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꿈에서도 그리던 내 고향에서 텃밭문학회 회원님인 시인 두 분을 만나는 날이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 설익은 눈으로 더듬거리며 창밖을 보니 겨울비가 곱게도 내린다. 봄비처럼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어찌나 고운지 눈이 시리다. 앞마당 나목 끝자락에 아직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몇 잎 되지 않는 잎사귀들은 지나간 청춘이 아쉬운 듯 내리는 빗물을 영롱하게 잡아 세월의 끝자락에 초롱초롱 매달아 놓고,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듯 세상을 뒤집어 보며, 흘리는 눈물방울 같다.

본능적으로 비를 좋아하는 내 눈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저 빗방울 속에서, 우리들의 첫 만남이란 먼 기다림의 여울목처럼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나 보다. 그래서 비가 내려도 나는 분주하게 비를 맞으며, 빗소리를 듣고 행복에 흠뻑 젖어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저 유명한 팝가수 Anne Murray가 부른 비의 노랫말이 생각나 흥얼거린다. “비가 내리네요, 빗소리를 들어봐요, 저 빗방울들이 보이나요, 저 빗방울들만큼 그대를 사랑해요”

오늘의 만남이 내리는 저 빗방울들만큼 사랑하고 싶은 두 분을 그리며, 약속된 장소로 가는 길목의 풍광은 낯선 이국땅 같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이라 그런가 보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곳의 진한 커피향기 속에 잠시 창밖을 본다, 창밖엔 겨울을 알리는 스산한 바람이 분다, 이제 모든 것이 점점 메말라가는 아슬아슬한 계절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지만, 만남의 아름다운 인연이란 것이 있어 세상은 아직 초록일 것이다.

창 넘어 흘러온 인생의 주마등 아래로 차분히 내리는 빗속을 걸어오는 임이 보인다. 단정한 맵시에 묻어나는 향기는 겨울비와 조화되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혜정님이다. 그리고 또 한 분이 오셨다. 순간 나의 눈에는 그 옛날 어머니가 겨울철 아랫목에 이불 덮어가며 잘 띄워놓은 청국장 같은 향이 물씬 풍기는 농군님이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그토록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서로의 입으로 경쟁하듯 텃밭 문학을 칭찬했다. 그것은 아마도 힘든 만남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 없는 상호 배려였을지도 또한 우리들의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서로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문학의 본질이나 힘겨운 텃밭 이야기나 아쉬운 삶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리긴 해도 공감이 될 때면 한줄기 소나기 마냥 마음이 청량해지기도 하며, 정말 행복하게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나면 더 행복해진다는 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가끔은 서로의 칭찬에 행복해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든가, 우리들은 음악 소리를 들으며 식사와 술판이 익어갈 무렵 경사가 겹쳤다. 농군님의 암소가 건강한 송아지를 출산한 것이다. 아! 만남이란 아름다운 꿈과 새 생명의 잉태를 말한다. 꿈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꿈은 결코 어떤 꿈이 더 훌륭하고, 어떤 꿈이 더 허술하다는 생각 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꿈속에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 작은 꿈이 높고 넓은 하늘로 올라가 아름다운 마음을 닮은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만이 새 생명이 잉태할 것이다.

꿈같은 시간이 흘렀다. 시인님들이 떠난 자리에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 비속을 우산도 없이 걸으며, 생존의 먼 여행을 준비하는 기러기처럼 언제나 가슴 사무치는 주홍빛 그리움으로 우리 서로 사랑 안에서 숨결로 살까.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사이로 깜깜한 어둠만이 나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