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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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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선희 소설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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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장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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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20-07-12 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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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새처럼 날고파- 4
소설/ 새처럼 날고파- 3
직원은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위아래로 힐끔거리며 훑어본다. 그녀는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거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가리키는 쪽 소파에 앉았다. 직원은 다시 씁쓰레한 웃음을 보이며 위아래로 거듭해서 또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취직할 자리에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어 지금 빨리 오시라는 간단한 통화만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죄송한데요, 사장님이 점심 식사하시고 오신다고 하니까 조금 기다리셔야 하겠네요.”
“아 네,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그녀는 기다리는 시간을 채우려고 한쪽 진열장 책꽂이에서 얼굴 관상 책을 꺼냈다. 첫눈에 펼쳐진 곳이 얼굴 생김새에 대한 설명이 눈에 ‘확’ 들어왔다. 금방 암기라도 하듯 기억 속에 박히는 내용에 정신없이 빠지고 있었다.
관상 책에 나오는 자신의 관상을 알아보니 앞날이 잘 될 것 같은 예감에 기분 좋게 푹 빠져서 읽었다. 정신없이 거의 읽어갈 무렵이다. 날씬하게 보이는 예쁘장한 아주머니가 사장이라며 그녀 앞에 섰다. 불쑥 나타난 사람이니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침착했다. 취직하러 온 사람이라고는 그녀뿐 이였으니까 금방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사장님이라면 보통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점잖은 중년 남자 정도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만큼 날씬해 보이는 여자 사장님이고 명품으로 보이는 빨간색 점퍼에 입술이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이는 중년 여인이다. 껌을 씹느라 입술을 실룩거리며 ‘딱딱’ 소리까지 내는 모습이 거슬리게 보였다. 상관없이 얼른 배꼽 인사를 했다.
“내가 사장인데 아가씨는 나랑 함께 가봅시다!, 월급도 세게 주니까 아마 여기만 한데는 없을 거예요, 지금 갈 수 있죠?”
“네 갈 수 있어요, 기차 타고 가는 건가요?, 그런데 월급은… 얼마를 주나요?”
“가는 건 여기 직원이 얘기해 줬을 텐데요, 내가 같이 갈 거니까 따라오면 되고, 월급은 아마 바라는 대로 줄 거요, 뭐, 달라는 대로 줄 생각도 있고요, 기차 타면 금방 가니까 일단 커피 한잔 마시고 갑시다.”
“네, 그리고 지금 같이 갈게요, 사장님!”
그녀는 순간 월급 많이 준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실제로 얼마라고 정한다는 걸 깜빡 잊었다. 사장님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 까맣게 그려진 아치형 눈썹에 잔뜩 힘을 주어 치켜뜨며 그녀를 찬찬히 계속 쳐다보았다.
“이런 덴 처음 이유?”
“네, 저는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아, 가보면 알 거요, 뭐 힘든 일은 아니고 손님이 마실 차 종류 주문하면 즉시 타서 갖다주면 돼요, 먼저 온 아이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면 되니까 금방 배울 거요, 자 그럼 같이 가봅시다, 그런데 난 아가씨가 내 맘에 딱 드네요, 인상도 괜찮고….”
“네, 저도 사장님이 왠지 좀 편해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한번 친해 봅시다!, 오는 아가씨마다 정 붙일만하면 간다고 해서 말썽이었는 데 오래 있으면 월급도 금방 올려줄게요.”
“그런데 사장님 제가 입을 옷을 못 가져왔는데요, 선불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필요한 만큼 주리다, 그리고 먼저 있던 애들이 두고 간 옷들이 꽤 있으니까 그거 입어도 되고… 뭐, 치수도 비슷할 거 같네요.”
사장님의 말투는 무뚝뚝한 거 같았지만 처음부터 시원시원한 대답이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런저런 질문으로 주고받는 동안 금방 어색한 사이는 없어지고 있었다.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사장님의 불안정한 아치형 눈썹도 한결 부드러운 모습으로 인상 좋게 돌아가 있었다.
“자, 그럼 가볼까요? 나만 따라와 봐요.”
“사장님,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뭐, 반 시간 정도면 도착하니까 금방 갈 거예요.”
사장님은 직업안내소 직원 앞으로 다가가서 몇 마디 주고받더니 내일 다시 오겠다는 손짓을 해 보이고 돌아섰다. 처음 보는데도 단골로 드나드는 사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는 행동이었다. 그녀도 직원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사장님을 따라나섰다.
청량리역 광장에는 좀 전에 팔고 있던 토스트를 팔던 아주머니는 이미 흔적 없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도 지쳤는지 잠잠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전에 사 먹을걸’ 하는 생각을 하며 마른입에 침만 삼키며 대합실에 도착했다. 사장님이 경부선 열차표를 두 개 끊는 동안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니 한 끼를 굶어서 그런지 눈이 푹 꺼져 보이고 힘도 없어 보인다. 집 나온 지 겨우 반나절인데 이까짓 거에 지치지 말자고 숨을 크게 몰아서 내쉬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으니 사장님은 눈치도 못 채고 토스트를 못 사 먹고 그냥 지나쳤다는 생각에 혼자 ‘울컥’ 후회만 남았다. 갑자기 집 나온 고아가 된 신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지금껏 배고파 본 적은 없었다. 먹고사는 생활 형편은 충분했고 육지의 농촌 생활이라 해산물 종류만 귀할 뿐이었다. 동네에서 농사를 몇천 평 정도 짓는 집이라 넉넉한 살림이었다. 밥 세 끼 꼬박꼬박 먹고 사는 괜찮은 형편에 웬만한 중매 자리도 잘 들어오는 집으로 손꼽히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먹고사는 것이 최고라는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라 늘 불만이었었다. 그래서 가출을 해서라도 원하는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희망을 걸었다.
기차 타는 곳 대합실에 가자마자 사장님이 차 시간 다 됐다며 앞장섰다. 즉시 서둘러서 타는 곳으로 내려가는데 여기저기 사람들이 차에 오르는 중이다. 빠르게 올라타자마자 바로 기차가 출발했다. 두 사람은 하마터면 차를 놓칠 뻔했다며 놀란 표정으로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좌석표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차창 쪽으로 자리한 그녀는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도 좋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전경이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가출이 아닌 여행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그녀는 앞으로 시작하는 목표와 희망이 있기에 반짝이는 눈빛의 호기심만 가득하다.
4월의 봄바람이 상쾌하게 반겨주는 것 같아 들뜬 마음이다. 그녀의 긴 머리가 바람에 날려 귓가에서 간지러움을 피운다. 시작하는 새 인생이 잘될 거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아서 기분을 좋게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 하나만 생각하자’ 다짐하며 기차를 타고 달려간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점심은 먹었어요?, 그러고 보니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아니 괜찮아요, 저도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잊고 있었는걸요”.
사장님의 말을 듣자마자 잠시 잊어버린 채 잠잠했던 위장이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해버린 본의 아닌 거짓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장님은 미소를 띠며 캐러멜 세 개를 손에 쥐여주었다. 캐러멜의 달콤한 맛에 뱃속도 잠잠해지고 천천히 녹이며 아껴 먹는 동안 어느새 기차역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장님의 재빠른 발걸음을 따라 기차역 광장으로 나가는 동안 뛰다시피 하며 앞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큰 도로에서 택시를 타고 십분 남짓 가서 상가 큰 건물 앞에 내렸다. 외관으로 보기엔 통유리로 된 건물에 층수가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들어가니 “스타 다방”이라는 큰 간판이 먼저 보인다. 사장님은 그곳으로 들어가며 그녀에게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김양아, 별일 없었지? 새 사람이 왔으니까 잘 알려주고서 내보내야 한다, 알았느냐.”
“예, 사장님, 알겠어예, 걱정마이소.”
그녀는 사장님을 따라 들어갔는데 잠시 멈칫 그 자리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카페 정도 되는 곳이겠지” 생각하며 다른 아무 생각 없이 믿고 왔다. 다방이라는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눈만 껌뻑거리며 서 있는 그녀에게 사장님의 말투가 조금 전과 완전 다르게 갑자기 반말로 돌변했다.
“새로 들어온 애는 이제부터 손님들이 오면 ‘박 양’이라고 부르는 거다,”
“사장님, 저는 이름이 ‘은 연희’ 인데요, 박 씨가 아니고 은 씨예요.”
“아, 여기는 본명을 안 쓰고 그런 거 상관없어, 부르기 좋으면 되는 거지, 바가지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겼으니까 딱 맞다 그치? 호호호, 그리고 김양은 박 양보다 나이가 좀 더 어릴 테니 박 양이 언니가 될 거야, 둘이 맘 맞혀서 잘해야 한다.”
“예, 사장님,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데이.”
그녀는 사장님이 바가지라며 웃는 소리에 덩달아 피식 웃고 말았다. 이젠 집으로 안 가고 여기서 꼼짝없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기막히고 어쩔 수 없는 웃음이 나온 것이다.
“김양아, 박양한테 짜장면 곱빼기로 시켜줘라, 점심도 걸렀단다.”
“예, 그러겠습니더.”
“아니에요, 곱빼기는 말고요, 조금만 먹을게요.”
“그럼 난 볼일이 있어서 다녀올 테니 손님 잘 맞이하거라.”
“사장님 알겠습니더 예, 염려 마시고 잘 다녀 오이소, 박양 언니는 걱정 마시라 예.”
-후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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