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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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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렬 수필가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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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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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5-05-15 1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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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카운 슬러
만인의 카운슬러
김 경 렬
한학자이셨던 아버지는 내가 살아온 희로애락의 다양한 여정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 목이었고 정신적 지주였다. 학문과 인품을 겸비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항상 마음의 양식을 심어주셨으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주었다. 꼭 필요한 말씀만 하였고 꾸중대신 덕담으로 다스리며 자식이라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으셨다. 초지일관 반듯하신 모습으로 자식들에게는 엄 했으나 속정이 깊고 인자하였으며 평생 화내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다. 천자문을 다 떼면 재미있는 명심보감을 배우게 된다고, 스스로 열심히 하도록 이끌어 주셨다. 막혀서 끙끙거릴 때는 스스로 알아차릴 때까지 묵묵히 눈을 감고 기다려 주셨다. 어릴 때 성격이 쾌활한 나는 실수도 잦았다. 버릇없는 언행을 하면 두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외로 돌리곤 하셨다. 그 순간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아차리느라 머릿속이 분주 했다. 치맛자락이 훌러덩, 무릎이 보이거나 존대 말을 하지 않고 ‘내가’ 라고 말을 했으면, 재 빨리 수정을 해야만 눈을 뜨고 바라보시며 혀를 끌끌 차곤 하셨다. 이때는 너무 지엄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버지가 무서웠다
.
집에는 항상 아버지를 찾아오시는 손님이 줄을 잇고 장날이면 더 많은 어른들이 왕래하였다. 어려운 살림에 종부인 어머니는 손님 접대 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부뚜막에는 항상 시큼하게 익어가는 자그마한 막걸리 단지가 몇 개씩 있었다. 손님이 오시면 그것을 체에 걸러 윗 술은 제주로 한병 봉해 놓고 나머지 술은 손님상에 내 놓으셨다. 끼니때가 되면 곡식을 아껴야 했던 어머니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고 반죽한 덩어리를 홍두께로 쓱쓱 밀어서 칼국수를 삶아 대접하셨다. 상을 내 기전에 손님이 한두 분 더 오시기도 한다. 그러면 여린 호박잎을 한 줌 따다가 둘둘 말아서 체를 썰어 넣고 호박 한개 더 썰고 물 한바가지 더 부으면 국수의 양이 늘어나서 손님 접대를 무난히 할 수 있었다. 어떤 손님은 하루 종일 아버지 앞에서 시를 지으며 시조를 읊고, 어떤 분은 집안의 대소사를 상의하러 찾아오고, 아버지가 직접 제조하신 박하담배가 그리워서, 국화 막걸리가 생각나서,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아버지는 멀리서 찾아오는 모르는 분도 반겨 맞아 주시고 따뜻하게 환대를 해주셨는데 어린 눈에는 참 신기해보였다. 철이 들면서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분이란 걸 알게 되었다.
65년 4월 공무원으로 군청 근무를 시작하였다. 당시 5급 공무원(현재 9급)월급이 오천 원 정도였다. 세살위의 오빠는 서울에서 입주 가정교사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조달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마지막 학기의 성적이 사회생활에 영향을 줄때여서 필요한 책을 좀 샀더니 등록금이 모자라 공부도할 겸 한 학기 휴학을 할 예정이란 편지가 왔다. 내 월급은 한 달 양식을 사고 계돈내고 두 동생 학비주기도 빠듯했다. 급히 모자란 액수를 마련하여 퇴근 후 완행열차로 다섯 시간을 달려 청량리역에서 오빠에게 건네주고 되돌아서 밤 열차로 내려와 출근을 하였다. 좀처럼 자식 칭찬을 하시지 않는 아버지는, 그 새벽에 기차역에서 기다려 주셨고 아들 못지않게 든든하다고 하시며 대견하다고 칭찬을 하셨다.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감동의 물결로 눈시울이 뜨거워 졌으며 난생 처음 아버지의 칭찬이 내 평생 자리매김을 하였다. 어느날 군청 홍보과장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미쓰김 부친인줄 몰랐다면서 대만의 어느 현과 제천 군이 결연을 맺어 편지가 오고 갔는데 아버지께서 번역과 답장을 대필해 주셨단다. 새로운 군수님이 부임하게 되면 항상 아버지를 군수실로 모셔가곤 하였다. 그날은 홍차 대접을 받으시며 팩을 터트려서 휘저어 마셨더니 텁텁하고 맛도 없더라고 하셨다. (60년대 홍차 팩이 나왔다) 식구들은 웃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만능 해결사였고 카운슬러였다. 가랑잎이 뒹그는 쌀쌀하던 가을어느날, 남루한 차림의 젊은 부부가 보퉁이를 안고 두리번거리며 찾아왔다. ‘강릉에서 왔는데 잠 잘 곳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건너편 누추한 빈집을 마련해 주셨는데 방이 너무 더럽다며 집에 있던 벽지로 손수 방한 칸을 도배까지 해 주셨다. 막일을 하며 연명하던 그들이 아기를 낳고 굶고 있다고 또 찾아왔다. 로타리클럽 회장(아버지 지인)에게 부탁하셔서 쌀 한가마 와 연탄 백장을 지원하도록 했는데 배달하는 아저씨가 그 쌀을 우리 집으로 지고 왔다. 내용을 모르는 나는 누가 쌀을 보내온 줄 알고 좋아 했었다. 아버지는 ‘남의 것을 함부로 탐하지 말고 공것을 바라지 마라!’ 고 일침을 가하셨다. 학문은 파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며 손님이 돈 봉투를 놓고 가면 반드시 되돌려주셨다. 그런 날은 어머니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어떤 분이 곡식이나 담배, 술을 가져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즐겨 받으셨다. 어릴때는, 사람들이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채고 돈 대신 양식을 가지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떤 신사 한분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아버지와 긴 시간 담소를 나누며 하루 밤 묵어가기도 여러 번 하였다. 그분을 마지막 보았던 날! 떠나기 전 갑자기 아버지께 넙죽 절을 올리더니,
“ 존경하는 선생님 저에게는 쓸모없는 땅이지만 선생님께는 긴요 하실 것 같아 드립니다. 보리라도 심어서 양식에 보탬이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
아버지의 사양을 뿌리치고 십리 밖의 변두리 땅 문서를 놓고 갔다. 봄이 되어 십리 길을 단숨에 가보니 길도 없는 맹지로 1500평이 온통 돌밭 이었다. 돌을 골라내어 밭둑을 만들고 씨를 뿌렸지만 워낙 박토였기에 싹들이 자라지 못하고 비들비들 말라 죽었다. 일년내내 고생 끝에 이듬해 드디어 보리 수확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마당에서 타작을 하시고 키질하는 어머니 옆에서 잔심부름을 했는데 온몸에 보리가시가 스며들어 못 견디게 따끔거렸다. 그때 살고 있던 집터는 왜정 시대에 해방이 되자 아버지를 좋아하던 '금 조전' 이라는 일본사람이 선물로 주고 간 땅 이였다. 우리 집은 종손인데 밭도 집터도 선물로 생기고 도대체, ‘조상님은 무얼 남겼냐?’고 어머니께 물어 본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8세때 조실부모하여 둘째 숙부 댁에서 자랐다. 종손이라고 공부만 시키고 호미 한번 못 만지게 하신 숙부님은 사촌 형님에게는 농사일만 시켰다고 하셨다. 종가 선산은 종손인 아버지 몫 이였지만 어린 종손대신 숙부명의로 되어있었다. 숙부님이 돌아가시자 그 사촌형님이 선산에 울창한 장목들을 팔아 가로챘다. 집안 어른들이 단죄해야 한다고 했지만 같은 조상님 자손인데 그럴 수는 없다고 아버지께서 말리셨다. 아버지의 어지신 마음은 아마도 당신 때문에 희생된 사촌형님께 예우를 다 한 것이 아닐까?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분이셨다. 사건이후 민둥산이 된 선산은 비로소 아버지 앞으로 이전 되었다.
혼인한지 벌써 43년이 되었다. 남편은 공직자로 일 중독자가 되어 가정사를 거의 몰랐다. 심지어 이사 가는 날도 출근을 할 정도였지만 당연히 내가 할일이라 생각하며 묵묵히 살아왔다.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제2의 인생 꽃이 피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하랴, 하고 싶은 공부까지 하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다. 엄마의 노력에 화답을 하듯 아이들도 잘 자라주어 어느새 대학원을 마치고 가정도 꾸렸다. 각자 전문직에서 성실히 제몫을 다 하고 있다. 벌써 내 나이 67세, 돌아보니 크고 작은병 치레와 고질병까지 안고, 많은 일들을 겪었다. 고난과 괴로움으로 힘들 때 마다 아버지를 떠 올리며 그 힘으로 지탱해 왔다. 다행이 아버지의 성향을 물려받은 덕분에 지금은 은퇴 하였지만 30여년, 상담일이 적성에 맞아서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아버지 딸 이었기에 가능했다고 감히 아버지께 공을 돌리고 싶다. 이제 남은 여정은 아버지 생전의 모습처럼 이웃에게 덕을 베풀고 사랑을 실천하며 그렇게 살아야겠다. 훗날 아버지 뵈올 때, ‘장하다 내 딸, 잘살아 주어서 고맙구나!’
반겨 맞아주실 그날까지…
20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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