싸움이 사라졌다
싸움이 사라졌다

          권영심( 2022 , 3 , 16 )

싸움 구경과 불 구경은 자다가도 한다라
는 말이 있을 만큼, 싸움이 일상이던 때
가 있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하루 에도 몇 번이나 크고 작은 싸움을 보았 었다.   시장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려서 부터 정말 많은 싸움을 보았다.   손님과 상인들의 다툼은 다반사였고 부부싸움 도 그렇게 많았었다 .

"아이고 나 죽인다! 동네 사람들!
나 죽네 . 나 살리소."  

하면서 집 밖으로 뛰쳐 나오면, 남편이
집안 살림 부수는 소리가 와장창!쿵꽝!
어느새 그 가게나 집 주변엔 사람들이 빙 둘러서고, 어른들은 애들은 가라고 쫒았지만 더 모여 들었다.   말리면서,
구경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들 덕분으로 공기가 새듯 싸움은
끝난다.   남편에게 맞기도 하는 아낙네 는 땅을 치면서 울기도 하지만 다음날 이면 부부가 너무 멀쩡하게 잘 지냈다.

상인들과 손님들 사이의 싸움은 격렬하
기도 하고 장기전으로 돌입할 때도 있었
으나,그래도 해결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
게 웃고 이야기들을 했다.   고부간의 싸 움도 만만찮았고 머리 큰 자식들과의 다툼도 제법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공간에서 장사하면서 부딪히는 알 력은 경상도 특유의 고성의 사투리와 함께 시장을 뒤집어 놓을 듯 했다.
그러나 아들은 결국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고 체면을 잃는 아버지는 없었다.

"또 싸우네! 아이고 시끄러바 죽겠다!
마! 고마 해라."

밤중에 벌어지는 싸움에 여기저기서 고함을 치고 그 고함소리가 또 다른 싸 움을 불러 일으키던 그 시절은 참으로 시끄러웠다 .  그런데 요즘과 같은 잔혹 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뒤엉켜서 시장 바닥을 뒹굴었어도
다음날이면 서로 웃고 밥 먹으며 놀았 다.   나죽네, 다 죽이삐끼다!  소리치고 울고 땅바닥을 칠 망정 몽둥이 한 번 손에 들지 않았다 .  

아이들도 잘 싸웠고 걸핏하면 머리채 움켜 쥐고 소리질렀으나,몇 시간 지나면 서로 헤헤 웃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 그렇게 어울리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정말 싸움 구경이 힘들다.
살기가 좋아져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싸움이 사라진 것일까?
그랬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일까?
그러나 싸움이 사라진 이 고요함 속에
암덩어리처럼 뒤엉킨 무언가가 있어 등
골이 시릴 만큼 두렵기도 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끼리 말다툼 끝에 바
로 살인으로 이어지고 몸이 스치는 것만
으로도 결정적인 치명상을 입히기도 한
다.    예전에도 서로 사귀다가 헤어지는
커플이 흔히 있었고 이별로 인한 싸움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헤어진 여성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가족을 해치는 일은 거
의 없었다.   혼자 가슴을 쓸며 괴로워하
거나 술김에 찾아가서 욕설을 퍼붓다가
도 주변의 만류로 그만두는 것이 보통이
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대부분의 연인들은 헤어지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이별을 통보하게 되면 밤길도 다닐 수 없게 되 고 이사도 고려해야 하며,가족들도 전투 대세를 갖추고 공포속에서 지내야 한다.    지나간 세대의 헤어진 연인은,술에 취해 집을 찾아와 대문도 두드리고 울부짖기  도 했으나 사람들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구경꺼리이기도 했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웃고 격려하고 말렸다.
그런데 오늘날의 헤어진 연인은 심하게 는 살인자로 돌변하기도 하고, 공포의 추적자가 되어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조용함 속에서 모든 악행은 이루어지고,
피해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 하고 숨고
도망다녀야 한다.    이웃간의 소통도 끝
난지 오래이다.    벨을 누르는 저 이웃 사람이 내게 어떤 짓을 저지를 것인가를
먼저 두려워해야 되는 오늘의 조용한
세상..,

예전에 동네의 골목에서 아이의 울음소
리가 길면, 아무나 그 집에 그냥 들어가 서 기저귀도 갈아주고 업고 안고 나와서
데리고 봐주었다.    밥도 먹이고 재우기
도 하면서 그냥 데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어울려서 키우고 그러
다가 싸우기도 했지만 다음 날이면 호호
하하 웃었다 .  그러나 요즘 이웃끼리 싸
우면 그대로 칼부림이고 경찰서행이다.
시끌벅적한 싸움 소리는 사라졌는데 피
튀기는 잔인한 싸움들이 날마다 우리의
이웃에서 조용하게 일어난다.  
큰 소리 몇 번에 그렇게 되니 요즘의 이
웃 다툼은 갑옷에 방패라도 무장해야할
판이다.   싸움소리는 사라졌는데 목숨
을 내걸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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