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7-08-3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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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따며
고추를 따며 / 임정수

몇달 째 귀촌을 꿈꾸며 어느 지역에서 정착을 할까 고민하다 결국은 정하질 못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비며 다니다 피곤에 지친 몸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을 여유도 없이 고추를 따기로 하였다.

어제 오후 늦게 선산이 있는 청송에 도착하여 맘씨 좋은 어느 어르신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 곳엔 젊은 사람들은 다들 도시로 나가고 몇집 안되는 동네에
노인 분들만 남아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몇일 동안 비가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고추를 딸 엄두도 내질 못하다가
오늘은 해가 나서 아주머닌 고추를 따려고 밭에 나가시고
밖깥 어르신 혼자서 나의 아침밥을 챙겨 주시려고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어제 오후에 갑작스레 도착하여 늦은 시간이라 경황도 없이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고추를 따야 하는데
몇일 동안 비가 오락가락 하여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시던
어젯밤 어르신의 말씀이 떠올라서 마음 편히 아침을 챙겨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을 차려 주시겠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뿌리치고
어르신과 함께 고추밭으로 달려갔더니
아주머니 혼자서 바쁘게 고추를 따고 계시는 게 아닌가.

고추밭이 모두 삼천여평 되지만,
잦은 비에 따야 할 시기를 놓히면서 병충해로 인해 힘들 게 작업을 해도
별로 건질 게 없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도 고추밭 한 고랑을 차지하고 들어가 고추를 따다보니 피부에 와 닿을 만치 실감하게 되었다.

농약을 전혀 안칠 수는 없어 최소한의 농약으로 지은 농사인지라
땡볕에 시들고, 탄저병으로 피해를 입고, 잦은 비에 물난리까지 겪다 보니
이것저것 다 골라내고 나니 일에 속도가 붙질 않는다.

저린 오금을 펴며 겨우 한 고랑을 끝내고 보니 비료 포대로 다섯 포대 분량이 나왔다.
"배 안고프니껴?"
"아입니더, 괜찮습니더."
"배 많이 고플텐데...아침이라도 자시고 거들어 주시지 않고..."
"괜찮습니더."
나를 걱정하시는 아주머니의 말씀엔 안스러움과 함께 약간의 여유로움이 있어 보이지만,
손은 잠시도 쉬지않고 고추를 따고 있었다.

"올해는 농사가 잘되어서 풍작이라 좋아했었는데 가물어서 피해, 탄저병에 걸려서 피해,
폭우로 물에 치여서 피해, 또 고추 따는 시기를 놓혀서 이래저래 피해이니더."
"그렇겠네예, 날씨라도 좋아서 더이상 피해가 없어야 할낀데예..."
"요새는 하도 비가 오락가락 하니까 날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고
그저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더.
이런 날씨에 안 따고 가만히 놔 두었다간 전부 불어터져서 하나도 못써니더."
"맞습니더, 조금이라도 시간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밭일에 매달려야지예."

장마철도 훨씬 지난 요즘의 날씨는 장마철보다도 더 많은 비가 내리는 우기라서
한번씩 비가 올 때마다 퍼붓더니 한꺼번에 쏟이지는 통에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세월아 네월아 하고 두고 있다간 하나도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나마 하룻밤 신세를 진 이곳 어르신 댁의 고추밭은 조금 나은 것 같았다.
이웃의 고추밭은 산중턱에 있기도 하였지만,
이번 비로 인해 고추밭이 쓸려 내려가다시피 했고,
계곡의 물살 때문에 길이 끊겨서 밭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이나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는 변덕스런 날씨라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아
밖깥 어르신께서 경운기를 한쪽 가에다 대어놓으시길래 따놓은 고추를 얼른 갖다 날랐다.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작업한 것을 또다시 비라도 와서 다 젖어버리면 오늘 작업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밖깥 어르신 혼자서 경운기에 싣고 나를 수 있도록 자루에다 차곡차곡 정리하고 길가로 옮겨다 놓곤
아주머니와 계속 고추를 땄다.
"도시 양반이라 밭일을 못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일머리도 잘 알고 꾀도 부릴 줄 모르는게...
보통이 아이니더."
"별말씀을예...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눈칫껏 옆에서 따라한다 아입니꺼."
"내가 농사만 수십년인데 사람을 척 보면 알지러. 귀농하면 몇년 안가서 꼭 성공할거니더."
"정말 그렇게 보입니꺼?"
"틀림없구마.."
'하하하...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라도 기분은 좋습니더."

간간히 이슬비가 내렸지만 일손이 부족한 걸 뻔히 알고도 작업을 그만 둘 수가 없어
비가 이렇게 약하게 오니까 작업을 계속해도 괜찮을 것 같다며 내가 계속 더 하자고 우겼더니
결국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두분께서 허 허 웃으신다.

아침도 못먹었는데 점심을 먹고 계속 하자고 하시는 말씀에도 날이 흐리고 비까지 뿌리는 통에
언제 갑자기 굵은 비가 쏟아져 내릴지를 몰라 조금이라도 더 따고픈 욕심으로
그마저도 포기를 시켜 드려야 했다.

내가 귀촌으로 농사를 짓게 되어도 농약과 비료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계획에 대해
어르신께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농약은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다.
하긴, 아무리 유기농이니 무기농이니 해도 이런 산속에서 그조차도 뒷받침이 되어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품을 들이고 힘들게 농사를 짓느니
차라리 사먹는 게 더 싸게 먹힌다고들 하지만,
우리같은 늙은이들이라도 이렇게 이어가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엔 고추 하나라도 외국에서 수입하여 먹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우리가 손을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껴?
당장엔 싼값에 수입 농산물들이 넘쳐나지만 앞으론 부르는 게 값이라 농산물 파동이 닥치게 되면
그때에 가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늦었는기라."

옳으신 말씀이었다.
나또한 그렇게 생각하기에 텃밭정도라도 가꾸면서 땅에 대한 욕심을 내어보는 게 아니던가.
"우리같은 농사꾼이 다 죽고나면 농사짓는 방법을 알지 못해 박물관이나 백과사전을 뒤져가면서
처음부터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데...그땐 이미 모든 게 망가진 상탠기라."
"예, 맞습니더, 제가 그래서 농사를 지으려고 안합니꺼."
"허허허.."

사실 농사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내가 마음처럼 계획했던 대로 잘 추진해나갈지 걱정된다.
온갖 농작물을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시기를 적절하게 잘 맞출 수 있을지
얼치기 농사꾼인 나는 걱정이 태산일 뿐이다.
아무래도 이,삼일은 더 이곳에서 인심도 얻고 바쁜 일손을 좀 더 도와야 할 것 같다.

"오늘 욕들 많이 보셨는데 커피는 없고...구수한 숭늉이라도 들어봐요."
"예? 정말 대단하시네예..."
"....."
" 시력이 좋은 저도 안보이는 욕을 다 보실 수 있으시다니까 그저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서 그럽니더."
"하하하..."
저녁 식사후에 구수한 숭늉을 한대접 마시며 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 보니
점차 강해지는 바람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평균: 빠알간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그림을 떠 올립니다.
저도 강촌의 작은 밭에 고추를 심어 놓고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시기를 놓쳐 잡초 더미를 들추어
약간의 수확만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하루 이었습니다. 구수한 정담이 녹아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바라시는 일 편히 이루시기를.... -[09/09-16:53]-

임정수: 제가 하루빨리 정착해서 조촐한 시골 밥상이나마
텃밭에서 가꾼 무공해 채소와 어장으로 키운 민물고기를 대접해 드려야 할텐데...

조만간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희망을 품어봅니다.

그래도 안될 것이라는 절망적인 단어보다는
반드시 이룰 수 있고 틀림없이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꿈과 희망을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니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
-[09/10-17:08]-

임정수: 멋진 귀촌의 설계만큼이나 멋진 삶을 살고픈 마음으로
꿈을 가꾸어봅니다. *^.^* -[09/10-17:09]-

낚시

91 팀스피리트 훈련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