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깨었다.

눈을 감고 뒤척이다 몸을 일으킨다.

옆에는 아우들이 코를 골고 새벽잠을 유영하고 있다.

여기는 남도의 항구도시.

일을 하기 위해 머무는 숙소인 모텔 방.

창 밖은 아직도 희뿌연 새벽빛으로 거리를 잠 재우고 있다.

텔레비전을 켜고 자고 있는 사람들의 새벽잠을 깰세라

볼륨을 완전히 죽인다.

그러나 내 시신경은 TV화면에 고정이 안되고

잠시 전 나를 깨운 꿈을 더듬어 본다.

이번 꿈도 어림없는 개꿈인 것 같다.

지금 오십 줄에 들어서도 나는 꿈에 종종 하늘을 날아 다닌다.

두 팔을 한껏 벌려 하늘을 향해 휘저으며 발을 껑충 뛰어 본다.

하지만 나는 높이 나르려 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리 애써도

그저 지상에서 내 키만큼의 높이로 밖에는 날지 못한다.

그건 여름 휴가 때 바닷가에서 물속에 잠수해

수영을 하기 위해 두 팔과 다리를 저어대는 것 같이

물속 바닥처럼 지상 바닥이 지근거리에 있다.

아직도 이런 꿈을 자주 꾸는걸 보니 나는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철부지 소년인가 보다.

귀 밑에 흰머리가 나풀거리는 흰머리 소년.

그렇게 여기 저기를 헤매며 어머니도 본 것 같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친구들도 본 것 같은데

더는 꿈속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꿈이란

‘잠자는 동안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밤마다 그런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깨어나 기억되는 꿈은 그저 극소수에 그친다고 한다.

그 꿈의 대부분이 전날 하던 일과 처했던 상황,

목격한 장면에 연관된 것이 대부분이다.

나도 어떨 때는 낮에 하던 업무를 꿈에서도 계속 하기도 했는데

잠시 전의 꿈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오늘 오전에 일을 일시 마치고

추석을 지내기 위해 집으로 귀가 하는 날이라

이런 저런 꿈을 꾸다가 일찍 눈이 떠진 것 같다.

꿈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인 귀몽(歸夢)이 있다는데

내가 간밤에 꾼 꿈이 귀몽 인가보다.

밝은 TV화면 때문에 잠이 깬 아우들이

볼멘 소리로 한마디씩 한다.

“아니 큰형님! 어찌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우리들 잠까지 깨워요?”

나는 즉답을 피하고 그저 웃으며 “으응” 하고 만다.

필경 저들은 내가 나이 먹어서 새벽잠이 없는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킥킥거리겠지.

잠자면서 꾸는 꿈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돼지꿈을 꾸고 복권에 당첨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고전이 되어 버렸고,

요즘은 꿈에 조상이 나타나 숫자 여섯 개를 가르쳐 줘서

로또 번호로 기입했더니 일등에 당첨되어

대박이 터졌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그런 건 아마도 간절한 소망에 꿈이 길을 가르쳐 주었는가 보다.

꿈의 종류를 찾아 보니 대표적으로 육몽(六夢)이 있는데

그 첫째는 사실과 일치하는 꿈인 정몽(正夢)

두 번째는 놀라는 꿈인 악몽(愕夢)

세 번째는 생각하는 꿈인 사몽(思夢)

네 번째는 현실의 꿈인 오몽(寤夢)

다섯 번째는 즐거워하는 꿈인 희몽(憙夢)

여섯 번째는 두려워하는 꿈인 구몽(懼夢)으로 분류 된다는데

그 외에도 내가 지난밤 꾼 것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인 귀몽(歸夢)과

아이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태몽(胎夢),

고생스러운 꿈인 풍랑몽(風浪夢),

좋은 일을 예고하는 길몽(吉夢)등 여러 가지가 있다.

때론 좋은 꿈인 길몽은 사고 팔기도 하는데

신라시대에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 보희와 문희의 꿈 거래가

대표적인 전설적 사례이다.

그 전설의 내용은

‘언니인 보희가 산마루에서 오줌을 누자

서라벌 전체가 오줌으로 가득 차는 꿈을 꾸었고

동생인 문희가 이 꿈을 비단 한 감으로 샀다가

결국 문희는 무열왕과 결혼을 하여 왕비가 되었고

그의 아들이 삼국을 통일 시킨 문무왕이라 한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 아이를 수태 했을 때 꾸는 꿈인 태몽은

꿈으로 잉태 여부와 태아의 성별, 장래의 운명 등을

점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태몽은

반드시 임산부만이 꾸는 것은 아니고 태아의 아버지나

조부모, 외조부모, 이모 등 가까운 인척이 꿀 때도 있고,

시기도 수태 전후나 출산 전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이 나라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의 태몽은

그의 모친이

‘환한 보름달이 치마폭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하며

그래서 이름도 명박(明博)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또한 LA 올림픽 때 양궁에서 첫 금메달을 딴 서향순씨는

어머니와 이름이 똑 같다고 하는데, 그가 태어난 지 이레째 되던 날

어머니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자신의 이름과 딸의 이름을

똑같이 지으면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태몽을 꾸고

자신의 이름과 같은 ‘향순’ 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우리 집 두 아들의 태몽은 둘 다 아내가 꾸었다고 하는데

큰 아이는 집채만 한 누런 황소 세 마리가

푸른 바다 밑에서 위로 용솟음치듯 떠 올라

각자의 입에 그물을 나누어 물고 바닷가로 나오는데

그물 속엔 파닥파닥 싱싱한 조기들이 한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한다.

둘째는 큰 고무 다라이에 커다란 가물치 두 마리가

꿈틀대는 꿈을 꾸었다고 하는데, 아내의 친정 아버지께서도

물 고랑을 따라 두 마리의 미꾸라지가 졸졸졸 헤엄쳐 와서

시골의 친정 아버지 논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런 태몽으로 아이의 장래를 예견하는 태몽점이 있다고 하며

역사에 길이 남는 옛 선인들이나 고승들은

한결같이 범상치 않은 태몽과 연결 시키고 있으나

백 프로 믿을 수도 없고 비록 맞는다 해도 마치 예고편을 보고

본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맥 빠지고

흥미와 감동이 반감 되는 일일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형제들의 태몽을 간간이 이야기 하시곤 하셨었다.

그 중에서 내 태몽은 아버지께서 논산 훈련소에서

부 사관으로 근무 하실 적에 꾸었다고 하는데

--어느 날 외출했다 부대로 들어 오니

연병장 한쪽에 많은 병사들이 모여 있어서

웬일인가 하고 사람들 사이로 들여다 봤더니

신선같이 생긴 백발 수염노인이 흰 학(鶴)을 데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학(鶴)을 한번 태워 달라고 간청을 해도

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거부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노인에게 학(鶴)에 태워 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그 노인은 아버지를 빤히 쳐다 보다가

‘당신은 탈 자격이 있다’ 라고 하며 태워 줘서

아버지는 학(鶴)을 타고 하늘을 빙 돌다가 깼다--

라고 하셨다.

나는 여태껏 자라 오면서,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멋진 태몽을 생각하면서도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 가는

나에게는 걸맞지 않는 태몽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생의 조양(朝陽) 무렵과 정오(正午)무렵에는 모르겠더니

석양(夕陽) 무렵인 이 지음에는

늦게나마 글을 쓰는 재미에 심취되어 있으니,

이는 예전부터 학(鶴)은 문인이나 문관의 상징이라

어느덧 태몽의 극미한 일부분을 살아 가는 것 같은데

내 아버지는 이제 극도로 연로하여 거동도 활달치 못하시고

언제 돌아 가실지 모르는데 어느 세월에 아버지가

학(鶴)을 타고 날아가는 태몽을 이루어 드릴까?

방법이 묘연하니 내일은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깔끔히 목욕을 시켜 드리고 깨끗한 옷을 갈아 입혀서

내 등에 업고 앞 마당이라도 거닐어 봐야겠다.

마침 내 귀밑에 흰머리도 제법 많이 우거졌으니

얼마간은 학(鶴) 하고도 닮았으리라.

내 아버지는 학을 탄 기분을 느끼시며

나이 들어 가는 아들의 등에서 한 없는 행복감으로

만족스럽게 껄껄 웃으시겠지.

그러면 모레 한가위는

나와 내 아버지에게는 제법 뜻 깊은 명절이 되리라.

그 것이

그 나마도 아버지가 꾸신 나에 대한 태몽에

부합 시키는 일일 것이라 억지로 자위해 본다.

2008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