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매섭게 바람이 불어 한낮의 수은주 빨간 눈까지도 빙점이하로 끌어내리던 계절이 이번 주는 추위가 잠시 물러가고 한결 바깥 활동하기 용이하더니 마침내 오늘은 겨울비가 추적추적 애써 내린다.

지난 추위를 겪은 주부들은 서둘러 김장을 한다고 서두른다.

근자에 우리집은 사정상 김장을 하지는 않고 친지들이 보내주는 김장김치를 겨우내 요긴하게 식탁에 올리곤 한다.

특히 처가에서 장모님이 보내주시는 김치에는 사위를 위해 김치속인 채짱아찌를 조금씩 챙겨 보내주셔서 김치를 택배로 받는 날에는 아내가 가까운 재래시장에서 알이 통실한 서해안 굴을 사다가 술상을 내와 그나마 김장의 작은 추억을 맛보게 하곤 했었는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초겨울 나의 즐거움 중 하나인 속배기 굴쌈마저도 맛볼 수가 없다.

하긴 이제 장모님도 연로하셔서 갈수록 기력이 약해지시니 조금은 수고를 아끼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는 12월 이때쯤에 며느리 셋을 지휘하시며 형제들과 어머님내외분이 새봄까지 맛있게 먹고 남을 만큼 넉넉하게 충분한 양의 김장을 하시고, 아버지는 겨우내 김장김치를 저장할 정사각형 스티로폴 굴 박스를 수산시장에서 구해오셔서 동절기 준비를 하셨었다.

그때는 굴쌈도 굴쌈이었지만 으레 돼지고기를 사다가 김장을 도와준답시고 열심히 무채를 썰던 나와 아버지에게 무럭무럭 김이 피어 오르는 수육과 겉절이를 소주와 함께 디미시곤 하셨었는데, 무슨 음식을 해도 맛깔 나게 잘 하시는 어머니의 솜씨는 며느리들을 비롯해 김장하느라 수고하던 가족들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하곤 하셨었다.

이렇게 밖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니 돌아가신 어머니의 돼지고기 수육이 더욱 생각나는 겨울날의 오후다.

아버지가 사업실패로 거의 맨몸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서울로 이주했던 내 어릴 적 1960년대에는 우리가족뿐 아니라 지방 각지에서 여러 가지 사유로 서울 변두리에 학고방을 지어놓고 가난하게 사는 이주민들이 많았었다.

정부의 말분가루 배급이나 타서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고 살던 시절, 대부분 아버지들의 힘든 노동으로 생계를 어렵게 이어갈 때이니 명절을 제외하면 육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이 극히 드물었으며, 그나마 돼지고기도 한 달에 한번정도 아버지의 주머니가 다소 불룩할 때 얻어 먹을 수 있었다.

형제 다섯에 할머니까지 도합 8명의 대식구였던 우리집에 아버지가 돼지고기 한 근을 사오시는 저녁이면 어머니는 김치를 잔뜩 썰어 넣고 솥에 물을 가득 부어 찌개가 아닌 돼지고기국을 끓여서 식구들의 국그릇에 그나마 고기가 골고루 담겨지도록 국자로 조심스럽게 퍼 담아 주셨었다.

우리는 구수한 돼지고기냄새에 정신없이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빈 숟가락을 혀로 핥으며 바닥이 보일락말락한 국솥을 넘겨다보기 일수였었다.

그런데 형제들 중에서도 돼지비계를 못 먹겠다고 건져내는 동생들이 있었고,   나는 고기를 더 먹을 욕심으로 살코기에서 잘라 건져낸 돼지비계를 도맡아 먹다 보니 어느덧 돼지비계는 항상 내가 독차지하게 되었었다.

살코기뿐만 아니라 비계도 역시 돼지고기니 나는 맛있게 먹곤 했었는데, 그 후 나라의 경제가 나아지고 우리집 식탁도 어느덧 돼지고기가 종종 올라오기 시작한 내 청소년기에까지도 나는 돼지고기중에서 비계를 더 좋아하는 입맛으로 오인 받아 식구들이 비계를 나한테 잔뜩 몰아주고 자기들은 살코기만 맛있게 먹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의 고기욕심 버릇에 싫다는 말도 못하고 그 많은 비계를 뱃속이 느끼해질 때까지 잔뜩 먹곤 하다 보니 정작 맛있는 살코기는 다른 형제들에게 강탈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몇 년 동안 빈번해 지다 보니 할 수 없이 ‘나도 사실은 비계보다 살코기가 더 먹고 싶어’ 라고 항변성 진실을 털어 놓았었다.

가족들은 나의 항복에 배를 움켜쥐며 ‘깔깔깔’ 웃고는 더 이상 비계를 내 국그릇에 몰아 넣는 가혹행위를 하지않았다.

세월이 흘러 각 가정의 경제가 더욱 윤택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돼지고기는 껍데기와 비계를 제거해서 유통되기 시작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돼지비계를 극진이 사랑한 덕분인지 나는 삼겹살이나 김치찌개에도 비계와 껍질이 붙어있는 상품을 선호한다.

돼지비계에 많이 있는 비타민 F라는 필수 지방산에는 칼로리가 많아 높은 에너지원으로 추위를 잘 견딜 수 있는 내성을 높여주며, 사람 뇌의 지적활동에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성분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 식용유가 드물던 그 시절에는 어머니가 제수용 지지미를 부치시려면 무쇠 솥뚜껑 같은 두툼한 불판을 적당히 달구어 큼직한 비계 한 덩어리로 쓱쓱 문질러 돼지기름을 충분히 입히고 부침반죽을 부어 노릇 고소한 지짐을 부쳐내곤 하셨었고, 지금도 서울의 몇몇 삼겹살집이나 목살집에서는 돼지비계로 불판에 기름을 입힌 후에 고기를 올리기도 한다.

멧돼지를 식용으로 가축화하여 기르는 동물인 돼지는 인간에게 많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부위인 삼겹살과 갈매기살,목살,갈비,항정살,등심 등 살코기 외에도 돼지머리,껍질,족,곱창과 감자탕에 필요한 부속인 등뼈와 허파,콩팥,간,염통,내장 등 모든 제 육신을 인간에게 제공하는데, 심지어 이슬람교의 무슬림이나 유대교의 유태인들이 불결한 동물로 여겨 먹지않는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무탈과 행운을 비는 신성한 고사상에 웃는 모습의 제 머리를 기증하기도 한다.

돼지고기 요리도 구워먹는 몇 가지 방법과 김치찌개,두루치기,불고기,제육볶음,수육,편육,감자탕,돼지고기만두,돼지족탕,순대국,돈가스 등 그 종류도 다양한데, 그 중 돼지고기를 납작하게 썰거나 다져서 그 위에 빵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기는 ‘돈가스’는 돼지를 뜻하는 일본어 ‘돈(ton)’과 영어 ‘커틀릿(cutlet)’의 일본식 발음인 ‘가스(gasu)’가 합쳐진 말이며 외래어순화용어로 ‘돼지고기(너비)튀김’이라고 한단다.

그밖에 가공식품으로는 소시지,햄,베이컨 등이 있다.

나는 소고기 보다도 삼겹살을 훨씬 더 선호하는데, 우리 아이들도 나를 닮아서인지 냉장고에 삼겹살이 있으면 친구들과 놀다 새벽에 들어와서도 저희들끼리 상을 차려 삼겹살을 구워먹는다.

자주 삼겹살을 먹다 보니 경비지출을 줄이고 식당 영업시간의 제약을 피해 아내와 나 둘 중에 시간이 나는 사람이 미리 준비하여 집에서 자주 구워먹는데, 식구 한 명당 삼겹살 반근정도가 적당하며 상추,깻잎,고추,마늘 등과 더불어 양파,양송이버섯을 구워서 쌈장과 기름소금에 찍어서 먹는데, 기름소금은 삼겹살 식단의 중요한 소스로서 삼겹살의 동물성기름을 기름소금의 식물성인 참기름이 중화를 시켜 과다한 동물성기름의 섭취로 인한 우리 인체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고 한다.

삼겹살을 자주 먹다가 요즘엔 예전에 어머님이 김장할 때 해주시던 기억을 더듬어 수육을 몇 번 해먹어봤는데, 항정살이나 앞다리살에 양파,대파,청양고추,마늘,생강 외에 친절하게도 단골 정육점 사장님이 챙겨주신 붉은 고추 말린 것 두개와 귤 한 개의 껍질, 그리고 말린 월계수잎 두 장에 집된장 두 스푼을 풀어넣어 잘 삶은 후 젓가락으로 찔러보고 꺼내어 어머니가 예전에 하시던 대로 찬물에 살짝 흘려 씻어서 부엌칼로 적당히 엷게 썰어 고춧가루를 가미한 새우젓에 찍어먹거나 잘 익어 시큼하고 깔끔하게 시원한 배추김치에 싸서 소주와 함께 먹으니 참 일품이었다.

삼겹살의 궁합이 기름소금이라면, 삶아서 기름이 거의 빠진 수육의 궁합은 당연히 새우젓이다.

돼지고기에 많은 지방을 우리 인체가 미처 분해하지 못하여 먹고 나서 가끔 설사를 하게 되는데, 새우젓이 발효하는 동안에 생성되는 프로테아제가 단백질을 분해하고 함유된 리피아제가 지방분해를 도와서 새우젓과 같이 먹으면 돼지고기가 더욱 맛있고 소화도 잘된다고 한다.

살코기가 아닌 부속고기 중 종종 내가 즐기는 것에는 순대국도 있지만 산행을 할 때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이 요리한 돼지껍질과 족발이다.

돼지껍질은 나만의 조리법으로 직접 내가 요리를 해서 배낭에 챙기는데, 돼지껍질에는 콜라겐성분이 많아 관절과 피부에 좋다고 하여 요즘은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간혹 돼지껍질을 준비하지 못하고 산행을 할 때에는 근처 재래시장에서 족발을 구입해서 배낭에 잘 갈무리하여 정상에 올라 막걸리 한잔과 함께 허기진 뱃속을 채우는데, 우리 인체의 관절,연골,힘줄,피부,내낭표피 등 많은 조직의 주요성분이 젤라틴이라고 하며, 이 젤라틴은 체내에서 합성하지 못하므로 외부에서 섭취해야 한다는데 족발의 살보다 껍질과 근육이 젤라틴덩어리라고 하여 등산을 즐기는 남녀 중,장년 층이나 관절이 부실한 사람들이 즐겨 찾으며, 또한 여성의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탁월하다고 하여 요즘은 젊은 여성들도 선호하는 식품이고, 이 돼지 족을 푸욱 삶아서 뿌연 국물과 흐믈흐믈한 살을 먹으면 모유분비를 촉진한다고 하여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어머님이 종종 삶아 주셨었다.

이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등 세계 각처의 산모들에게 모유분비를 촉진하는 음식으로 각광 받는 족발은 푹 삶아 우려낸 물에 한약을 달여서 먹으면 영양과 보약의 이중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내가 군 전역을 얼마 안 남겨 놓은 내무반장시절에 한 3개월을 오전 10시쯤이면 취사반 조리실에 가서 부식으로 수령한 돼지고기를 날로 즐겨 먹곤 했었는데, 소고기에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돼지고기 육회는 고소하고 황홀한 맛이 있어 자주 드나들던 나에게 취사반장님이 ‘군대부식으로 나오는 돼지고기는 도축한지 얼마나 됐는가도 모르고 보관상태도 알 수 없어서 생으로 먹다가 돼지고기에 기생하는 충에 감염되면 크게 잘못될 수 있다.’는 어느날의 충고를 듣고 더 이상 돼지고기를 생으로 먹지는 않았으나 굳이 육회로 먹으려면 잡자마자 심장부근의 일부 고기만을 먹어야 한다는데, 심장부근의 고기는 온도가 높아 기생충이 살 수 없어 다른 부위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한다.

오늘같이 적당히 흐리고 간혹 빗방울이 하늘가에 비추이는 날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배어있는 돼지수육을 먹지는 못하더라도 오랫동안 단골인 남대문시장 숭례문수입상가 뒤 목살집의 길가에 늘어놓은 드럼통 식탁에 둘러 앉아 벗들과 실없는 농담으로 낄낄거리며 손바닥만한 상추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목살 한 점에 쌀밥 한 젓가락 올리고 매운고추,구운 마늘,구운 김치 한쪽씩 넣어 주먹만한 쌈을 왼손에 준비하고 부라보를 외치며 오른손에 들려진 소주 한잔을 입에 툭 털어 넣은 후 한 쌈을 입에 우겨넣어 볼테기가 성난 복어 몸통처럼 볼록한 채로 우걱우걱 씹어먹으면 세상시름 다 잊혀지고, 어느새 목살 익어가는 냄새는 남산으로 오르는 차도를 횡단하여 국보1호를 복원하느라 고생하시는 아저씨들 코앞에 까지 다다를 것이다.

2009년 12월 10일 겨울비 내리는 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