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전의 어느 날 일간지 한 페이지 하단에 세이코시계의 덤덤한 광고가 실렸다. ‘세이코’. 고급 시계의 대명사는 롤렉스나 오메가 정도가 명품으로 꼽히나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 팔팔한 청년일 때는 세이코만 해도 갖고 싶은 손목시계였었다. 시티즌, 오리엔탈 손목시계가 흔하던 그 시절에 나도 저가 제품이지만 세이코시계를 몇 년간 손목에 차고 다녔던 터라 그 광고에 마음이 가 닿는다.

지금은 명품시계를 부의 상징으로 차거나 패션으로 차고 다니고,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이나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지만 내가 청년이었던 시절에는 성인이면 누구나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었다. 그때의 손목시계는 나름 고가여서 돈이 궁색하면 전당포에 맡겨 급전을 쓰거나 술값으로 단기간 맡겨 놓고 술과 안주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시계는 자연적인 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부터 기계식 시계인 벽걸이시계, 탁상시계, 손목시계, 회중시계, 스톱워치, 반지시계, 목걸이시계, 팔찌시계, 디지털시계 외에도 사용 목적을 위한 방수시계, 고도시계, 야광시계 등 많은 종류의 시계가 있다.

그중 17세기 무렵 유럽에서 진자의 운동을 통한 시계를 발명하여 보급된 오늘날의 기계적 시계는 우리나라에는 개화기에 들어오면서 그 전까지의 전통방식시간(자시, 축시 등 2시간 단위 12간지 시간)보다는 서구식 24시간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대부분 큰 건물이나 시계탑형식으로 장치되었던 것이 15세기 말엽 금속 태엽이 발명되어 시계의 동력으로 사용 되면서 휴대용 시계가 등장하였는데, 그중에 손목시계는 19세기 초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제일 오래된 것은 1807년에 만들어진 시계로 나폴레옹 1세의 황후 조세핀이 사용한 시계라고 한다. 또한 차고 다니는 동안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손목시계는 1920년 P.르르와에 의하여 발명 널리 보급되었고, 전지를 동력원으로 하는 시계는 1960년 미국 브로바스 사(社)에서 나온 ‘아큐트론’으로 트랜지스터 회로로 제어되는 소리굽쇠의 진동을 이용한 것으로 정확도가 높은 손목시계라고 한다.

문화어로 ‘시간팔찌’라고도 하는 손목시계의 명품은 대부분 스위스에 본적을 두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우리가 많이 입에 올리는 롤렉스와 오메가가 그것들의 대명사이다.

롤렉스 SA(Rolex, SA)의 브랜드인 롤렉스(Rolex)시계는 독일인 한스 윌스도르프(독일어:Hans Wilsdorf)와 그의 사위 알프레드 데이비스(Alfred Davis)가 시계제조사인 윌스도르프＆데이비스 사를 1905년에 영국에 설립한 회사의 손목시계 브랜드로 이 회사는 1912년에 본사를 스위스 제네바로 이전하였고 회사명도 롤렉스시계회사(Rorex Watch Company)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오메가(Omega)는 스위스의 대그룹 스와치의 손목시계 브랜드로 스위스의 고급시계는 대부분 수제이나 오메가는 기계로 생산되는 양산(量産)시계이면서도 정밀도가 높고 안정되어 있다고 한다. 1848년 작은 점포에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들어 기계생산방식을 도입한 오메가는 그리스문자의 마지막자인 Ω에서 딴 것으로 명명(命名)중의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일본의 세이코 브랜드가 세계시장을 석권하면서 스위스의 고급 시계들이 타격을 받았으나 롤렉스는 100% 수작업으로 시계를 제조 조립하면서 품질과 고급화로 명성을 이어나갔으나 오메가는 다른 회사들과 합병이나 제품의 다양화로 어렵게 어렵게 난관을 헤쳐 나갔다. 스와치그룹은 오메가 외에도 브리겟(Briguet), 블랑팡(Blancpain), 라도(Rado), 론진(Longines), 티쏘(Tissot), 스와치(Swatch) 등 17개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1969년 세계 최초로 수정진동자를 이용, 전지로 작동하는 시계인 쿼츠 손목시계 ‘쿼츠 아스트론(Quartz Astron)’을 출시해 세계 톱 브랜드로 올라서며 시장을 석권한 세이코는 일본인 하토리 긴타로가 1892년 시계공장 ‘정공사(세이코샤)’를 설립 후 각종시계를 생산하며 세이코엡손, 하토리시계점, 하토리세이코, 세이코(Seiko Corporaition)를 거쳐 지금은 세이코 홀딩스 코퍼레이션(Seiko Holdings Corporaition)이라는 간판을 건 시계회사의 브랜드다.

우리 집에서 귀한 장남이었던 나도 70년대 중반부터 몇 년간 세이코를 차고 다녔었는데, 일본에서 제작 조립된 고가의 제품은 아니고 부속을 들여와 국내 조립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 당시는 제법 가격을 치러야 소지할 수 있었던 것인데, 지금은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그 손목시계를 맡기면 술집에서 어느 정도의 안주와 술을 외상으로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그 당시 유행하던 세이코손목시계를 나에게만은 사주셨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70년대 후반 어느 가을에 입대를 했는데, 그 전해 여름인가 친구들 몇이서 경북 포항으로 캠핑을 갔었다. 그때만 해도 커다란 배낭에 코펠, 알코올버너, 침구 등을 가득 넣고 배낭 위에 텐트를 묶어 짊어지고 떠난 집 떠나 고생길 캠핑여행이었었는데, 포항의 바다에 접한 형산강 가에 텐트를 치고 강에서 조개를 잡아 된장찌개를 해먹고 주변 송도해수욕장을 거쳐 칠포리해수욕장을 경유했으니 아마 4, 5일 여정이었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포항에서 버스를 타고 동대구역에서 영등포행 기차를 타는 일정인데, 오후 2시쯤 역에 도착한 우리는 대구의 무더운 여름 날씨에 땀을 흘리며 역사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화투(그때는 고스톱을 몰랐으니 아마도 민화투나 육백이었을 것 같다.)를 치며 열차를 기다렸었다. 소주를 한잔 곁들이며 웃고 떠들며 한참을 기다리다 나는 용변을 보려고 혼자 역내의 화장실엘 가서 일을 마친 후 세면대 옆에 손목시계를 잠깐 풀러놓고 땀에 젖은 두 손과 얼굴을 찬물로 닦고 수건을 꺼내들며 쳐다보니 세면대 옆에 있던 내 세이코시계는 감쪽같이 없어져버렸다. 세면대에 얼굴을 박고 세수를 하는 채 1분도 안 된 사이에 누군가 내 시계를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결국 아리도록 속상하고 아쉬웠지만 그 넓은 역사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내 시계를 훔쳐간 사람을 찾기는 도저히 불가하여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나는 어머니에게 내 손목을 들킬세라 조심에 조심을 더 했다. 아니 어머니가 사주신 세이코시계가 내 손목에 없는 걸 들킬세라 노심초사 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시계를 전당포에 잡히고 돈을 빌려 유흥비로 쓰거나 술집에 잡히고 술을 마시는 철없는 남정네들이 많았던 터라 어머니가 어렵게 사준 시계를 나도 술 마시는데 사용했다고 오해하시고 야단을 치실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조심에도 불구하고 채 한 달도 안돼서 어머니는 내 손목에 시계가 없어진걸 아셨고 내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큰 야단 없이 쯧쯧 혀를 차시고 더 이상 손목시계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다만 어머니도 내 마음처럼 아쉽고 속상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세이코시계는 내 곁을 떠나고 다시는 다른 세이코시계를 차보지 못한 것 같다. 하긴 군 전역 한 다 다음 해에 결혼을 하면서 예물로 더 좋은 손목시계가 내 왼쪽 팔목에 감기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예물 시계의 브랜드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 세이코손목시계는 살아오는 내내 아쉬운 마음으로 항상 내 안에 있다가 오늘 일간신문 하단에서 그때의 섭섭했던 마음을 게워내고 있는 것이다.

부의 상징이고 영원한 명품이라는 롤렉스, 오메가시계 보다 더 명품인 세계 3대 고급시계는 내가 전에 들어보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한 바슈롱콩스탕텡, 파테크필리프, 오드마르피게의 시계라고 하며 특히 바슈롱콩스탕텡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회사로 1755년 장 마르크 바슈롱이 스위스 제네바에 세운 회사라는데, 이 회사에서 1979년에 만든 ‘칼리스타’는 당시 가격이 500만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손목시계 중의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항상 넉넉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그저 세이코시계가 나름 명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항상 내 왼 팔목에 감겨있던 손목시계도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나도 이제는 다기능의 디지털 휴대폰이 그 손목시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휴대폰은 진화를 서너 번 하면서 문명의 탑 기능을 계속 업그레이드 장착하더니 이제는 웬만한 퍼스널컴퓨터의 기능을 능가한다. 하지만 휴대폰은 주목적인 정보통신 외의 대표적인 기능으로 젊은 층들은 오락기로 활용하고 노년층들은 주로 시간을 확인하는 시계로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 휴대폰의 영향으로 손목시계는 찾는 사람이 급감해서 가격이 하락하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저임금 노동력으로 대량 생산해서 저가의 상품이 대량으로 공급되어 또 가격이 하락하고 시계의 품위는 한 없이 떨어지고 있다. 작년 말에는 여동생이 새로운 사업장을 개설했다 하여 방문하면서 그냥갈수 없어 필요한 걸 물어봤더니 그저 싸고 예쁜 벽시계 하나 사오라고 하였다. 나는 퇴근하여 DC마트에 들려 예쁘장한 벽시계의 가격을 물어 보니, 세상에 그 예쁜 벽시계가 단돈 3천원 이란다. 잘못 들었나? 다시 물어보고 나는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한 개가 아닌 두 개의 벽시계를 사가지고 갔다. 그래도 단돈 6천원 이라니.......

하지만 아직도 롤렉스시계는 한 개에 몇 백, 몇 천만 원 하면서 손목시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궁금하다. 지금은 젊은이들에게 별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손목시계를 아직도 결혼예물로 주고받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