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12년 새해도 밝아 일주일을 지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매년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고르고 덕담을 담아서 존경하는 어르신들이나 선배, 벗이나 후배들에게 보내느라 신경을 쓰다가 어느새 새해를 맞곤 했었는데, 휴대폰이 대중화 되고 문명의 이기인 디지털폰의 다양한 서비스로 아날로그인 카드나 엽서를 사지 않아도 쉽게 안부와 덕담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인쇄업이나 카드를 생산 판매하던 기업은 이 겨울들이 더욱 냉기가 느껴지겠지만 대다수의 우리국민들은 저렴하고 간편하게 인사를 보낼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아날로그인 고전에 비해 디지털은 다소 가볍고 무성의하게도 비춰지니 정말 존경스럽고 어려운 분에게 문자로 연하장을 대신하기는 참으로 송구스럽다. 무성의하게 문자만을 보낼 수 없어 나는 매년 몇 어르신들께는 통신이지만 음성으로 일일이 인사를 드린다.

지난 연말에서 정초까지 내게도 많은 문자메시지의 새해 덕담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 인사말이 단체문자인 것을 느끼면 조금 얼굴이 찡그려지고 갈등한다. ‘이걸 답을 해줘 말아? 단체문자인 게 확실한데......’ 단체문자로 성의 없이 새해인사를 하려면 아예 아주 안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래도 답인사를 하였던 지난해들과 달리 올해는 단체문자에는 일절 답을 안했다. 그래저래 연말연시에는 인사치례로 신경이 쓰이게 된다. 그냥 넘어갈 수없는 그 인사 때문에.......

‘인사’ 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지금 말 하려는 인사는 ‘마주 대하거나 헤어 질 때 예를 표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통신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우편이나 유, 무선으로 하는 인사도 참 중요한 인사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사만 잘 해도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회나 가정에서도 생활이 다소간은 윤활해 진다.

내 젊은 시절, 그러니까 사회 초년병 시절에 나는 동료들과 함께 서울 시내의 한 전화국에 파견근무를 했었다. 각 전화국 마다 업무의 크기나 기간에 따라 상주하는 직원의 수는 다르나 언젠가 머물던 전화국에는 대 여섯 명이 상주하며 근무를 하였었는데, 이곳의 우리 회사 총 책임자인 소장은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라서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한 엘리트로 다른 부서에 근무하다 우리 부서로 와서 전화국 파견근무가 처음인 선배였었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 상대하고 협의를 하는 전화국 부서의 부장이 웬일인지 자꾸만 클레임을 걸고 별것 아닌데도 자꾸 꼬투리를 잡으며 업무에 방해를 한다. 부장뿐 아니라 그 밑의 과장이나 직원들도 별로 안 좋은 눈치들이다. 우리는 그저 깐깐한 직원들이니 그렇겠거니 했다. 물론 공정이 제 기간에 못 끝나면 그들도 책임이 있으니 힘들지만 그럭저럭 업무를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그러니 그들과 부딪히는 것도 꺼려졌었다. 그러던 중 소장인 그 선배와 다 같이 커피를 마시는 휴식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자연히 그 부장의 심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어느 선배가 그 소장에게 물어봤다.

“김 소장님! 혹시 부장님께 인사를 안 드린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김 소장이 갸웃하며 말했다. “아니? 인사를 해야 되는 거야? 내가 인사를 안 해서 그렇게 툴툴거리나?” “아이고! 김 소장님! 남의 집에 왔으면 일 시작 전에 인사를 잘 해야 협조를 잘 해주지요.” “내일은 다른 일 접고 필히 인사부터 하세요.” 했다. ‘그럼 그렇지. 그래 인사를 안 해서 부장님이 저렇게 심술을 부렸었구나.’ 우리는 인사를 김 소장에게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했다. 그리고 김 소장은 다음날 부장에게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부터는 부장이나 전화국 직원들의 행패가 더 심해 졌다. 이제는 거의 업무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까지 되었으니 이게 웬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업무를 잠시 접고 다시 모였다. 그리고 김 소장에게 물어 봤다. “김 소장님! 부장님에게 인사는 확실히 했어요?” “그래 분명히 어제 인사를 했어.” “아니 어떻게 인사를 했기에 부장님이 전보다 더 심해요?” 그랬더니 김 소장 왈 “분명 어저께 출근하자마자 부서에 들려서 인사 했는데?” “내가 분명히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아이고 참. 인사가 그런 인사가 아니고요~ 참 내!”

우리가 얘기 했고 전화국 직원들이 원하는 인사는 그런 고개 숙이며 하는 인사가 아니라 식사 대접을 이야기 했었는데, 순진한 김 소장은 부서에 들려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의례히 전화국에 처음 파견 되면 부장, 아니 국장에게도 저녁에 술과 식사 대접을 해야 했었고, 그들은 당연히 그런 자리를 고대 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인사이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그날은 박봉의 전화국직원들의 회식 자리가 되곤 하였었으니 얼마나 인사를 기다렸겠는가 말이다. 말하자면 접대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그런 인사는 우리나라 어느 사회나 공공연히 행해지는 관례가 되어 버렸다. 그것이 이 사회에 뿌리 내린 인사 인 것이었다. 하지만 선배가 한 인사도 틀린 건 아니다. 요즈음은 사회 각계에서 몰지각한 사람들이 종종 지나친 대가성 인사로 일간지 사회면에 사진을 올리는 범법자가 되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면으로는 김 소장이 했던 그 인사가 맞는 참 인사 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그런 인사로는 충분하지 않는가 보다.

덕분에 우리는 더욱 괴롭게 업무를 해야 했고 급기야는 본사에서 관리자가 와서 사과하고 제대로 인사(접대)하고 나서야 부서의 협조를 얻어 원만히 공정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런 인사는 이 사회에서 빨리 사라져야 될 잘못된 인사 일 것이다.

그럼 ‘경례’ 는 무엇일까? 그것도 사전에서 찾아보니 ‘경의를 나타내는 예, 상대방에 대해 위해를 가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되어 있다.

옛날 샐러리맨시절, 매년 봄이 한창일 쯤에는 회사에서 오리엔티어링을 하곤 했었다. 해 마다 장소와 프로그램이 틀렸지만 그게 대기업에 다니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었었다.

한해는 청평의 한 호텔을 빌려서 오리엔티어링을 했는데 그 해의 주된 교육은 커다란 플라스틱 빈 물통을 엮어서 뗏목을 만들어 강물에 띠우고 한 팀이(8명 정도)타고 협동하여 노를 저어 지정된 포스트로 가서 주어진 과제를 풀고 다음 포스트로 향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이 과정은 리더의 지휘력과 팀의 협동심 그리고 업무의 이해정도가 잘 맞아야 보다 더 빨리 코스를 돌고 문제를 풀어 결승점에 골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회사의 본사는 여의도에, 우리사업부는 금천구에, 다른 사업장들은 각기 다른 도시에 분산되어 있었고, 공장은 구미에 있어서 같은 직원이라도 타 사업장의 직원은 거의 모르는 게 태반이라서 이런 교육이 있을 때라야 인사를 나누고 끝나면 다시 만날 때까지 잊어버리게 되었었다. 교육 기간 동안 업무의 마비를 막으려고 몇 차례로 나누어 치러졌으니 7,8차 정도로 나누어 그것도 매주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시행하였었다.

우리 팀은 그런대로 나와 같은 사업장의 친한 직원이 3명이 포함되어 나를 구심점으로 일사 분란하게 코스를 돌고 과제도 원만히 풀어서 일등을 하고 금메달을 수여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그 회 차의 본부장으로 임명된 모 상무님의 강평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것만 끝나면 우리는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갈 터였다.

우리는 교육실에 앉아서 상무님의 강평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잠시 후 상무님이 연단에 오르고 교육생 중 가장 선임이고 나이가 많아 연배가 상무님과 엇비슷한 본사의 모 부장님이 반장이 되어 일어나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체구가 유난이 작은 그 늙은 부장님은 일어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차렷!” 우리는 그 구령에 앉은 채 차렷을 하고 정숙했다. 그런데 다음 그 부장의 구령에 교육장은 웃음의 도가니로 변했다. ‘차렷’ 다음의 이어지는 구령은 ‘경례’를 기다렸는데, 그 부장님의 다음 구령은 작은 소리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보통 ‘차렷’ 다음에 커다란 소리로 ‘경례’라는 구령이 들어가야 하는데 ‘차렷! 인사!’ 라니 “하하하하” 모든 교육생이 배를 잡고 웃고 상무님도 웃었는데 그 부장님만 왜 웃는지 모르는 듯 어리둥절하고 당황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웃은 후에 상무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박 부장님! 다시하세요! 하하하” 그런데 다시 하는 부장님의 구령은 변함없이 “차렷! 인사!”였으니 우리는 다시 또 배꼽을 잡을 수밖에. 그 작은 체신으로 보아 아마도 그 부장님은 군복무를 면제 받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학교에서 누가 안 가르쳐 줘도 ‘차렷 경례!’ 하는데 두 번이나 ‘차렷! 인사!’를 외치시니....... 한참을 우리와 같이 웃던 상무님이 그 부장님에게 “됐습니다. 박 부장님. 그냥 앉으세요.” 하며 경례를 생략하고 넘어 갔다.

하지만 그 부장님의 구령도 틀린 건 아닌데 어언 우리는 “차렷! 경례’ 에 익숙해져 버려서 ‘차렷! 인사’가 생소해져 버렸다. 그래서 그 부장님이 무안하도록 배를 잡고 웃었던 것이다. 마주 대할 때 예를 표하는 ‘인사’ 나 경의를 나타내는 ‘경례’나 무엇이 틀렸다는 것인가? 인간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틀렸다고 깔깔대고 웃거나 비판하기를 주저 하지 않는다.

예전에 한강에 건설 중인 신행주대교가 공사 도중에 맥없이 무너진 적이 있었다. 그 시절 경기도 파주의 용주골에는 2,3층의 일반가옥을 개조해서 술과 색을 파는 홍등가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곳 용주골 색주가 아가씨(?)들은 그 다리가 안 무너지면 정상이 아니라고 했었단다. 시멘트 사고 철근 사서 튼튼히 다리를 지으라고 준 돈으로 용주골에서 밤새 퍼 마시고 한강위의 다리가 아니라 자기들 두 다리사이인 사타구니에 공사비를 들이 붓는데 어찌 안 무너지고 배기냐는 것이었다.

건설회사의 간부들이 감독관청공무원들과 파주 용주골에서 그놈의 잘못된 인사를 한다고 주색잡기로 밤을 새우며 다리건설비를 쏟아 부었으니 어찌 부실공사가 안 되며, 그런 다리가 무사히 건설되어도 언젠가는 성수대교처럼 무너질게 뻔하다. 그러니 차라리 건설 중에 다리가 무너진 게 인사사고 없이 다행이라고 용주골의 아가씨들은 비웃었었단다.

이제 세계에서 10위권의 경제 강소국인 대한민국도 더는 물질로 하는 인사를 바라지도 말고 그저 내 일을 주어진 금전으로 최고의 자재와 최고의 기술자가 성심껏 일해서 고품질의 제품을 공급받기를 바라야 될 것이다. 인사는 그저 “안녕하세요?” 하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면 참 인사가 되고 경례는 암묵적으로 결정된 군대식 경례가 아니더라도 웃지 않는 공경의 경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참가정교육이라고 했던가?

나는 몇 년 전 부모의 장례식에 정성을 보내주셨던 지인이나 선후배들에게 일을 치른 후 몇 일내에 일일이 전화를 하여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게 예의고 감사의 인사다. 전에는 집안에 큰 일이 있어 치르고 나면 다녀간 하객이나 조문객들에게 서면이나 전화로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했었고 대부분 집안들은 지금도 그렇게 인사하고 있다. 대사를 치른 후에 아무런 액션이 없는 친구들을 보면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런 친구들에게 나는 종종 큰일 후의 인사를 이야기하곤 하면서 그런 게 작은 것이지만 바른 집안인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요즘 속어)집안인가를 가늠하는 예의범절 이라고 핀잔하였었다.

우리 아이들도 돈 별로 들지 않고도 집안 가정교육의 정도를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예절이 바른 젊은이라는 말을 듣도록 참다운 인사를 잘하는 사회구성원으로 자리하기를 이 정초에 다시 한 번 바래본다.

2012년 1월 정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