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연에 적응하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업무 출장으로 한국을 다녀온 이후 사흘간 꼼짝없이  앓아 누웠다.
아마 오랫동안 적응되지 않은 고국의 겨울 날씨 덕분에 목이 잠기며 오한이 드는 심한 몸살, 달갑지 않는 손님이었다. 아! 진정 이국땅 서러움의 서막은 신체의 아픔에서 시작되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누구보다 건강 하나만은 자신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감기 몸살 하는 내가 미워져, 텅 빈 공간 속에 혼자 있는 자신의 초라함에 벌써 눈시울엔 서글픈 이슬이 맺어 멀리 있는 가족이 아론 그려 아침 식사도 하지 못했다.

한나절 경 겨우 물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한통의 전화가 울렸다. 평소에 이곳에서 잘 지내는 동나이 성 CEO 회원님이다. 반가움에 스스럼없이 몸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 휴대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부끄럼 없이 이야기한 말이 위로 받지 못하고 섭섭한 여운만 남겼다. "ㅎㅎㅎ 박 사장님 매일 운동 하시더구만 그래가지고 구정 때 한국 가겠습니꺼? 그만 말지 예~하하하!" 물론 뼈있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조금만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상대를 위로해줄 수 있는 좋은 말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는 것은 정상 컨디션이 아닌 과민 반응일까, 아니면 내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무리한 내 생각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잘 지내던 회원님이기에 못내 아쉬움과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현실은 이국땅에서 처음 겪는 아픔이 내 서러움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오늘 무대도 관객도 없는 서글픈 오페라와 같은 인생의 겨울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초라함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찾아오며,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어김없이 꽃이 핀다는 자연의 섭리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왕에 연출할 오페라 같으면 조금 멋있게 폼나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한나절이 지날 무렵 생각하지도 않았던 회원님이 찾아오셨다. 그분도 현지에서 사귄 CEO 인 데 반가움에 세수도 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 위에 모자를 깊이 눌려 덮고 맞이했다.

점심 했느냐고 물었더니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내 차를 타라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달렸다.

1시간을 달렸을까, 가끔 생각날 때 찾는 바리아 붕따우 성에 있는 허름한 현지인 식당이다.점심을 드신 장 사장님을 앞에 두고 정신없이 먹고 나니 눈앞이 보였다. 먹어야 산다는 옛말이 실감 난다.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이유도 모른 체 앉아있는 사장님께 미안함 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허락해주시고, 건강하게 요란 말로 위로해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늦은 시간 멀리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걱정할까 두려워 아프다는 내색도 없이......ㅎㅎㅎ 그래도 오늘 연출된 서러움의 서막 하루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은 동화 속 어린 왕자 같은 손자 녀석의 맑은 노래 소리가 아픔을 치유하는 신비로운 약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