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내 아버지 유택 국립이천호국원)

심혼을 울리는 낮고 느릿한 진혼곡이

군악대를 조용히 떠나서 현충관 실내에 성스럽게 내려 깔리니

노성산 신령님도 신령스런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머리를 숙이고

느릿하게 내리는 빗방울에 불던 바람도 숨죽이며 젖어 들어

경건한 매무새로 호국원의 파란 지붕 위에 내려 앉는다.

내 작은 가슴도 현충관 제단에 놓여진 아버지의 영혼에

작고 검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살며시 내려 앉는다.

슬프도록 투명한 선홍빛 연산홍은 그저 호국원 뜰에서

작은 키를 일으켜 제 머리를 가만가만 흔들어 대고 있을 뿐.

내 어린 시절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 오시면

무서운 저승야차가 되어 죽일 듯이 어머니를 구박하고

가족들을 괴롭히시던 그 밉던 아버지.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환난의 어려운 몇 시대를 거쳐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시고 맨몸으로 서울의 변두리에

구차한 삶을 꾸리셨던 아버지는 지난 날들에 대해

한(恨)도 많고 분(憤)도 꽤나 많았었다.

누가 그리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생에 찌들은 폐유 같은

질긴 삶들을 덕지덕지 발라 놓았었는지…….

그러나 내가 어언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내 자식들 키우면서 그저 숨만 쉬고 살아만 계셔도

언제나 힘이 되셨던 아버지였었다.

그랬던 양반이 2년여 전부터 죽음을 예약하고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어머님이 이승을 뜨실 세라

퍼뜩 저승길을 먼저 떠나신 내 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그 길가에는

하얀 이팝나무꽃이 밥알처럼 다닥다닥 붙어 고봉으로 피었으니

아버지는 저승에서도 배곯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라고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집안의 장자가 되어 내가 눈물을 보이면

동생들과 아이들, 특히 여자식구들이 따라서 슬피 울 테니

그저 나는 강한척하고 허공에 공명하는 쇠북소리처럼

헛소리를 부질없이 팅팅 내 뱉을 뿐.

“맏상주님은 저기 대기하셨다가 고인의 유골함을 받으세요.”

낯 설은 벽제승화원 직원의 말에 따라

곱게 빻은 유골을 담은 상자를 받는 자리에 나 홀로 서니

아버님 상을 치르는 며칠 동안 참고 있었던 많은 설음들이

공복의 목 울대를 거침없이 넘어오던 어느 날의 고약한 신트림처럼

쓸데없이 가슴에서부터 북받치게 치고 올라와

나의 더운 눈물을 강요하니 참으로 참기가 힘들었었다.

그래요.

모든 사람들이 만취해 비틀거리던 아버지를 손가락질 했더라도

나는 아버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조국과 부모는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기에…….

내 무거운 마음을 덜어 주려는 듯

벽제 승화원 밖에는 봄비가 추적추적 슬픈 지붕 위에 내려

정수리를 타고 흐느끼듯 흘러내렸었다.

내 가슴 깊은 골짜기로 느릿하게 흐르는 끈끈한 눈물처럼…….

‘따다다다당’

요란한 굉음에 아득히 떠돌던 상념이 깜짝 놀라 되돌아 온다.

진혼곡은 언제 들어도 온몸으로 슬프다.

그 진혼곡과 함께 묵념을 하면서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더듬으며

내 마음은 상념에 젖어 있다가 조총(弔銃)의 요란한 소리에 놀라

헛기침하듯 추스르며 현충관으로 돌아 온다.

2009년 4월 24일.

오늘은 국립이천호국원에서

50위의 호국영령들을 모시고 합동안장예식을 올리는 날.

내 아버지도 6.25참전 유공자의 자격으로 이 예식에 맞추어

영면의 길을 가시는 날이다.

지난 2월 달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날카로운 바람이 호국원 그 넓은 뜰에 가득 찼었는데

오늘은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강풍도 분다는 예보와는 달리

가시는 분들을 예우하려는 듯 바람도 인내롭게 기다리고 있으며

낱알로 뿌리는 봄비는 달고 훈김마저 감도는데

호국원의 엄숙한 기운에 내 온몸의 소름들이 스스로 일어선다.

합동안장식이 거행되는 현충관에는 많은 유가족들이 촘촘히 들어 찼다.

하지만 그 많은 인파임에도 불구하고 실내 분위기는 엄숙하기만 하다.

이 분위기는 유가족들의 검은 예복이 엄숙의 눈금을 더 했을 것이다.

불의는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은 강한 용모를 지닌 전례팀장님의

개회 선언에 이어 영현에 대한 경례와 제주이신 호국원장님의

다소 길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 애달픔의 조사가 이어지고

스님, 목사님과 신부님의 종교의식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생전 85년 동안 종교와의 별다른 인연이 없었는데,

스님과 목사님, 신부님의 명복을 비는 삼 겹의 기원을 받으셨으니

다음 세상으로 떠나는 길에 참으로 복도 많으시다.

그 다음으로 호국원장님과 유족 대표들, 육해공 삼군 대표와

각계 인사들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다.

내 차례가 되어 아버지를 위해

흰 국화꽃 한 송이 바치려 제단으로 올라 가는 길에

눈시울은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속절없이 뜨거워 진다.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향 한 자루를 태운다.

헌화와 분향을 마치고 내려와 묵념을 하면서 나의 사고는 잠시

아버지의 죽음에 머물렀다가 조총 소리에 퍼뜩 깨어 났던 것이다.

현충관에서 예식을 마친 영현들은

인근 군부대의 병사들 품에 안겨 영면하실 봉안탑으로 향한다.

맨 앞에는 자랑스러운 대형 태극기가 앞서 인도하고

그 뒤로는 오늘 행사의 장엄한 분위기를 일구던 군악대, 각계인사와

50위의 영현들을 모신 군 장병들, 유족 대표들, 유가족들이

느린 템포의 연주에 맞추어 한걸음에 또 한걸음을 보탠다.

이제 내 아버지는 완전한 영면에 드는 것이다.

아버지의 유택으로 향하는 마지막 걸음들에서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다시 한 번 떠 올린다.

상징시의 아버지라는 프랑스의 저 위대한 시인 보들레르는

‘죽음이라는 것은 이쪽 방에서 나와 어두운 복도를 건너

저쪽 방으로 걸어 가는 것’ 이라고 했고, 사형선고를 받은

성현 소크라테스는 돈으로 죽음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친구들에게

‘나는 현세와 같이 내세가 있다는 걸 확신하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며

오히려 혼탁한 세상에 남는 친구들을 위로하고 기꺼이 죽었다지만

사실 ‘죽음’이란 것은 절대 우리인간에게 호의적인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싫어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았을 뿐 더러

술에 취하시면 아무데서나 종종 넘어 지고 깨져서

얼굴 이곳 저곳에 훈장처럼 많은 흉터를 남기셨다.

입관(入棺)을 하려 염습(殮襲)을 할 때 그 상처들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어둠의 괴물 ‘하이드’의 얼굴처럼

숨을 멈춘 아버지의 얼굴 이곳 저곳에 하얀 미로를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얼굴을 보려 빙 둘러선 가족들에게

나는 굳게 다문 이빨 사이로 신음처럼 나직이 말을 흘렸다.

“우리도 저와 같아서 언젠가는 죽을 테지?”

“그때 우리 영혼은 정령계로 돌아 갈 테고 우리들 육신도 저렇게

한 벌의 베옷을 얻어 입고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남을 테니

우리들도 남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 써서

후회가 없는 삶이 되도록 하자.”

행사 행렬에 따라 어느덧 아버지의 유해는 묘역에 당도하였다.

내리는 비에도 호국원 행사요원들은 끝까지 경건하고 엄숙하게

내 아버지와 호국영령들을 봉안탑에 모셨다.

참으로 자랑스럽고 뜨거운 증기 같이 후끈한 감동이

하얀 구름처럼 내 마음의 허리를 휘감는 오늘의 안장예식행사였다.

사실 내가 아는 많은 일부 공무원들이나 대기업 간부들은

일부러 없는 일을 만들어 골치 아프고 귀찮아 지는 것을 기피한다.

그냥 가만이 있어도 월급을 받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데

그런 모험적인 일을 계획하고 벌렸다가 예정대로 잘되면 좋겠지만

만약 잘못되면 인사상 감점이나 질책을 당하는 불이익을 감수 하여야 하니

굳이 만들어 위험을 자초하고 골치 아파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훌륭한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여

아버지를 비롯한 50위의 영혼들을 자랑스럽게 영면하도록 하였으니

이것은 아마도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이곳의 수장이신 호국원장님의

긍정적인 품성에서 발로된 것 일 터이고, 맹장 밑에 약졸 없다고

직원들도 원장님과 마음을 모아 성심으로 호국영령을 모시는 것 일 테니

내 작은 가슴으로나마 호국원 직원들에게 무릎 끓고

진심으로 감사의 큰절을 올리는 바이다.

한 첩의 약봉지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흰 종이에 쌓여

이제는 고운 항아리에 담겨 이천호국원의 품에 안기신 아버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내 아버지…….

이제 봄비가 끈적스럽게 내리는 이곳 이천호국원에

아버지를 두고 가지만 슬퍼하지는 마세요.

곧 어머니도 아버지 곁으로 보내 드릴 테니

얼마간 쓸쓸하고 허전하시더라도 꾸~욱 참고 계세요.

결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아버지의 봉안탑이 빤히 보이는 현충관 옆의 한적한 정자에서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께 하직의 제를 올리고 이별의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도 생전에 술을 좋아하셔서 돌아 가시기 이틀 전에도

한 홉의 소주를 드시고 흡족해 하시던 아버지께 술을 올리고…….

그때까지도 봄비는 호국원의 연산홍 붉은 얼굴에 흩 낱 뿌렸다.

사실 이 국립이천호국원은 오늘로 두 번째 방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았던 호국원장님과 전례팀장님 이하

모든 호국원 식구들이 하나 같이 가슴이 따뜻한 분들이라고

내 머리와 가슴에 깊고 굵고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던 바라

아버지를 맡기고 마음 편히 호국원을 떠날 수 있었다.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묘역이고

호국원 직원들은 이곳에서 호국영령들을 모시는 일의 대가로

가족과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공무원들이겠지만

호국영령들과 더불어 내 아버지를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나와 국민들 대신에 일년 열두 달 평안하게 모셔 주시는 호국원 사람들이

어찌 고맙고 감사하고 송구스럽지 않으리.

다시 한 번 뜨거운 가슴으로 호국원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단지

신령스러운 노성산(老星山) 앞자락에 또아리 틀고 있는 이 호국원은

내 아버지를 내게서 빼앗아 함부로 제 품에 깊숙이 갈무리하고서도

아무런 위로의 흔적도 없이 무례하게 그저 잔잔한 봄비를 내세워

차갑고 커다란 무언의 손으로 침울한 내 등을 떠밀며

무거운 내 발걸음을 자꾸만 재촉하고 있다.

몹쓸 저 국립이천호국원이…….

하긴 이렇게 내리는 봄비 덕분에

주체하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가족들 몰래

내가 굳이 저 하늘을 올려다보는 척 할 필요는 없어서

그나마 참 다행이다.

2009년 4월 하순 먼 길 떠나신 아버지의 유해(遺骸)를

국립이천호국원에 모시고 돌아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