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6-07-26 03:18

ㆍIP: 61.xxx.81

딸의 일기
딸의 일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월의 싱그러움과 함께 은은한 아카시아 향기가 방안으로 몰려들었다. 가슴깊이 심호흡을 한다. 정신이 맑다. 새벽의 찬 공기 때문인지 순식간에 제체기가 나온다. 창문을 닫고 책상 앞에 똬리를 틀었다. 며칠간 생각이 머물렀던 ‘어버이’ 란 단어를 써내려간다. 사십년 전에 떠나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저려 오는 한편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부모님 전에 한편의 시를 올렸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어버이로서 내 모습은 어떠한가? 잠시 돌이켜 본다.
아들이 벌써 마흔 여섯, 딸이 마흔둘, 어느새 이토록 세월이 흘러 아들과 딸이 불혹의 나이가 무르익고 있다. 어미는 아직도 걱정의 우리 안에서 시시때때 노심초사 하고 있지 않은가,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그동안 크고 작은 언덕을 넘으며 겪어낸 사연들, 얼기설기 헝클어진 덤불 잘도 헤쳐 나왔다. 한 개 한 개 쌓으면 고층 빌딩 되리라. 열심히 내달린 어깨위에 수고했다는 금메달(? ) 하나쯤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육남매 수발에 종가의 손님 접대와 봉제사로 허리가 휘던 부모님은, 사느라고 바빠 살가운 정을 줄줄 몰랐다. 틈만 나면 사람의 도리를 논하시며 엄하게 훈육을 하셨다. 항상 조심해야 했던 마음은 무언가에 늘 허기져있었다. 그 시절이 애달파서, 내 어린 것들에게 그 허기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어루만지며, 채워 주며, 보살피기에 최선을 다 하였다. 그러나 나도 별 수 없었다. 직장 생활에 쫓겨, 딸이 4학년 때는 장염 치료를 받으러 혼자 병원을 다녀야 했고, 5학년 때는 맹장 수술 후 혼자 입원실에 있기도 했다. 그 딸이 첫아이를 출산하고 만성피로로 쓰러지면서 살림을 합치고 10년이 넘도록 외손자들의 치성을 들었다. 그사이 큰 수술을 하면서 건강도 많이 시들었다.
몇 달 전, 숲속에 공기 좋은 작은 아파트로 우리 내외가 이사를 했다. 뒤이어 딸도 옆단지로 입주를 했다. 이제는 하루 한 두 차례 외손들 학원을 챙겨 보내면, 공원산책을 하면서 자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틈틈이 책을 보며 여가를 즐긴다. 책장 안에 꽂혀 있던 예쁜 양장 책 한권을 꺼냈다. 표지에 모 시인의 시가 예쁜 장미꽃 속에 새겨있었다. 당연히 시집인줄 알았다. 책장을 열어보니 아뿔사! 딸이 중학교 일학년 때부터 3년간 듬성듬성 써 놓은 일기장이었다.

0월0일.
아빠가 운전면허 시험 때문에 걱정이 많다.
색약으로 녹색과 적색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족은 아빠의 색깔 구분을 돕기로 했는데 엄마는 자꾸 거꾸로 말 한다.
아빠는 엄마 말대로 대답을 한다. 아빠가 너무 불쌍하다.

0월0일.
오빠는 왜 자꾸 엄마를 속상하게 할까? 오빠가 밉고 야속하다.
아빠가 알면 난리가 날 텐데 모르는걸 보면 엄마가 말을 안 했나보다.
엄마 혼자 속상해 하니까 나도 속상하다.

0월0일.
엄마는 일요일이면 쉬지도 못하고 더 바쁘다, 엄마가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미리 일주일간 먹을 반찬을 만들고, 저녁이면 우리들 교복을 다려주고, 오빠와 내 도시락 메뉴도 짠다. 엄마는 새벽마다 도시락을 세 개씩 싼다. 오빠는 고3이다. 학교에서 저녁까지 먹고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오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 엄마가 제일 고생을 많이 한다.

0월0일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은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아빠는 오빠를 공부로 생각하나? 날마다 공부 공부 정말 ---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은 항상 신경질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낸다.
잘못한 것도 없는 엄마는 쩔쩔 맨다.
내일은 내 생일이다. 제발 내 생일을 망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은 자기 방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빠와 부딪치기 싫었던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그런 날은 화내는 아비를 좌정시키기 급급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다. 아들이 대학을 다닐 때 술을 마신다고, 늦게 들어온다고, 아비의 질책은 끊임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방어책으로 선후배 한둘씩 꼭 달고 다녔던 것 같다. 친구들이 함께 올 때는 잘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불만으로 표출된 아비였으니, 아들은 감당하기 힘들었을 아빠의 소나기를 잘 참아주었다. 당시 거세게 반기를 들지 못한 내 잘못이란 후회를 한다. 그때는 아비의 비위를 맞추기에만 전전긍긍. 그 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반복되곤 하였다. 이제라도 아이들에게 어미가 대신 용서를 청하고 싶다.
남편은 아들이 군에 입대하고 나서야 든든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혼기가 되어, 슬기롭고 예쁜 피앙세를 맞이하여 아빠의 굳은 마음도 녹여주었다. 새 사람 하나가 이렇게 집안을 밝고 따뜻하게 변화 시킬 줄이야! 기적이었다. 애들과 남편 뒷바라지로 내달린 세월, 이제는 손자손녀들 재롱 속에 탈 없이 살아가는 노년이길 바란다. 남편은 지난해 한라에서 백두산까지 아들과 부자간의 추억여행으로 명산순례를 끝냈다. 남편은 심장이 좋지 않다. 그래서 아들과 딸의 끔찍한 보호를 받으며 지낸다. 우리 부부는 가끔씩 시간이 날 때면 천천히 차를 몰고 1, 2박 정도의 가벼운 여행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한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우리의 손이 필요한 아들네로 딸네로 둘 중에 하나가 달려간다. 참다운 어버이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떳떳한 삶을 살아 왔는지 자식들은 무엇을 본받아 살아가는 힘이 되고 정신적인 자양분이 될 수 있을지, 뒤돌아보니, 사회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성실히 살아 왔지만 가정에서는 참다운 어버이였다고 떳떳하게 큰소리 칠 수가 있을까? 먼 훗날, 자식들이 떠나고 없는 어버이를 새털만큼이라도 자랑스러워한다면 한생이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이제 남은여생이 가마솥의 사골 곰국 같은 생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숲속의 싱그러움 속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다. 향긋한 목련 차향이 코끝을 휘감아온다.

백낙은

2016-07-26 10:01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우리도 같은 삶을 살아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
망각의 늪으로 다 빠뜨려 버렸는데 작가님은 용케도 훈훈한 글로 승화 시키셨군요.
따님의 일기도 중학교 1학년인데도 여느 작가 못지 않네요.
우리는 어버이에게 받은 것 다 갚아 드리지 못하고
자녀들에게도 다 받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생인가 합니다.
오늘은 사진첩 꺼내 놓고 부모님 사진이나 보아야 겠네요.
모쪼록 "남은 여생이 가마솥의 사골 곰국 같은 생"이기를 저도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삼복더위에 온 가족이 건안하심을 빕니다. 샬롬입니다.


김경렬	위원장님 더위에 안녕 하신지요? 언제나 달려 오셔서 덕담과 용기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너무 오래 등이 꺼져 있어서 살짝 불을 밝혔습니다. 어느새 7월도 하향 길입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 하시고 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7/26 16:52

김상화

2016-07-31 23:13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부자간에 또 모자간에 그리고 모녀간에 아름다운
사랑으로 엮어 내려간 글을 읽으며 나 자신 반성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과연 나라는 아버지는 자식들과 어떠한 삶을 살았나?
부끄러운 삶을 산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 참 장하십니다. 아들딸을 남부럽지 않게
훌륭한 사회 일원으로 훈육해 기르셨다는 것은
금메달을 받고도 남습니다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김경렬 작가님
가정에 행복과 행운이 늘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김경렬	김상화 작가님! 안녕 하세요? 바쁘신 중에 찾아주시고 덕담으로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항상 부지런 하시고 훌륭한 일을 하시며, 표양이 되는 시인님! 무더운 8월 시원하게 지내시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8/1 22:42

정찬열

2016-07-26 17:19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 어머님이 장손가의 훈육속에
자라셨기에 보이지 않은 거룩함이 잠재하지요
자녀들역시 父傳子傳의 덕목이 천금 같으리라 믿습니다
.
작가님께서는 의당 떳떳하고 헛되지 않은 결과를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에 올려주신"딸의일기" 감동으로 배독했습니다.
넘 덥습니다. 시원한 계곡숲아 찾아 즐거운 시간 되시길기원합니다.


김경렬	감사합니다. 정찬열 작가님! 날씨가 무더우니 힘드시지요? 늘 잊지 않으시고 찾아주시며 힘을 실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딸이 늦둥이를출산해서 산바라지에 분주 하게 지냅니다. 서재에도 자주 못들리고 죄송 합니다. 더위에 건강 챙기시고 시원한 여름 나시기 바랍니다.	7/27 19:23

박목철

2016-08-05 15:44

옛 분들은 다 아버지가 기피의 대상이었나 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은 아버지가 외출을 하시면 온 식구가 불안에
떨었다 합니다. 술이 취해서 동네 어구에서 부터 소리 소리 지르시고
부군께서는 자식 잘 되라는 염려가 조금 과하셨던 것 같네요,
그래도 귀여운 손주 돌보는 낙이라고 있는 것을 저는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고비 다 넘기시고, 아들 딸 곁에 두고 손주까지, 그리고 작가님, 시인님으로
독자들과 만나시는 지금이 행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따님의 일기 잘 읽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를 위하는 마음에 코끝이 찡 합니다.


김경렬	어서오세요. 더위를 어떻게 달래고 계신지요. 귀여운 손자 많이 컸지요? 나이들어 손주낙에 사는것 같습니다. 기력이 있을때까지 글을 대할수 있슴도 또한 낙입니다. 늘 용기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위 잘 나시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8/6 04:41

주응규

2016-08-26 10:55

수필 서재에 모처럼 들러 좋은 글에 머물러 봄이 행복합니다
모처럼 수필을 쓸려니 맘같지 않습니다
이제 간간히 수필 서재에도 불을 밝히겠습니다
무더운 날 건강하시고 늘 행복을 깅원합니다.


김경렬	어머나! 반가운 님이 오셨네요. 버선발로 반깁니다. 불빛만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주응규 작가님!	8/26 19:51

임정수

2016-08-27 19:48

밤하늘의 별처럼
수필 서재에 초롱초롱 불을 밝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들어 왔더니
역시나...

반짝이는 이끌림에 따라왔더니
구구절절 별빛의 알갱이들이 서재에 가득하군요.

한풀 꺾인 무더위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시길 빕니다.


김경렬	임정수작가님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오랫만에 뵈니 더 기쁨니다. 고은 흔적 주심에 힘이납니다. 감사합니다.	8/28 05:23

이석희

2016-08-28 14:02

김경렬 작가님!
말못하고 참기만 하면서 가슴 졸인 우리네 옛날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해 주네요.
항상 아버지께 혼나기를 밥 먹듯하면서 살아온 어린 시절이었기에
나는 아버지처럼 자식을 키우지 않겠노라 다짐하였었습니다.
다행인지 우리는 내자가 아이들에게 더 엄하게 훈육을 하였기에
나는 그 무거운 짐짝을 훌훌 벗어던지고 가볍게 살수가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다 커버려서 엄마와 아빠를 차별없이 대하지만
가끔씩은 나를 수호 천사라고 부른답니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젊었을 적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렬	이석희 작가님! 수호천사 아버지셨으니 자녀들이 얼마나 좋았을까요? 훌륭하셨습니다. 찾아주시고 고은 흔적 주시니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8/29 00:18

주응규

2016-08-31 11:50

김경렬 작가님 좋은 글 배독합니다
건강하시고 건필을 기도합니다
기온차가 심합니다 감기 조삼하세요


김경렬	감사합니다. 바쁘시간 방문하시고 졸작을 배독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조석으로 찬바람 건강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8/31 20:35

이석희

2016-09-18 09:10

김경렬 작가님!
님의 글은 참 아름답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수놓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수를 놓아가며 배독하였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보상받을 만큼 열심히 사셨습니다.
참 장하십니다.
일요일 아침 아름다운 마음을 충전하고 출발합니다.


김경렬	빈집에 찾아오시어 고은 흔적 주셔서 감사합니다. 졸작을 칭찬하시니 부끄럽습니다. 건안건필 승필 하시기 바랍니다.	9/19 21:44

팔자는 핑게야

맏이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