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값이 많이 올랐다.

전에는 아이들 돌집이나 백일집에 갈 때면 으레 유아용금반지 한 돈이나 반 돈짜리를 사가지고 갔었는데, 이제는 순금 한 돈의 가격이 20만원에 육박하고 있으니 보통서민들이 지인들의 자녀결혼식이나 부모의 고희 또는 희수 등의 축의금으로 5만원이 보편적이고, 특히 각별한 사이에는 10만 원 정도를 지출하는데 비하여 백일이나 돌잔치축하용 금반지를 구입하는 비용은 배가 되므로 선뜻 금반지를 구매하기 어렵다. 따라서 금은방들의 영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그 타개책으로 1g짜리 유아용반지를 출시했다고 하니 금 한 돈이 3.75g인 것을 계산하면 거의 1/4의 무게에 1/4의 가격인 5만 원대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하여튼, 서민들의 먹거리나 생필품 등의 가격이 맑은 하늘에 마음 놓고 제 키를 높이고 있긴 하지만 금값이 오르긴 너무도 많이 올랐다.

나에겐 장성한 두 아들이 있어 오래지않아 혼인을 시켜야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신부와 신방 그리고 예물이며, 결혼예물하면 빠트릴 수 없는 게 금붙이이니 걱정이 아니 될 수 없다.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의 예물은 손목시계, 다이아 또는 금반지, 그리고 신부의 금목걸이가 보편적이었었는데, 이제는 손목시계는 거의 차지 않는 추세인 것 같으니 반지와 목걸이가 아이들의 대표적 예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중 반지는 기혼이라는 표식을 정확히 하는 예물인데, 이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는 것은 ‘왼손의 약지에 심장이 연결되어 있다’는 고대 희랍의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하며, 또한 왼손 약지는 모든 창조력을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까지도 받아들인다고 믿으며 ‘당신의 심장에 직접 사랑의 정신적 전파를 보낸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결혼반지를 금으로 링을 이룬 것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것은 둥그런 링이란 ‘영원의 상징’이며 금은 ‘영원한 사랑과 부귀를 염원’하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니 서로 만나 첫걸음을 떼는 신혼부부에게는 백년해로(百年偕老), 또는 해로동혈(偕老同穴: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힌다는 뜻 즉, 생사를 같이 한다는 부부 사랑의 맹서를 뜻함)을 위한 최고의 상징인 것이다.

우리부부가 내년이면 결혼한 지 30주년인 진주혼식(眞珠婚式)이니 지난 29년 전에 결혼할 때 예물은 아내에게 금목걸이와 손목시계와 5부 다이아몬드 반지였었다. 처가에서 해주는 내 예물도 시계와 반지였었는데, 친정이 지방이지만 그때도 삶의 정도가 다소 여유가 있었던 터라 아내는 친정아버지에게 말해서 나에게 5부 이상의 다이아몬드반지를 해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사랑의 정표로 받는 예물이 고가이면 살다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 팔아서 살림에 보태고 싶은 유혹이 따르고 결국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의 징표를 상실하게 될 테니 아예 팔아도 돈이 안 되는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18금의 반지를 원했고 예물로 받았다. 아내는 그때만 해도 처가에서 비싼 다이아몬드반지를 예물로 사준다고 해도 왜 부득불 싫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 값싼 사랑의 징표인 반지는 아직도 내 왼손 약지에 잘 간직하고 있는데, 살다보니 손가락 굵기가 커지고 반지의 링이 꽉 끼어 아파서 확장시키느라 잠시 내 손가락을 떠났다 왔을 뿐, 목욕을 할 때나 막일을 할 때나 밤에 잠을 잘 때도 나는 반지를 빼지 않았다. 물론 이 반지는 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욱신욱신 손가락이 쑤셔오고 전기를 만질 때는 위험하니 빼 놓아야 한다는 충고 또는 안전수칙을 종용받기도 했으나 끝내 내 값싸지만 영원하고 소중한 사랑의 징표를 결코 내 약지에서 이탈시키지 않았었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내 손가락도 단련이 되었는지 아니면 내 손가락의 일부로 반지가 편입을 하였는지 전혀 부대낌이나 어색함이 없다. 그리고 요즘 18K 금값도 한 돈에 14만원을 육박하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약 3돈정도의 내 반지의 가격도 30만 원 이상을 호가할 테니 이제는 결코 싸지도 않은 우리부부 사랑의 숭고한 징표가 된 것이다.

4월의 탄생석이며 ‘순결’ ‘고귀함’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는 ‘정복되지 않는’ ‘두려움 없는’ 이란 뜻의 그리스어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사전적 정의로는 ‘천연으로 만들어진 탄소의 결정체’로 지하 120~240Km 깊이에서 고온 고압의 맨틀에서 형성된 뒤 화산활동에 의해 지표면 쪽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강석이라고도 하는 이 시대 최고의 보석인 다이아몬드를 처음 사용한 건 인도의 드라비다족으로 BC7~8세기의 일이라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유럽에 수입된 귀중한 보석이었으나 가공할 방법이 없어서 원석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루비나 에메랄드보다 가치가 떨어졌었다고 한다.

그 후 17세기말 베네치아의 V. 페르지에 의하여 기본적인 연마방법(브릴리언트 컷)이 발명된 후 최고의 보석자리에 등극하였다고 한다. 인도가 유일한 산출국이었던 그때는 유럽에 수입되는 양이 극소수라 법률로 왕후 귀족들만이 소유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제했으나 18세기 초에 브라질과 186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의 광상(鑛床)이 발견되고 근대적 채굴법이 채택되면서 드디어 다이아몬드는 대중화가 되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의 커팅 방법은 고전적인 ‘브릴리언트 컷’에서 세월을 지나오면서 몇 가지의 가공방법이 개발되었던 것인데, 이 가공법은 특히 다이아몬드의 가격 결정에 아주 중요한 사항이며 커팅이 잘된 다이아몬드는 빛의 내부에서 외부, 위에서 아래로 동시에 반사돼 발광성이 가장 좋은 게 최상의 다이아몬드로 치는데, 이런 최상의 상태를 ‘하트 앤드애로현상(다이아몬드에 하트와 화살모양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요즘 간간히 세간에 공개가 되어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던 물방울다이아몬드는 이 보석을 가공하는 방법, 즉 특별한 커팅 방법에 의해 가공된 다이아몬드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커팅방법 중에 가장 일반적인 ‘라운드 브릴리언트’ 외에 ‘페어’, ‘오벌’, ‘에메랄드’, ‘프린세스’, ‘쿠션’ 등으로 세분화 되는데, 그 중 ‘페어(Pear shaped)’는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에서 변형된 형태로 말 그대로 서양 배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흔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데, 이 가공법은 원석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이상일 경우에 커팅이 가능하므로 고가보석의 또 다른 척도로 가늠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끄는 다이아몬드의 설화는 오래전에 어느 글에서 접했던 고 박완서선생의 보석점 직공 이야기가 더 내 가슴에 따스하게 오래도록 담아져 있다.

** 15세기 베니스의 한 젊은 금속공이 어쩌다 상전의 딸을 짝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넘볼 수없는 사랑이었기에 가슴만 졸이고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피골이 상접되고 급기야 죽음을 앞두고 진심으로 상전에게 호소하였다. 상전도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으나 결코 하찮은 자기의 직원에게 귀한 딸을 시집보낼 수는 없어 그때까지 어떤 방법으로도 연마할 수 없었던 가히 불가능이라는 다이아몬드 연마를 숙제로 내주고 만약 성공한다면 자기의 딸을 주겠다고 했다. 결국은 딸을 줄 수 없다는 거절이었으나 이 보석공은 소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라 기뻐하며 대신에 그 방법을 찾을 때까지 소녀를 다른 곳에 시집보내지 않겠다는 약조를 상전에게서 받아냈다. ‘흥. 해볼 테면 해보라지. 며칠 안가서 포기하고 말거야. 다이아몬드 연마는 불가능이니까.’ 라고 자신하며 상전은 흔쾌히 약속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이 직공은 모든 정성과 열의로 다이아몬드의 연마에 매달렸다. 모든 삶을 이 연마법을 찾기에 매달렸으나 아무리 강한 물체로 이 다이아몬드를 갈아도 다이아몬드는 전혀 흠집이 나질 않고 도리어 강하다는 물체들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 악마 같은 돌은 그렇게 각종 금속과 사나이의 세월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나이는 소녀를 얻기 위해 연마법 찾기에만 몰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나이는 간단한 진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철은 강철에 의해 절단된다. 강철은 결국 철이다.’ 그래서 사나이는 드디어 ‘다이아몬드도 다이아몬드에 의해서만 갈고 닦일 수 있다.’라는 쉬운 이치를 깨달았다. 그는 더욱 더 연구하여 다이아몬드끼리의 마찰에서 생긴 미세한 다이아몬드분말로 다이아몬드를 연마할 수 있기까지에 다다랐다. 드디어 마법의 돌 무적의 돌인 다이아몬드를 굴복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연마법을 얻기에는 너무도 많은 세월을 투자하여 이미 상전은 늙어서 죽고 그 아름답고 사랑스럽던 소녀는 간 곳없었으며, 상전과의 맹세에 의해 그때까지 독신으로 넓은 저택을 상속받아 실망스럽게도 돈과 게으름으로 보기에도 역겹게 살찐 중년의 여자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사나이는 실망하여 중년의 미운 여자에게 연마한 다이아몬드를 던져주고 작업장으로 돌아와 거울을 보니 총명한 눈동자에 탄력 있던 피부의 잘생긴 사나이는 간데없고 머리가 벗겨지고 그나마 하얗게 세어버린 쭈글쭈글 늙은이만이 거울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사나이의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보다 더 아름다운 보석의 제왕 다이아몬드는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고 박완서선생의 이야기모음집 ‘세 가지 소원’에 실린 ‘다이아몬드’ 일부 요약)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세월이 가면서 줄거리가 감해지고 가해진 이야기라고 선생은 전제하였는데, 그래도 과학과 역사의 고증이 있는 딱딱한 정설보다는 휴먼과 사랑이 있는 따스한 이야기라 더 가슴에 남는가 보다.

지금 진주혼식을 목전에 둔 우리 부부에게는 그때의 내 다이아몬드반지는 아직도 내 약지에 꿋꿋이 버티고 있는데, 아내의 그 비싼 다이아몬드반지는 살아오던 어느 날 친인척에게 잠시 빌려줬다가 되찾지 못하고 아내의 약지를 영영 떠났으니 이 또한 결혼할 당시에 예견되었던 건지 아니면 내 입방아가 이런 결과를 불러온 건지 모르겠다. 그 후에 그 친척은 진심으로 용서를 빌며 금붙이로(반지와 목걸이) 다소나마의 보상을 하였고, 이제는 금값이 치솟아 사라진 다이아몬드반지의 가격에 거의 견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몹시 아쉬운 건 우리 부부의 사랑의 징표는 더 이상 아내의 곁에는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한 30여 년 전의 내 판단이 적중하여 내 왼손 약지의 사랑의 징표는 아직도 소중히 남아있으니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이다.

그 귀중한 다이아몬드도 저 혼자만으로는 우리가 지니고 뽐낼 수 없어서 영원불변의 광물인 금의 받들음이 있어야 비로소 귀중한 반지 등의 장식품이 될 수 있으니 부부도 이와 같아서 서로 서로를 귀중히 여기고 받들어 줌으로서 다이아몬드반지 같이 빛나는 사랑이 되는 것이리라. 더욱이 다이아몬드 같이 빛나게 가공하고 금반지 같이 세공하는 연마와 가꿈의 사랑을 하는 게 부부의 참살이 삶일 게다.

우리 아이들도 이제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때에 꼭 나같이 값 싼 예물을 주고받으란 말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에도 유혹이 없을법한 아니면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의 징표를 주고받아 이 세상 다할 때까지 절대사랑의 마음으로 간직하길 바란다.

모쪼록 내 아내와 남은 생 욕심 없이 순탄하게 살며 내 약지에 끼어 있는 징표만큼 사랑하다 어언 세상 떠날 때, 아내와 아이들의 양해를 얻어 내 마지막 가는 길에 수고를 해 주시는 분에게 작으나마 이 반지로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