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8-12-17 09:34

ㆍIP: 59.xxx.61

메기의 추억
메기의 추억 장춘희

내 그리움의 끝에는 언제나 영주가 서 있었다. 그곳에서만 눈이 내렸고, 달뜨는 밤하늘도 그곳에만 있었다.
거리는 춥고 어두웠으며, 겨울은 늘 길었다. 긴 겨울 속에는, 제일교회의 따뜻한 불빛과 새벽을 여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있었다.
학교를 오고 갈 때마다 마주하는 경찰서 앞에는, 사철 검은 빛을 띄고 있는 연못이 있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은, 언제나 무서운 이야기가 건져 올려지고는 했다,
한 번씩 구를 때마다 신출귀몰한 재주를 부린다는 천년 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을 해서, 서울서 기차를 타고 영주에 온다는 소문은, 어린아이들만 떨었던 것이 아니었다. 어른들까지 속았던 어리석은 세상이었다.
아이들의 봄은, 뒷산에 피는 진달래보다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파는, 삼각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화사한 환타 색깔로 부터 왔다. 소풍날은, 큰 동이에 물과 함께 채워져 있는 비닐오렌지가 동이 났다.
소풍을 가는 장소는 늘 정해져있었다. 봄의 소풍지는 노들강변이었고, 가을 소풍은 흑석사였다. 노들강변은 강가 모래밭에서 놀았고, 흑석사 절에서는 숲이 좋은 산에서 놀았다. 포장이 안 된 도로를 걸어서 가자면, 얼굴과 속눈썹까지 분칠을 한 듯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는 했다.
흑석사 소나무 숲에서, ‘최갑석의 고향에 찾아와도’를 부른 재숙이는, 중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감정을 잡아가며 멋지게 불렀다.
그 시절, 영주극장에서는 밤낮없이 가요가 흘러나와서 시내를 덮었다. 굳이 배우려고 들지 않아도 대중가요 한 두 개 정도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따라 부를 정도로 귀에, 머리에, 박혀들었다. 영주사람들 정서를 어루만지고 감성을 키우는데 8할은 영주극장의 가요가 그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생각되어 진다.

61년도에 영주 시내가 삼분의 이 이상이 물에 잠기는 대 홍수가 났다. 아침밥상을 앞에 둔 시간에 제방 둑이 터졌던 것이다. 재래식 화장실과 짐승들의 오물이 함께 범람했던 물은, 물꼬를 남산들로 틔우면서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이튿날부터는 장이 섰고, 후생시장에서는 오물에 젖은 곡식들을 내놓고 팔았다. 사람들은 그걸 사다먹었다.
내남없이 가난한 세상이었다.
군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는 박정희 의장이 수해현장을 방문했다. 의장이 다녀가고 난 다음부터, 영주국민학교에는 헬리콥터가 수시로 내려서 생필품을 쏟아 놓았다.
박정희 의장은 우렁 각시였고, 수해는, 헌집을 가져가고 새집을 준, 완벽한 두꺼비였다.

토요일오후가 되면, 교복을 담은 빨래 통을 하나씩 들고 새로 쌓은 튼튼한 제방 둑을, 떼를 지어서 넘어 다녔다. 지금도 빼어난 미모인 정녀는, 그 시절 정녀를 보겠다고 좇아온 남학생들이 천방 둑에 줄을 이었다.
교모이외의 어떤 모자도 교칙 위반인데, 무슨 배짱에 빨간색 모자를 단체로 쓰고 가을 소풍을 갔다. 돌아올 때 두 명의 빨간 모자가 기차를 놓치는 사고를 저질렀다. 기차는 시간이 되어서 영월역을 출발을 했는데, 두 명의 빨간색 모자가 철길위에 나타나서 기차를 세우게 되었다.
영월역이 생긴 이래로 처음 있었다는 사고를, 고작 열일곱의 소녀들이 저질렀다.
지구가 생긴 이후부터 늘 들어왔던 어른들의 혀 차는 말, ‘못 말리는 요즈음 아이들’의 말썽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몇 년 전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너무 아파서 괴로움에 허덕대며 병실에 누워있는데 불현 듯, 영주거리를 흥건하게 적셔대던 가요가 듣고 싶었다. 그리고 가난하고 을씨년스러웠던 영주거리에 다시 한 번 나를 세워놓고 싶었다. 무슨 마지막 소원처럼 간절한 마음이었다.
퇴원을 하고 그 말을 들은 친구가 가요 테이프 두 개를 사주었다. 병원에서 간절했던 갈증을 풀듯이 듣고 또 듣고, 테이프가 너덜너덜 해질 때 까지 들었다.

내 그리움의 끝에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는데 정말로 있었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가.

김경렬 2018-12-17 23:50	고향 영주를 추억하시는 장작가님! 수혜를 당해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지나고보면 그시절의 고생도 추억으로 남아있네요. 재미있습니다. 부지런히 탈고하셔서 수필집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고 감기 조심하시기를~~

장춘희 2018-12-18 07:49	늘 격려를 받습니다. 그리고 또, 늘 똑같은 말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상화 2018-12-18 13:01	안녕하세요 장춘희 작가님 이렇게 뵙게 데니 반갑습니다 고향은 늘 생각나고 가보고 싶은 곳이지요 날씨가 꽤 춥습니다 늘 건강 행복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장춘희 2018-12-19 09:20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을 읽주셔서 고맙습니다. 고향이야기를 쓸려고 하니 나이가 드니 새삼 고향이 너무그립습니다. 그것도 옛날 모습만 그립습니다. 이럴때는 글을 쓸수있는 것이 퍽 다행하다는 생각입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소망해봅니다.

정찬열 2018-12-21 14:13	장춘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1961년이면 꽤나 어렵고 힘들시절의 기억을 멋지게 담아 주셨군요 마음을 감동주는 글 주~욱 이어 집필 하시여 고운 수필집이 발간되기 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남은 시간도 행복하세요

장춘희 2018-12-22 20:19	글을 올려놓고 보면 자꾸 부족한 게 눈에 띄어 큰일입니다. 항상 격려해 주시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마운 마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런지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행사날 뵙겠습니다.

김경렬 2018-12-30 22:09	장작가님! 수상을 축하 드립니다. 기해년 새해는 더 건강 하시고 황금 복 돼지의 만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김상훈 2019-01-01 21:39	장춘희 작가님, 1년을 넘게 비운 작가 서재에 들어와 새해인사드립니다. 건강은 필수, 원하는 소망도 필수인 만큼 건강을 필두로 올해는 소망 한 가지라도 꼭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서재에서 다시 뵙기를 기다립니다.

장춘희 2019-01-06 21:05	인사가 늦었습니다. 늦은 인사지만 새해에는 소원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기를 기도드리며 건강하십시요. 고맙습니다.

어머니

삶이 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