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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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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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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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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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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8-07-21 2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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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지 (3 )
(3)
아침 일찍, 민재의 방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민재는 피곤했던지 단잠에 취해 영미의 인기척을 알지 못했다. 곤하게 잠든 민재를 바라보던 영미는, 일어나면 길 건너 ‘이가네 해장국’ 집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겨 놓고 살며시 나왔다. 해장국 집에는 벌써 몇 사람이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민재가 활짝 웃으며 들어왔다.
“미안 합니다. 제가 고단했나 봅니다. 하하하.”
영미가 다녀가도 모르고 잠들었던 미안함을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있었다.
“깊은 단잠을 깨우기가 그래서요.”
“잠결에 문소리 나는 것 같아 깜짝 놀라 일어났어요. 미안합니다.”
민재는 겸연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시익 웃었다.
해장국이 나오자 뚝배기에 밥 한 공기를 재빨리 쏟아 붓고 꾹꾹 말더니, 깍뚜기 몇 점으로 게 눈 감추듯 뚝딱 먹어 치웠다. 영미는 그가 밥 먹는 모습도 씩씩하고 듬직해서 좋았다. 영미는 식가 끝나자 일어나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청령포로 모시겠습니다.”
“아! 단종의 능이 있는 곳, 가보고 싶었던 곳 입니다.”
둘은 택시를 타고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에 도착했다. 그는 역사를 좋아했다면서 영미에게 단종 애사에 대한 비화를 조근조근 들려주었다. 영미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더 슬프고 가슴이 저렸다.
“청령포에 유배된 어린 단종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요, 단종이 잠들어있는 장릉을 향한 낙락장송들을 보세요.”
“정말 장송들이 모두 능을 향해 조아리고 있네요. 슬픈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는 저 소나무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 지는군요.”
영미는 이곳에 올 때 마다 항상 가슴이 저리고 숙연한 마음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청령포를 돌아보고 장릉에서 단종의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올린 다음 동강으로 향했다.
동강은 강변 축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곳곳에서 마을의 토산품 홍보를 하고 있었고 한쪽에선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이곳저곳을 한 바퀴 돌아보는 민재는 흥미로운 얼굴로 재미있다고 좋아 했다.
“군인아저씨 이것 좀 맛 보셔요.”
군복차림의 그에게 홍보 요원들이 맛보기 음식을 서로 먹어 보라며 입에 넣어주기까지 했다. 넉넉한 시골 인심을 체험한 민재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영미가 사는 영월이라는 도시가 아기자기 하면서 사람들이 순박하다고 칭찬을 했다.
영미는 민재가 음료수를 사러간 사이, 강가에 신발을 벗어 놓고 얕은 곳에 있는 돌을 뒤져가며 다슬기를 몇 마리를 건졌다. 새카맣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다슬기를 민재에게 보여 주려고 돌아서다가 이끼 낀 돌을 밟고 그대로 미끄러졌다. 그 때문에 별안간 깊은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 강물 속은 급경사로 위험지구라는 푯말이 서있는 곳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여기 사람이 빠졌어요”
누군가 큰소리로 소리쳤다. 영미는 수영을 하지 못해 깊은 물속에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람 살려요!”
누군가 또 다급하게 외쳤다.
민재는 음료수를 사들고 오다가 위급한 상황을 보고 쏜살같이 강물 속으로 달려들었다. 용감한 군인이 여인을 구해 안고 나오자 모두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그제서야 민재는 그 여인이 영미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이었다. 졸지에 민재의 품에 안긴 영미는 탈진해서 온몸이 늘어져 있었다.
“영미씨 정신 차려요 . 내말이 들리면 눈을 떠봐요."
민재의 애절한 소리에 영미는 가까스로 실눈을 떴다.
민재는 영미가 눈을 뜨자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영미씨! 많이 놀랬지요. 제가 있으니까 안심 하십시오. 옷은 세탁소에 맡기면 금방 해결 됩니다.”
민재는 가까운 민박집으로 영미를 안고 들어갔다.
영미와 민재는 젖은 옷을 세탁소에 맡기고 민박집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민박집에서 주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이불을 하나씩 두르고 있었다,
"영미씨 괜찮아요? 위급한 상황이라 뛰어들었는데 영미씨인줄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민재씨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민재씨 보여주려고 다슬기를 잡고 돌아서는데 이끼를 밟아 미끌어졌어요."
"이만하기 천만 다행입니다. 정말 큰일 날뻔 했어요."
영미는 자신의 실수로 이런 일이 생겨 얼굴을 들 수가 없이 부끄러웠다. 자는척하고 있으려니 가슴이 마구 두 방망이질을 하는것 같았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죽은 듯이 있자니 숨이 막혀왔다. 마른 침만 꼴깍 꼴깍 삼켰다. 그런 영미의 불편한 마음을 눈치 첸 듯, 민재는 모로 누워 잠이 들었는지 꼼짝하지 않았다. 영미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을 걷어내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민재는 무슨 일인가 놀라 일어나 앉았다. 영미는 탁자위에 카드를 가리키며 ‘우리 게임해요’ 민재는 ‘마침 잘 됐다’ 반기면서 양손으로 카드를 잡고 차르르 섞었다. 손목 때리기 게임이 시작 되었다. 민재는 번번이 손목을 내밀고 기다렸다. 영미는 살살 때렸지만 민재의 손목이 빨개졌다. 맞을 때 마다 ‘사람 살려!’ 민재의 엄살에 서먹하던 분위기가 금방 웃음꽃으로 변했다. 드디어 민재가 이겼다. 영미가 손목을 내밀었다. 민재는 영미의 가냘픈 손목을 바라보며, 이 가녀린 손을 어떻게 때려야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찰나, 똑! 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세탁소에서 옷이 도착했다. 서로 이불을 가려주며 옷을 갈아입고 강으로 나갔다.
해가 기울고 주위가 점점 어두워 졌다. 인적이 끊어진 텅 빈 강변은 을씨년스러웠다. 띄엄띄엄 서 있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졸고 있었다. 정겨운 귀뚜라미 소리에 가을밤이 깊어가고, 수많은 별무리가 두 사람의 머리위에서 무수히 반짝거렸다. 금방이라도 쏟아 질것만 같은 밤하늘의 별들은 두 남녀를 별무리 속에 묶어 버렸다. 영미와 민재는 두 손을 꼭 잡은 체 미동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강물도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영미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며시 기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지요.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을 보살펴주고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도우며 자랐어요. 지금은 교통사고로 불편하신 아버지를 위해 동생들 학비며 집안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영미는 결혼을 해도 이 생활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말끝을 흐렸다.
“영미씨, 앞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대하고 나면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습니다.”
민재는 부모님도 동생들도 걱정하지 말라고 재차 안심을 시켜 주었다. 민재는 필사적으로 기차를 탔던 일과 물에 빠진 영미를 구해 낸 일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민재는 영미를 책임지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졌다.
민재는 사업가집안의 아들이었다. 제대하면 부친의 회사에 들어가 아버지 사업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형이 있지만 사업에 뜻이 없어 전공한 쪽으로 박사가 되어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고 했다. 그는 부친의 뜻에 따라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학생 때는 별명이 ’범생’ 이었다 고했다. 별명처럼 공부만 했었기에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재미없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군대 말년에 이렇게 착하고 예쁜 영미 씨를 만난 건 나에게는 행운입니다.”
둘은 어떤 말도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민재는 영미의 손을 꼭 잡으며 ‘절대로 이손을 놓지 않으리라’ 가슴속으로 다짐을 했다. 영미는 민재와 나란히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다. 가로등이 졸고 있는 강변은 물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풀벌레 소리조차 숨죽이는 밤이었다.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정이 다되어 둘은 숙소로 돌아 왔다. 장래를 약속한 첫 날밤이자 내일이면 헤어지는 아쉬운 밤이었다. 영미는 그에게 먼저 샤워를 하라고 욕실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민재의 이부자리만 얌전히 깔아 놓고,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병약한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바깥마당에는 해묵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 아래 둥근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영미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민재와 함께한 시간들을, 새김질 하듯이 차근차근 떠올렸다. 민재도 영미와 함께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자신의 이불만 펴놓고 나간 것을 보고서, 영미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영미의 마음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잠시 후 택시 한 대가 와서 멈추었다. 민재는 민박 주인에게 부탁을 해서 영미가 타고 갈 택시를 불렀던 것이다. 민재는 택시를 보자 영미를 정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 영미에게 작별의 포옹을 해 주면서, 내일은 오지 말고 가게 문을 열라고 했다.
“영미씨,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안겨주어서 감사합니다. 아침까지 푹 쉬고 바로 귀대 하겠습니다.”
영미는 대답대신 손을 흔들었다. 차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민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손 흔들며 사라지는 영미에게 달려가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무정한 택시는 영미를 태우고 어둠속으로 쏜살 같이 사라졌다. 영미는 아쉬움을 가득 안고 천근같은 발길을 힘없이 옮기며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영미는 민재와 함께한 시간이 꿈만 같았다. 그의 따뜻한 눈길이 솜사탕처럼 스며들었다. 새벽녘에 겨우 눈을 붙였다.
민재는 영미를 떠나보내고 돌아와 그녀가 정갈하게 깔아놓은 이부자리에 누웠다. 제대하면 장가부터 들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성화, 이제는 떳떳하게 네! 하고 답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화솜처럼 포근한 영미를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해낼 것 같았다. 영미와 영미의 부모형제들을 꼭 지켜 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부모님께 영미를 데려가겠다고 결심했다. 공부밖에 몰랐던 민재는 이처럼 맑고 명랑한 영미를 만나게 해준 열차도, 동강도 뜻 깊은 인연의 고리라 생각했다. 스물여덟의 계단을 밟고 올라온 민재에게 영미는 무엇보다 귀한 보물이었다. 처음으로 설레고 즐거운 추억을 안겨준 영미는, 앞으로 민재가 살아가는 의미가 되었다. 민재는 이생각 저생각에 뒤척이다 어느새 영미의 품속에서 잠이 들듯 포근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튿날, 영미는 그의 말대로 가게로 나갔다. 그러나 냉큼 열쇠를 꽂지 못하고 망설였다.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가게 문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군대에선 아침잠이 꿀잠입니다.’ 영미는 늦잠을 푹 자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고 가게 문을 활짝 열고 총체를 들어 먼지를 탁탁 털기 시작했다. 가게를 정돈하면서도, 바로 떠나겠다는 그가 잠시라도 들려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열한시가 되자 그가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십 분 밖에 시간이 없다며 한 손에는 기차표를 들고, 한 손에는 예쁜 토끼열쇠고리를 들고 서 있었다. 민재는 영미 손에 토끼 한 마리를 쥐어주며,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이렇게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어 달려왔어요. 끼니 거르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있어요.”
순간 영미는 왈칵 뜨거움이 솟구쳤다. 눈 깜짝 할 사이 토끼를 쥐어주고 홀연히 떠난 민재가 못내 아쉽고 원망스러웠다. 영미는 손안에 쥐어준 앙증스런 토끼를 멀건이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숨차게 달려왔다 사라진 민재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차 한 잔 대접 못하고, 김밥이라도 사 보낼 걸,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가 떠난 후, 종일 물건을 들었다 놨다, 행거를 이리저리 옮기며 좌불 안석이었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허탈한 감정이었다. 그를 향한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줄달음치고 있었다. 사랑을 하면 이렇게 상사병을 앓게 되는지 미처 몰랐다. 날이 갈수록 보고픈 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절절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민재 또한, 가슴 뭉클하도록 감동어린 진솔한 사랑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뜨거운 숨결을 주고받으며 육 개월이 흘러갔다.
드디어 그가 제대를 하는 날이되었다. 학처럼 긴 목을 추스르며, 기다리고 기다렸던 민재의 제대였다. 아침부터 전화기만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그의 소식을 기다렸다.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영미는 얼른 달려가 전화기를 번쩍 들었다.
“영미씨! 잘 있었어요? 미안 합니다. 부친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해요. 많이 놀랐겠어요. 어서 서울로 올라가세요. 아버님께서 빨리 회복 하시기를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영미 씨를 생각하면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먼저 아버지를 뵙고빠른 시간에 내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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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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