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4월 끝자락답지않게 강풍이 불고 날씨가 무척 쌀쌀하다. 거기에 삼일째 차가운 비도 내린다. 아마도 천안함 46용사의 추모 기간이라 하늘도 노랗게 소용돌이 치고 피눈물 같은 끈적한 비를 뿌리는가 보다. 하긴 작년 봄에는 나라의 국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도 하였으니 연이어 2번의 봄을 온 국민들은 슬픔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 하는 4월이 올해는 ‘빛나는 꿈의 계절’이 아니라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로 마무리 되어지고 있다.

모처럼 집에 머무는 오후.

오늘은 저녁에 할아버지 제사가 있는 날인데, 바쁜 아내를 대신하여 동태전과 두부전, 산적 등 일부 제수음식을 내가 조리하기로 하였다.

작년 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달 사이로 떠나 보낸 후 4월과 5월의 달력에는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기제사일이 촘촘히 들어앉아있다. 전달 중순에 할머니 제사를 필두로 이 달에만도 두 번째 제사다. 자주 돌아오는 제사인지라 간단히 차리려 해도 기본 진설은 하여야 하므로 제사상에 올릴 제수장만도 만만치 않다. 포와 조기는 빠져서는 안되고 육적과 소적, 어적은 기본이고 삼탕과 삼색나물 조율시이(棗栗枾梨)의 과일은 올려야 하겠기에 경비도 적잖게 지출되어진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이라는 속담을 절감하고 있는 올해의 봄이다.

전에 연로하신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도 제사는 나의 주관아래 지냈었지만 아버지가 안계신 지금은 더욱 내 의지대로 행사를 치르고 있다.

제사에 참여하는 가족이라야 3형제의 가족이 거의 전부이니 항상 10여명 남짓인데 그나마 여자 조카아이 하나는 기독교 신자라고 절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을 하고싶지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할 뿐 강요할 사항은 아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웃으면서 담담히 이야기한다.

제사를 모시는 건 조상숭배가 아니고 그저 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조상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그 분들을 추억하는 자리라고. 그러니 굳이 절을 하지 않아도 되며 기도로 대신해도 된다고.

그러고 보면 카톨릭이나 불교에 비해 개신교는 유일신에 대한 교칙이 지나치도록 엄격한 것 같다. 그냥 설날 부모나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정도로 생각해도 될 일인데 말이다. 하긴 우리나라의 제사 풍습은 조선시대에 유교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불교의 영향을 다소 받아서 종교적인 면도 없지는 않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면 과일을 진설 하시면서 “대추는 씨가 하나이니 군왕을 뜻하고 두 번째 놓는 밤은 한 송이에 세 개의 밤톨이 들어 있으니 삼정승을 뜻하며 세 번째의 감(곶감)은 씨가 여섯이니 육판서를 뜻한다.”고 종종 내게 말씀 하셨었다.

그런 저런 생각에 제수음식의 의미를 찾아 봤더니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정설인지 전설인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제사상에 깃 들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종종 말씀하시던 과일은 그 외에도 밤의 한 가운데 알은 영의정을 뜻하며, 좌측은 좌의정, 우측은 우의정을 상징하며, 네 번째 진설 되는 배는 씨가 8개이니 팔도관찰사를 의미하면서 그것들은 모두 그런 자질이나 벼슬의 후손들이 탄생되길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그 외의 과일은 나무에서 나는 과일, 넝쿨에서 나는 과일, 유과, 약과 순으로 올리는 것이나 사실 순서나 종류가 딱히 정해진 것은 없으며 그때그때 나오는 싱싱한 과일을 정성껏 올리면 된다고 한다.

다음의 삼색(三色)나물은 대표적으로 뿌리채소 인 도라지(무나물)는 조상을 의미하며, 줄기채소 인 고사리는 현세를 사는 우리 모습이고, 잎채소 인 시금치(미나리)는 후손을 의미하여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한다고 한다.(여기 까지는 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이다.)

탕도 삼탕(三湯: 육탕, 소탕, 어탕)은 각각 천(天), 지(地), 인(人) 을 의미하며 오탕(五湯: 봉탕(鳳湯)과 잡탕(雜湯)추가)일 경우에는 오행(五行)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삼탕은 제사상 진설의 기본으로 ‘빈곤함에 제사를 못 모실 경우라 하더라도 삼탕은 놓고 제를 올려라. 그도 어려우면 정한수라도 떠서 올려라.’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적(炙)도 육적(肉炙), 어적(漁炙), 소적(蔬炙)으로 네발 달린 고기인 육적과 바다의 고기인 어적 그리고 땅에서 나는 채소로 소적을 하여 상에 올려서 조상이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맛볼 수 있게 배려한다고 한다.

조기와 북어(北漁)도 과거에는 구하기 어려워 그만큼 조상에게 성의와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조기는 서해를 상징하며 예전부터 생선의 으뜸으로 생각되어져 왔기 때문에 빠지지 않는 제수 품목이고, 명태는 동해를 상징하는 생선으로 머리도 크고 알이 많아 훌륭한 아들을 많이 두고 알과 같이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의미로 올린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생선도 올릴 수 있으나 혼을 쫓는다 하여 금기시하는 과일인 복숭아와 천하게 여기는 생선인 갈치, 멸치, 꽁치, 참치 등 치자로 끝나는 생선과 고등어, 방어, 정어리 등은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밖에도 홀수는 양(陽: 하늘)이라 하고 짝수는 음(陰: 땅)을 뜻하는 것이기에 제사에 올리는 각 제수들의 개수는 홀수로 해야 된다고 하며, 제사음식은 고춧가루나 마늘, 파 같은 향신료는 쓰지 않고 오직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고추나 파, 마늘은 귀신을 쫓는 음식이라는 점도 있지만, 사찰음식에서도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향신료인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은 수행에 방해가 되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조리문화는 우리나라의 불교가 약간의 샤머니즘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제사음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그 외에 더욱 불교적인 것이 하나 제사상에 깃 들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일의 위쪽만 살짝 깎아서 진설하여야 하는 이유다. 불교에서는 먹는 방법을 네 가지로 분류하는데 인간이 직접 먹는 방법인 단식(段食), 느낌으로 먹는 촉식(觸食), 상상으로 먹는 사식(思食), 끝으로 ‘인식이 생명을 연장한다’하여 공부를 하거나 경험을 쌓는 일, 즉 뇌를 먹이는 방법인 식식(識食)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영혼은 직접 먹어볼 수 없고 다만 볼 수만 있는 촉식을 하기 때문에 과일을 조금 깎아 속살을 접촉할 수 있게 하여 조상님들이 눈으로 음식을 감상하고 과일의 전부를 맛볼 수 있도록 느끼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그밖에도 제사음식에는 이러저러한 흥미로운 의미나 상징적인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 내용의 대부분이 결국은 조상을 효심으로 정성껏 모심으로 후손이 발복(發福)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원에 다다르게 된다.

국어 사전에는 제사를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그 중 선조 제사를 받드는 일을 봉사(奉祀), 또는 봉제사(奉祭祀)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조상숭배사상과 관련하여 제사에 관한 의례를 관(冠), 혼(婚), 상(喪)에 관한 의례와 함께 사례(四禮: 관혼상제)라고 부르며 중요하게 여겼었다고 한다.

사실 지방마다 집안마다 제사상의 진설이나 제사의 절차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남의 일에 쓸데 없이 간섭하는 사람을 빗댄 ‘남의 집 제사에 밤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한다’ 라는 속담이 있고 ‘남의 집 제사에 맞다 틀리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충고도 하고있다.

이제 우리의 제사는 옛 제사 방식이나 절차에서 벗어나 이 시대에 맞는 이 시대만의 제사로 진화하여야 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앎)적인 문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는 당장 번거롭고 불필요하다고 판단 되면 즉시 사장될지도 모르는 우리의 관습이 제사인 것이다.

앞에 열거한 여러 가지 제수의 의미들이 있고 물론 후손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원도 있지만 결국은 제사가 끝나면 참석한 가족들이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나누어 먹게 된다. 그러므로 커다란 구애를 받지 말고 제수음식 조리에 적당히 파나 마늘도 가미해도 무방할 것이며, 생전에 조상이 즐겨 드시던 음식을 상에 올리는 것도 꽤 괜찮은 제사상 차리기 일 것이다.

제사는 무엇보다 정성이 우선이다.

내가 가끔 시청하는 일요일 오전 11시 모 TV 방송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던 고화(古畵) 중에는 이동 중에 휴대하기 용이한 두루마리족자형태로 제작된 흥미로운 그림이 있었는데, 이 족자는 제사상을 그린 그림으로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이 장거리 여행을 하거나 객지에 오래도록 머물게 되어 제사상을 차리기 곤란할 때에는 이 두루마리족자를 지니고 다니다가 그것을 펼쳐 놓고 제사를 지냈었다고 한다. (이 족자에는 조선시대에 당상관도 거의 구할 수 없었던 그 귀하고 귀한 귤을 그려넣었었다.) 그런 걸 보면 조선시대에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정성이 우선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집안마다 제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서 어떤 집안에서는 성스러운 조상숭배의 의식으로 중시하기도 할 테지만, 우리집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에서 제사는 그저 하나의 친족행사로 조상에 대한 고마움과 그 분들의 생전을 기리며 집안의 역사와 조상의 훌륭한 업적이나 적당한 덕담으로 자손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은연중에 각인 시켜주면서 친족간에 화합과 친목을 나누는 기회로 잘 활용하여야 하는 몇 안 되는 우리민족의 정신문화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살아 있는 사람 위주로 음식을 장만할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귀찮다고 제사를 기피하지 않도록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제수음식을 장만하던지 제사상에 못 올리는 음식은 따로 준비를 하여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제사가 될 수 있다면 본래의 뜻에는 조금 어긋날 수 있지만 핵가족 사회를 살고있는 이 시대에서 친족, 아이들간의 대화의 장은 물론이고 우리 고유문화를 보존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런 것이 우리 아이들이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는 것)의 정신으로 제사문화를 발전시키고 자자손손 계승시키며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가정교육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모님이 작고하신 지금은 조부모님의 제사를 매년 내 생일 다음날 할아버지제사 인 오늘에 맞춰서 통합하자는 일부 가족의 의견도 있었으나 아내와 나는 되도록 날짜에 맞추어 조부모의 제사를 모시기로 하였다. 만일 그날 피치 못할 일이 있어 참석을 못하는 가족이 있으면 참석한 가족만이 조촐히 상을 차려 제를 올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그간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만남의 기회로 삼기로……. 통합이나 축소는 훗날 일이며 혹은 나의 조부모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증조부모가 되므로 우리 부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이들이 결정하고 집행하는 숙제로 남겨 놓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시간이 오래되어 제수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향할 시간이다.

이제까지 찾아본 의미들을 되새기며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오늘 밤에 제사를 지낼 때엔 몇 가지 제사상에 얽힌 이야기들을 형제 조카들에게 덕담으로 들려 주어야겠다.

2010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