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10-02 22:05

ㆍIP:

북성 포구
앞서 가던 사람들이 조붓한 골목길로
마치 수챗구멍으로 흘러 드는 싱크대 속 설거지 물처럼 쪼로록 빨려 들어간다.
우리도 뒤 따라 함석과 펜스로 된 담이 양 옆을 차단한
이십여 미터를 걸어서 지나치니 문득 짠 갯내음을 앞세우고
앉은뱅이 나무에 달린 꽈리 열매들처럼 오르르 모여 있는
목선들이 내 시야로 들어선다.

“그래!”
“여기야!”
“북성 포구!”

오늘은 민족의 명절 한가위.
아침 일찍 차례를 마치고 카메라를 손가방에 갈무리하여
아내와 큰 아들과 함께 얼마 전 찾아 보았던
인천의 작은 포구 ‘북성 포구’를 가 보기로 했다.
한 달여 전에 ‘젓갈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인천 토박이
‘김윤식 시인님’의 문학기행에 따라 나섰다가 가 보게 된
말 그대로 가난한 포구 ‘북성 포구’를 찾았었는데
이곳은 인천 사람들도 잘 모르는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아는 아주 작은 포구였다.

물때를 맞춰 찾아간 포구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바램을 응원 삼아
줄줄이 들어 서는 목선들이 고작 11척이 전부이고
밀려오는 바닷물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꼴이
엄마오리 뒤 따라 헤엄치는 새끼 오리들처럼
줄을 맨 듯이 졸졸졸 끌려들어 오는 게
아마도 저 어선들은 한 조선공(造船工)이 만든
형제 배들은 아닐까 생각을 해봤었다.
그때는 카메라를 지참하지 않아 아쉬움에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이곳을 어떻게 올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인천 전철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이 나온다고 하였었다.

궁금하여 네비게이션으로 찾아보니 안내 불가인
그야말로 세상사람들 시선을 피해 숨어 있는
그런 작은 포구였었다.

인천역에 내려서 광장으로 나서니
전면에 그 유명한 자장면의 출생지인
‘차이나 타운’의 화려한 중국풍의 커다란 문이 우리를 반겨준다.
하지만 우리의 오늘 행선지는 이곳이 아니고 ‘북성 포구’이다.
열린 문 사이로 슬쩍 ‘차이나 타운’ 앞 마당을 엿보고 길을 재촉한다.

택시를 탈까 하였으나
기본요금 거리면 걸어서도 얼마 안 걸리고
또 위치도 확실히 알겸 역 주위의 상인에게 길을 물어 방향을 잡고
짠 바닷바람을 찾아 포구로 향했다.

‘차이나 타운’의 건너편 도로,
그러니까 인천역 뒤쪽 도로를 걸어 드니 명절이라
웬만한 가게들은 입을 굳게 닫고 있었으나
간간이 있는 동네 구멍가게는 문을 열고
우리를 ‘북성 포구’로 안내 해 주었다.

오늘 물때를 검색해 보니 가
바닷물의 높이가 가장 높을 때 인 만조가 오후 4시경이라 서둘렀는데
지금 2시경의 햇빛은 자주 내리는 가을비를 피해
모처럼 가을볕답게 따가웠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 봐도 포구가 있을 것 같지 않고
이정표도 월미도만 월미도만 연신 가리키고 있으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조금은 불안하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낡은 철길을 건너
구멍가게에서 다시 한번 길을 물으니 앞의 ‘대한제분’ 공장
오른편을 돌아서 쭈~욱 걸어 들어 가란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 들어가니 전면에
커다랗게 곰을 그려 넣고 밀가루처럼 하얗게 버티고 선
‘대한제분’ 공장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한제분’에서 생산하는 ‘곰표’ 밀가루는
우리의 근세 분식문화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우리의 별식인 자장면이나 국수와
많은 종류의 라면생산의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으리라.

이곳을 돌아 한참 공사중인 고가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새우를 사 가는듯한 스텐 양동이를 들고 걸어 나오는 노부부가 보이는데,
그걸로 이 길이 제대로 포구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한편으론 너무 늦게 온 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내 발걸음은 더욱 바쁜데 아내와 아들녀석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찰하며 더디게 따라온다.

더욱 마음이 조급해져 해물을 사오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니
이미 배가 십여 척 들어 왔단다.
그것이 다 일 것이다.
그곳 어선의 수라야 그저 열두어 척이 다일 게다.

걸음을 재촉해 대한제분과 대한사료공장 뒤로 허름한 집들을 지나
앞서 가는 사람들 꼬리를 물고 작은 골목을 통과하니
드디어 몇 개의 횟집을 거느리고
양 옆을 석축과 시멘트로 영역을 지키는 넓은 수로가 보였다.

그렇게 들어선 ‘북성 포구’는
곁에 커다란 아파트가 우뚝우뚝 서있고
건너엔 섬과 섬을 이어 공장이 들어선
공장섬 사이로 작게 숨쉬고 있었다.

이곳은 부두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고,
수산물을 경매하는 조합도 없으며
그저 십여 척의 배가 조업을 하며
해물의 매매도 배의 갑판 위에서
소비자와 어민 사이에 직접 이루어 지니
이곳에서는 정박한 어선들 사이를 넘나 들며
물건을 구경하고 흥정을 하여 사면 그만인 것이다.

어선의 접안 시설도 허술한 석축 이삼십 미터가 다여서
배를 더 정박하려 해도 배가 접안 할 공간이 더 이상 없다.

이날도 십여 척의 목선들이 배에서 내려놓은
손님맞이 나무 발판이 마치 엄마뱃속 아이의 탯줄처럼
석축을 꼬옥 잡고 손님을 맞는 광경이
마치 어린 시절 새끼를 한꺼번에 십여 마리씩 낳던
우리 집 어미 개에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들이 눈을 감고
젖을 빨고 있는 그런 평온한 정경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정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배 안을 내려다 보니
꽃소금 같은 가을 새우가 갑판마다 잘 벌초해 놓은 조상 묘처럼 쌓여 있고,
커다란 물통마다 이 계절의 풍성한 수확인 꽃게가 그득그득하다.
한편으론 어민들과 손님들의 눈을 기다리는
초라한 전어, 주꾸미, 학꽁치등 손님 고기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따사로운 가을볕을 즐기고 있다.

새우와 꽃게를 사가는 중년 부부에게 오늘 새우 시세가 얼마냐고 물으니
이렇게 좋은 참새우가 잡히기는 근래 십여 년 내로 처음이라며
처음에 배가 막 들어 왔을 때는 한말에 5천원 하는데
조금 있으면 2말에 만 오천 원,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면
한말에 만원씩으로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더군다나 각 어선이 잡아온 새우의 질도 다 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씩 틀려서 더 좋은 게 있고 조금 나쁜 게 있다고 하니,
그걸 아는 사람들은 배가 들어오기 전부터 기다렸다가
배가 들어오면 서둘러 각 어선의 새우 품질을 비교해 보고
보다 좋은 참새우를 가장 싼 가격으로 사간다고 한다.

배에서 생새우를 사 올라와선 작은 횟집 몇 개가 늘어선
석축 위 좁은 길에 소금을 새우와 함께 버무려 파는 아주머니한테서
소금을 사 비닐봉지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 가면 그만인 것이다.

십여 년 전에는 나도 이 가을이면 어머님을 모시고
지금은 없어진 안산의 ‘사리 포구’로
김장용 새우를 사러 가곤 했었는데
아내는 도무지 새우에는 관심이 없고
싱싱하고 맛있는 회를 먹을 생각으로 그 작은 두뇌가 꼭 차 있을 테니
그건 비단 아내뿐 아니고 이 시대의 젊은 주부들의 다 같은
세대적 사고일 테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노부부들이 손에 손에 새우와 꽃게들을 주렁주렁 들고
오던 길을 되 집어 갈 때쯤
너무도 작은 포구를 장시간 구경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아내가
횟집으로 발걸음을 종용할 때
공장섬 사이로 황급히 들어오는 목선 한 척이 보였다.
아마도 저 어선은 막내배 이거나 바다에서 늦잠을 자다
깜짝 놀라 후다닥 물길을 헤치고 들어오는 것 같아
내가 학교 다닐 때 지각생의 뒤 늦은 호들갑 떠는 모습 같아
쓴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그래도 제일 귀여운 게 막내 사랑인지
많은 손님들이 마지막 들어온 배로 몰리는 걸 보면서
뭔지 모를 안심을 느끼며 포구를 빠져 나왔다.
앞으로는 만조 시간보다 3시간 정도 일찍 포구를 찾아야
제대로 ‘북성 포구’를 즐길듯하다.

언제 개발이라는 불한당의 식탐에 걸려 사라질지 모르는
인천의 어린애 코딱지만한 ‘북성 포구’

2007년 9월 추석을 지낸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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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질 않아
아는 사람들만 찾아드는 곳이라면
'북성포구'가 아직은 속세의 때가 묻지않은 곳이군요.

갓잡은 새우가 한말에 오천원에서 만오천원이라면
정말 공짜나 다름없네요.

갓잡은 새우를 굵은 소금에 절여서
새우젓을 담그면 맛있을텐데...아깝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새우든 뭐든 젓깔을 담그려면
소금을 아끼지 않고 많이 넣을 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거든요.
(hirashi2000@yahoo.co.kr) -[10/0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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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마저드는 '북성포구'에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고픈 마음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요즘은 한창 게장을 담그는 철이라서
저도 남해와 진해 용원을 다니며
게와 여러가지의 해산물들을 많이 사온답니다.

모처럼 올려놓으신 고운 글에
기쁜 마음으로 머물다갑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10월 되시고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 (hirashi2000@yahoo.co.kr) -[10/0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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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과 103번 종점의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