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8-05-09 15:09

ㆍIP:

수구레와 콧등의 점

어제 오늘은 바람이 무척 분다.
대기의 이동쯤으로 풀이 되는 바람도 많이 불고
사람 사는 이야깃거리인 뉴스바람도 많이 분다.

지난 주말과 휴일에는 충남 태안의
바닷가 근처에 있는 한 호수로 낚시를 갔었다.
송홧가루가 봄바람에 날아와 호숫가를 돌아 떨어져
수면에 녹아 어우러지고 머물러 푸른 아지랑이처럼
신기한 그림을 그려대는 그 봄의 아늑함 속에서
굳이 인간의 본능인 포획의 욕심을 부리다 온 것이다.

밤낚시를 즐기고 일요일 오후에 집에 돌아 와서
TV를 보니 그날(5월4일) 내가 낚시하던 인근인 충남 보령에서는
원인도 알 수 없는 바닷물 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실종하였으며 다쳤다고 한다.
그 시각이 내가 막 집에 도착한 오후 한시 경이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쟁과 AI(조류 인플루엔자) 확산 문제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거칠게 불어 오는 모진바람이었다.

지난밤 낚시터에서는
동료들과 둘러 앉아 술안주로 싸온 오리를 구워 먹으며
닭의 사육과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친척, 친구들을 걱정하였었는데
지난달 초에 발생한 AI의 바람이 전국 곳곳으로 확산 되더니
드디어 서울에까지 불어와 서민의 먹거리 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어 관련 상인과 축산업자들 및 관계자,
그리고 모든 국민들을 봄 속의 겨울로 내몰고 있다.

덕분에 자주 즐기는 삼겹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우쭐 제 몸값을 올리고 있다.

서울에서는 강북의 광진구 자연 학습장에서 발생한 AI로 인해
인근 어린이 대공원과 한강 남쪽의 서울 대공원 날짐승들도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을 맞이 해야만 했는데
방역 당국은 전달인 4월에 경기도 성남의 모란 시장에서 구입한
꿩 두 마리가 서울입성의 주범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조금은 부속적인 음식을 술안주로
애식하고 있는데 주로 가는 산행 코스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그 중에 하나는
내가 사는 영등포에서 가까운 관악산코스 중 서울대 앞에서 올라
삼막사를 거쳐 안양 유원지로 내려 가는 코스다.
거기서 마을 버스를 타고 안양 시내의 중앙시장을 들려
산행 뒤풀이로 허파 볶음에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인데
내가 워낙 허파 볶음을 좋아하니 아내도 가끔은
강력 추천하는 단골코스가 되어 버렸다.

아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와 동행하여 산행 후
조금씩 맛보던 허파볶음 맛에 이제는 어느 정도 길들여 진듯하다.

무우를 커다랗게 썰어 넣고 매콤하게 양념하여
오랫동안 연탄불에 익히고 있던 허파볶음을 큼직큼직 잘라서
청양고추 듬뿍 썰어 넣고 다시 볶아 한 접시 내 놓는데
소주에 곁들여 먹다가 허파볶음이 식어서 데워달라고 말하면
나름대로 단골인 우리에게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흔쾌히
먹던 허파볶음에 서비스로 양을 더해 데워주는데
두 번 세 번도 전혀 싫은 내색 하지 않고 계속 서비스를 해준다.

또 다른 주 코스는
남한산성의 거여동, 마천동쪽으로 올라서 산성의 서문으로 가는 코스인데
다른 날들은 올라 가던 길을 내려와 천호동 재래 시장에 들려
허파 볶음에 소주 한잔 기울이기도 하지만
5일장인 모란시장이 열리는 4와 9가 꼬리로 남는 날이
휴일과 맞아 떨어지는 날에는 의례히 남한산성의 정류장에서
성남 시내버스를 타고 모란시장에 들려 시장구경과 더불어
먹거리 포장마차촌에 들려 시원한 막걸리나 소주 한잔 하는걸
뒤풀이로 즐기는데, 이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돼지껍질볶음이나
뼈있는 닭발, 홍어회, 가오리찜 등을 제치고 우선 찾는 게
허파볶음과 수구레볶음이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 안쪽에 붙은 살을 떼어 낸 지방육으로
소 한 마리에 약 2킬로그램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다소 질긴 고기다.

예전에 어른들이 고집 세고 질긴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수구레 같은 놈’이라고 했었는데 그만큼 질김을 비유했었다.

하지만 그 수구레볶음은 매콤하고 형용할 수 없는 감칠맛이 나며
쫄깃쫄깃한 그 맛이 입안을 오래도록 가득 메운다.

우리나라의 70년대나 80년대 초의 포장마차에는
그 당시 샐러리맨들의 여러 가지 술안주 먹거리 중에서
잔뜩 독 오른 독사처럼 ‘쉬이익’ 거리는 카바이트 불빛 조명에
19공탄 연탄불의 조리로 태어나는 이 수구레볶음은
당시 최고의 먹거리로 70년대 말에 떠도는 말로는
하도 수구레가 딸려서 서울역의 몇 포장마차에서는
군인들 군화의 부드러운 일부분을 2,3일 푹푹 끓여서
양념을 하여 수구레볶음이라고 내놓았다 하였었는데
이런 전혀 근거도 없고 믿을 수 없는 우스개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편으론 수구레의 인기와 질김의 정도를 반증하는 풍문이었다.

당시 돼지고기는 박피하지 않고 판매하였으며
또한 집에서 껍질과 비계가 붙은 채로 국 끓여 먹던 시절이니
요즘 흔한 돼지껍데기요리는 아마도 수구레 보다 훨씬 후에
포장마차의 한쪽을 점령하고 나선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군을 전역하고 얻은 첫 직장이
영등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개축하기 훨씬 전의 그 당시 80년대 초 영등포역에는
노량진쪽으로 나서는 모퉁이에 정말 허름하고 좁으며
길다랗기만 한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손님들이 똑바로 들어 앉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길가로 빼꼼히 내밀고 앉아서
그 집의 수구레볶음에 소주 한잔하는 퇴근길 샐러리맨들로
북적 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도 종종 직장 동료들과 그 집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시내버스 승객들에게 내 엉덩이를 보여주곤 하였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코의 정 중앙 흘러 내리는 선의 중간쯤에
싸래기만 한 까만점이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는 그 콧잔등 점이 약간의 얼굴 콤플렉스로
괜히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 오면서 별 신경을 안 썼었는데 어느 술자리에서
관상을 조금 본다는 돌팔이 관상쟁이 친구의 얼렁설렁한 말이
가끔 내 뇌리를 가루구치며 건드리는 것이었다.

‘하는 일들이 잘 풀려나가다가 가장 중요할 때 막히게 될 거요,
최형의 순탄히 흐르는 운을 그 콧잔등 까만점이 막고 있으니…….’

그때 직장에서의 내 운수는 그리 나쁘지 않았었는데도
그 점은 나의 미래에 닥쳐올 걸림돌인듯하여 개운치가 않았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찾은 곳이 영등포역 건너편 2층에 몇 개 있던
피부성형외과 중 한곳이었다.

의료보험이 적용도 안 되는 그 수술비를 물어 보니
레이저 시술은 상처도 없이 점을 없애 주는데 3만원이고,
인두로 지지는 시술은 상처가 다소 오래 가는데 3천원이라 하였다.
그 당시 내 나이 또래의 일반 공무원들 월급이
10만원 밑에서 맴돌았으니 3만원은 나에게 거금이었다.

할 수 없이 저렴한 시술을 부탁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의사는(그 시절에 그런 사소한 시술은 의사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 콧잔등 위에서 ‘찌지직’ 소리와 오징어 굽는 냄새를 잠깐 풍기더니
정체 모를 약을 살짝 발라주곤 치료가 끝났다고 하였다.
3천 원짜리 수술 참 간단하다.

그 후에 세수를 할 때 점이 있던 자리가 똑 떨어 지더니
약간 누렇게 곪기도 하고 딱쟁이가 앉기도 하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더니 한 보름여가 지나서는
점이 있던 콧잔등에 얕은 웅덩이 흔적을 남기고 완쾌 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다소 그 돌팔이 관상쟁이 친구의 예언에서
심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고민을 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부서의 한 선배와 입사 동기생인 C군도
그런 콧잔등의 까만점으로 작은 갈등을 해 왔었는가 보다.

선배는 체면 때문인지 슬쩍 물어 보기만 했지만
내 입사 동기인 C군은 적극적이었다.

짐작 하면서도 ‘왜 뺐는가?’ 에서부터 ‘어디에서?’, ‘얼마에?’,
‘회복은?’ 등 구체적으로 묻더니 내 권유에 힘입어
점을 빼기로 했는데 혼자 가기 쑥스럽고 두렵기도 한지
선 경험이 있는 나와 같이 가자고 하였다.

며칠 후 우리는 날을 잡아
내가 전에 시술 받은 병원을 다시 찾았는데
이 친구는 레이저시술 치료비를 준비해 왔다고 한다.

나는 그런 그를 꼬드겼다.
“남자가 얼굴 잘나서 뭣 하려고 그 비싼 레이저시술을 받냐?
그냥 싸게 3천 원짜리로 해라.” 했더니 그 친구
“그래도 레이저로 하면 안 아프고 깨끗할 텐데?” 하며 주저한다.

망설이는 친구를 3천 원짜리 시술로 결정 시키는 데는
그 건너편 영등포역 앞의 수구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친구야! 그냥 3천 원짜리로 하고 남는 돈으로
길 건너 가서 점 털어낸 기념으로 수구레에 소주 한잔 하자.”

‘시술 후 술을 마셔도 괜찮다’는 의사의 확인을 받고
그는 결국 나와 같은 오징어 굽기 시술을 받았다.

잠깐의 수술이 끝나고
길 건너 좁은 수구레 음식점에 걸 터 앉은 우리들은
마치 얼굴에 오랫동안 붙어 있던 진드기를 털어낸 것 같이
콧잔등 점을 처리한 기분을 후련해 하며
낄낄 깔깔 밤이 늦도록 수구레와 소주를 즐겼었다.

그 후 구청의 위생단속 때문인지 건물의 개축 때문인지
항상 손님이 들끓던 영등포역 앞의 수구레집은 사라져 버렸다.

그런 수구레의 추억을
가끔씩 산행 후에 성남의 모란시장에서 찾아내곤 하였었는데
그 곳이 서울지역의 AI전염 주 발생 경로로 의심을 받고 있다.

지금도 내 콧잔등에 있었던 까만점은
자세히 보면 작은 흔적만 남기고 없어졌지만
이제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생각하니 점을 뺏던 나와 내 친구나
그리고 점을 빼지 않은 그 선배나 빼어 나게 잘 살지도 않고
때꺼리가 없어 굶는 일도 없이 아이들 잘 기르고 살고 있으니
없애버린 콧잔등의 점이 내 길한 운의 흐름을 막거나
길과 흉의 운세를 가름지지 않는다는 게 입증이 된 것이겠지만
그 오랜 후 작은 아들의 콧잔등 옆구리에 난 작고 희미한 점을
빼주기 위해 나는 다시 성형외과를 찾아야만 했었다.

지금도 추억의 수구레는
나의 회를 동하게 하여 소주 한잔의 유혹을 불러 일으킨다.

하루빨리 전국에 부는 수입 쇠고기 바람과 AI 바람이 멎어서
국민들의 불안도 가라앉고 다양한 축산물 먹거리를
마음 놓고 맛있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향후 양국간의 이해에 따라 어떻게든 결정되어
불한당 같은 미국산 쇠고기가 이 땅에 다량 상륙하더라도
나의 참살이 먹거리인 허파와 수구레는
언제나 국내산 토종이겠지?

2008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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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守/정용하: 등산과 낙시에서 시작된 허파와 수구레 음식
그와 관련된 오징어 굽기 시술...ㅎㅎㅎ
최 작가님은 요리연구가도 병행하셨으면 크게
성공 하셨을 것 같습니다
허파와 수구레 음식은 처음 듣는 이름이니 당연히
그 맞도 모른 채 반평생 지났습니다. 그런데 음식 명칭 자체도
특이하고 특히 요리과정 설명을 얼마나 잘하시는지 TV방송에서
요리연구가께서 요리하면서 설명하는 것과 흡사하여 착각할 정도
이시네요.저는 채소이름등도 전통적인 것 몇가지만 알뿐 백지인데
자생능력있는 작가님이 부럽습니다.
친구분의 오징어 굽기 시술 덕분에 영등포 골목에서 수구레 안주에
소주- 쪽- 하셨네요...ㅋㅋㅋ
코에 점있어도 코메디언 배모 여사는 잘만 살던걸요
인간이란 잘되면 복점이고 안되면 조상탓 아닙니까
약주를 참 좋아 하시나 봅니다. 소주 이라면 오시면 아주
목욕을 시켜드릴께요 다른 댓글에서 말씀드렸는데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不亦樂乎라는 심정으로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늘 편한하시길 빕니다. -[05/09-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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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수구레 음식...
난생 처음으로 들어봅니다.

저도 즐겨먹었었고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이름이 생소하여 낯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포를 뜨듯히 엷게 썰어놓은 허파에
달걀을 묻혀서 후라이팬에 구운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러고보니 허파를 먹어본지도 꽤 오래되었네요.
요즘은 A1이니 해서 온갖 이름모를 병들이 판을 치는 세상인지라
뭘 하나를 먹더라도 두번, 세번 고민하고 먹게됩니다.

(hirashi2000@yahoo.co.kr) -[05/1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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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편안한 휴일을 보내시고 계시는지요?

내일은 오후부터 비소식이 있네요.
요즘은 농촌마다 가물어서 비가 와야한다고며 걱정이 많더군요.

아무쪼록 건강하고 편안한 휴일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잠시 머물다 갑니다. *^.^* (hirashi2000@yahoo.co.kr) -[05/1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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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문주: 코끝에 점하고 질긴 수구레하고 줄다리기를 합니다~~ㅎㅎㅎ
수종사를 퇴고 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얼마나 얼기설기 갖다붙었는지. 헛 하고 웃었답니다.
이제는 좀 단아하게 정리를 하고 짧은 것으로 택하고 싶답니다. -[05/16-17:01]-

최씨 고집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