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상화
ㆍ작성일	2018-02-0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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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도 우리의 발길을 멈추지 못했다 (평화 누리 제9코스)

칼바람도 우리의 발길을 멈추지 못했다
(기행 수필 평화 누리길 제9코스)

루수/김상화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싫든 좋든 우주의 섭리에 따라 떠나간다. 정유년은 지구에 사는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피조물 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 땅에 왔다. 자기를 반기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이 땅에 왔는지도 모른다. 혹 신의 명령을 받아 추위를 무릅쓰고 왔을까? 그러나 꽃바람 타고 화려하게 달려온 정유년(丁酉年)이다. 그렇게 환영을 받으며 온 당신이 이젠 떠나갈 준비를 서두르는군요. 앞으로 보름이 지나면 인간들에게는 "미련"이란 이름만 남겨놓고 떠나겠지요? 당신이 이 땅에 온다기에 우리는 밤잠을 설치며 기다렸다오. 그것뿐이겠소! 지난해보다는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라고 서로가 격려의 인사를 나누며 빌어주기까지 했다오. 그러한 환영 속에 당신은 "희망"이란 두 글자를 불끈 쥐고 우리에게 전하려고 힘차게 달려온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당신과 함께 기쁨의 재회를 나누지 못하고 말았군요. 그것은 2016년부터 어수선했던 나라가 지금까지 소란하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의 욕심이 잉태되어 나라는 두 토막이 나고 말았네요. 그리고 나라는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답니다.

나라가 혼란하다 해도 우리가 할 일은 해야 한다. 오늘은 평화 누리길 제9회차를 걷는 날이다. 나는 평화 누리길을 걷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어쩜 이 길은 나의 삶의 한 획을 긋는지도 모른다. 이 길을 걸으며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되었고 까마득히 잊었던 역사를 머릿속에서 소생시키기도 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루에 14~15km의 많은 걸음으로 인내를 기르고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데 한몫했다. 또 무엇보다 동료들과 사랑을 나누며 두터운 우정을 쌓는 계기도 되었다. 우리는 바람을 가르며 들판을 걷고 새들의 아름다운 소리를 음미하며 산자락도 걸었다. 또 평화스러운 마을을 가로질러 걷기도 하고 마을의 앞뒤를 걷기도 했다. 군인들의 진지를 파놓은 것을 보고 전쟁의 무서움도 상상해 보았다. 강둑을 걸으며 철조망을 바라보고 6.25의 아픔도 느껴 보았다. 그러나 이 길을 걸으면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자연이 주는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였지만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동료들의 오손도손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였다. 또 발걸음 소리도 빼놓을 수 없는 향기로운 소리에 하나였다

전철을 타고 문산역까지 와서 버스로 갈아타고 율곡 습지 공원을 지나 제일 먼저 대하는 마을이 금파 1리다. 걸음을 멈추자마자 제일 먼저 건강 장수 마을이라고 표석에 새겨 놓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수를 하나 보다. 또 살기 좋은 마을이면 머물고 싶은 언덕길 장마루라고 써 놓았다. 얼마나 살기 좋고 장수까지 하는 마을이기에 아름답게 예술적인 글씨체로 선전을 했을까? 매우 흥미로운 마을이다. 고요하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확인차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해 보았다. 평균 90을 넘게 산다고 한다. 정말 장수 마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틀 전에 내린 눈이 산과 들은 얼룩 송아지처럼 만들어 놓았다. 야속하게도 공기가 차가워 볼을 오려내는 듯하다. 잠시 머물며 이 마을의 잔잔한 풍경을 감상하다 또 걷기 시작했다. 간혹 도로변에는 희한하게 세워놓은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이 최전방이라는 것을 한 눈으로도 알 수 있다. 적 탱크가 온다는 것을 가상해 만들어 놓은 방어벽이다. 이 흉물스러운 벽을 폭파하면 그것을 치우기 전에는 적의 탱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놓은 것이다. 언제나 이 벽이 사라질까? 전쟁 없이 평화스럽게 살고 싶다

걷다 보니 장파2리까지 왔다. 여기서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으려고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집을 찾아왔다. 상호가 "장단콩 두부집"이다. 이름까지 꽤 독특한 집이다. 장선덕 본부장이 미리 답사를 하면서 회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을 찾았나 보다. 희생과 사랑의 마음씨에 박수를 보낸다. 들어와 보니 모든 음식이 콩을 이용해 만들었다. 장 본부장의 희생정신으로 회원들은 맛있는 점심을 먹게 된 것이다. 이 집을 오려고 평화 누리길을 벗어나 약 2km를 더 온 것이다.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 음식은 담백하면서 맛이 있다. 배가 방실방실하도록 배불리 먹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추위에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회원들의 추억이 될 사진을 찍어 주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우리는 그냥 감사할 따름이다

점심을 먹고 임진강 둑길을 걸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은 "임진강 적벽"이라고 한다. 길이가 282km(한강의 제1지류)이다. 유역면적은 8,135km이다. 산책로는 1,280m이고 꽃길이 980m이다. 휴게시설은 아담하게 2곳을 설치해 놓았다. 적벽의 유래는 이곳 임진강은 신생대 시기에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내륙 유일의 주상절리로 선조들은 임진강 양편에 형성된 주상절리가 붉은빛이나 자줏빛으로 보인다고 하여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의 국경으로 분쟁이 잦았던 지역이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경기도 연천군에 고구려 칠중현(七重縣)의 치소(治所)인 파주 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 이 강의 주요 어종은 참게, 뱀장어, 황복이다.

걸으면서 보니 여기저기 군사시설 흔적이 눈에 띈다. 여기서도 6.25의 쓰라린 아픔을 맛본다. 보는 순간부터 울컥하는 심정에 가슴이 울렁인다. 잘 만들어놓은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시 황포돛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눈이 내려 하얀 길을 걸으니 내 마음 또한 아무 잡념 없이 하얗게 변한 것 같다. 강에는 철새들이 평화스럽게 물을 가르며 담소하고, 논에는 공룡 알이라 부르는 벼 집을 비닐로 둥글게 마라 놓은 "곤포사일러지"가 텅 빈 논을 지키고 있다. 농사철이 아니라 인적은 찾아볼 수 없다. 한적하고 평화스러운 벌판은 겨울을 알리는 찬 바람만 친구 하자고 옷깃을 파고든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선 맑은 정신으로 감상하고 즐기라고 찬 공기를 내려보내고 또 우리를 사랑한다고 맑은 공기를 선물로 준다. 회원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간혹 회원들의 대화 도중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향기롭다. 비록 날씨는 추워도 회원들과 오손도손 대화하며 걷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

황포돛배까지 가는 도중 장자리 마을의 산모퉁이를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공장인지 창고인지는 알 수 없는 몇 동의 건물 추녀에 팔뚝보다 더 큰 고드름이 달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큰 고드름을 모처럼 보는 순간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고드름을 향해 사진을 찍으러 갈 때 눈부시도록 하얀 눈이 밭에 내려앉았다. 필자도 겨울의 맛을 여기 와서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 흰 눈이 미인들을 유혹했나 보다. 강영희 부회장 김인숙 부장 유인숙 총무와 김명순 총무가 달려들어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미남인 박순홍 회원도 한 몫 끼어든다. 눈싸움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미인들의 향기로운 웃음소리가 장자리 마을의 한 모퉁이에 울려 퍼진다. 미인들은 평화 누리길로 인해 누구보다도 추운 겨울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이상갑 회장은 신바람 나게 눈싸움을 하는 미인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아마도 같은 또래의 젊음이었다면 한바탕 어울려 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모처럼 흘러간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는 그리운 장면이다.

드디어 황포돛배 나루터까지 왔다. 이곳의 명칭은 "임진강 두지 나루터"다. 겨울철이라 운항을 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손님이 한 사람도 없다. 말 그대로 적막이 맴도는 쓸쓸한 나루터다. 여기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스탬프를 찍기 위해 스탬프가 설치된 곳을 향해 걸었다. 긴 다리 위를 걸을 때 찬 바람이 몹시 불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허허벌판의 칼바람이다. 완전 무장을 하였지만, 손과 발이 시려 오면서 칼바람이 몸을 파고들어 몹시 춥다. 그런데 몇 번 이곳을 다녀간 곳이었다. 왜냐하면, 필자의 중시조이신 경순왕릉이 다리를 지나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제를 지내기 위해 버스로 이곳을 다녀갔다. 다만 단체로 다녀갔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정표를 보고서 알았다. 오늘은 역사적인 것을 관찰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보다 더 값진 둘레길을 걸은 것 같다. 파주의 벌판을 칼바람의 추위를 무릅쓰고 걸으며 사색도 하고 우정도 쌓고 인내심도 길렀다. 미인들의 눈싸움 하는 것을 바라보며 어느 때 보다 추운 겨울의 맛을 느낀 둘레길의 하루였다. 회원들과 잠시도 헤여지기가 섭섭하다. 이상갑 회장의 인사말을 한다. 여러분 오늘 즐거우셨는지요? 사자성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세일시(千歲一時) 천년에 한 번 오는 아주 좋은 기회란 말이다. 회원 모두 2018년 새해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말로 인사말을 맺는다. 회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2017년 12월 16일

함백산의 정상에 세워놓은 표석이 방긋 웃는다. (함백산 제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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