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5-08-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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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조끼
비단 조끼 장 춘 희

‘별로 이쁘지도 않고, 이마는 좁아서 속은 옥게 생겼는데 피부는 하얗고 이쁘더라’
훗날 맞선본 소감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예쁘지도 않은 어머니는, 그러나 재주가 뛰어났다. 갓 시집간 새댁 시절에 화투와 트럼프를 그림 그리고 만들어서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 직원들 오락용으로 썼다. 물자가 흔하지 않던 시대여서 몹시 귀함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냉장고가 생산되기 전에 어머니는 부엌바닥을 조금 파고 위로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저장고를 만들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보온이 돼서 야채나 과일을 보관해 두고 요즈음의 냉장고 버금가게, 편리하게 사용했다.
집안일에 서툰 아버지를 대신해서 무엇이든 어머니 손이 가면 완벽하게 마무리가 됐다. 그렇다고 집안일에 열심이거나 자식들만 위해 희생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사회 활동하는 여성들을 부러워하고 집안에서 살림만 하고 사는 것에 늘 불만이었다.

1940년대에 결혼한 어머니는 그 시절 드물게도 맞선을 봤다. 총각 쪽에서 원했기 때문이다. 맞선을 보고나서 혼사가 성사되지 않으면 처녀는 지금의 이혼에 맞먹는 불이익을 당했다. 다시 총각에게는 시집을 못가고 재혼자리에나 가야했다.
유교 정신이 뿌리 깊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그다지 보장되지 않았던 그 지방의 그 시대 정서가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신랑 자리가 인물도 잘생기고 직장도 좋다’라는,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조건 좋은 사윗감을 놓치기 아까워서 외할머니가 모험을 한 것이다.
맞선 장소는 처녀네 안방에서 이루어졌다. 중매쟁이와 집안 어른들이 빙둘러 앉고 가운데 불이 가장 밝은 곳에 처녀를 앉혔다. 맞선이 라기 보다는 처녀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윽고 밖이 수런거리고 방문이 열리는데 앉아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아! 하는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잠깐 처다 본 어머니 눈에 한 쪽 팔에 코트를 걸친 청년의 모습이 잡혔다. ‘멋쟁이구나’ 짐작을 했다고 한다.
혼사는 틀어지지 않고 잘 성사되어 잘생긴 청년과 예쁘지는 않아도 피부는 백옥 같은 처녀는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 아버지는 사귀는 사람이 있었다. 가까운 이웃동네에 사는 처녀였다.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두 사람은 오래 사귄 사이다. 그러나 그 여자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 유명한 술집의 기생이었고 그 여자는 첩실의 딸이었다.
아버지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처녀가 멀리로 시집을 가는 것으로 두 사람은 헤어지고 집안에서는 아버지 혼사를 서두르게 된 것이다.
아버지 결혼 후에 그 여자가 이혼하고 다시 돌아와서 세 사람 사이가 잠시 시끄러웠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시외버스도, 기차도 드물게 있었다. 배차 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건 예사이고 아예 예고도 없이 차편이 끊기기도 했다. 여관도 많지 않아 밤이 늦으면 방을 얻어 들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표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아버지에게 부탁하는 고향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키가 훤칠하니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자를 고향 사람이라고 아버지가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버지와 겸상으로 저녁밥을 차려주고 목욕탕을 다녀올 만큼 어머니는 아직 철이 덜 든 새댁이었다.
그 뒤로도 고향 가는 길이라며 자주 들른 그 여자를 어머니는 의심 없이 손님대접을 해서 보냈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드나들던 고향 사람이 ‘새댁이 무던하기도 하지 어찌 옛날 각시까지 집에 들이노’ 해서 그제서야 아버지 연애사를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기가 막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항의를 했다. 그러나 옛날에 알던 고향 사람 이상의 감정 없이 태도를 분명히 하는 아버지를 나중에는 믿었다고 한다.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내게 가끔씩 그 여자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이 많은 남자와 재혼해서 실패하고, 아이도 없이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 여자의 인물이 너의 아버지와 어울렸다고도 했다. 굴곡진 인생을 살은 그 여자의 삶을 동정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성품이 온화하고 성실하다. 어머니는 몸이 약하고 병치레가 잦았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마음을 다해 보살폈다.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가 미워서 ‘다음 며느리 볼 때는 외짝 문으로 못 드나들 만큼 튼튼한 사람’으로 본다고 어머니께 오금 박는 소리를 했다. 집안 내에서 어머니는 오래 못살 것이고, 아버지 재혼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머니와 반대로 아버지는 체격도 건장하고 건강했다. 정기검진 외에 병원 가본 일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감기를 앓았다. 가까운 병원에서 한 달이나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를 않았다. 서울 고려 병원으로 옮겨서 재검진을 했더니 폐암이었다. 그 것도 온 몸에 전이가 되어 이미 수술도, 치료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육 개월이었다. 가족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파서 몸부림치면 진통제를 주사하는 게 고작이었다. 무엇보다 암이 식도를 막아 숨 쉴 때 마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 안 보는 곳에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울었다.
환자의 고통도 막바지로 치닫고 여름 더위도 기승을 떨처 대서 가족 모두 지처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기왕에 갈사람 한 시라도 빨리 가면 너의 아버지도 편하고 나도 좀 살지’ 한다. 완치될 가망도 없이 죽음으로 다가 가기 위해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어서라고 했다면 그마나 이해가 됐겠지만 ‘나도 좀 살지’하는 말에 너무 놀랐다. 그리고 그 말이 너무 무서워서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어머니와 얼굴 마주하는 걸 피했다.
그 여름, 온 천지를 달궈대던 더위도 조금 숙질 무렵 아버지는 깃털처럼 아주 가벼이 되어 멀고 먼 여행길로 훌훌 떠나갔다.

오래 못살 거라고 늘 보호받던 어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다리가 불편해서 요양원에 계시는데 지난달 생신에 집에 모셔갔다. 갑자기 죽으면 뒷정리도 못하고 죽는다고 맏딸인 내게 장롱 정리를 부탁한다.
장롱 서랍 정리를 하는데 맨 밑바닥에서 ‘연둣빛 비단 조끼’가 나왔다.
“엄마 이 옷 아버지거 아니냐? ‘
“그 건 없애지 말고 거기 둬라 사람이 갈 때 죽은 사람 옷을 입고 가면 그 사람을 만나본단다 죽으면 너 아버지 만나 보려고 일부러 남겨 둔거다”
“엄마 아버지 않잊었어?”
“잠 안든 시는 못 잊지 어째 잊노”
이건 또 뭔 소린가? ‘나도 좀 살지’ 하던 매정한 소리가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자식들 가슴에 상처로 남아있는데, 어이가 없었다.
“야, 야, 저승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드라 내가 전에 꿈을 꿨는데 너 아버지가 옛날에 좋아하던 그 사람하고 살고 있더라 저승 가서 만나 사는 걸 보니 나하고 인연이 아니고 그 두 사람이 연분이었던 게지”
아버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여자도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죽는 것도 앞서 거니 뒤서 거니 그렇게 죽었단다’ 그런 말을 하며 웃는 어머니의 모습이 소녀 같다.
“네 아버지 죽은지 올 해로 꼭 삼십 이 년만이다. 어느 해 여름이라고 안 더웠을까만; 그 해 여름 더위가 조금 유난스러웠지, 내 앞에 오 남매 병날까봐 그만 얼른 갔으면 해놓고 평생 그 말을 가슴에 얹고 살았다”
순간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것 같은 충격이 왔다. 그랬어? 그랬던 거야? ‘나도 좀 살지’한 말이 어머니 자신을 위한 소리가 아니고 자식들을 위해 한 말이라고?. 나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를 와락 껴안았다. ‘엄마, 엄마 고마워, 고마워 엄마’ 어머니를 안고 마구 흔들며 외처 댔다. 내 어머니가 그런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고마웠고. 더 이상 그 일로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게 되어서 고마웠다.
살면서 더러더러 어머니가 아버지를 얘기하고 싶어 하면 ‘나도 좀 살지’ 하던 매정한 말이 먼저 떠올라서 그 자리를 피하고는 했다.
자식들에게 아버지를 추억하지도 못하고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쓸쓸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내려앉는다. 태산보다 더 무거운 말을 가슴에 얹어놓고 살아온 세월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여자의 속은 바다보다 깊다고 했는데 어머니 속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을 담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께 아버지 ‘조끼’는 어떤 의미였을까, 언제든지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이었을까?
저승 가서 아버지를 만나면 그 땐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분과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다가 갈 수 있는 끈이었는지,
아, 아, 어쩌면 아버지 가신 날부터 어머니는 삶의 적을 이승에 두지 않고 아버지를 향해 한발 한발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비단 카펫’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김경렬 2015-08-09 19:51	비단 조끼의 의미가 마음 따뜻하게 합니다. 이제는 오해도 풀리고 어머니의 참사랑을 재발견할수있어 다행 입니다.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하시고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수필 등단을 축하드리며 문운이 창대 하시기 바랍니다.

백낙은 2015-08-09 20:27	장춘희 작가님. 오랫만에 글 올리셨네요. "오래 못살 거라고 늘 보호받던 어머니"께서 지금도 살아계신다니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장롱 속에서 나온 ‘연둣빛 비단 조끼’ 어머님의 애틋한 정이 담겨있는 조끼였군요. 그것도 잠이 안들면 잊지 못하는 아버님의 조끼를... 그 조끼는 잘 간직했다가 후손들 교육교재로 사용해야 하겠네요. 추억을 되살리는 좋은 글 잘 즉견하고 갑니다. 어버이 살아 계실제 후회없이 효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늘 승리하시고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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