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학교수업을 마치고 산길을 넘어 먼지 폴폴 날리는 신작로를 따라 집으로 달려오면 건너편 텃밭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도라지를 캐며 밭일을 하시는 어머니가 보일 때면 저도 모르게 보자기에 싼 책 보따리를 등에 둘러맨 체, ‘엄마! 하고 달려가 안기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님께서는 ‘내 강생이 학교 잘 갔다 왔나?’ 하시면서 어느 사이 허리 주머니에서 알사탕 한 알을 고이 까주시며 등을 도닥거려 주셨습니다. 당신은 피곤함도 잊은 채, 종일 뙤약볕에 일하시면서도 코흘리개 아들의 군것질을 먼저 챙겨주셨습니다. 못난 아들이 당신을 부를 때까지 허리 한번 펼 틈도 없이 온종일 논밭에서 일만 계속하셨을 내 어머님!

군 입영통지서를 받고 떠나던 날 당신께서는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여 자식이 좋아하던 음식을 가득 차린 상 앞에서 손수 수저를 손에 쥐여 주면서 “배고플라 든든하게 묵고 가야지", 하시고는 부엌으로 나가셨습니다.

당신도 함께 드시자고 하였더니 숭늉 데워오겠다며 한참 만에 들어오신 당신의 눈가에는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습니다. 대문에 기대고 서서 하얀 머릿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 ‘몸 건강하게 잘 갔다 오라고 하시던 당신의 모습을 뒤로한 채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향해 달렸습니다.

항해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오니 당신께서 돌아가셨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무너지는 안 따가운 소식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 떠나던 날 손을 흔들어 주시던 당신의 모습을 그리며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건만 진정 당신께서는 ‘당신의 영정과 하얀 고무신’만 철부지 못난 자식을 맞이하여주었습니다. 막내아들 군에 보낸 뒤 한마디 말씀도 없이 떠난 당신을 목 놓아 불러 봅니다만 "내 강생이 왔나?" 하시던 당신의 음성은 ‘엄마! 엄마!’ 이 자식의 애절한 통곡에도 허공에 메아리칠 뿐입니다.

무수히 생성되고 끊임없이 변모해 가는 생명의 미묘함 ‘생로병사’ 속에서도 항상 자식 걱정을 하시던 어머님의 부담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저 자신이 행복하게 잘 살아 가야겠다고 두 주먹 힘주어 불끈 쥐던 날. 소담스런 양지꽃들 사이에 아름답게 피어난 ‘한 송이 구절초처럼 핀 당신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본향으로 가셨습니까?

어머님! 오늘은 당신께 올릴 한가위 날 차례 준비로 시장에 들렀다가 저자 한 모퉁이에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도라지를 파는 할머니를 본 순간 "엄마!" 하면서 달려가 안기던 그때가 저절로 생각이 나 눈시울이 젖어 왔습니다.

언제나 '하늘과 같은 온유함과 바다처럼 깊은 사랑'으로 가슴 가득 채워주시던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우쳐주신 나의 어머님! 내 이젠 반백이 넘어 다시 찾아올 새벽을 준비하면서 텃밭 한 모퉁이에 홀로 서 있는 하얀 구절초와 같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 본 글은 2006년 경남여성신문사 주체 일반 수필 부문 최우수상 받은 저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