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선희
ㆍ작성일	2019-12-23 15:30

ㆍIP: 180.xxx.37

소설/ 먼저 가신 어머니 날 부르신다- 1.

소설/ 먼저 가신 어머니 날 부르신다- 장선희

선영이가 응급실에 들어가려는데 남동생이 저만치 똑바로 보인다. 초췌한 모습이 보이는 순간 가슴이 떨리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숨쉬기도 힘들다. 더는 동생 앞으로 걸어갈 수도 뛰어갈 수도 없어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다행히도 동생은 누나가 온 줄도 모르고 창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누나는 그 와중에도 남이 볼까 봐 힐끔 주위를 살폈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아무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묻는 사람도 없다. 쪼그리고 앉은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스럽기만 하다.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낮추려 ‘꾸역꾸역’ 삼키는데 닦아내도 소용없는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참으려 할수록 더 흐느껴지는 소리에 간신히 진정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선영은 휘청거리는 몸뚱이를 지탱하려 반짝이는 흰 타이루 벽에 기대섰다. 세면대에 붙어있는 거울 앞에 섰다. 벌게진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서 낯선 여자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얼굴을 고치고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동생이 있는 침대 옆으로 빠르게 다가섰다. 그러는 동안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응급실 안에 걸려있는 동그란 벽시계를 보고서야 확인이 되었다. 흰색 바탕의 검은색 글자로 새겨진 벽시계도 낡아서 오래된 탓인지 창백한 환자들의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영아, 괜찮니?, 왜 이렇게 앉아 있어, 누워있어야지, 요즘은 암이라는 병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하더라, 치료만 잘하면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누나, 난 심장병 통증으로만 알고 다른 쪽은 별거 아니라고만 생각했었지, 정말 몰랐어, 그냥 어쩌다 가슴 부위가 좀 따끔거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든, 그런데 벌써 3기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MRI 촬영이랑 검사라는 건 거의 전부를 했어, 지금은 결과 기다리는 중인데 수술이 된다면 하려고…….”
“그래, 좋은 소식 기다리자, 수술하고 항암치료도 잘 하면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 복잡한 길거리 같은 곳 응급 침대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거니?, 올케는 널 혼자 놔두고 어디 갔어?,
“잠깐 먹을 물 좀 사 온다고 매점 갔는데 아직 안 오네, 금방 올 거야.”

병원 응급실은 환자들로 넘쳐나서 커튼설치에 칸막이로 되어있는 침대는 이미 꽉 차 있었다. 골목길처럼 쭉 침대가 바깥쪽으로 널려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부딪칠 것만 같은 현관에도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보호자들은 그 틈에 서성이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누구 한 사람도 얼굴 찡그리는 보호자는 없었다.
선영이와 기영이는 지금처럼 제대로 얼굴 마주 보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지금껏 몇 번이나 되는지 셀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친한 사이는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집안에선 남성 상위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모님한테는 언제든 특권이 주어지는 집안의 대들보로 남동생들이 항상 먼저였기 때문이다. 귀한 아들들한테 밀려 선영의 인생에선 시샘만 하게 되는 동생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했고 생각을 하면 안 되는 세상을 살았었다. 뭐든 할 수 있는 남동생들의 특권을 시샘하며 원망할 때마다 서러움에 한이 쌓였다.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그런지 반항하는 딸이었다. 그렇게 누나보다 당당하게 자랐던 이 순간의 동생은 한없이 약해져 있는 초췌한 모습의 갈대 같은 동생이 된 것이다.
첫째 남동생은 점점 과음하는 날이 잦아지고 48세가 되던 6월 초여름이었다. 갑자기 담관암 4기라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날벼락 맞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심장병도 있는 걸 아는데 담관암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동생만 생각하면 눈물 보라도 터진 듯 ‘툭’하면 울고 또 울었다. 바로 며칠 뒤 남동생이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올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놀라서 암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것이다.

남동생은 입원실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한쪽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중이라고 한다. 동생이 누나에게 자세하고 느릿하게 부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선영이는 그런 동생과 눈 마주치며 듣고 있었다. 갑자기 동생이 안쓰러워서 지난날의 설움도 깜박 잊었다. 한없이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멈칫 그런 생각을 돌리느라 옆쪽에 보이는 다른 환자를 바라보는 척했다. 지금껏 어설픈 두 남매 사이에선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올케가 종종걸음으로 뒤뚱거리며 들어왔다. 가뜩이나 올케의 작은 눈이 얼마나 울었는지 단추 구멍처럼 더 작아 보이도록 ‘퉁퉁’ 부어있었다.

“올케가 왔으니까 난 마실 거라도 사 올 게, 뭐 더 필요한 거는 없니?”
“형님 필요한 건 다 사 왔어요, 그럼 죄송하지만 뜨거운 커피 한 잔만 부탁할게요.”

선영이가 병원 매점을 다녀오는 동안 그사이 주치의가 결과를 알려주고 갔다는 것이다. 올케는 침대 끄트머리 한쪽에 서서 얼굴을 감싸 안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놀라서 얼른 달려갔다.

“누나 난 심장병도 있어서 약물치료 하기도 어렵대, 담관암 덩어리가 이미 자란 데다가 떼어낼 수 없는 위험한 위치라 수술도 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하지?”
병원에선 원래 최악을 말하는 거야, 병을 고치고 잘 사는 사람 많다 하드라,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 낫는다는 생각만 해, 요즘 세상은 의술이 좋아져서 고칠 수 있을 거다, 벌써부터 그런 맘 가지면 안 돼!.”

남동생은 체념한 듯 조금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누나에게 천천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선영은 누나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운전대를 잡고 돌아오는 시간 내내 소리 내어 펑펑 울지도 못하는 울음이 끊어지질 않았다. 한숨만 쉬며 너무 많이 울었더니 뿌옇게 김 서린 차 창문이 흐려져서 앞이 잘 안 보였다. 옷소매로 창문을 연거푸 닦아내며 집까지 가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선영은 오 남매 중 2남 3녀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28세부터 후천성으로 심장병이 발병하기 시작되었다. 남매가 모두 20대쯤 부터 왠지 모르게 심장병에 걸려서 병원 출입이 잦아졌다. 증세와 병명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유전자로 인한 가족력에서 발병하는 심장병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불행이 찾아올 줄은 누구도 몰랐다.
첫째 남동생도 23세가 되면서부터 협심증이라는 심장병으로 병원 출입이 잦아지고 약 처방이 내려진 것이다. 약물치료 하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병이 아닌 담관암이라는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이튿날 이것저것 여러 가지 반찬이며 찰지게 오곡밥을 정성스레 지어서 차 트렁크에 실었다.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춰 가느라 속옷이 땀에 젖는 줄도 모르고 달려갔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릴 올케가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누나 힘들게 이런 걸 왜 싸갖고 와, 많기도 하네……!, 이렇게 여러 반찬 먹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하여튼 고마워 누나, 맛있게 잘 먹을게.”
“아이구, 이런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까 얼른 털고 일어나라, 알았지!, 내일 올 땐 어떤 거 해올까?”
“아니야, 집사람이 사다 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요즘은 병원에서도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네, 그리구 가까운 곳에 시장도 있다니까 사다 먹으면 돼.”
“무슨 소리야, 사 먹는 거 하고 같냐?, 얼마든지 얘기해, 이참에 먹고 싶은 거 다 해줄게.”
“정말? 누나가 웬일이래? 알았어, 필요하면 얘기할게, 하하하.”
“뭐가 웬일이야, 그래도 누나가 한 솜씨 하잖니, 호호호.”
“하긴 누나가 어릴 적부터 한식은 엄마한테 전수해서 잘하는 건 다 알지.”
“그래 그러니까 말만 해, 진짜야?.”

두 남매는 환자라는 순간을 잊는 채 활짝 웃었다. 첫째 남동생이 웃어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다. 선영은 동생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얼른 고개를 숙이며 화장실을 핑계 삼아 뛰쳐나갔다. 선영이의 눈물샘이 터지기라도 한 듯 자꾸만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설움 반이 섞였음이리라……!
누나의 몫은 가끔 밥 먹는 거 챙겨주는 일만 반복하게 되었다. 동생은 그 이후 갑자기 동생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비쩍 말라서 아버지의 늙어버린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었다. 고통의 순간을 진통제에 의지하며 견디었다. 점점 음식도 먹지 못하는 걸 보면서 누나의 역할도 없어지고 있었다.
수척해지는 동생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누나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남모르게 혼자 울며불며 동생을 면회하러 다녔지만 결국 암 판정받은 지 석 달 만이었다. 남동생은 그렇게 수술도 못 받은 채 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오 남매의 슬픔은 모두 오열하며 통곡했다.
선영이는 남동생이 너무도 초췌했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하늘을 저주하는 슬픔으로 2년 동안이나 우울증에 빠져서 살아야 했다. 남의 슬픔만 보아도 눈물이 줄줄 흐르고 모든 서러움을 혼자 온통 끌어안은 것 같아서 더 서럽기만 했다. 가슴을 치며 울고 또 울며 명치가 아프고 답답하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아 ‘꺽꺽’할 때까지 숨을 몰아쉬곤 했다.
그러나 너무 슬퍼도 어머니에겐 알리지 않았다. 차마 자식을 먼저 앞세우신 슬픔을 알리는 건 할 짓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떻게 알게 되고 겨우 버티며 살아가시던 속앓이 합병증의 원인은 어머니마저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그렇게 세월에 야속한 삶이 지나고 8년 뒤 둘째 언니마저 육십 나이에 심장병으로 절명하는 현실이 왔다. 한으로 남겨진 죽음의 운명 앞에 좌절했던 인생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했다.

-후편 계속-

김상훈

2020-01-02 18:32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새해 더욱 건강한 몸으로
수필촌에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서로 왕래가 있어야
작가님 방에도 손님이 찾아오는 법.

좋은 글, 멋진 글 기대하겠습니다.
항상 몸부터 잘 챙기시고요.


장선희	김상훈 작가님 새해가 되었네요~ 하시고자 하는 일 이루는 꼭 이루어가는 멋진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항상 건강 생각부터 하시고 두 번째가 목표를 향하시는 길이시길 기원합니다.	1/6 18:30

김상화

2020-01-02 23:37

`장선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庚子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작가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꿈이 이루어지시길 두 손 모아봅니다
또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고 가정의 평화기 길이 머물길 기원합니다


장선희	김상화 작가님 새해에 다시 봽게되니 반갑습니다 경자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작품 많이 집필하시어 큰 보람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게 하시고자 하는 일 모두 이루는 한 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1/6 18:34

이도연

2020-02-11 14:25

먼저 가신 어머니 날 부르신다 소설을 만납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기대가 되며 다음편을 만나러 갑니다
설래는 기대와 함께~~~^^


장선희	이도연 작가님 발걸음 감사드립니다 꾸준하게 이야기 전개해 나가겠습니다 오정희 소설작가님께서 말씀하신게 잊혀지지 않았어요 소설은 끊이지 않고 꾸준히 써나갈 수 있는게 제일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창작해봅니다 환절기에 항상 건강하세요.	2/20 15:38

소설/ 먼저가신 어머니 날 부르신다- 2.

수필/생사를 넘나들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