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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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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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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선희 소설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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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장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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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0-12-16 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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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새처럼 날고파-7
소설/ 새처럼 날고파-7
그녀는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저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횟집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올라가는 내내 번쩍거리는 조명이 눈 호강을 시켰다. 2층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창가로 자리 잡은 자리는 바다 전체가 보이는 전망이 더 환상적이었다.
다음은 메뉴판에 있는 가격에 놀라고 그 남자들이 시키는 비싼 메뉴에도 놀랐다. 그때부터 술 안주로 나오는 해물 코스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상 한가운데에 놓인 모둠회는 먹는 음식이 아니라 여러 꽃을 따다가 장식해 놓은 것처럼 아름다워서 먹기도 아까울 정도였다.
음식들을 하나씩 비우고 매운탕까지 뱃속이 놀랄 만큼 먹어치웠다. 그녀는 막걸리를 마셔본 적은 있지만 맥주를 마시는 건 처음이다. 아침도 안 먹고 와서인지 맥주 두 잔에 벌써 얼굴이 빨개지고 두통이 오는 것 같다. 김양은 익숙한 자세로 맥주 한 병을 마시더니 배부르다며 이젠 아예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유 회장과 최 회장이란 남자는 맥주는 아예 손도 안 대고 소주 한 병씩을 마시더니 30년 된 와인을 주문해서 마셨다. 그녀는 술에 취해서 그들이 술을 어떻게 마셨는지 가늠할 정신이 아니었다. 와인 한 모금 마실 때는 목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 얼음물을 안주로 들이켰다.
그들과 술에 취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 남자들은 술을 깨려면 호텔로 가서 쉬어야한다며 일어서고 그렇게 함께 예약된 호텔로 갔다. 술기운은 참으로 위대한 듯 금방 친해진 사이가 되어 그녀는 어느새 유 회장과 호텔로 들어가고 최 회장은 김양과 함께 한 칸 위층 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호텔에서 고급스러운 문이 닫히는 순간 모든 희미한 조명들이 술기운에 맞춰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유 회장이란 남자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는 술에 취한 정신이지만 그 남자의 손을 단번에 뿌리쳤다. 그저 남자라는 거부감에 저절로 밀치는 행동이었다. 술 취한 정신에 또 다시 다가오는 남자의 본능에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이미 거센 남자의 손을 뿌리치기엔 틀렸다고 생각 했지만 외마디 소리를 쳤다.
“제발! 회장님, 안돼요, 안 돼…! 저 좀 살려주세요, ”
“박 양…! 난 이상한 사람 아니야, 처음부터 박 양이 마음에 들었어, 나만 믿으면 안 될까?”
“싫어요! 전 절대 안 돼요, 이러지 마세요!”
“….”
유 회장은 완강하게 뿌리치는 그녀에게 ‘흠칫’ 놀랐다. 그리고 거세게 다가오던 손을 멈추며 애원하듯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남자의 촉촉해진 눈동자가 안쓰럽다는 마음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 술기운에 몽롱하던 정신이 갑자기 말짱해진 것 같았다.
“박 양, 미안하네,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회장님, 죄송해요….”
왠지 그 남자의 진심이 순간 느껴져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를 끝까지 범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그 남자가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웬만한 남자라면 피한다고 멈추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 양은 역시 이런데서 일 할 사람이 아니야, 내가 사람을 잘 보거든, 뜨거운 물로 좀 씻어, 그러면 좀 진정될 거야, 진정하고 나서 우리 얘기 좀 할까? 사실은 내가 꼭 할 말이 있어.”
“회장님, 괜찮아요, 지금 말씀하세요.”
“아니야,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에 따로 얘기 하는 게 낫겠어, 내가 미안해, 용서해줘, 내가 너무 성급해서 박 양한테 씻지 못할 죄를 질 뻔 했네,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차분하게 하기로 하고 한번 단둘이 만나서 얘기하지 뭐, 따로 만나줄 거지?”
“네, 회장님, 그럴 게요.”
“그리고 여기서 나가면 옆방에 김양한테는 아무 말 말고.”
“회장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당연히 말 안하죠.”
“박 양은 언제든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도 돼, 난 그저 박 양이 맘에 들고 아까워서 그러는 거니까, 다방 이런 데는 올 데가 못돼, 그러니까 나가고 싶을 때 말해, 내가 도와줄게.”
유 회장은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서 뜨거운 커피를 두 잔 타왔다. 침대 맞은편에 있는 탁자에 앉아 함께 마시는 동안 서먹했던 사이가 조금은 안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믿음이 생기는 마음에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회장님 그럼 몇 시에 올라가나요? 얼른 가야 돼요.”
“아마 옆방 사람들은 한참 있어야 나올 건데, 그동안 한 숨 자두지 그래, 난 잠깐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 테니까 그동안 씻고 눈 좀 붙여둬, 알았지? 이건 내가 주는 용돈이야.”
유 회장은 밖으로 나가면서 이 십 만원을 침대에 놓았다. 그 남자는 마구잡이로 행동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그녀에게 왜 돈을 자꾸 주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존중해주려는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자니 좀처럼 편하지는 않다. 옆방으로 들어 간 김양과 최 회장은 무얼 하기에 오래 걸려야 하는지도 궁금해졌다.
날이 어두워지고 저녁 식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넷이 한 자리에 다시 앉았다. 김양과 최 회장은 서먹했던 관계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느새 연인으로 바뀌었고 둘이 다정하게 ‘찰싹’ 붙어 앉아서 소곤거렸다. 하지만 그녀와 유 회장은 조금 떨어져 앉아서 서먹한 사이로 앉았다.
“언니야, 쫌 붙어 앉아야지, 언니는 너무 순진해서 탈이야, 못 볼 거 다 본 사이면서 아직도 부끄러운가봐? 호호호.”
“김양 왜 그래? 나는 차만 마시고 나왔는데.”
“언니! 이제 순진한 척은 그만 하시지? 우리끼리는 내숭 떠는 거 없기야? 호호호.”
“아니라니까!!”
그녀는 김양이 하는 말에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유 회장이 보는 앞에서 참느라 고개를 푹 숙인 채 김양의 말을 끊어버렸다. 남자들 앞에서 창피하고 더 이상 뭐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이 그러고 있는 사이 상 한가운데에 놓인 해물 탕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최 회장은 해물 탕이 넘치려고 하자 싱글벙글 김양을 따라 웃고 앉아 있다가 가스버너의 불을 줄이느라 뚫어져라 그 곳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 회장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그녀의 앞 접시에 슬그머니 해물 탕을 담아주며 다정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유 회장이 자상하게 챙겨주니까 왠지 부담스럽고 눈치가 보여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쪽 남녀의 팀과 이쪽 남녀의 팀은 분위기가 완전 반대인 게 뚜렷했다. ‘김양은 호텔방에서 그녀가 일어났던 일들을 감당한 것일까…’ 그녀는 궁금했지만 상상이 가질 않았다. 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거의 비우고 있는 사이 하루가 저물어가고 자리에서 모두 일어섰다.
그녀는 함께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김양이 좀 전에 한 말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느라 다방까지 오는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갈 때보다 더 짧게 느껴지고 후딱 지나간 것 같았다. 도착해서 다방 앞에 내려주고 넷은 그렇게 헤어졌다.
“언니 나 오늘 최 회장님이 팁 많이 줬다, 언니는?”
“무슨 팁? 그 회장님들은 역시 돈도 많고 매너도 좋아.”
“최 회장님이 다음에 또 보자고 했는데 언니도 찬성이지? 최 회장님 말로는 유 회장님이 언니를 엄청 맘에 드신다네? 호호호.”
“김양아 우리 솔직히 말하자, 너 오늘 최 회장이랑 호텔에서 잔거야?”
“언니, 당연한 걸 왜 물어, 언니도 잤잖아, 그런데 언닌 오늘 몇 번 잤어? 그 최 회장이란 남자 진짜 웃기더라, 언니, 글쎄 그 짓을 네 번이나 하자는 거야, 아파서 죽는 줄 알았네, 휴우.”
“뭐라고? 그 최 회장이란 남자한테 당했다고? 돈 받고 몸을 팔았다는 거네, 어쩌려고 그래?”
“언니 왜 그래에! 이 바닥에선 그렇지 않음 돈 못 벌어, 언닌 진짜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난 언니가 너무 바보 같아서 걱정되네, 그리고 언닌 유 회장님이 잘해주시니까 좋은 거지, 처음부터 놀러 가자는 건 그런 거 아닌가, 우린 돈 벌자고 가는 건데, 누가 공짜로 데려가서 회 사주고 술 사주고 돈도 주고 하겠어, 아님 돈 못 벌고 빛만 져서 집에도 못가잖아! 여기 오는 아가씨들이 왜 도망을 가겠어, 빛만 늘어나고 돈도 못 버니까 도망을 간 거지.
그녀는 귀가 막히고 말문이 막혀서 김양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이도 어린 여자애가 세상을 막 산다는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난다. 그 여자애가 행동하고 말하는 건 그녀보다 한참 선배 언니인 것처럼 말을 한다. 세상물정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 같다.
“그럼 그 남자들이 우릴 돈 주고 사는 거네? 귀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난 오늘 아무 일 없었다구! 유 회장이 이상한 짓을 하는 것 같아서 막 뿌리쳤더니 나가버리더라, 나가면서 돈도 주고, 그래서 난 놀랐고.”
“정말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유 회장님이 웬일이래? 그럼 언닌 완전 복 받은 거네, 한 번도 안했는데 돈을 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지. 언니를 진심으로 맘에 두고 있다는 거네, 유 회장은 그렇게 놀러가자고 그래도 한 번도 간적이 없었거든.”
“난 그럼 어떻하지? 돈 다시 돌려줄까?”
“언니! 미쳤어? 왜 돈을 도로 줘, 당연히 받아야지, 오늘 이렇게 놀러가서 따로 번 돈은 사장님이 모르는 거니까 우리가 가져도 되는 돈인데, 언니도 돈 벌러 왔잖아, 언니는 앞으로 유 회장님만 믿어봐,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언닌 좋겠다, 호호호.”
“그래도 그렇지, 그럼 나보고 몸을 팔아서 돈을 벌라는 거니? 그렇게 심한 말을?”
진짜 솔직히 털어놔봐 언니, 진짜 남자관계 한 번도 안 해본거야?”
“너 정말 왜 그래에? 귀가 막혀서… 무슨 남자관계를 해,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럼 넌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남자관계를 몇 번이나 해봤다는 거니?”
“그게 어때서 그래 언니! 돈도 없이 집 나와서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데, 남자들이 미쳤다고 밥 사주고 돈을 주겠어? 이런데서 월급만 받아서는 돈을 벌을 수가 없다고, 옷 사 입고 화장품사고 월급 갖고는 안 되지, 그리고 일단 여기 들어오면 맘대로 나가지도 못해! 나가려면 처음에 사장님이 데리고 온 소개비도 물어내라는데 언니는 그게 얼마인지는 알아? 아마 3개월은 갚아야하고, 언니도 저절로 알게 되겠지만 3개월 동안 월급 안주는 건 언니도 못 들었을 거야,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난 언니가 우리 친언니 같아서 내가 미리 말해주고 싶은 거야.”
“뭐라고?? 그런 얘길 난 전혀 모르는데 그럼 진작 알려줘야지?”
“언니는 참 진짜 순진하다, 아냐, 바보인 거야. 지금 잠자고 먹고 하는 거 다 빌리는 거니까 월급에서 까는 게 당연하지.”
“그래 나 참 바보다, 나 이제 어떻하지? 당장 월급타서 집에 보내야하는데.”
“그건 언니가 재주껏 벌어야지, 오늘 같은 날이 기회가 좋은 건데 언니는 뭐했어? 돈 안 벌고!”
“그럼 나보고 그 짓을 하라는 거야? 난 한 번도 남자랑 자본일이 없는데, 우리 집에서 알면 난 정말 끝이라고!!”
“언닌 그깟 몸이 대수야? 절개 지켜서 상이라도 받을 건가? 집 나온 순간부터 이왕 베린 몸이야, 나보다 나이만 많지 세상물정 정말 하나도 모르네, 언닌 빨리 고향집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집에는 갈 수 있겠어?”
그녀는 김양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이 순간이 모두 꿈이기를 바랬다. 이제 와서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숨통이 막혀버린 것처럼 숨 쉬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 지금 당장 눈물만 나고 자신의 머리통을 마구 치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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