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재도
ㆍ작성일	2016-05-27 02:10

ㆍIP: 14.xxx.70

누룽지 습격

1963년 내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이다. 그 시절, 동사무소에서 집집이 부역이란 명분으로 신작로에 흩어진 자갈과 새로운 자갈을 일정량 모아야 우윳가루 및 밀가루, 또는 옥수숫가루 배급표를 나누어 주었다. 어제 종일 주워 모아놓은 자갈 더미 사이로, 잠시 지나는 털털거리는 버스 소리에 신작로의 뽀얀 벚나무 가지에 매달린 매미울음소리도 늘어져 잠시 멈춘다.

저 멀리 뿌연 먼지 사이로 소달구지 가 어슬렁어슬렁 굴러오고, 아이들이 뒤따른다. 뒤따르는 아이들은 방학에 무엇이 그리 신명 나는지 먼지 덮인 검붉은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주르르 타고 내려 얼룩진 얼굴은 인디언 추장 같은 분장이다, 아이들의 양손에는 군용 전화선으로 엮은 빈 깡통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이것을 그렇게도 재미있게 소달구지 뒤에 매단다.

동심에 매달린 빈 깡통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니, 소는 뒤에서 들려오는 깡통들의 합창에 놀라 걸음이 빨라진다. 마부 아저씨는 빈 달구지에 아이들을 태우고 연신 싱글벙글하신다. 시집가는 누나 시발택시 뒤에 매단 빈 깡통 소리처럼 즐겁다.

달구지에는 또철이와 신국이, 그리고 나와 학년이 우리보다 한 해 아래인 육수가 탔다. 또철이 집은 우리 집 옆집이고 우리보다 두 살이 많지만, 학교는 같은 6학년이고, 지금 신나게 타고 가는 달구지도 또철이네 집 달구지다. 신국이네 집은 우리 집과 붙은 일제 강점기 건물 이층집이며, 신국이 아버지가 우체국에 근무해 당시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고, 육수는 길 건너 살았고, 아버지가 어협조합에 서기로 근무해 먹고 사는데 지장 없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공부보다 힘이 센 덕으로 동네아이 모두가 부하들이고 내가 대장이었다. 골목대장이란, 항시 옆 동네 아이들로부터 우리 동네 아이들을 잘 보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칼싸움, 연료로 타고남은 연탄재로 이게 수류탄이라며 투척하는 연탄재싸움, 조그마한 돌멩이를 장착해 쏘는 새총 싸움 등, 이웃 아이들과 많은 전투 놀이를 하지만, 돌을 장착하여 쏘는 새총 싸움은 위험천만한 것이므로, 때에 따라 대형사고도 일어난다. 돌이 머리에 맞아 피를 흘리면 어머니는, "그래, 이놈의 짜슥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장난치다 오지 꼬시다." 하시며, 장독에서 퍼온 된장 한 숟가락으로 치료해 주셨지만, 만약 집 창문 유리가 박살 나면 없는 돈 때문에 온 동네가 시끄러워 든 시절이다.

한낮 태양에 달아오른 신자로의 자갈길을 떨거덕거리며, 끌고 온 달구지의 멍애를 내린 소는, 힘든 걸음으로 외양간 여물통으로 향하고, 더위에 지친 우리는 동네우물가로 가 시원한 물 한 바지로 주린 배를 채우고 멱을 감는다. 신국이가 머리에 부어주는 두레박 물은 머리카락을 타고 내리고, 나는 숨이 가빠 고개를 쳐든다. 보이는 파란 하늘, 그 하늘 밑에 있는 탑산과 그 중턱에 위치한 해군 장교 숙소는 참 아름답다. 그곳은 우물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00미터 이내 이지만 내가 가보지 못한 유일한 곳이다.

한참을 우물가에서 노닥거리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본다. 모두 입술이 새파랗다. 쳐다보는 눈빛이 입술에 집중되어 있을 즘, 간덩이가 매우 큰 또철이가 주절거린다. 대장, 우리 BOQ 식당에 있는 누룽밥 습격하자. 응... 그곳에 가면 누룽지가 있다는 것을 또철이는 벌써 알고 있었나 보다.

귓전에 울리는 습격은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다. 어제만 해도 우리는 보육원에서 관리하는 철 이른 포도밭을 습격해 설익은 신맛의 포도를 동네어귀에 숨어 청포도마냥 맛있게 먹었다. 또 얼마 전 뒷동네 수박밭을 습격하다 혼이 난 일도 있다.

그동안 이곳저곳 습격할 때마다 나는 대장이란 명분으로 감시만 했고, 단 한 번도 선발대 및 행동대장을 해본 일이 없다. 그들이 습격한 전리품만 챙겼다. 지금 생각하면, 만약 습격이 실패로 이어져 누군가가 책임을 지는 일이 발생 했다면, 아마 나는 누구누구가 했어요, 하면서 친구들을 가리키며 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을 것이다. 왜, 요즘 정부, 여당이나 야당에서 돌아가는 정치판처럼 겉으로는 제가 최고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하고, 뒤에서는 온갖 권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악하고 추악한 그분들, 성난 민심마저 무시하고 저버리는 그런 분들이 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참 부끄러운 일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든가. 우리는 또철이의 제안에 배고픔도 잊은 체 작전을 구상했다. 작전명은 해군 장교숙소 식당 누룽지 습격이다. 이번 습격은 예전과 달리 군부대와 하는 전투라, 해군 수병들의 철통 같은 경비와 보안 철조망이란 커다란 장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우라가 공격할 장교 숙소 식당구조를 살펴보면, 산허리에 건축 당시 깎아 내린 경사면이 있고 그곳을 무너지지 않게 옹벽 처리가 되어 있는데 높이는 대략 30m고, 80도 이상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측에는 언덕 경사면이 50도 정도이고 길이는 약 50m이며, 언덕 밑에는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져 있다. 우리는 우측 철조망을 통과하여 언덕을 택할까 하다, 그곳은 일반인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라 수병들의 경비가 심한 곳이다. 그래서 우리가 택한 코스는 옹벽을 타고 올라간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한 번 해보지 못한 생명을 담보로 한 암벽등반이라, 전부 나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또철이도, 신국이도, 육수도 나만 쳐다본다. 운명의 시간이 내 등을 떠밀었다. “그래 내가 올라간다.”하고, 처음 큰소리치며 결정하는 순간, 옹벽을 쳐다보니 하늘이 캄캄하다. 잠시후 "어~이 대장 괜찮겠나?" 하고 육수가 걱정되는지 묻는다. 나는 작전시간은 내일 경비가 가장 허름한 오후 3시로 정했다. 그 시간은 식사 후 정리정돈을 끝내고 수병과 문관아저씨 들이 식당 옆 당구장에서 장교들이 없는 사이 잠시 당구 게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운동회 때 입는 검은색 흰 줄무늬 반바지와 누른 저고리를 입고서, 허리에는 누룽지 담을 자루를 감았고, 발에는 양말도 신지 않은 체 검정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다가온 시각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철조망을 통과하여 밀려오는 두려움과 함께 옹벽에 붙었다. 옹벽 사이사이 조금 솟아오른 곳과 벌어진 사이로 1m도 오르지 못하고 미끄러져 버렸다. 원인은 맨발로 신은 검정고무신 속에 두려움과 긴장으로 찬 발의 땀 때문이었다. 멀리 신작로에 쌓아놓은 자갈 더미 뒤에 숨어 누룽지를 지켜보는 친구들 앞에 나는 쪽팔릴 수 없어, 신발 두 짝을 옆구리에 동여맨 자루 속에 넣고 맨발로 차근차근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를 올랐을까,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위만 보고 오를 즘, 옹벽 난간 사이로 식당 처마 끝이 보인다. 옹벽을 타고 올라오는 함성이 작은 메아리로 들리는 동안, 다급한 나머지 자루 속에 있는 검정고무신도 끄집어 내지 않고 누룽지 전리품을 잔뜩 담아 잘 묶어서 옆 언덕 밑으로 굴리고, 나는 잔디썰매를 타듯 미끄러져 양 무릎에 피를 흘리며 누룽지 습격에 성공했다.

그날 우리는 양 어금니가 아플 정도로 배불리 먹었다, 그 시절 마땅한 간식과 과자도 귀한 시절이라 더욱 그리워진다. 훗날 생각하니 말린 누룽지는 다름 아닌 수병들의 선임하사관 및 문관들이 가정으로 가져가 식량을 대신한 것들로 그때, 식당 수병들이 겪었어야 했을 고초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금도 그 시절 동무들이 그리움으로 스칠 때,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우리보다 한해 밑 육수는 몇 년 전 버스 운전을 했는데, 지금은 개인택시 사장님이고, 또철이는 조그만 어선의 선장이 되어 고향 바다를 누비다 탑산 밑에서 아담한 식당을 차려 사장님이 됐고, 신국이는 내가 베트남에 올 7년 전만 해도 늘 색소폰을 가지고 서울 초등동창회에 몇 번 나왔는데, 요즘 본 친구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항상 들고 다니던 색소폰 소리를 들어본 친구가 없는 것처럼.......

그러나 언젠가는 신국이가 들려줄 황혼의 블루스 곡에 맞추어, 우리는 함께 블루스를 출 것이다. 참, 그때 초등학교 옆 BOQ 정문 앞에는 웅섭이와 태복이가 살고 있었다.

백낙은

2016-05-27 14:43

박재도 작가님.
누룽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리는 4형제였는데 누룽지도 그랬지만 손국수 꽁대기? 쟁탈전을 많이 했답니다.
노릿노릿 구워 놓으면 그런대로 별미였답니다.
옛날 생각 할 수 있는 글 고맙습니다. 은안하소서. 샬롬입니다.


박재도	죄송합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국의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2/23 12:22

정찬열

2016-05-29 12:14

박재도 작가님!
그옛추억을 결부시키게하는 "누룽지"
재미나게 배독했습니다.
깊은 시골에 살았던 우리는 밀찜 보릿찜이
전부 였는데 그래도 도심변에 추억속에
작가님의 전투적인 추억이 이래적이였네요
이국땅에서 그리는 추억 고이 간직 하시고
늘 편안 하시고 행운이 가득한 6월이 되세요^^


박재도	죄송합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국의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복사 글 드려 죄송합니다	12/23 12:23

이석희

2016-08-27 19:35

하하하하 누룽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더 실감이 났습니다.
항상 좋은 글 주소서.
그리고 건강하소서.


박재도	죄송합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국의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복사 글 드려 죄송합니다	12/23 12:23

주응규

2016-08-31 11:48

박재도 작가님 누릉지 좋은 글 배독합니다
건강하시고 건필을 기도합니다
기온차가 심합니다 감기 조삼하세요


박재도	죄송합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국의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복사 글 드려 죄송합니다	12/23 12:23

황양국

2017-08-11 10:43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박재도	죄송합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고국의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복사 글 드려 죄송합니다	12/23 12:23

겨울비 속의 만남

네놈이 회 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