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가 슬금슬금 내리는 저녁.

아내와 식사를 하려고 숟가락을 놓고 젓가락 짝을 찾다가 자꾸 엇나가는 녀석들 때문에 슬쩍 짜증이 났다.

도대체 이렇듯 제 짝을 못 찾는 녀석들이 있나.

평상시는 네 식구가 사용하는 여섯 벌 정도의 수저를 통에 넣고 사용을 해왔는데 몇일 전 기제사로 동생들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제사를 모시고 같이 식사하면서 여벌의 수저들을 꺼내어 사용하고 설거지를 한 후 이것저것의 숟가락 젓가락을 모두 모아 섞어 놓았던 것이다.

내친김에 짝이 맞는 여섯 벌의 젓가락과 자주 쓰던 숟가락을 골라서 싱크대 위의 수저통에 가지런히 정리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 ‘수저’.

우리나라에서는 숟가락은 밥을 떠먹는 도구로 젓가락은 반찬을 집어 먹기 위하여 주로 사용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식사를 할 때 젓가락만 사용을 한다고 하며 중국에서도 뜨거운 기름을 사용하는 음식의 특성상 손이나 팔이 데이지 않게 손잡이가 긴 숟가락을 사용할 뿐 주로 젓가락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밖에도 음식을 조리할 때 소스의 계량을 위하여 사용하는 요리용 큰 스푼이나 커피나 차를 타는데 사용하는 작은 스푼 등 기능성 숟가락들이 있다.)

나는 식사를 할 때 커다란 내 덩치에 맞지않게 유별나게 숟가락과 젓가락에 신경을 쓰는데, 여느 식당에 가도 손잡이가 짧고 품위 없는 숟가락보다는 고르고 골라서 날렵하고 미려하며 손잡이가 다소 긴 숟가락을 골라서 사용하기를 즐긴다.

그래야 제대로 식사를 한 것 같고 음식의 맛도 제대로 즐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냥 작은 손잡이의 싸구려 숟가락을 비치한 식당에 가면 웬 지 성의가 없는 손님맞이 인 것 같아 다소 기분이 언짢다. 자신의 집에서 가족들이 식사를 할 때도 이렇게 싸구려 품위 없는 수저로 식사를 할까?

우리나라 숟가락은 내가 선호하는 수려하고 미끈한 자태로 날씬한 여인네의 나체 같이 잘 빠졌는데, 나뭇잎 같이 생겼다 하여 ‘잎사시’라고 부른다고 하며 젓가락은 한국의 것이 가장 짧고 가늘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는 가장인 나의 수저는 다른 식구들것과는 차별이 되어 다른 것들은 은색 계통인데 내 수저만큼은 금색을 뽐내고 있다.

요즘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우리집과 같이 가장의 수저를 따로 관리하며 사용하고 있겠지만 예전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이렇듯 가장의 수저는 물론이고 밥그릇과 국그릇을 차별화 하여 가장의 권위를 지켜주었었다.

가장의 수저와 식기를 특별히 하는 문화가 달리 큰 의미가 없어보이나 기실 따지고 보면 가장을 그렇게 상징적으로 대우를 해 줌으로 자식들이 자연스럽게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슴에 새기도록 한 가정교육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숟가락을 영어로는 스푼이라고 하는데 그 스푼이라는 말은 네덜란드어의 스판(Spaan), 또는 독일어의 슈판(Span)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이 단어들은 ‘나뭇조각’ 또는 ‘나무를 쪼갠 것’이란 뜻이므로 처음에 스푼은 나무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스푼’하면 금속 재질의 스푼이 머리에 각인되어 있고 스푼의 대표격이 되었다.

낚시기법 중에는 물고기를 현혹시켜 낚으려는 금속재질의 ‘스푼루어’라는 게 있다. 루어낚시는 지렁이나 떡밥 등 날 미끼가 아닌 인조미끼로 물고기에게 살아있는 미끼처럼 보이게 하여 물고기를 잡는 낚시로 옛날 영국의 한 낚시꾼이 보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하다 점심식사 때 실수로 물 속에 스푼을 떨어뜨렸는데 그 스푼에 물고기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착안하여 개발하였는데, 그 금속 스푼 모양을 한 인조 미끼가 스푼루어인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70년대 말에는 병사들이 지급 받은 자신의 숟가락을 항상 군복 포켓에 휴대하고 다니다가 끼니때마다 배식을 받아 식사를 하였었다.

어쩌다가 자신의 숟가락을 분실하기라도 하면 할 수 없이 옆의 전우가 식사를 다 마칠 때를 기다려 전우의 수저를 빌려서 식사를 하기도 하여 불편하기도 했지만 가끔 일석 점호시(취침 전에 인원과 장비,청결 등을 점검하는 일)에 불시로 개인의 숟가락 점검을 할라치면 숟가락 관리를 소홀히 한 죄로 일직사관한테 취침 전 까지 얼차려를 받는 낭패를 당하기도 하였었다.

그 당시의 군인들에게 숟가락은 지급 받은 자신의 소총 다음으로 잘 간수하여야 하는 또 하나의 필수 장비였던 것이다.

그때는 부대에서 군기가 해이해지거나 문제가 있으면 졸병들에게 고참들이 종종 원산폭격(뒷짐을 진 채 머리를 땅바닥에 박는 기합)을 시켰었다.

그런데 보통 원산폭격 기합에서 진도가 더 나가면 휴대하고 있던 숟가락을 바닥에 뒤집어 놓고 그 위에 머리를 박는 특제 원산폭격을 시켰었는데 그렇게 특제 원산포격을 십여 분만 하여도 숟가락에 박았던 이마부분이 이삼일 후에는 상처가 아물면서 생기는 딱지가 둥그렇게 앉았다가 그 몇일 후에 살살 뜯어내면 떨어지곤 했었다.

내가 그 부대로 배치된 뒤 한 서너 달 지났을 때였는가 보다.

그렇게 신경을 써서 휴대하고 다니던 숟가락을 어찌하다 보니 분실하고 어쩔 수 없이 내무반에 돌아다니던 우리나라 숟가락의 두 배가 되는 커다란 미국제 숟가락, 그러니까 스푼을 휴대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손잡이에 ‘USA’라는 알파벳이 선명한 그 커다란 미제 숟가락은 우리부대가 미군들이 숙영하다가 월남전 참전 선배 장병들이 종전으로 철군을 하여 미군으로부터 대부분의 장비와 시설들을 이양 받아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때 부대에 남겨진 스푼 중에 5년여의 세월이 지나면서 남겨진 몇 개 중에 한 개였을 것인데 할 수 없이 그 숟가락을 지참하게 되면 고참들 몰래 다른 중대의 숟가락을 훔쳐오던지 외박이나 휴가를 나가는 전우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여 구하던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하루빨리 한국제 숟가락을 구해서 그 미제 숟가락을 벋어나려 고심을 하곤 하였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커다란 미제 숟가락을 휴대하고 있을 때 특제 원산폭격을 하게 되어서 나는 이마에 맺히는 통증이 배가 되었으며, 이틀 후에는 다른 전우들 보다 훨씬 커다란 보름달 같은 상처딱지를 몇일 간 달고 다녀서 주위 전우들과 고참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고소를 금치 못했었다.

이 수저의 숟가락은 ‘술’과 ‘가락(가늘고 긴 모양을 이르는 말)’이 더한 후에 ‘ㄹ’ 받침이 ‘ㄷ’으로 바뀌어 진 것이며, ‘저(箸)’와 ‘가락’ 가운데 사이 시옷이 더해진 것이 젓가락이라고 한다.

요즘은 제대로 젓가락질을 하는 아이들이 드물지만 내가 아주 어릴 적에는 밥상에서 젓가락질을 잘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었는데, 그때는 젓가락질을 잘못하면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었지만 젓가락질을 잘못하면 상놈이라고 어른들이 종종 말씀하셨기에 대부분의 모든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식사 때마다 기를 쓰고 젓가락질 연습에 열중하였으니 밥을 먹을 때 쩝쩝대는 소리 내어 먹지 말라는 것과 더불어 젓가락질은 예전 우리 어른들의 가정 교육이었었다.

식량이 귀했던 그 옛날에는 아까운 음식을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해 ‘수저를 멀리 잡으면 시집을 멀리 간다.’는 속담도 생겨났지만 조선시대에는 임금이나 귀족들의 음식을 미리 은으로 만든 숟가락으로 찔러보아 독으로 은수저가 까맣게 변하는지 점검하여 독극물 테러를 미리 막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정적(政敵)의 대립으로 혼란한 로마의 어떤 시대에는 대부분의 관료들이 자기 아내의 젖가슴 크기와 형태의 은잔을 만들어 지니고 다니다가 주연에 참석하면 자신들의 은잔을 주탁에 내 놓아 자기 부인의 아름다운 유방을 뽐내면서 독주에 의한 정적의 살해음모를 사전에 차단하였다고 한다.

금술 좋은 부부를 이르는 ‘바늘과 실’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은 찰떡 궁합의 신랑과 신부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숟가락은 여자 젓가락은 남자를 상징한다.

숟가락의 기원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기원전 5000년 전의 숟가락이 중국에서 출토 되었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아이가 첫돌을 맞으면 밥그릇과 수저 한 벌을 마련해 주었다는데, 이 것은 삶의 시작을 의미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밥숟가락을 놓는다.’라는 말은 생명이 다하였다는 뜻이 성립되기도 한다. 따라서 수저를 잡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오늘도 괜찮은 수저들을 챙기고 있으며 앞으로도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는 찌질 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려하고 품위 있는 수저를 골라 찾아서 기분 좋은 식사를 즐길 것이다.

아마도 내가 식탁에서 품위 있는 수저를 신경 써서 선택함이 내 삶의 일부를 조금 더 품위 있게 즐기려는 작은 노력일 것이라고 나름 생각을 해본다.

2010년 6월 중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