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이다.

가족과 함께 처가의 모임으로 전주를 가기로 했는데 일요일 점심 식사 후 모두 헤어지는 일정으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주말은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귀가 중에 잠시 들려 일정을 다소나마 보람 있게 보낼 곳을 더듬어 본다.

이곳 저곳을 생각하다가 서해안의 바닷가를 떠올려 본다.

서해안은 고속도로에서 잠시만 벗어나면 다다를 수 있는 교통상의 편이가 나를 쉽게 유혹하고 어쩐지 풍부한 먹거리가 떠올려지는 곳이다.

그 동안 나는 바닷가도 참 많이 다녔다.

항구나 해수욕장, 갯벌이나 섬, 자그마한 포구들…….

그 중에서도 포구는 작은 가슴으로 어린 새끼 같은 목선들을 품고 있어서 여리고도 따스한 어머니 품 같은 느낌과 기대를 준다.

그곳에는 거센 파도도 애처로워서 따라 들어오지 못하고 비껴 갈 것 같다.

군산에서 올라서는 서해안고속도로는 충남을 거치며 많은 포구와 항구, 또는 해수욕장이 있지만 서울과 인근 한 경기도에도 여럿의 작은 포구들이 숨어 있다.

흔히들 서울에서 가까운 포구하면 이제는 으례이 소래포구를 떠 올린다.

역시 소래포구는 경기도의 포구들 중에 규모도 크고 어선들이 잡아서 실어 나르는 바닷것들이나 거래 물량도 가장 많다.

하지만 세간에 덜 알려진 포구를 찾아 보는 것도 참 새로운 재미를 더한다.

마치 오랫동안 잊어 버리고 있던 비상금을 찾은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경기도의 작은 포구 중에는 김포군에서 강화도로 넘어가는 초지대교 옆의 대명포구가 있는데, 이곳은 숙취를 풀어주는 매운탕감으로 손꼽히는 삼식이가 많이 잡히고 또 거래된다.

강화도로 들어서도 많은 포구와 항구가 있지만 그래도 꼽으라면 밴댕이회와 탕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외포리 근처의 선수포구를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월곶포구나 미군 사격장으로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뻘낙지의 산지 매향리포구와 목선 10여 척만을 품에 안고 있는 인천의 작은 포구인 북성포구등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하여 없어진 포구도 꽤 있는데, 화성온천이 가까이에 있는 화성군 장안면 우정읍에 있던 선창포구와 시화호를 만들며 없어져 버린 마산포와 사리포구가 있다.

역사적으로 청나라가 대원군을 체포하여 자기나라로 압송하기 위해 배를 탄 곳이 마산포라고 하는데, 이곳은 내가 못 가보고 없어진 항구가 되었다.

이 마산포, 사리포구와 더불어 아직도 살아 있는 소래포구를 일컬어 경기만의 3대 포구라고 했었다 한다.

그 중에서도 사리포구는 나의 젊은 시절, 그러니까 십여 년 전에의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 하면 소래포구를 떠 올리지만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서남권 주민들과 경기 남부 주민들은 사리포구를 자주 찾았었다.

사리포구는 자가용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부터 교통이 편리해서 안양에서 버스를 한번만 타면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포구를 쉽게 갈 수 있었다.

서해안의 모든 포구가 그렇듯이 주요 해산물이 새우였었기에 가을이면 주부들이 김장용 새우를 사러 바께스를 들고 버스에 오르거나 아예 계를 조직해서 관광버스로 새우를 사러 오기도 했었다.

이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살림을 꾸려 나가던 사람들도 다양해서 횟집을 운영하거나 종사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새우등 해산물을 잡아 오는 사람, 바닷것과 새우를 파는 사람, 새우젓용 소금을 파는 사람, 미처 바께스를 준비해 오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비닐 비료부대를 파는 할머니, 구멍가게 아줌마, 튀김 파는 할머니 등등…….

(이 포구가 사라져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고 있는지…….)

이 사리포구는 시화방조제 공사와 신도시 조성으로 1998년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포구가 있던 자리는 안산 호수공원이 들어 섰으며, 물길 따라 드넓게 펼쳐져 생태의 보고(寶庫)를 이루었던 갯벌은 시멘트 구조물인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고잔 신도시로 바뀌어 있다.

이곳 안산호수공원에 서있는 사리포구(四里浦口) 유래석에 새겨진 글 중에는

**사리포구는 방조제를 축조하던 인부들의 사택이 처음 들어 서고, 이후 난민 정착을 위해 오십 세대의 민가를 지으면서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 되었으나 포구로서는 6.25전쟁 후 인근의 성머리포구가 방조제 축조로 인해 성머리 어민들이 사리로 자리를 옮겨지면서 본격적인 어로활동이 시작되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형제들이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사리포구를 갔던 적이 있다.

아마도 우리 막내아우가 결혼하기 전해인 80년대 말경의 봄쯤 되었을 것이다.

양가의 결혼승낙을 받고 교제를 계속하던 때, 막내 제수는 우리 가족들과 몇 번 본 터라 그리 낯설지도 행동의 부자연스럼도 없었다.

우리 삼형제와 여동생식구 포함해서 일개분대 정도의 대 식구가 형제들의 우의를 다지는 단합대회겸해서 사리포구를 가기로 했는데, 경비를 절약하려 각자의 집에서 초장과 상추를 준비하고 값이 저렴한 동네 슈퍼에서 술과 음료수를 준비하여 손에 손에 나눠 들고 버스에 올라 사리포구로 향했다.

사리포구에 당도하니 이미 많은 인파가 갯내음 속으로 들어 서있고 바람은 훈풍으로 적당해서 좋았다.

해물로 갈매기로 군상들로 가득 찬 사리포구에서 많은 인파에 밀리며 이곳 저곳에서 흥정을 하여 먹음직스럽고 싱싱한 꽃게와 소라를 잔뜩 사고, 이것들을 삶기 전에 입을 즐겁게 해줄 활어회를 사서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 야산의 소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들어 앉았다.

가족들이 생선회를 즐기는 동안에 나는 가져온 식수로 꽃게와 소라를 잘 닦아서 삶을 준비를 했다.

간간이 아내가 주는 쫄깃한 생선회에 소주를 한 잔 하며 준비하고 있는데, 물을 끓이려던 여동생이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이게 뭐야? 낄낄낄 이걸로 뭘 어쩌라고? 푸~하하하”

나는 갯것을 손질하다 젖은 손을 닦으며 여동생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뭐가? 뭐 잘못 됐어? 왜 그래?”

다른 식구들도 의아해 하며 생선회를 상추에 싸서 입안에 가득 담은 채 동생 쪽을 쳐다 보았다.

여동생은 웃음이 가득 찬 얼굴로 나와 가족들을 바라보며 부탄가스통을 달랑달랑 흔들며 말했다.

“이것 봐! 이거 가지고 뭘 끓이라고? 또 낄낄낄”

그런데, 아니 이런…….

여동생이 흔들고 있는 건 부탄가스통이 아니고 모기, 파리를 잡는 ‘에프킬라 통’이었던 것이다.

평소에 낚시를 자주 가던 내가 가스버너와 코펠을 비롯해 취사도구를 챙겼는데 아침에 부지런히 준비한다고 서두르다 보니 부탄가스인줄 알고 그만 비슷한 ‘에프킬라’를 들고 왔던 것이다.

뒤 늦게 사태를 파악한 가족들은 저마다 배꼽을 쥐며

“흐~~하하하하”

“우~~헤헤헤헤”

“킬킬킬킬킬킬킬”

“키득키득키득”

막내 제수도 뒤돌아 서서

“큭큭큭큭큭큭큭”

아이들도 덩달아 따라 웃고, 웃다가 모두들 눈물이 배어 나오기 까지…….

나도 머쓱하게 쳐다보다가 에프킬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허허허허허허허”

옆에 자리 잡고 우리들 같이 먹거리를 즐기던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멀뚱멀뚱 쳐다 보기만 하고…….

결국 다시 산을 내려가 포구의 슈퍼에서 가스를 사다가 꽃게와 소라를 삶아 온 가족이 빙 둘러 앉아 맛있게 먹는데, 먹다가도 가족 중 누가 한 명이 “푸-훗 킥킥킥”하고 웃으면 모두 따라서 웃고, 또 먹다가 웃으면 따라서 모두 웃고, 그날은 내내 웃다가 먹다가 웃다 먹다……하하하

그 사리포구는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옆이었는데, 나에게는 많은 추억을 주고 그렇게 인간의 주거를 위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요즘도 기제사나 명절 전날에 내가 시간이 있으면 제사음식 장만을 도와 주는데, 부루스타에 후라이펜을 올려 놓고 전을 부치다 가끔은 가스가 떨어지면 새 부탄가스를 달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막내제수는 슬그머니 ‘에프킬라’를 가져다 내게 내밀며 웃는다.

“아주버님! 여기 부탄가스요.”하면서…….

에이그! 이제는 그만 잊어버리시지…….

하긴 언젠가 지방 출장길에서는 아침에 모텔에서 머리를 감고 헤어 스프레이인줄 잘못 알고 에프킬라를 머리에 뿌려 낭패를 당한 적도 있으니 부탄가스통과 에프킬라와 헤어스프레이는 나를 종종 헷갈리게 하는 것들이다.

이제는 가족들과 전주로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옛 추억에 잠겨 있느라 돌아오는 계획을 못 세웠다.

그래도 사라진 사리포구는 내 삶의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종종 떠 올라서 나를 빙그레 웃음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