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선희
ㆍ작성일	2020-08-21 13:30

ㆍIP: 180.xxx.192

소설/ 새처럼 날고파- 5

사장님이 나가시고 김양과 둘이 마주 보며 소파에 앉았다. 김양 얼굴은 작은데다가 화장이 너무 진해서 마치 인형과 같다는 착각이 들어 갑자기 현기증이 느껴졌다. 입가에 선명하게 도드라진 까만 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둘은 대화도 하기 전에 저만치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신사 손님 두 명이 들이닥친다.
“어머, 최 회장님, 유 회장님 안녕하세요? 두 분 같이 오셨네요, 저쪽으로 앉으시고요, 차는 어떤 걸로 갖다 드릴까요?”
“최 회장님도 안녕하셨어요?”
”아 네, 오늘은 좀 시간이 나서 왔네요.”
“어, 김양아, 뜨끈뜨끈한 쌍화차 세잔 잽싸게 갖고 온나.”
“네, 회장님, 얼른 갖다 드릴게요.”
김양은 벌떡 일어나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사투리 말투가 서울 말투로 금방 바꾸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리벙벙해서 차렷 자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라는 소리도 어쩜 그리 자연스러운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신기하기만 해서 김양의 행동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양 언니, 같이 해요.”
“어…! 아, 네에.”
그녀는 김양이 말을 시키는 바람에 그제 서야 제정신이 되었다. 김양은 쌍화차 타는 방법을 설명해주며 세 잔을 만들었다. 생전 처음 시작하는 일들이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유 회장니임, 왜 그동안 안 오셨어요?, 보고 싶어서 눈 빠지는 줄 알았어요. 호호호.”
“아, 그랬어?, 그사이 안 보는 동안 김양은 더 이뻐졌네, 내가 좀 바빴거든, 이제 좀 한가해졌으니 자주 올게, 나 없는 동안 다른 애인 생긴 건 아니겠지? 하하하,”
“회장님은 별소릴 다 하세요, 저는 언제나 일편단심이에요, 오시기만 하세요. 호호호”
그녀는 지금까지 살던 곳에서 다른 별나라의 세계에 온 듯 이상한 일들에 멍해지기만 하고 있었다.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다. 나도 여기서 앞으로 저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저기 더 이쁜 친구는 처음 보는데 새로 왔는가?.”
“회장니임, 새로 온 언니 맞는데요, 저보다 더 이쁘다 하시면 저 삐칠 거예요?”
“허허, 내가 은제 그랬다구 그래, 나도 언제나 일편단심이지, 마침 한가한 시간이니까 왔어, 새로 온 친구도 이리 와서 쌍화차 한잔 마시라고 하지? 한 잔 더 타서 네 잔 가져와.”
김양은 쌍화차 한잔을 더 타러 주방으로 가며 그녀에게 얼른 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녀는 주춤하는 걸음걸이로 김양을 따라갔다.
“박 양 언니, 쌍화차 한잔 더 타야지요, 유 회장님은 우리 사장님의 VIP 손님이시거든요, 서비스 잘해드려야 해요,
“아 그래요?”
“그리고 최 회장님은 거의 같이 오시는데 말이 좀 없으신 편이라 재미는 별로예요, 그래도 돈은 잘 쓰시고 맘도 좋으세요.”
유 회장이라는 손님은 얼핏 보아서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그녀는 김양이 쌍화차 타는 걸 알려줬는데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이라면 온종일 일하라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기분도 좋아졌다.
“김양 알았어요, 열심히 해볼게요, 이런 일이라면 난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박 양 언니, 이제부터 언니하고 나는 반말로 해도 돼요, 나도 언니라 할게요, 언니 나이는 정확히 몇 살이에요? 아까 사장님이 살짝 얘기해주시긴 했지만요, 저는 18살인데 여기 들어 온 지 일 년 넘었거든요, 손님들한텐 20살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얘기해 줘요 언니, 호호호.”
“아 그래요?, 난 20살인데…! 그럼 나도 두 살 올려야 하나?”
“네 언니, 미안요, 쉿! 여긴 미성년자라고 하면 당장 쫓겨나요.”
“어쨌든 내가 두 살 더 많으니까 나도 말 놓으면 되겠네요, 그런데 서울말도 잘 하구, 조금 전에 사장님한테는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던데 표준말 배웠나 봐요?, 와, 깜짝 놀랐어요.”
“아, 예, 처음엔 대구 사투리만 쓰니까 손님들이 잘 못 알아듣기도 하고 아주 시골 사람 취급을 해서요, 그래서 혼자 열심히 연습하면서 공부 좀 했죠, 이젠 웬만큼은 해요, 호호호.”
“와아, 신기하네요.”
“언니, 말 놓으라니까요?”
“음, 알았어, 그럼 그럴게.”
그녀는 김양과 통성명은 안 밝히고 그렇게 호칭을 하기로 했다. 조금 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아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향에서 김매고 모심고 살림하는 일보다 훨씬 쉬운 일인 것 같아 마음도 편해졌다. 긴장해서 뻐근해졌던 목의 느낌도 훨씬 편해진 것 같았다. 이윽고 둘은 쌍화차를 들고 손님 곁으로 가서 앉았다.
“회장니임, 소개해 드릴게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박 양 언니예요.”
“오, 우리 박 양! 앞으로 친해 봅시다, 어디서 이렇게 이쁜 언니가 왔는감?”
“회장니임, 그러니까 자주 놀러 오세요오, 호호호.”
“허허, 차 마시러 자주 와야겠구먼, 우리 조만간 쉬는 날 놀러 가면 되겠네, 그래 언제 갈까?”
“아유우, 회장니임, 이 언니 인제 오늘 왔어요오, 숨 좀 쉬고요 오, 전엔 그런 말씀 한 번도 없으시더니 웬일이세요오, 정말 그러시기예요, 회장니임?.”

“아따, 구여운 언니 참, 성격도 급하네, 전엔 언니 혼자 있으니 파트너가 모자라서 그런 거지, 그럼 옆에 있는 유 회장님하고 짝이 안 맞으니 그런 거 아닌가.”
“앗싸, 정말요? 회장님 그럼 정말로 바닷가 가는 건가요, 언제요? 쪼아요오, 히히.”
최 회장은 그녀의 손을 슬며시 잡더니 손가락을 오므려서 손바닥을 긁듯이 간지럽히면서 슬쩍 윙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눈빛이 그녀에겐 왠지 음흉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깐 이상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남자에게 손을 잡힌 그녀는 순간 양쪽 어깨에 소름이 돋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지갑을 열더니 십만 원의 빳빳한 수표를 쥐여 준다. 돈을 주며 쳐다보는 짙은 쌍꺼풀눈이 갑자기 능글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수표를 받아 챙기는 게 맞나 싶어 죄를 짓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려서 눈치가 보였다. 마침 김양이 눈을 끔적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받으라는 눈짓을 한다.
그녀는 새 돈이라 버석거리는 수표를 슬그머니 반으로 접어서 주머니에 얼른 넣었다. 돈을 챙기기는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쉽게 생긴 수입에 처음 느끼는 쾌감이 느껴졌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손도 떨린다. 고급스러운 회색 슈트를 입은 이 남자의 지갑엔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도자기 찻잔에 담긴 따끈한 쌍화차를 생전 처음 마셔보는 중이다. 설탕을 넣어 달곰해진 한약물에 각종 견과류와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올라 한 잔만 마셔도 금방 힘이 솟구칠 것으로 보인다. 이 남자들이 쌍화차 마시는 절차를 따라 하며 아침에 마지막으로 봤던 어머니의 얼굴을 잠깐 떠올렸다. 그저 돈 많이 벌면 당당하게 고향에 가리라 굳게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두 회장님이란 남자들이 두어 시간 노닥거리다 돌아갔다. 이어서 연인 한 팀이 창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피 두 잔 주문이었는데 김양이 타 놓은 커피잔을 보니 양이 반도 안 되게 타다 만 것 같았다.
“김양! 이 커피 양이 너무 적은데 물 더 넣을 거지?”
“아니야 언니! 원래 그만큼 타야해.”
“아, 그래? 커피가 너무 적어서 마시다 말 것 같은데….”
그녀는 고향에서 일꾼을 얻어 모를 심거나 일하는 날이면 커피를 대접할 때 양동이에 ‘휘휘’ 저어서 많은 양을 타곤 했었다. 그러면 저마다 밥그릇으로 퍼서 마시기도 했다. 여기서는 아주 작은 사기잔에 반도 안 되게 타서 값도 비싸게 돈 받고 영업하는 게 왠지 기분이 나빠진다.
고향 사람들이 천국으로 생각하는 서울 사람들인데 당장 이렇게 쉽게 돈을 벌고 있는 것을 보니 사기꾼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건 다 못 배운 탓에 바보같이 사는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악착같이 돈 벌어서 꼭 대학을 가고 무엇이든 배워야만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배움의 결심이 더 굳혀지는 마음이다.
조금 전 쌍화차를 마신 효과인지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역시 있는 사람들이 비싸고 좋은 걸 먹고 부자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주머니 속 손을 넣어 빳빳한 수표를 다시 만져보았다. 손님한테 팁으로 받은 버석거리는 돈이 만져지는 촉감은 알 수 없는 쾌감으로 입가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자신도 역시 속물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 온다. 온통 아니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지만 실제로 돈의 유혹에 달콤함을 실감하고 있다니!….

-후편 계속-

정대수

2020-08-21 13:59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장선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옛날 다방에서의 쌍화차는 부의 상징이었죠.
계란 노란자 띄워서...ㅎ
또 커피도 배달하는등 기억이 새롭습니다.
잠시나마 작가님의 작품에 머물면서 회상되는 아련함에 그나마 그때가 좋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길었던 장마와 홍수, 그리고 다시 확산되는 코로나19에 엄청난 폭염으로 많이 힘든시기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셔서 행복한 여름나기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장선희	정대수 작가님 제 글에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불안한 시국에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폭염은 이제 막바지 여름 매미소리로 실감이 되네요 요즘은 글 쓰는 사람이라서 방콕도 그런대로 잘 이기는 것 같아요 만남의 장소는 잘 못하지만 홀로 하는 볼일은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위안하고 있답니다 처서도 지났으니 서서히 물러가려는 여름 날씨도 잘 견디시리라 믿습니다 항상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8/24 11:31

정찬열

2020-08-22 06:55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장선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오늘날에야 보기 드문 옛날 가장 고급스런
대접으로 쌍화차가 제일인었던 그시절
노래를 듣는 기분으로 잘 배람 했습니다.

말그대로 다방으로 인기많던 시절 이였지요
오늘날에는 커피솝이며 카폐로 통하는 시절이니
그래도 정겹고 즐거웠던 시절이 다방이라는 곳이지요

끝나지 않고 재발의 아픔을 견뎌야 하는 코로나와
장마끝 무더위에 건강 관리 잘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장선희	정찬열 작가님 안녕하세요? 서재에서 감상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요즘 소설책을 좀 읽었습니다 무덥고 지루한 날에 흥미있는 이야기지요 소설이란 글을 쓰면 아득한 옛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지요 사라져가는 옛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고요 벌써 처서도 지나가니 매미소리도 점점 사라지겠죠? 폭염도 얼마 안 남은 듯 하고 아무쪼록 모든 어려운 시국이지만 건강만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힘차게 시작하는 월요일 한주 되세요.	8/24 11:43

김상화

2020-08-26 08:32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장선희 작가님
그간 잘 계셨지요
오랜만에 글로나마 볼 수 있어 반갑습니다
오늘 다방엔 박양이 들어왔군요
어떻게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지 걱정부터 되네요

장선희 작가님
글이 참 재미있게 돌아가네요
그간 쉬면서 연구를 많이 하신 듯합니다
이렇게 잘 쓰시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습니다

장선희 작가님
날씨가 매우 더워요
더위 잘 이겨 내시고 코로나 19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장선희	정상화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도 이렇게라도 안부주시어 반갑습니다 이야기의 전개가 흥미있어야 할텐데 하고 걱정이 됐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주시니까 분발하겠습니다 요즘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코로나19에 마스크 쓰고 다니시기 힘드시더라도 얼마 안 남은 여름나기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8/26 13:40

소설/ 새처럼 날고파- 6

소설/ 새처럼 날고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