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7-09-16 09:11

ㆍIP:

석굴암 가는 길에
석굴암 가는 길에 / 임정수

오랫만에 법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향을 피웁니다.
얼마만인가요?
덩어리져 무거웠던 향내는 공기를 타고 이내 법당 안 곳곳으로 스며듭니다.

향내는 오랫동안 곰삭은 내음으로 외로운 몸짓으로 몸부림칩니다.
그 몸부림은 향만이 알 수 있으며 아직도 혼자인 저의 마음인 것입니다.

아직 인연이 닿질않아 가정을 꾸리지 못하였기에 어디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물처럼 바람처럼
가고싶은 곳은 어디든 훌 훌 날아서 다닌답니다.

자정이 다되어 법당을 나섰습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을 받아서 베낭에 넣고 지팡이 하나 의지한채 산을 올랐습니다.

털보와 똘이(암자를 지키는 강아지들)도 같이 가고싶었던지 저만치 앞서서 뛰어갑니다.
그들은 둘도 없는 저의 믿음직한 충견입니다.

산을 오르다가 멧돼지나 너구리가 나타나면 먼 곳에까지 따라가서 쫓아버리기도 하고
앞쪽에 뱀이라도 있으면 그자리에 서서 제가 알 수 있도록 계속 짖어댄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희뿌연 달빛 아래에 어렴풋이 드러난 풍경,
그것은 바로 공동 묘지였습니다.

새벽 찬바람에 살랑살랑 몸을 뒤척이는 앙상한 나무와 수북히 쌓인 낙엽의 사각거리며 밟히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우며 걸음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코끝을 지나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진한 솔향기에 더덕더덕 세속의 때를 묻히고 서 있는 저는
그야말로 한없이 무기력한 티끌이었습니다.

으스스한 분위기의 수 많은 묘지는 저마다 한많은 사연을 간직한 듯 보였지만,
저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계속 걸었지요.

그러다 문득 돌아다보는 시선에 걸음이 딱 멈추어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귀신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순간 심장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물론 귀신을 처음으로 본 것은 아닙니다.
그 전에도 수 없이 보아왔지만,
이번엔 그야말로 떼거지로 몰려와 있는 듯 싶었습니다.

영계통신.
흔히 말하는 귀신(잡령, 하급령)이나 조상령(ㅇ) 또는 산신령님과 부처님처럼 고급령(ㅇ)과도
대화를 나누는 게 영계통신입니다.

처음엔 몰랐지만 기(氣) 공부를 통해 기도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영계통신을 하게 되었고,
가끔 이렇듯 산을 오를 때면 수많은 령(ㅇ)들과 대화를 하곤 합니다.

목적지인 석굴암까지 올라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왠 부탁들이 그리도 많은지,
다 듣고 있으려니 올라가기도 전에 날이 샐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걸어가면서 계속 듣기로 하였지요.
덕분에 올라가는 내내 무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귀가 조금 따가웠지만요.

석굴암에 거의 다다랗을 때쯤 함께 오르던 령(ㅇ)들이 더 이상은 같이 갈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석굴암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이기에 하급령들은 접근 조차도 할 수 없는 곳이지요.

석굴암으로 발길을 돌리며 저를 따라올라온 령(ㅇ)들의 부탁과 소원을 다 들어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좋은 영계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제가 그들을 위해 천도를 하는 것이지요.

좋은 날을 정해서 천도를 하였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다들 영계 세계로 떠났는데
그후론 두번다시는 그 령(ㅇ)들을 볼 수가 없었답니다.

석굴암에 도착하니 암자의 풍경 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려왔습니다.
가지고 간 물을 꺼내어 한모금 마시니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고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정신을 집중하니 산아래 암자의 풍경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입니다.

풍경을 듣고 읽는다는 것은 귀로 눈으로 읽는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마음으로 읽는 풍경이야말로 청아하면서도 머릿 속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정된 것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지요.
단순히 보고 듣는 풍경보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아름다울테니까요.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과 같고,
푸드득 날개짓으로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새떼이기도 하며,
무한천공에 펄럭이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현실 세계와 영계 세계를 잇는 하나의 통로같은 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빛과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지요.

빛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림자.
오염된 세속에 찌들어 버린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독경을 읊는 스님의 정제되지도 않은 맑은 소리로
빛에 의해 감추어진 그림자 같기도 하지요.

옥녀탄금대의 석굴암이 위치한 옥여암.
백척간두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앉으니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만 같습니다.

저는 아직 성불을 얻질 못했습니다.
새벽 하늘을 가르는 풍경 소리에 견주어 보니 세속의 때를 다 지우지도 못했나 봅니다.

언젠가는 성불할 날이 있겠지요.
밝은 빛으로 옥여암을 환하게 밝히는 진한 향내음이
소리없는 풍경의 그림자 되어 조용히 찾아들 그날을 기다리면서.

주 환: 귀신을 보았다고 고백하셨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믿지 않지요? 저 역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현상인데도 보았노라고 말을 하면 많은 이들이 헛소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틀림 없이 본 것은 본 것이니까요. 저는 있다고 확실히 믿는 사람입니다,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요. -[09/17-19:01]-

임정수: 흔히 말하는 신기(神氣)하곤 전혀 거리가 먼 얘기이지만,
오래 전부터 보고 느끼며 살아왔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뚜렷한 그 무엇을 몰랐었기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었는데...
요즈음 나름대로 기(氣) 공부를 하다보니 확실히 알겠더군요.

이런 얘기도 옛날 같으면 미쳤다는 소릴 들을 얘기이겠지만,
요즘은 생활하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는터라
그렇게 미쳤다는 소리도, 신기하다는 소리도 듣질 않는답니다.

저도 공부를 하기 전에는 몰랐었는데,
기(氣) 공부를 하다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곤
무척 놀랬었답니다. -[09/18-10:14]-

어머님의 사랑 (2)

입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