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 말기, 초왕(楚王) 항우(項羽)와 패공(沛公) 유방(劉邦)은 진(秦)의 수도 함양을 향해 각기 하북과 하남에서 진격을 하였다. 함양을 먼저 점령한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된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함양을 먼저 점령한 것은 유방이었다. 그러나 군사력이 미치지 못하는 유방은 함양의 모든 재물과 궁궐을 그대로 둔 채 패상(覇上)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한편, 유방이 먼저 함양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항우는 노하여, 유방이 지키는 함곡관(函谷關)을 깨뜨리고 들어와 신풍(新豊)의 홍문(鴻門) 산자락에 포진하였다. 그리고 군사(軍師) 범증(范增)의 다음과 같은 권유에 따라 병사들을 휘몰아 유방군을 토벌하려 하였다.

“유방이 산동에 있을 때는 재물을 탐내고 계집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함곡관에 들어 온 이후로는 재물을 취하지도 않고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뜻이 결코 작지않다는 증거입니다. 속히 공격하여 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항백(項伯)을 통해 이러한 항우군 측의 움직임을 알아챈 유방은 근위병만을 거느린 채 항우에게 사과의 방문을 하였다. 이렇게 하여 열린 모임이 그 유명한 홍문의 연(宴)이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미리 범증의 지시를 받은 항장(項莊)이 흥취를 돋운다는 구실로 검무를 추며 유방을 찌르려 하자, 항백이 급히 칼을 뽑아 들고 춤판에 끼어 들어 같이 검무를 추며 유방을 방어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유방의 책사(策士) 장량(張良)은 급히 군문 밖으로 나와 번쾌를 찾았다.

“아주 급하다. 지금 항장이 칼춤을 추고 있는데, 그가 계속 패공을 노리고있다.” 이 말을 들은 번쾌는 제지하는 위사(衛士)들을 쓰러뜨리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 휘장을 젖히고는 찢어진 눈으로 항우를 노려보았다. 항우는 칼을 잡고 벌떡 일어나 물었다. “이 자는 누구인가?” “패공을 시위하는 장수입니다.” 장량이 대답하자, 항우는 번쾌의 기상을 가상히 여겨 말하였다. “이 자는 장사로구나. 술 한잔을 주라.” 주위에서 큰 잔에 술을 가득 부어주자, 번쾌는 감사의 예를 표한 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익히지 않은 돼지 다리를 썰더니 그대로 씹었다.

이를 본 항우가 “장사로다. 더 마실 수 있겠는가?” 하고 묻자, 번쾌가 대답하였다. “신은 죽음도 피하지 않는 사람인데 어찌 술 한 잔을 사양하오리까.”

그래서 검무는 흐지부지 끝나고 유방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로 이렇듯 두주불사(斗酒不辭)는 본래 장수들의 기개를 표현하던 것이었으나 뜻이 변하여 주량이 센 사람의 최고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가 술이 약하고 문약하며 권하는 술을 사양한다면 어찌 호탕한 대장부라 할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사나이의 척도는 종종 주량으로 판단하기도 하였으니 역시 대장부는 두주불사의 주량이어야 진정한 대장부인 것이다.

와인, 꼬냑, 위스키, 보드카, 고량주, 샴페인, 데킬라 등등등……. 그 기라성 같은 세계의 명주 대열에 우리의 전통주 막걸리가 세계인의 명주로 부각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오늘은 우리나라에 올라오던 태풍이 고맙게도 살짝 동해안으로 머리를 틀어 빠져나간 여름날 오후. 금방 만들어 뜨끈뜨끈한 두부를 안주로 막걸리를 한잔하며 지금의 내 주량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딱히 두주불사라고 하긴 무리가 있으나 술의 종류를 안 가리고 어느 술이나 잘 마시는 편이지만 양주는 가급적 피한다. 그게 술값이 비싸서 라기 보다는 전에 사업을 하면서 거래처 접대를 하기위해 술자리를 갖으면 거의 대부분 양주를 마시게 되어 다음날 출근하고 나서까지 술기운이 머리와 장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날에는 양주의 독한 기운이 나의 식도를 타고 올라와 입안에 머무르며 나를 불쾌한 기운으로 온통 채우기 때문에 술을 골라서 마실 수 있는 지금은 양주라면 되도록 사양하는 편이다. 그래도 나는 남들처럼 나이에 반비례하여 주량이 줄거나 하지를 않아서 종종 음주를 즐기는 편이다.

아내는 과음을 하고 난 다음날엔 출근하는 나에게 “좋아하는 여행도 하고 글도 쓸려면 오래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술의 양을 줄여요”라고 매번 종용을 한다.

내가 군을 전역하고 곧바로 모 회사에 입사하여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시절, 그 당시 사내강사로 들어오신 모 부장님이 어디에 나오는 글인지 모르는 한자를 칠판에 써 주면서 말씀하시던 말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후배들에게 써 먹는 오직 한 소절이 있다.

‘무취수 취다병(無醉愁 醉多病)’

즉, 술에 안 취하면 근심이 많고, 반대로 술에 취하면 근심은 잊을 수 있지만 몸이 괴롭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음주를 예찬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고 보면 요즘같이 불쾌한 뉴스가 텔레비전 뉴스시간을 거의 메우는 시절에 ‘술이라도 없으면 어찌 상한 속을 달래고 살거나’하고 생각하며 술이란 놈은 나름 내게는 고마운 존재다.

물론 술에 취하면 금전적인 손실도 손실이지만 사람의 평소 성정이 다소 무너지고 간혹 실수도 하게 된다. 하지만 약간은 허물어지고 사는 게 진짜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특히 아내에게 책잡힐 기회를 주어 종종 아내의 작은 실수에 대한 나의 면박에 당당히 맞대응 할 수 있는 무기를 선사하는 것이니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근 칠팔년 전인가 보다.  당시 나의 큰아들이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이던 시절. 그래도 아직은 어렵사리 사업을 영위하던 시절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오후의 어느날이었다.

등교를 한 큰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집에 소주가 몇 병 있어요?” “갑자기 웬 소주를…….” “아니 그냥 요.” “글쎄…….한 두병 있는 것 같더라.” “아빠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저하고 술 한잔 할 시간…….” “어엉? 응! 그래 시간은 있는데……. 왜?” “그럼 소주 댓 병 더 사가지고 갈께요. 저녁에 뵈어요.” “어? 어어…… 그러자꾸나.”

나는 큰아들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사고의 혼란에 빠져 버렸다. ‘왜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하는 거지? 더군다나 두 병 있다고 했는데 대 여섯 병 더 사온다고 하니 과음이 될 건 뻔하고 내일 아침 숙취에 시달릴 텐데…….’ 나는 퇴근하고서도 큰아들을 기다리며 걱정의 높이를 쌓아가고 있었다.

‘이 녀석이 혹시 실연을 당했나? 아니면 학교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나?’

그렇게 걱정을 하고있는데 아들은 각종 인스턴트 안주와 소주 여섯 병을 양

손에 나눠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녀석아! 소주를 마시는데 과자 부스러기로 어떻게 안주가 되겠니?”

나는 아내의 등을 떠밀어 근처 순대국집에서 술국안주를 사오라고 했다.

낮에 아들과 통화했던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내는 역시 근심을 한 보따리 안고 있다가 두 말 없이 냄비를 챙겨 들고 국밥집으로 갔다.

나는 술상을 셋팅하고 이내 아내가 사온 술국을 렌지에 데워서 아들과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들이켰다.

얼마나 심각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 궁금했으나 “무슨 일 있었니? 안 좋은 일이라도….?”하고 묻는 내게 아들녀석은 “소주 몇 병 더 마시고 말씀드릴께요.” 하니 나는 그저 “알겠다.” 하고 아들이 따라 주는 소주만 거푸 입에 털어 넣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대여섯 병 마셨던가? 드디어 아들은 오늘 술을 마시자는 이유에 대하여 털어놓았다. “제가 말이죠.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에 나가야 하는데 술자리에서 상대 손님들보다 먼저 취해서 쓰러지면 곤란할 것 같아서 제 주량이 얼마인지 시험해 보고 약하다 싶으면 자주 술을 마셔서 주량을 늘리려고요. 거래처 손님보다 술이 약하면 아무래도 영업 술자리에서 곤란하겠지요?” 그 말을 들은 나와 아내는 뻥 하니 아들녀석을 한참 바라보다 어이가 없어서 몸에 남은 기운이 쪼옥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허탈한 기력으로 “예끼 이 녀석아! 어이구~ 그럼 미리 그렇다고 말을 하지. 우리는…….하하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한 가득 불안을 안고 술을 마셨으니…….

그리고 아들과 나는 술을 한 병씩 더 마셨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별다른 일이 없으니 안심도 되면서 슬그머니 화도 나고…….

결국 다음날 아침, 과음으로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해놓고 오후에 출근을 했는데, 아들은 그래도 젊어서 인지 주량이 나보다 세서인지 아침에 일어나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씩씩하게 등교를 하였었다.

‘주량’이란 단어를 사전에서는 ‘마시고 견딜 정도의 술의 분량’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주량은 얼마나 될까. 나는 소주 2병 정도면 딱 기분이 좋고 다음날 기상도 상쾌한데, 그냥 한 병을 마시고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시면 그냥 그 맥주가 쥐약이 되어 다음날 아침 필름이 종종 편집을 당하곤 하고, 때로는 그때 그때의 컨디션에 따라 견디는 술의 양이 다르나 그저 나의 주량은 소주 두 병 정도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는 커서 절대로 술을 안 마신다고 작정을 하고 또 작정을 하였었다. 그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취해 들어오시면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하시는데, 나중에는 육탄전까지 불사하여 그럴 때마다 우리 형제들은 싸움을 말리며 많이도 울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잠을 못자고 불안에 떨어야 했었다.

나는 ‘술이 뭐가 좋다고 매일 술을 드시고 식구들을 괴롭히시나’하며 그런 아버지를 경멸하고 ‘나는 커서 절대로 술을 안 마시겠다.’라고 각오를 다지고 다졌었다.

하지만 씨는 못 속인다고 70년대 중반 영등포 연흥극장 뒤의 민속주점 ‘원두막’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동동주를 마셨었는데, 나는 역시 술잔을 입에 대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술자리가 무르익자 한 녀석의 제안과 수고로 레이디들과 합석을 하여 술과 대화를 나누다가 같이 합석한 옆 자리의 숙녀가 술을 잘도 마시며 내게 “남자가 술도 한잔 못해요? 그래도 남자예요?”하면서 핀잔을 주는 바람에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왜…….”하고 그토록 쟁맹했던 금주의 결의를 어기고 동동주 두 잔을 마셔버렸다. 자리가 파하고 친구, 숙녀들과 헤어져 영등포에서 그때 당시의 나의 집인 신길동까지 30여분 걸어오면서 묘한 기분과 착잡한 심정이 되었는데, 그 팜므파탈의 한 마디에 나의 20년 금기가 깨어져 버린 데 대하여 화도 나고 허탈하고 어이도 없었으며, 나에게 실망도 컸었다. 때마침 가느다란 실비는 끈질기게 내려서 나의 구두 콧등과 가슴을 그토록 아리게 핥아대던지…….

깨진 금기는 이미 금기가 아니었다.

그 후로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2년 여를 일주일에 두세 번 사 홉들이 소주 두병정도 마시고 귀가를 하여도 “저녁 먹었어요.”하고 어머니께 말하고 내 방에 들어와 자고 나서 아침에 출근을 하였었지만, 입대 전날까지 내가 그렇게 까지 싫어하던 술을 마시고 다니는 걸 어머니는 까맣게 모르고 계셨었다고 했었다. 가끔 내 흐트러진 자세에 의혹이 일어도 ‘설마 제 아버지에게 데어버린 술을…..?’하고 말이다.

군에 입대 해서도 휴일 날 보초를 나가다가 회식이 있어 참석을 못하게 되면 회식을 준비하는 선임하사에게 양해를 구해서 ‘딱 한잔만 하고 초소로 가겠다’고 하면, 멋 모르는 선임하사는 보초를 나가도 한잔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쾌히 허락을 하면 나는 술 욕심에 2홉들이 소주를 그냥 한입에 나발불어 버렸다. 그런 나를 보고 선임하사는 “저런 저런 저 녀석…….”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면, 나는 씩 웃으며 “한잔 맞잖아요. 입 안 떼고 마셨으니.”하고 입술을 쓰윽 훔치면서 소총을 둘러매고 초소로 향하곤 하였었다. ‘잔도 잔 나름이지.’하며 으쓱 어깨를 추스르면서…….

지금도 종종 만나는 그때 술자리에서 ‘제안과 수고를 해준’ 그 동창 친구녀석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너 때문에…….’하고 원망을 해야 할지……. 하지만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건 내 운명이고 나에게 DNA를 물려주신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이기 때문에 싫지는 않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얻고 기르면서 종종 지인들이 ‘아들들에게 바라는 희망사항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두 녀석과 어울려 포장마차에서 소주잔 기울이는 희망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운다고 농담을 하곤 했었다.

그런 농담 반 진담 반의 희망사항은 이미 이루고 넘쳐서 때론 지나치지만 역시 그 할아버지의 손자이고 그 아버지의 아들이니 다만 만취를 해서 술기운에 큰 실수를 범하지 않고 적당히 비틀거리며 오뚝이처럼 이 험난한 세상을 무난히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내 젊을 때의 주량을 생각하면 사회에 나와 입사를 하고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가 생각난다.

1980년 한참 더운 여름인 그때 우리 동기생들은 약 한달간 교육을 받았었는데, 각 지방에서 선발된 인력과 서울의 인력을 합쳐 한 4,5십 명쯤 되었었는가 보다.

서울 출신들은 집에서 출퇴근하지만 대전, 부산, 광주 등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회사 인근의 여관에 숙소를 정해놓고 있었으며 교육이 끝나면 대부분 자기 연고의 출장소로 발령을 받을 터였다.

그런데 그 중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는 건장하고 강한 인상에 하루만 안 깎아도 덥수룩한 수염으로 우리는 그를 ‘산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었다. 그 친구는 교육이 끝나면 모두 서울로 발령을 받는 줄 알고 부모님에게서 말씀 드리고 방을 얻을 얼마간의 목돈을 마련해왔었던가 보다.

교육의 과정을 팔부 능선쯤 지난 어느날, 우리들은 이미 ‘서먹’이라는 단어는 멀찌감치 팽개쳐버린 때였다. 그때 서울출신의 친구 A와 이 산적녀석이 자신들의 주량에 대하여 서로 자랑하다가 급기야는 술 내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승부에 불타는 그들은 토요일 교육이 끝나고 퇴근 후 회사 인근의 포장마차에 들려 “아저씨! 포장 내리고 손님 받지 마세요. 오늘 이 포장마차 우리가 몽땅 접수합니다.”하고 외쳤다 나?

그리고 둘은 똑같이 소주를 마시고 마음껏 안주를 먹으며 먼저 떨어진 사람이 술값을 전부 치르기로 하였단다. 주인아저씨는 심판을 보면서 덤으로 술도 한잔하고 있다가 진 사람에게 술값을 몽땅 받기로 하였으니 그 아저씨는 그날 완전히 횡재를 한 셈이었다 나?

그때 그 포장마차에는 소주가 두 박스 정도가 있었다고 했었는데, 아저씨가 심판을 보면서 마신 두어 병 술을 제하면 결코 작지 않은 양이었다 나?

그렇게 아저씨의 공정한 심판으로 술병을 비우다 보니 어느덧 제법 밤이 꽤 깊었다던가? 소주박스도 제가 품었던 소주들을 거의 다 비워주고 빈 가슴으로 허전할 즈음, 똑같이 잔술을 입에 털어 넣던 중 일순간, 드디어 산적이 먼저 술을 마시던 그대로 술잔과 초고추장, 그리고 안주를 얼굴에 박고 쓰러지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월요일 출근한 서울친구 A의 얼굴과 팔을 보니 울긋불긋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는 궁금하여 물어봤더니 술내기를 하여 자신이 이겼고, 결국 술에 떨어진 산적을 두드려 깨워 방을 얻으려고 가져온 돈을 털어서 술값을 냈으며, A는 만취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집에 까지는 잘 갔으나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집 앞의 잔디밭에 쓰러져 골아 떨어져버렸고, 밤새 모기들에게 혈(血)보시를 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그날 시간만 나면 둘러앉아 그들의 무용담을 떠올리며 박장대소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런걸 보면 간접적으로 비교를 해봐도 나의 주량이 그들에 훨씬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오십 줄에 들어선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친구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딸려 금주를 외치거나 절주를 외치는데 비해 나는 아직도 왕성하게 술을 즐기니 말이다.

교육이 끝나고 A와 나는 서울로 발령이 났고 산적은 고향인 전라도 광주출장소로 발령이 나서 각자 근무를 하며 헤어진 지 20여년이 지났을 때였었다.

처가쪽의 인척 결혼식이 광주에서 있어서 광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산적을 만났다. 반갑게 근황을 묻고 연락처를 나누고 그와 헤어지고 난 뒤, 택시에 올라 아내에게 그 산적의 내력에 대하여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해줬다. 그랬더니 앞에서 조용히 운전을 하던 기사 아저씨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가 한 말씀하셨다.

“우리는 술과 안주뿐 아니라 그 술집의 여자까지 싹쓸이(그때는 일본말로 ‘아도’라고 했던 것 같다.)합니다.”

2010년 8월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