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5-24 22:36

ㆍIP:

도깨비시장
‘가난한 사람들이 오밀 조밀 모여 사는 곳 대림동 도깨비 시장’

5월에는 흔치 않게
오늘은 하늘이 치솟아 오르는 물가를 보고 놀랐는지 혹은 화가 났는지
밖에는 벼락이 치고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어쩌면 28년 전의 오늘(5월 18일) 저 아랫녘 빛고을에서
민주를 외치다 억울하게 죽어간 영령들이 제삿밥 얻어 먹으려 왔다가
한심한 나라 꼴을 보고 통곡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 저녁에 우산을 받쳐 들고 집을 나서니
봄비는 비명을 지르며 내 신발코 앞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위정자의 총구에 젊은 피를 뿌리며 쓰러지던 그 옛날 그 비명처럼…….

집 앞의 도깨비 시장에 들어서니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굵은 비 탓에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이 시간에는 각 가정마다 저녁식탁을 준비하기 위해
주부들이 손에 손에 든 비닐봉지에 찬거리를 담아주는
상인들의 손길이 바쁘기 마련인데 오늘은 한산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영세한 상인들이 서로 가게를 맞대어 붙이고 늘어선
도깨비 시장은 내리는 비와 어둑 어둑 내려 앉는 하늘이
골목을 가득 채워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상인들은 들어 앉아 그나마 손님의 발자국 소리를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금새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건네어 온다.

“오늘은 왜 혼자세요?”

이곳으로 이사 온지 이제 일년 반 정도가 지났지만
아내와 같이 자주 장을 보거나 종종 등산이나 외출을 하면서
인사를 건네다 보니 이제는 나나 아내가 혼자서 지나가면
상인들이 반가움의 표시로 물어오곤 하는 인사말이다.

내가 결혼했던 그 옛날
신혼 보금자리도 재래시장의 끄트머리였었는데
그렇게 시장의 주위에 살면 항상 먹거리가 다양 풍성하고
미리 냉장고에 사서 오랜 시간 보관할 필요 없이
신선한 먹거리를 바로 바로 구할 수 있어서 좋다.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자리하고 있는 ‘도깨비 시장’은
제대로 된 시장은 아니고 골목의 집 앞에 조금씩 물건을 내놓고 팔던
무허가 시장이 발전한 형태로
1900년대 초에는 상거래 허가가 없는 일반 백성들이
정부의 눈을 피해 돗자리를 펼쳐 놓고 장사를 하다
단속반이 들이 닥치면 돗자리 자체를 돌돌 말아
도망가기 쉽게 했다고 하여 돗대기 시장이라는 설이 있는데
2004년 국립 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에 ‘도때기 시장’이라는
명사가 등록 되었으니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나는 또 다른 설을 굳이 믿고 싶다.

그 다른 설은
상인이 아닌 타 직업을 가진 사람들, 그러니까 요즘 용어로는
‘two Job족’들이 새벽에 시장을 열었다가 날이 밝으면 장을 걷고
자기의 본업으로 돌아 가는데 그 하는 짓이 도깨비 같아서
그렇게 불렀다 한다.

그 시장에서 거래하는 품목이 정상 유통하는 물건보다는
미군 PX 물품이나 재활용 구제 물품등이 주 품목이었으니
상거래도 도깨비 놀음 같고 더군다나 정부의 정식 허가가 없으니
항상 단속에 대비해서 문을 닫거나 자리를 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도깨비시장이 이 나라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남대문 도깨비시장, 황학동 도깨비시장등 잘 알려지고
현대화된 시장도 많이 있지만,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도깨비시장이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곳 서울의 영등포구에 위치한 대림동 도깨비시장도 그 보잘것없는
시장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도깨비는 어릴 적 어른들이 들려 주시던 이야기 속에나
동화에 자주 나와서 그런지 귀신인데 불구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고
차라리 정겹기까지 한 단어인데, 그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옛 문헌에 도깨비는 독각귀(獨脚鬼)나 독갑(獨甲)이로 표기되는데
독갑이란 억지로 한자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오래된 몽당 빗자루가
도깨비로 변한다는 전래 동화에 비추어 독각귀(獨脚鬼)가
더 정겹고 어울리는 것 같다.’
라는 글을 읽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나라안 곳곳의 도깨비 시장을 현대화하기도 하고
정식 허가를 내 주기도 하지만 다른 재래시장보다
더 열악한 환경을 떼어버리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사는 이곳 도깨비시장도 역시
일반 주택의 한 쪽을 상점화해서 장사를 하다 보니
통행하는 시장 골목도 좁고 산뜻한 정비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건물도 오래된 가옥들이니 화재에도 취약할 수 밖에는 없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온 1년 반 시간속에 크지는 않지만
화재가 두어 건이 발생되었었다.

하지만 이곳의 상인들은 도깨비시장을 떠나서
다른 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우니 다시 불탄 상점을 수리해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나서는 시장 골목의 상인들 얼굴들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겹다.

생선을 파는 키 작은 아저씨, AI에도 불구하고
굳세게 닭고기를 팔고 있는 아줌마, 야채 파는 아줌마들,
솜씨 좋은 손으로 만든 각종 김치와 반찬을 파는 할머니, 아줌마,
한방족발집 아저씨 아줌마 내외분, 할인마트를 지키는 맘 좋게 생긴 아줌마,
시장표 피자를 연신 구어 내는 아줌마, 하루 종일 만두를 빗는
만두가게 아줌마자매, 직접 만들어 파는 두부장사 아저씨 등등…….

두루 눈인사를 나누며 시장 초입의 정육점을 찾는다.

아침에 외출했던 아내를 정육점에서 만나
조류인플루엔자와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가격이 흠씬 오른
생 삼겹살을 사 들고 나왔다.

정육점 아저씨는 오늘 밤에 당진의 한 낚시터로 출조 한다고
나에게 한껏 볼륨을 높여 자랑을 한다.

평소 그렇게 이곳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이이니
혹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서 올 때는 속이 보이지 않는
커다랗고 시커먼 비닐봉지에 담아 시장을 에돌아 뒷골목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 오면서 미안함을 감추기도 한다.

단골 야채가게에 들려 양송이와 청양고추를 샀다.
아내가 마실 맥주는 냉장고에 남아 있으니 소주와 마늘,
그리고 상추를 사면 되는데 다른 가게에서 사려니 조금은 미안하다.

아내는 굳이 좋은 상품을 골라서 사야 한다며 다른 가게를 둘러볼 테니
날 보고는 소주를 사서 미리 들어 가라고 한다.

사실 야채가게를 단골로 이용하다 보니 상품이 맘에 안 들어도
할 수 없이 사야 되는 손해도 종종 감수해야만 했다.
나는 웬만하면 단골 아주머니에게 이것 저것 몽땅 사버리고 만다.

마트에 들려 아들과 같이 마실 소주를 사서 집에 돌아오니
아내도 이내 문안으로 들어 선다.

만족한 얼굴로 들어서는 그녀의 양손에는 햇마늘 몇 뿌리와
맛있게 생긴 상추 한 봉지가 들려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직접 밭에서 재배하고 뜯어다 판다는 적상추는
정말 자르르 윤기가 흐르고 싱싱하여 맛있게 보인다.
쑥갓 한 웅큼은 덤으로 얻어 왔다고 자랑이다.

도깨비 시장은 역시 영세한 상인들이 대부분이고
특히나 야채를 파는 상점이 많으니 날씨에 따라 그날의 매출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상점마다
판매량은 극감하고 남은 상품 야채들 마저 시들고 녹아버려
오래 보관할 수 없게 되니 자연 상인들의 마음은
강우량만큼 무거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5,60여 호가 되는 상가중에 야채가게가 무려 15곳이 넘으니
야채가게의 시름은 이곳 대림동 도깨비시장 전체 시름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문밖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권주가 삼아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그 옛날 억울하게 숨진 광주의 민주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수입 쇠고기문제와 조류 인플루엔자로 한없이 가슴이 내려 앉은
축산농가나 서민들, 그리고 전국의 영세 도깨비시장 상인들의 시름이
이 비가 그치는 순간에 모두 깨끗이 사라져 버리길 기원해 본다.

밤은 깊어 가는데 봄비는 그칠 줄 모르고 조근조근 내린다.

2008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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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선경: 안녕하세요 최 작가님. 제 경우엔 살 것이 있어서 시장을 가기도 하지만, 울적 할 때 기분풀이를 하러 시장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밀조밀한 물건들을 실컷 구경하고 싼 가격에 푸짐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잇점 때문에 기분이 뻥 뚫리기도 하거든요. 저희 동네 근처에도 도매가격의 싼 시장이 있어서 간혹 일 삼아 장 구경을 하며 반찬거리를 사 오기도 합니다. 다행히 그 곳은 몇년전 부터 재래시장 물건 구입운동에 힘 입어, 시장풍경이 재정비 되어 많이 깔끔해졌거든요. 저와 연배의 사람들은 아직도 대형마트 보다 시장이 더 익숙하여 시장을 종종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05/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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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하하하...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에도 도깨비가 자주 등장하고
전국 어딜 가든 도깨비 시장은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도깨비와 친근감이 있는 이유도 있지 않을런지요?
ㅎㅎㅎ

저는 사고방식이 구식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대형 마트엔 편리하고 여러가지로 혜택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재래 시장을 자주 이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필품 중에서도 화장지나 피죤...같은 건
대형 마트로 가서 구입을 하고 있습니다만,
반찬거리나 식료품 같은 것은 재래 시장을 꼭 간답니다.

재래시장에 정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살아 숨쉬는 활력이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hirashi2000@yahoo.co.kr) -[05/26-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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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요즘은 각 지역마다 도깨비 시장과 번개 시장,
벼룩 시장이니 알뜰 장터니 해서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리려는 운동이
많이들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솔한 삶의 땀과 정이 묻어나는 고운 글밭에 머물다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hirashi2000@yahoo.co.kr) -[05/26-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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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守/정용하: 수시로 검색하는데 오늘은 제가 지각을 했네요
도깨비 하니까 어릴때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도깨비랑 씨름할때는 왼쪽으로 넘겨야만 이길수있고
오른쪽으로 넘기려면 결코 이길수 없으며 그날은
고생좀한다고...풍자와 해학으로 민초들 마음속에 함께
살아온 얄미우면서도 인간에게 뜻하지 않는 행운을 주는
도깨비와 그 이름을 빌린 시장 그리고 역사와 현실문제를
은근슬쩍 버물러 편식을 하지 않으려 한 것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요 -[05/27-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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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기: 남대문 도깨비 시장은 몇번 들려보았는데 대림동 도깨비시장은 선생님 글에서 알았습니다.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진솔한 정이 넘치는 글밭에 머물다 갑니다.늘 행복하시고 건필하십시요. (yski1151@hanmail.net) -[06/0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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