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꺼져있어 어쩌고 저쩌고…….”

몇일 전부터 날 떠난 내 휴대전화기는 계속 무표정하고 건조한 음성만 내 귓속에 메워넣고 있다.

그 동안 사용하던 내 휴대전화기가 지난 수요일 버스, 전철, 택시를 타고 다니다 어디서 흘렸는지 모르게 내 바지 주머니에서 가출하여 내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주웠으면 내 호출에 응답을 할 텐데, 도로변에 남아있는 눈구덩이에 빠졌는지 도로에 떨어져 부숴졌는지 전원이 꺼져있어 통화가 불가하다는 안내음성만 변함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긴 이미 사용한지 5년이 넘고 구형의 제품에 크기도 계란만하게 작아서 내 덩치에도 안 어울리고 낡았으니 새것으로 바꾸라고 아내는 종종 종용을 했었지만 그간 정이 많이 들어 암탉이 알을 품듯이 아껴온 휴대폰인데, 이제 내 곁을 떠나고 나니 많이 서운하고 아쉽다.

우리집 아이들은 모두 장성하여 각자 휴대폰을 지니고있으니 집에 고정된 유선전화의 필요성을 느끼지않아 그저 각자의 휴대전화에만 음성통신을 의존하고있다가 내게 휴대폰이 없이 살아온 요 며칠은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가족들에게 연락도 못하고 그저 퇴근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며 지인들에게 연락도 거의 두절하게 되었다.

휴대폰이 없던 그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었는지…….

나는 1980년에 군을 전역하자 마자 대기업의 계열사중 통신사업을 하는 회사에 입사해 많은 관련교육도 받았고 정보통신업에 주로 종사하며 살아왔다.

입사 때만해도 우리나라 통신수단은 전화국에서 연결된 구리선을 통해서 송수신을 하는 유선전화가 거의 유일하였었다.

교육을 받고 처음 출장근무를 하기 시작한 그때 당시의 전화국 교환실은 창문이 전혀 없어 실내공기가 무척 탁했고 출입도 까다로워 국가기관에 의뢰해서 신원조회를 받고 결격이 없는 사람만 사전에 명단을 제출하고 신분을 확인하여 출입을 할 수 있는 까다로운 곳이었다.

전화국은 그때만 하더라도 유일한 국가의 신경계와 같은 무척 중요한 통신시설들이었다.

물론 군에 군사용 무선통신장비가 보유 되어 작전에는 차질이 거의 없겠으나 이 통신시설이 무너지면 민간과 정부 모든 부처들은 의사소통이 막혀 일대 혼란이 예상되었었다.

신입사원 당시에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전화국들이 창문이 없게 건설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언제인지 모르나 예전에 서울의 한 전화국 교환실에 유리창문을 깨고 수류탄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수류탄은 불발이 되어 대형사고를 면하게 되었고, 이후 다른 유사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전화국에 있었던 유리창문을 벽돌로 꽁꽁 틀어막고 출입자의 신원확인도 강화되었다고 한다.(지금은 다시 창문을 내고 있다.)

그렇게 유선전화에만 의존하던 우리나라 통신사업은 1980년대 중반 아날로그무선전화를 도입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휴대전화는 몸체의 크기도 크지만 주로 자동차에 탑재를 많이 하였고 가격도 그 당시 몇 백만원을 호가하니 서민들은 엄두가 나지않았었다.

그저 서민들은 그 후에 도입된 호출소리가 ‘삐삐삐’한다고 하여 ‘삐삐’라고 부르던 호출기 ‘Pager’를 애용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삐삐’는 급속도로 국민들에게 보급이 되어 이동 중 통신수단의 매개체로 널리 활용되었었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의 필수품이 된 우리나라의 디지털이동통신기술은 국내에서 개발되어 1996년 4월 인천직할시에서부터 상용화하여 이용하게 되었는데 핸드폰, 핸디폰, 휴대폰이라고도 불리는 이 무선통신수단은 정확한 용어로는 셀룰러폰(Cellular Phon)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셀룰러는 ‘세포의’라는 영어단어로 기지국단위의 세포 같은 통신영역을 통해 이동전화를 할 수 있게 개발된 통신시스템인 것이다.

나는 1994년도부터 이 디지털이동통신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었는데, 대전시의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이동통신사연구소에 교환국 및 기지국시설을 건설하는 현장책임자로 근무하면서 우리회사와 이동통신사의 연구원들과 같이 호흡을 같이하며 국내 최초의 이동통신시설 준공에 한몫 하였었다.

그 후 전화국에서만 근무하던 전의 유선업무와는 달리 이격 되어있는 몇 개의 기지국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서울에서의 업무상 그때까지도 귀하던 아날로그휴대전화가 업무용으로 지급되었었는데, 이동하려고 버스나 전철을 탔다가 양복 안주머니에 품고있던 휴대폰에서 ‘삐리리리~’하고 벨소리가 울리면 승객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며 의아해 하다가 내가 통화를 하면 신기하면서도 알 수 없다는 뜻인지 모두들 시선이 내게 쏠리곤 하였었다.

‘저렇게 비싼 휴대전화를 지닌 사람이 자가용을 탈것이지 왜 버스를 타고 다니지?’ 하는 눈초리들이었었다.

마치 천만원을 호가하는 모피코트를 입고 시내버스를 탄 귀부인을 쳐다보듯이…….

우리들은 개발되는 새로운 방식의 휴대전화에 최첨단 디지털이동통신에 맞는 품격 있는 새 이름을 붙여줘야 되지 않느냐는 의견으로 그때까지 휴대폰, 핸디폰, 핸드폰, 무선전화 등 구식의 이름을 탈피하려 의견을 모았었는데, 그 중에 이동하면서 통화를 할 수 있으니 ‘모빌폰(Mobile Phon)’으로 하자고 하였다가 ‘움직이는 쇳덩어리인 자동차도 모빌을 쓰고있는데, 섬세하고 첨단의 정보통신수단을 어떻게 같은 모빌이라 부르느냐’하고 결국 Mobile의 미국식 발음인 ‘모빌’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표현으로 Mobile의 영국식 발음인 ‘모바일폰’이라고 부르기로 했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상용화된 CDMA(코드분할다중화장치) 디지털휴대전화는 이제 우리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문명 이기가 되었고 상용화 된지 15년 만에 속속 더욱 진화된 신제품이 출시되고있으며, 국내 대부분의 휴대폰시장점유는 물론이고 전세계 각국의 총수출량 중 30%정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대표 수출품목으로 자리잡았고, 심지어 허리우드영화에서도 국내브랜드휴대폰이 명품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정보통신분야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화해나가고 있으며 다각적으로 우리의 영토를 덮고 있다.

KT전화국과 하나로통신이 땅 거죽과 땅속을 누벼서 영토를 덮었고 이동통신 3개사는 우리나라 영토의 하늘을 촘촘히 덮었으며, 이밖에도 한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이끈 인터넷용 광케이블이 각 가정과 산업체들을 이어주고 한국전력의 전기시설을 이용한 망과 도로공사의 도로를 따라 매설한 망 등 여러 각도로 나라전체를 거미줄 같이 연결하고 있어서 지금은 어느 한 전화국이나 시설들이 테러를 당하거나 재해로 일시간 못쓰게 된다고 하더라도 전국의 통신망은 그다지 심하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몇일 간 내가 불러도 무표정하게 안내맨트만 해대는 잃어버린 조강지폰(糟糠之 Phon)을 포기하고 새로운 새 상품의 기기에 종전의 내 전화번호를 기억시켜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아쉬운 마음도 그러하지만 아주 오래 전의 지인들 전화번호는 작은 내 수첩에 그냥 남아있어 다행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얻은 전화 번호들은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고 분실된 휴대폰과 함께 나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몇 년 전 일간신문에 어떤 분이 올려놓은 짧은 칼럼을 읽어 본적이 있다.

그 제목이 ‘디지털치매’로 되어있었는데, 의학적으로 ‘정신적인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 즉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 본질적으로 상실된 상태’인 치매를 왜 디지털과 합성 시켰나 하고 호기심에 읽어봤더니 ‘디지털 기기인 휴대폰에 자주 통화해야 하는 연락전화번호를 입력 저장해놓고 편리하게 사용하다가 휴대폰이 망가지거나 분실되어버리면 그 중요한 전화번호를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를 디지털치매라고 부른다’고 하였었다.

나도 이제 그 디지털치매로 말미암아 많은 지인들의 연락번호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그 분들이 거꾸로 나에게 연락하기만을 기다리고있어야 하니 참으로 딱하게 되었다.

심지어 형제들과 두 아이의 휴대전화번호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디지털치매 예방을 위하여 미리 수첩에 손글씨로 전화번호를 적어두는걸 게을리한 죄로 앞으로 얼마동안이나 디지털치매를 겪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나지만 지난 토요일 직장동료들과 함께 스키를 타러 갔던 큰아들도 스키장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분실하고 어제 일요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나와 큰아들을 보고 아내는 애써 내색을 하고있지 않지만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어쩜 저리도 똑같이……쯧쯧쯧.’

2010년 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