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선희
ㆍ작성일	2020-12-21 17:23

ㆍIP: 14.xxx.19

소설/ 새처럼 날고파-8

소설/ 새처럼 날고파- 8

그 이후로 다방 일만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손님접대하고 비위 맞춰가며 그렇게 날짜를 보내는데 며칠지난 뒤 유 회장이 찾아왔다. 일을 마치고 식사나 같이 하자는 바람에 일 끝내고 단둘이 식사시간을 가지며 호프집에 가서 제대로 마주 앉게 되었다.
“내가 박 양한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여기까지 불렀는데 시간 괜찮지?”
“네, 회장님 말씀하세요, 저한테 무슨 말씀을요?”
“내 이름은 유해준이라고 해, 난 처음부터 박 양이 마음에 들었고 너무 착한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할게, 사실은 난 그룹의 회장도 아니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 식당 계산대에서 카운터 볼 사람이 없거든, 원래는 아내가 했었는데… 그래서 박 양을 내가 데려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억지로 강요는 안 할게, 다방 주인한테 박 양이 갚아야할 돈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건 걱정 마, 내가 다 해줄 테니까.”
“제가 왜요? 그럼 사모님은 어디계시는 데 저보고….”
“난 아내가 없어, 일년 전 어린 애들 놔두고 집을 나가버렸지, 그래서 모든 게 엉망이라 엄마 역할 해줄 사람이 필요하구, 당분간 식당에서 카운터만이라도 봐주면 어떨까? 월급은 달라는 만큼 줄게, 지금 카운터 보는 아이가 딴 짓만 하느라 엉망이거든 나 좀 도와줘 응? 난 불쌍한 사람이야…! 그리고 박 양은 이런 다방에서 있으면 안 돼, 내가 가만히 볼 수가 없어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 박 양을 알고부터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정말 이런 마음 처음이거든… 잠도 잘 못 자고 내가 많이 좋아해서 큰일 났네.”
유 회장이란 남자는 정말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았다. 아니 진심이었다. 그렇게 깊이 있는 말을 들은 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 남자한테는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김양이 물어봐도 유 회장과의 이야기는 절대로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이 바닥을 안 이상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유 회장을 만나고 와서 다방 레지로 일만 열심히 하는 동안 그녀는 혼자 근심만 늘어갔다.
김양은 나이가 그녀보다 어려도 너무 똑똑해서 탈일정도로 빨리 적응을 한 모양이다. 자신의 몸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지로 강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옆에서 바라보는 그녀가 보기에 어디에다 내놔도 강하게 잘살 것이라 확신이 드는 여자이다.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언니, 벌써 한 달이 다가오는데 이번엔 젊은 오빠들하고 놀러가자, 그쪽 오빠들한테 연락 왔거든, 여자들 파트너 두 명 델꼬 온다는데, 어때? 전에 있던 언니들하고도 한 번 놀러갔었어, 난 그때 횡재했었거든, 돈을 뿌리는 애들이야, 언니도 놀랄걸? 히히히.”
“그래 알았어, 갈게.”
“오, 언니가 어쩐 일이야? 호호호.”
“김양이 그랬잖아, 적응하라며? 그래서 나도 돈 벌어야지.”
“남자들은 몇 살인데?”
“어림잡아서 아마 이십대 중반은 됐을 걸.”
“나이어린 애들이 돈이 그렇게 많다고? 어디서 훔쳐오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혹시 사기꾼들 아닌가?”
아니야 언니, 집안이 좋은 집 남자들인 가봐, 그런 건 걱정 말라니까, 그 오빠들 매너 좋고 우리만 잘하면 돈 같은 건 신경 안 써, 그러니까 걱정 마.”
그녀는 상황판단을 다 꿰차고 있는 동안 어느덧 결심을 해버렸다. 집 나온 뒤로 하루도 부모님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다방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부터 기회 되는 대로 다방 일을 그만두려는 결심이 서고 있었다. 우선 호랑이굴 같은 다방 일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그동안에 주인은 이양이라는 아이를 또 한명 데리고 왔다. 사장님이 데리고 들어오는 날 보니까 다른데서 일을 해봤다는 아이였다. 커피를 타는 것도 쌍화차를 타는 것도 능숙해 보이고 딱히 가르칠 건 없는 것 같았다. 좀 서먹하긴 했지만 나이는 그녀와 두 살 위였고 이 쪽 계통엔 인이 박힌 창녀 같은 여자였다. 왠지 정이 안 가는 여자다.
드디어 그 젊은 남자들과 약속을 했다는 날이 돌아왔다. 새로 들어온 이양한테는 말 안하는 걸로 하고 휴일 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마침 이양은 골방에서 따로 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김양은 마침 다양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아카시아 향수를 빌려서 몸에 뿌리고 머리칼에도 듬뿍 날렸다. 한 시간 반이나 준비를 하고 만나는 장소로 갔다. 안개가 자욱한 시내 거리는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서 마음 놓고 다녀도 누가 쳐다볼 사람도 없을 것 같은 적막한 새벽이다.
하지만 그녀는 죄를 짓고 끌려가는 죄수처럼 발소리를 숨죽이며 살금살금 재빠르게 걸어갔다. 그 남자들은 흰색 중형차를 가지고 왔는데 코팅이 잘 된 고급스러운 차에 탈 때는 감히 문 열고 들어가기도 어설프기만 하다. 김양과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이라면서 서슴지 않고 손 내미는 그 남자들은 카디건과 슈트를 차려입은 자태가 세련되게 보였다.
오빠, 그동안 보고싶었어요오, 왜 얼굴도 안 보여주고 오빠 미워요오.”
“오, 숙이 왔냐? 반갑구먼, 이쪽 언니 이름이 뭐야?”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진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오, 진이? 이름도 예쁘고 좋은데? 반갑다, 난 철이라고 해.”
“네 오빠 잘 부탁합니다.”
“뭘 존대를 쓰냐? 지금부터 말까는 걸로 하자, 촌스럽게 뭘.”
“그래, 언니, 이 오빠들 매너 짱이야, 오빠라고 부르면 돼, 이쪽은 훈 오빠고, 또 철이 오빠야.”
“아, 알았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해버리고는 혼자 흠칫 놀랐다. 자기 이름이 아닌 연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말해놓고 거짓말을 했으니 가슴은 두 방망이질 하듯 쿵쾅거린다. 김양도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놀라는 표정이다. 언제 떠나도 그만이라는 이곳에서는 이런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말이 ‘툭’ 튀어나왔다.
차 안으로 들어가니 조수석엔 다른 남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유 회장이랑 최 회장이란 남자들을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더 자연스럽기도 했지만 남자애들이 당돌하기도 하고 싱그럽기까지 또래의 젊음은 호기심이었다.
“오빠아, 다른 팀도 온다면서 어디서 오는 거예요?”
“아, 그쪽 팀은 만나는 장소로 곧장 가고 있지, 벌써 와 있을걸.”
“우린 숙이랑 진이를 모시고 가려고 왔지, 빨리 가자, 오늘 끝내주는데 가는 거다? 하하하.”
“오빠는 참, 그걸 말이라고 해요, 당연하지요, 순진한 진이 언니나 잘 가르쳐주면 돼요, 언니가 처음이라 잘 부탁해요, 오빠.”
“와우, 진이가 처음이라 고라? 그런 건 당연히 이 오빠가 전문이니까 걱정을 마라 잉, 하하하.”
그녀를 조수석으로 차를 타도록 했다. 그리고 먼저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김양과 함께 뒷좌석에서 찰싹 붙어 앉으며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은 이미 짝이 맞춰진 듯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십 분 거리로 동네 한 바퀴를 돈 것 같은데 저쪽에서 빨간 스포츠카에 타고 있는 두 남녀 팀이 쏜살같이 뒤로 따라오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녀는 지금 이렇게 명품 승용차에 타고 있다는 것이 자꾸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벌어지는 지금의 일들이 다른 세계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애꿎은 눈만 자꾸 비비고 있었다.
“야, 진이야 말 좀 해봐, 오빠들 하나도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우리 같은 세대끼리 왜 그래? 알거 다 아는 성인인데 말야, 그치 숙아? 하하하.”
“숙이가 동생이지? 언니가 돼갖고 그럼 쓰나.”
“언니, 참 좋은 오빠들이라 했잖아, 호호호.”
“네, 저 괜찮아요, 편하게 생각하는 건대요?”
“아, 그럼 그렇지, 하하하.”
“말 놓으라니까, 노인네 취급하는 거 같다 야!”
“응 알았어, 오… 오빠아.”
“하하하… 하하하….”
그 남자들이 하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그녀는 웅크린 가슴이 펴지질 않아 명치의 통증이 오는 것 같았다. 답답해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긴 한숨을 쉬었다. 곧바로 들이대는 그 남자들이 같은 나이또래들이라 그런지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창문 밖에 경치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사방에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한 시간을 거리로 도착한 곳은 양평 쪽에 있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한적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충분하게 넓은 시골 주차장에 번쩍거리는 명품 차 두 대가 자태를 뽐내며 들어섰다. 차는 나이가 지긋하고 풍채도 있는 중년신사가 타고 다닐만한 분위기로 근사하게 보인다. 그 차안에서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이 나오니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도 공손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아직 이른 새벽시간이지만 우선 얼큰한 양평해장국의 메뉴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다른 팀도 차에 여자 둘과 남자 둘이서 이미 파트너가 정해진 듯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고 들어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 같아 보인다. 그녀는 거리낌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들과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다른 팀 여자들은 웃기도 잘하고 술을 파는 직업이라고만 소개를 한다. 그래서 철이란 남자가 술파는 아가씨와 물 파는 아가씨라며 허탕하게 웃었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그들이 신기했지만 김양이 하자는 대로 따라 웃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어울리며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정도 조식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처음 앉은 순서 그대로 차에 앉아 남자 넷과 여자 넷은 동해안 바닷가로 향했다. 그녀는 이런 멋진 차에 멋진 남자들과 영화의 장면처럼 여행한다는 황홀한 시간이다. 차안에서 울려 퍼지는 최신 음악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행복한 시간으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동해바다 속초에 도착했다. 그녀는 동해바다를 보며 생동감 있는 파도물결과 청아한 하늘의 진한 파스텔 색깔을 이루는 하모니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있었다. 김양과 그녀는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달려 나가서 마음껏 환호성을 질렀다. 바위틈으로 기어 다니는 소라도 보았고 둥둥 떠다니는 미역도 건져서 바다의 향기를 흠뻑 마셨다.
모래사장에서 재빠르게 달려드는 돌 게를 보았다. 어머니를 만나면 분명 저 돌 게처럼 달려와 집 나갔던 딸을 싸대기라도 후려칠 것이라 상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빠져드는 일이 없던 걸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당장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갈 때까지 가보는 거다!’ 하고 바다를 향해 속으로 외쳤다.

계속-

정찬열

2020-12-28 06:53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장선희 작가 님~
그간도 무탈하시지요

"새처럼 날고 파-8"호 작가 님의
생동감 넘치는 소설 단숨에 배독 했습니다.

2~3일 남은 경자년 끝 마무리 잘하시고 신축 년
새해 뜻하시는 소망 이루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손 모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으 세요


장선희	정찬열 작가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 시국에 무려한 세월일 수 있지만 우리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오히려 더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자년 한 해도 이틀 밖에 안 남았네요 다시 새해가 온다고 생각하며 새해에는 모든 일들에 기쁜 소식으로 바뀌기를 바래봅니다 공포스런 바이러스가 종식되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12/29 14:00

김복희

2020-12-29 19:46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장선희 작가님
작가님의 새처럼 날고파를 잃고 보니
소설의 진미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되었습니다.
학창시절 많은 소설에 접했으나
이제는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고
이쪽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새로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 오네요.
작가님의 감칠맛나는 소설 감사합니다.
종종 들어와 배우면서
열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선희	김복희 작가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단편소설 출간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독자들의 사랑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저도 유익하게 읽어보고 싶네요 바이러스 감염에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 하시고자 하는 일에 기쁨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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