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임정수
ㆍ작성일	2007-08-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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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그때 그 시절 / 임정수

절친한 전우들이 있었다.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000 특공 연대에서 00 여단으로 전입을 와서 칠개월인가 팔개월 쯤인가 근무하다
또다시 예하 부대인 000 대대로 쫓겨나 듯 전입을 오게 되었다.

부대의 간부들을 만나더라도 낯설고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업무상 오가다 한 두번 얼굴 정도는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텃새라고 해야하나.
부대의 특성상 다들 거칠었다.

그당시 나는 술고래였다.
아니 꼭 술고래라기보다는 적어도 겉모양만은 술고래가 분명했다.

전투 중대에서 근무하며 주특기가 다른 그들은 거칠고 힘든 임무를 도맡아 해야만 했고,
그들이 볼 적에 나는 신선과도 같은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이쁘게 봐 줄 리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돗단배처럼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며 적응 해나가야 했었다.

여럿이서 한 사람을 상대하기는 쉬워도 혼자서 여러 사람을 상대한다는 건
말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격이었다.

어차피 나는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기에
나름대로의 적응 방법을 연구해야만 했던 것이다.

단기간에 부대의 분위기를 파악하다 보니 회식이라던지 술자리가 잦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도 참석을 할 기회가 많았다.

평소 잦은 술자리를 가짐으로써 위와 간을 잘 단련시킨 그들은 나에게 술을 권하였고,
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벌컥벌컥 마셔댔다.

다른 이들이 소주잔으로 마실 때
나는 글라스(음료수 컵)로 가득히 받아 마셨던 것이다.

처음엔 소주잔으로 열댓잔 정도 마셨지만,
슬쩍 둘러 보니 술잔을 들고 대기해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사람들의 잔을 일일이 다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꾸어서 글라스로 벌컥벌컥 마셨더니
더이상 권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들이 들었던지 그 뒤로는 권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알고보면 글라스로 마셨던 게 몇 배는 될 것이다.
하지만 매사에 계산적인 사고방식보다는
일단 부딪혀 보고 해결을 해나가려는 성격이었기에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대대장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아부성 발언으로 좋은 말만 골라서 하려는 이들과는 달리
이런저런 눈치 같은 건 보질 않고 연신 담배를 입에 물고서
큰소리로 할 말을 다하는 나에게 기가 죽었던 것이다.

내가 대대로 쫓겨나기 전 상급 부대인 00 여단에서 얼마나 술버릇이 고약했었는지를 소문을 들어서
다들 익히 잘알고들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젊은 혈기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기도 하였지만,
어딜 가서 잘 보일려고 아부를 한다거나 비굴한 행동 같은 건 내 성격과 체질에도 맞질 않는 것이다.

그러니 말버릇이 없다는 둥, 술버릇이 고약하다는 그런 말을 자주 듣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날 PX(부대내 매점)로 들어서니 나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분명 나보다는 후임인 듯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리저리 잴 필요도 없이 성격급한 내가 먼저 손을 들어 경례를 하였다.

그(정 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테이블로 이끌었다.

부대에 새로운 사람이 전입을 오니 아무래도 그런 정보엔 민감하여
행정과에서 나에 대한 이력을 알아보았단다.

그랬더니 자신보다도 서너살쯤 나이가 적고 짬밥이 적은 내가 선임(고참)으로 오게되어
무척 기분이 상했었다고 하면서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끙끙 앓으며 뒤에서 뒤통수를 치려는 이들보다는
이렇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정 하사가 마냥 고마웠다.

6개월 가량 파견 근무를 나갔다 왔노라는 정 하사는
나하고 체격이 비슷하지만 키가 좀 더 크다는 것 말고는 많은 면에서 통하는 점이 많았다.

우린 그렇게 만나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비록 나보다 나이도 많고 짬밥이 많았지만,
그는 나를 선임으로 인정하였고 나또한 그를 친구처럼 동기처럼 대우를 해주었다.

나처럼 자대 출신(사병 생활을 거쳐온)인 그는 화통하면서도 즉흥적이었고 둘이서 죽이 잘 맞았다.

우리의 별명은 곰돌이와 곰순이였다.
뚱뚱한 곰 두마리가 실과 바늘처럼 늘 붙어다닌다며 누군가 지어준 것이다.

사실, 파견 근무같은 게 없었던 나로선 뜻이 잘 통하는 정 하사가 옆에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든든해서 좋았으며,
정 하사가 근무하는 전투 중대로, 나의 사무실로 다니며 늘 함께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다 전투 중대의 소대 선임하사인 기훈이 형과도 어울리게 되었다.

특전사에서 근무하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기훈이 형은
특공 부대에서 온 나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고 했다.

기훈이 형과 정 하사.
우리 세사람은 마음이 잘 통했으며 친형제간처럼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다.

우린 그후로도 계속해서 부대 안팎으로 우리의 우정을 과시하였고
내가 근무하던 특공 부대의 전우들도 가끔 만날 때면 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잘 알고들 있었다.

기훈이 형이 결혼을 하기 전에 형수(지금의 형수)님과도 친하게 잘 지냈었고,
잠을 자다가도 형수님이 술 한잔하자며 불러내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택시를 타고 달려가
기훈이 형과 공지천 포장마차나 나이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때가 가끔 생각나곤 한다.

두사람은 끝까지 남았지만,
군대에 염증을 느낀 내가 먼저 전역을 하게 되었고
정기 휴가를 받은 정 중사가 우리 집으로 놀러와 몇일 지내다 간 적도 있었는데,
정작 기훈이 형과 정 중사가 결혼식을 올릴 때엔 가보질 못하고 말았다.

그때는 내가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을 때라서 어쩔 수 없이 참석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전화 번호부를 잃어버려 연락이 끊겨 버렸다.
지금 같으면 휴대폰에다 바로 입력을 해도 되지만,
그때는 전화 번호를 잃어버리니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항상 정이 많은 내가 전화를 하곤 했었기에,
한번도 전화를 해주질 않는 그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다 사업 관계로 집 전화번호를 두어차례 바꾸게 되었고,
지금은 핸드폰에다 입력을 하고 싶어도 번호를 알 길이 없다.

우리가 함께 한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 속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꽃다발이라도 한아름 사가지고 꼭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부대를 옮겨 이제는 다른 부대에서 근무를 한다는 소식을 간간히 전해들었기에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해도 마음먹고 찾아가면 못 찾을 것도 없을 것이다.

요즘처럼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면 그들이 보고싶고
생사 고락을 함께했던 우리의 우정이 생각난다.

그것은 어쩌면 한 형제의 당기는 핏줄같은 게 아닐지라도
전우라는 끈끈한 우정이 있기에 더욱 생각나는 것 같다.

늘상 숨가쁜 삶에 발버둥치며 앞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기에,
내가 어떤 경로로 걸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더듬어 보는 이 순간,
온몸으로 부딪히며 짙은 땀내음으로 얼룩진 그날이 주마등되어 지나간다.

지금 그들은 무얼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생의 한끝을 부여잡으며 더듬고 있을까.

아무리 스쳐가는 인생이라 해도 누구나가 잊지못할 추억이라는 게 한 두개 쯤은 있는 법이니까.
아둥바둥 살아가는 중에도 그들도 나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빌어본다.

언젠가 재회의 기쁨을 만끽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91 팀스피리트 훈련 중에

막걸리 두잔으로 만든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