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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임정수 수필소설작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7-09-07 09:34
ㆍIP:
사랑의 줄타기
사랑의 줄타기 / 임정수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 부터 17년 전.
내가 화천에서 춘천으로 전출을 갔을 때 우두동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때가 화천에서 근무하다 춘천으로 옮겨간지 얼마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영애 누나를 만나면서 누나의 집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귀여운 인상이었고 무척이나 예뻤다.
처음 만나는 날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이런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나를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질 않는 것 같았다.
사실, 그녀를 만나던 날.
나도 모르게 내 나이를 서너살정도 올려서 소개를 했었다.

그녀가 예쁘다는 생각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그렇게 말하고 만 것이다.
잘못 되었노라고 말하려는 순간,
자신과 동갑이라는 말에 어떻게든 친근감있게 다가가야 했기에 그만 기회를 놓히고 말았다.

그녀를 두번 째 만났을 땐 이미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 온 과거와 가족 관계, 그리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영애 누나는 내가 귀신인지 사람인지 겁이 날 정도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었지만,
나라고 누군가 얘기해주기 전에 알 리가 있었겠는가.
그것은 지금까지도 어쩔 수 없는 나 혼자만의 비밀이 되었지만...

나는 그녀를 두번 째 만나던 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때 그녀는 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런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당황하여 멍하니 나를 쳐다 보았고,
잠시나마 마음이 흔들리며 갈등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런 나의 고백 때문이었을까.
친구로써 동정심을 가지다 보니 사랑에 빠진 걸로 착각을 할 수도 있으니
그만 냉정을 되찾으라는 충고의 말로 그녀는 나의 고백을 외면하려 들었다.

앞으로 얼마든지 행복하게 잘 살 수가 있는데
왜 그리도 힘들 게 살려고 그러냐며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 또한 크림처럼 부드럽고 설탕처럼 달콤한 나의 속삭임에
갈팡질팡 중심을 잡질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그녀와의 사랑을 키웠고,
언제 빠질지도 모르는 파도의 꼭대기에 서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만 원한다면 아무도 살지않는 무인도에라도 가서
우리의 못다한 사랑을 맘껏 불태우며 그녀만을 위해서 살고 싶었다.

어느날 또 다시 춘천의 용산리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거리가 멀어도 그녀를 만나는 덴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고 싶었기에 내마음은 편칠 못했다.

근무지를 옮기고 나서 계속 바쁜 업무에 정신없이 지내야 했었고,
그녀에 대한 소식은 영애 누나를 통해서 꾸준히 전해듣고 있었다.
새로 옮겨간 근무지에서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업무에도
그녀만 생각하면 잘 풀리고 행복했던 것은 모두 그녀를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린 처음부터 남을 의식하거나 밀회를 즐길만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언제나 당당히 만나서 후회없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녀와 동거중인 남자또한 내가 그녀를 만난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한다.
상대를 잘 알고 있어서일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 앞에 단한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달콤하기만 했던 사랑도 결국은 오래가질 못했다.
닭살돋는 사랑을 시샘한 훼방꾼의 방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우리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은 더 더욱 아니었다.

마음여린 그녀가 딱 한번이라는 전제하에 함께 살고있는 동거남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마음같아선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렇게 내 욕심만 채운다고 모든 게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자신 스스로가 더 잘 알기에 붙잡을 수 없었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 날.
용광로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우린 마지막 밤을 보내었다.
그날따라 내린 눈이 함박눈으로 변하면서 앞이 안보일 정도로 내렸고,
우린 그 눈이 다녹도록 엉어리졌던 가슴의 한을 불태웠다.

어쩜 이마에 맺힌 그녀의 땀방울이 하얗게 쏟아지는 형광등 불빛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던지...

어느덧 17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간간히 전해져오는 그녀의 소식이 끊긴 지도 오래되었고,
이제는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그녀와 헤어진 후로 영애 누나와도 소식을 끊고 지내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슴 설레며 보았던 낙동강의 물결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슬퍼보이는지.
행복했던 지난 추억이 주마등되어 지나가는데,
물거품을 일으키는 파도는 슬픈 내 마음을 더욱 부채질 하는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용한 물살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고있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어둠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난 여전히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있으면 낙동강을 찾는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물결을 잊지 못하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시절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하얀 파도를 보면서 다짐한다.
이제 두번 다시는 후회스런 사랑은 하지 않겠노라고.
반사된 불빛이 강물에 비쳐들 때에 나의 소망이 꿈틀거린다.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이 행복으로 승화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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