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사슴 같아여라.

 구약성서 아가서에서 솔로몬은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가서8:14)라고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고매한 인품과 순박한 성품, 그리고 우아한 자태를 지닌 여인이었던가를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저 푸른 들판을 자유로이 뛰어 다니는 사슴을 노래한 것이겠지만, 요즘에 와서는 우리에 갇혀서 자유를 꿈꾸며 먼 하늘만 오매불망(寤寐不忘)하는 사슴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슴은 나를 슬프게 하는 요소와 기쁘게 하는 요소를 다 지니고 있는 신비한 짐승이다. “목이 길어 슬픈 사슴이여!”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지만, 항상 기다란 목을 쳐들고 무엇인가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는 자태가 나를 슬프게 한다.

 곧게 뻗은 다리는 외딴곳에 서 있는 원두막 같아서 나를 슬프게 하고, 쫑긋한 두 귀는 항상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초조와 불안 속에 있는 것 같아 나를 슬프게 한다.

 무엇이 그리도 애절한 사연이 있는지, 호수 같은 맑은 두 눈에 동공 가득히 담고 있는 눈물이 나를 슬프게 한다. 사랑하는 임에게 잘 보이려고 지극 정성 다하여 고이 가꾸지마는, 어김없이 일 년에 한 두 차례씩 총 맞고 정신 잃었다가 깨어보면, 간데 온데 없는 뿔(녹용) 때문에 어리둥절 하는 모습이 나를 슬프게 한다.

 뿔이 잘린 것도 아까운데 피까지 빼앗기고, 머리에 붕대 두르고 아파하는 사슴이 가엽기만 하고, 나를 무지도 슬프게 한다. 또 가끔이긴 하지만 새끼 잃고 우는 그 구슬픈 울음소리가 나를 슬프게 한다. 나중엔 인정사정없는 인간의 몽둥이 맞고 쓰러져 모든 것을 다 주고 종국을 맞는 그 운명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슴은 그 어떤 여인에게서도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면이 나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 사슴의 경쾌한 발걸음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 훤칠한 키와 호수 같은 그 맑은 눈망울이 나를 기쁘게 하고, 매끄러운 갈색의 보드라운 털과, 희디흰 그 반점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쌍 태를 거느린 어미 사슴의 그 모성애가 나를 기쁘게 한다. 쉬지 않고 되새김하는 그 근면성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 온후하고 순결한 성품이 나를 기쁘게 한다. 엄마 아빠, 오누이들이 함께 모여 사는 그 군집생활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러나 이런 하잘 것 없는 이유들보다도 더 크게 나를 기쁘게 하는 요소가 있다.

 게스네르(Gesner)의 조사에 의하면 동물 중에 유일하게 사슴만이 쓸개가 없다고 한다. 쓸개가 없다는 말은 시기도 질투도 불평도 없고, 아무 원한도 없다는 뜻이기에 나를 더욱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 사슴을 예수님에 비긴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분노나 원한을 품지 않으셨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도 알지 못합니다.” 라고 용서의 기도를 드리시지 않았는가. (눅23:34)

 그리고 플리니(Pliny)는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고 부드러운 짐승은 사슴”이라고 했다. 물론 사슴도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평소엔 아주 온유한 짐승이라는 말이다.

 이런 성격 역시 예수님을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불의를 보고는 참지 않으시고 의분을 내신 것을 본다. 그러나 본래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리고 사슴은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한다. 잘 조화된 가락으로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듣기를 싫어하는 것이 있을까마는, 찬양 받으시기를 좋아하시는 우리 주님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노래하는 성도들을 닮은 것이 아니겠는가. 영혼의 갈망을 노래에 담아서 신령한 노래 부르기와 듣기를 좋아하는 우리 성도들 말이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 도다.”(창49:21)라고 하신 것과 같다.

현실의 고독과 부자유와 아픔을 소망으로 극복하고, 먼 미래의 서광을 목 길게 빼고 기다리며 이겨나가는 사슴, 그 사슴이 되고프다. 목이 길어 외로운 사슴이 되고프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노루와 사슴 같아여라.” 하신 말씀 같이 주께 사랑 받는 귀여운 사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