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8-10-14 19:03

ㆍIP: 121.xxx.113

어머니
어머니 장춘희

데님을 단정하게 매고 있는 발이 보였다. 처다 보니 머리를 밤톨처럼 깎고 승복을 입은 남편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에 당황해 하는데 ‘여보, 그만 일어나 봐라’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밤잠도 아닌 잠깐의 낮잠에서 먼저 간 남편을 만난 것이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신지가 올해로 9년째다. 폐렴으로 병원에서 한 달 넘게 누워있는 동안, 다리에 근육이 빠져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득이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나는 보름에 한 번씩 먼 거리를 달려 지방에 있는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만나러간다. 그 날도 요양원엘 갔더니 ‘며칠 전 꿈에 너의 아버지를 봤다’며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이 유별났다. 어머니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더 컸던 사람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는 자식들이 조금 소홀히 대한다 싶으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서 어머니의 입지를 상기시키고는 했다.
오늘은 또 무슨 요구사항이 있어서 만나자마자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을 하나 싶어서 속으로는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어머니를 살폈다. 그러나 그 날은 진심으로 아버지가 그리웠던 듯, 다른 뜻을 내비치는 안 했다.
아버지와 처음 맞선 보던 날의 풍경과, 아버지 첫사랑 여인이야기, 내가 태어났을 때, 삼백만원짜리 딸을 낳았다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밤마다 춤을 췄다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했던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매번 그랬듯이,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 주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맞장구를 처 주기도 한다.
나이 차이가 이십 이년 밖에 나지 않는 우리 모녀는, 친구처럼 서로 깊숙한 속마음까지 털어 놓고 지내는 사이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꽤 큰 액수의 돈을 은행에 예금 하러갔었다. 혹시 날치기를 당할까봐, 어머니 딴에는 위장을 하느라고 돈뭉치를 신문지에 그냥 둘둘 말았다. 덕분에 은행까지는 무사히 가게 되었다. 은행까지 별일 없이 도착하게 된 것에 안심을 하고 돈 뭉치를 창구에 올려놓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어떤 남자가 옆에서 잔돈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어머니더러 도와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바닥에 흩어진 돈을 주워서 엎드렸던 허리를 펴는 순간, 남자가 어머니 돈뭉치를 들고 달아나버렸다. 돈은 상당히 많은 액수였다 고, 물자와 돈이 아주 귀하던 60년대 초반이었다.
그 사건으로 어머니는 한동안 심장병을 앓았고, 은행이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병이 도지고는 했다.
‘이 일은 절대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괴로운 나머지 그런 큰 비밀을 함께하기에는 조금 어린 맏딸에게 털어놓고 위안을 받은 것 같았다.
아마 그 때부터 어머니와 나는 비밀을 함께하는 사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까지 살면서 우리 형제에게 조차도 해 본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성품이 곧은 편이다. 당신자신 곧은 성품을 남다른 자존심으로 알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 또한 대단하다. 또, 그만큼 남의 허술한 면을 잘 못 받아들인다. 그런 성품은 요양원생활에 몹시 걸림돌이 되었다.
옆 침대 할머니의 잦은 기침과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 때문에 비위가 상해서 식사를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방을 옮겨주면, 이번에는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쓴다고 함께 생활을 못 하겠다고 했다. 치매 걸린 할머니들의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이해하려고 들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았다.
요양원 생활도중 집으로 가겠다고 주변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은 숫자로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럴 때마다 요양원으로 달려가서 어머니를 달래기도 하고, 더러는 듣기 싫은 소리도 해가면서 요양원에 주저앉혀 놓고 돌아 올 때면 가슴이 찢어졌다.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반복되자 조용하게 지내지 못 하는 어머니에 대한 짜증과 미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다음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면 ‘하루가 천년 맞잡이로 지루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밥만 축내고 있다’는, 자괴감 섞인 말을 들으면 어머니에 대한 짜증스러운 마음은 사라지고 한없이 가엽기만하다.
아직도 명징한 의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끼니때가 되면 주는 밥 먹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무기력한 삶, 당신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것 밖에 없는 생활. 어머니의 시간은 삶을 향한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를 죽음을 향해 옮겨 놓는 발걸음일 뿐이다.

올봄에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의식도 없이 산소 호흡기를 달고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 음식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고, 링거만 맞으면서 견뎠다.
일주일 되는 날 아침, 병원엘 갔더니, 어머니가 산소 호흡기를 빼서 손에 들고 침대에 앉아서 서슬이 시퍼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머니 모습에 깜짝 놀라서 물어봤더니, 너무 목이 말라서 물을 달라고 간병인을 불렀는데, 옆방 간병인과 복도에서서 노닥거리고 있으면서 들은 체도 안 하더라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노여움은 물을 안준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 죽어가는 노인네라고 무시했다는 것에 있었다.
얼른 물을 가져다 드리고 흥분한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나자, ‘이제 집에 가자’하며 나를 처다 본다. 며칠 앓고 나더니 또 응석이 시작되는 구나, 싶은 마음에 어이가 없어서 아무 대꾸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해질녘이 되자, 한주일이나 집을 떠나 있는 내 마음이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을 했다. 집이라는 게 해가 지면 자연적으로 귀소 본능을 일으키나 보다. 하는 생각 끝에, 여러 해를 집 떠나 있는 어머니는 오죽 집에 가고 싶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 졌다. 그래, 우리 집으로 모시고 가자. 결심을 하고 ‘엄마, 집에 가고 싶으면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이 몸을 하고 가기는 어딜 가 그만 퇴원하고 요양원으로 가자’하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동안 그토록 집에 가고 싶어 했으면서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속으로는 의아스러웠지만 더 이상의 말썽이 없다는 것에만 안심을 하고 말았다.
이튿날 퇴원을 해서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제의 어머니 행동을 곰곰이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동안 이해 안 되었던 어머니의 행동에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집으로 가자’고 할 때는 간병인이나 요양원 직원들이 있었고, ‘요양원으로 가자’고 했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 동안 수도 없이 집에 간다고 했던 말은 나한테 부린 말썽이 아니고, 요양원직원들에게 했던 으름장이었다. ‘나는 자식들에게 버림받아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돌아갈 집이 있고, 반기는 자식들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어머니 자존심의 외침이었다.
모시적삼에 매는 매듭단추보다 더 야물게 매듭져있는 모녀사이로만 알고 지냈던 맏딸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속 깊은 마음이었다. 집으로 가면 자식들이 힘들까봐 요양원에는 있어야 되는데, 그냥 가만히 있기에는 어머니 자존심이 너무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고 나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외처 보는 고독한 노인네의 외침이었다.
그런 어머니 마음은 짐작조차 못하고, 그저 조용하게 있어주지 않는 어머니가 자식들 생각은 조금도 안 하는구나 싶어서 야속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새삼, 갇혀 지내는 어머니 요양원 삶이 가여워서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엉엉 울었다.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나자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자. 내 생활이 불편한 걸 조금만 양보하면 될 것을, 옛날 어머니가 우리 키울 때 그러했듯이,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 수발을 들며 지지고 볶고 뒤엉켜서 그렇게 또 한 번 살아보자. 하는 결심을 하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인데도 차를 되돌려서 요양원으로 향했다.

김경렬 2018-10-16 05:57	작가님의 효심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어머니께서도 큰딸의 진정한 사랑에 감동 하셔서 더이상 외롭지 않으실겁니다. 장춘희 작가님! 날씨가 쌀쌀 합니다. 감기는좀 낳으셨는지요. 늘 조심하시고 건강 돌보시기 바랍니다.

장춘희 2018-10-22 11:01	고맙습니다. 오랫만에 들어와 보니 조금 낯이 선 듯 느껴집니다. 소식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사화

할머니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