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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장춘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8-11-12 20:47
ㆍIP: 210.xxx.6
사철나무
    사철나무                장춘희

일반 주택에 살다보니 도시에서는 드물게도, 마당 한 쪽에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부엌문을 열고 내다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다. 야채가 필요할 때면 손쉽게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닭이 알을 품듯, 텃밭 흙이 겨우내 품고 있던 것을 봄이 되면 하나 둘씩 싹을 틔워 올려 보내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자체가 참으로 신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여러 해를 뿌리로 이어져 오는 채소도 있지만 상추, 가지, 고추 등은 모종으로 사다 심어서 가까운 사람들과 나눠먹는 재미가 크다.
그러나, 텃밭에는 제 구실도 못하는 나무들도 있다. 열매하나 달지 못하고 몇 년 동안 그저 나무로만 살고 있는 매실나무도 있고, 열매를 달고도 끝내 추수하기를 기다리지 못 하고 다 떨어져 버리는 대추나무도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큰 나무들은 잡초를 뽑다가 햇볕을 피해서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그늘막 구실도 못 한다. 모두 텃밭 한쪽 벽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텃밭을 돌아서 뒤란으로 가면 사철나무가 줄을 맞춰서 심어져 있다. 처음에는 옆집과의 사이에 담이 없었다. 옆집 마당과 한 마당같이 이어져 있는 곳에 담장을 처서 이웃 간에 단절을 한다는 것이 차마 못 할 노릇이라는 의견이 모아져서 사철나무를 경계삼아 심어둔 것이었다.
심은 지가 십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늘이 져서 그런지 크지도 않고 볼품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늘 푸른 나무를 상록수라고 하는데, 상록수 중에서도 이 나무만을 사철 변함없이 푸르다는 뜻으로 사철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꽃말 역시 ‘변함없다,’이다.
이런 사철나무가 우리 집 뒷마당에서는 이름값도 못 하고 사철 누런 떡잎을 달고, 빼빼 마른 몸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지실이든 몰골을 하고 있는데 옆집의 단풍나무와 잣나무까지 넘어 와서 덮어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넘어 온 나무들은 우리 지붕위에까지 올라와있었다.  
나는 그 나무들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지만 이웃끼리 관계가 나빠질 것을 염려해서 말도 못하고 참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옆집에서 넘어오는 나무를 막아서는 사철나무가 한 그루가 있었다.
여름 가뭄 때도 텃밭 채소나 앞마당에 피어있는 꽃나무들에만 물을 주었다. 뒤란에 있는 사철나무는 돌보지도 않았는데, 그 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서 몸통도 굵고 잎사귀도 푸르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꽃까지 피어 있었다.

 우리가 사철나무를 심고 난 다음에 옆집에서 담을 쌓았다. 그런데 우리 마당 안쪽에 심어둔 사철나무에 닿게 시멘트벽을 쌓아 놨다. 몸이 조금이라도 굵어지면 다칠까봐 나무들이 안 자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는 몸집이 굵어지면서 시멘트에 밀려 몸을 다치고 있었다. 그런 몸을 하고서 어찌 그리 잘 자랐는지 모르겠다.
옆집에서 담장을 넘어 오는 나무는 막아 주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그 집에서는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그 댁에 얘기를 했다. 그리고 나도 고마움의 답례로 그 집을 막아서는 사철나무 중간을 베어 버렸다. 나무에 톱을 대는 순간, 가슴이 날카로운 것에 베이는 듯 했지만, 잠깐 그런 느낌이다가 말겠지 했다. 그러나 사철나무만 생각하면 가슴 저린 통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나무끼리도 시샘을 하면 상상할 수도 없이 자란다고 하지만, 왠지 그 나무는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초인적인 힘으로 자기 몸을 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아프고 미안하다.
몸통이 잘려나간 나무를 볼 자신이 없어서 그 날 이 후로 나는 뒤란엘 가지 않았다.  

 살아야 할 시간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다. 앞으로 살아낼 나머지 삶에서는 마음을 베일 일이나 또는, 남을 베는 일은 없이 살아야 되겠다, 그런 결심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또, 마음에 상처를 입는 행동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흉터가 생겼다.
사철나무가 부디 상처를 딛고 무럭무럭 자라주기를 바란다. 그날이 되면 내가 베인 상처에도 새살이 돋아나겠지, 그런 희망을 가져보면서.
 
 
   
이름아이콘 정찬열
2018-11-13 21:34
회원사진 		장춘희 작가님 안녕 하세요
일반주택에 사시면서 경계를 대신하는
사철나무의 斷想에 마음 저리셨군요
모든 생물의 조화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것을
안고 살아감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세밀하게 관찰하고 집필하긴 "사철나무"
잘 배독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남은 시간도 편안 하시길 고망 합니다.^*^
   
이름아이콘 장춘희
2018-11-20 08:26
 고맙습니다
변변찮은 글 항상 읽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힘을 얻습니다.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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