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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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변화

오늘은 내 인생 제2막의 직장에 첫 출근 하는 날이다. 첫 출근이란 말을 사용하기는 조금 애매한지도 모르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청에 임시 직원으로 들어가 첫 출근이 있었으나 그때 기분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이 남아 있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임용 고시에 합격하여 출근하던 때는 잊을 수 없는 희열의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교직 생활을 하면서 전출할 때마다 새로운 학교에 처음 출근하는 날은 늘 긴장감과 어색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교감으로 승진하여 첫 출근 할 때 기쁨과 교장으로 승진하여 첫 출근 할 때 기쁨은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 공직에서 정년퇴직하고 백수로 집에서 놀다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퇴직 후 처음에는 국가에서 나이가 들었으니 그만 쉬라고 정년퇴직을 시켰으니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때는 골프채를 들고 4~5년 놀아 봐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부모님께 어깨너머로 배운 농사 기술을 되살려 근 7~8년 밭농사를 지어도 봤다. 이때 친구나 친지들이
“요즘 무엇을 하며 지내?”라고 물으면 나는 스스럼없이
“Field(밭) 가서 놀아'라고 큰소리친 적이 있었다. 아마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비웃을 것 같아 언뜻 듣기에 필드 하면 골프를 생각하도록 유도했던 모양이다. 내 밭에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우리 몸에 좋다고 하는 작물이 있으면 무조건 재배하다 보니 내가 재배하는 작물의 종류가 30여 가지가 넘었다.

이런 생활은 평생 책상에서만 살든 사람이 몇백 평이 되는 밭을 삽 한 자루 들고 설쳤으니 몸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척추 디스크 파열과 협착증이란 병으로 밭에서 쓰러져 수술을 받은 후 허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매일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이처럼 크게 신경 쓰는 일 없고 운동에다 적절하게 노동을 하니 몸이 50~60대 현직에 있을 때보다 달라 보이게 건강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나서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에는 집에서 보내는 것보다 틈만 나면 걷기를 한 것이다. 새벽에 걷고 아침 먹고 걷고 또 점심 먹고 걸으니 하루 평균 26,000보 이상을 4개월이 넘도록 눈이 와도 날씨가 추워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으니 지루한 줄 모르고 시간이 잘도 흘러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걷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특히 추운 날은 증세가 더욱더 심하여 한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병원을 바로 찾아갔으면 좋으련만 성격이 병원을 싫어하여 참으며 겨울을 버티었다. 어느 날은 2시간 걷는데 세 번은 소변을 봐야 하는 경우가 나타났으며 저녁에 잠을 잘 때도 두 시간이 멀다고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속으로는 전립선 비대증이 나타난 모양이라고 혼자 추측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니 많은 친구가 전립선 비대증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살다 겨울이 다 간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나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소변 검사를 하고 피검사를 하더니 약 1주일분을 처방해 주었다. 나는 궁금하여 이유가 뭐냐 물으니 인상 좋은 의사는 웃으며 전립선은 아직 괜찮고 피에 이상이 있단다. 내 마음속에 내 피는 깨끗한 거로 알고 있기에 피에 무슨 이상이냐고 물었더니 속 시원히 대답은 안 해주고 피에 염증이 있어서 그러니 1주일 약을 먹은 다음 소변을 세 시간 참은 다음 와서 검사를 다시 해 보잔다. 1주일 약을 먹자 밤에 소변보는 것이 한차례 정도 줄었고 상당히 좋아진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 후 소변을 3시간 이상 참고 병원을 찾아가니 항문 초음파 검사와 소변 검사를 했는데 초음파 검사도 이상이 없고 방관도 아직 버틸 만 하단다. 그러면서 약을 다시 10일분이나 처방해 준다. 그러고 10일 후에 다시 피검사를 하잔다.

10여 일이 흘러갔다. 그동안 소변보는 것은 상당히 좋아졌으나 얼마나 좋아져야 다 좋아진 것인지 알지 못하니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피검사를 한 결과 좋아 젖 단다. 나는 무엇이 좋아진 것이냐고 물으니 비대증 수치가 낮아 젖 단다. 바로 소변이 자주 마려운 것은 비대증 수치가 높았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좋아졌으니 또 증세가 나빠지면 오란다. 나는 비대증 수치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의사는 담배를 피우냐고 물어 끊은 지가 15년이 넘었다고 대답하고, 술은 많이 먹느냐고 물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마시는데 그때는 소주 2병은 마신다고 하자 운동을 많이 하나고 물었다. 하루 25,000보 정도 걷는다고 했더니 걸음 숫자를 만 보 정도로 줄이란다. 허리를 강화하고자 걷고 또 걸었더니 너무 과하여 비대증 수치가 높아지는 결과를 만든 모양이다.

걷는 것을 줄인다고 생각하니 걷었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 원인이 된 것이다. 운전을 좋아하니 운전을 이용해서 할 일자리를 찾다 보니 아주 적당한 일자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장애인 도우미로 아침과 저녁으로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는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것이다.

참말로 사람 많이 변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내 성격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예전 같으면 교장 체면에 '뭐 장애인 활동 도우미를 해' 하며 펄쩍 뛰었을 것이나 TV를 통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못 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는 아주 적으나 돈이 있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아침 새벽에 운동하고 아침 먹고 도우미 일을 한 다음 나머지 시간은 농장 일을 하고 오후에 다시 도우미 일을 하면 하루해가 짧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있는 권위와 체면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살아난 것이다. 이렇게 변하기까지 걸인 시간이 장장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퇴직하고 한때 점잖게 혼자 고독을 즐기며 살겠다고 머리 염색에서 벗어나 완전 백발 머리를 한 채 4년을 살아 보니 스스로 마음에서 늙었다는 생각만 들고 내 생활이 점점 위축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머리를 다시 새까맣게 염색을 했다. 그러고 나니 다시 내 몸에 활기를 느낀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외모의 변신만이 아니라 마음의 변신도 해 보자는 의미에서 일해 보자고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부담도 있었지만, 70년이 넘는 세상살이를 한 사람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하는 생각에 언제부터인가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전에는 하지 않던 말도 곳 잘 조잘대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마음의 변화는 나에게 용기를 주어 대부분이 여성들로 구성된 ‘활동 보조인양성 교육’을 받은 다음 오늘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날이 된 것이다.

오늘도 평상시와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나갔다. 겨울이 다 간 줄 알았더니 아직 늦추위가 있는지 제법 쌀쌀했다. 열심히 두 시간 가까이 걷기도 하고 천변에 있는 헬스 기구에 붙어 운동하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현관문을 여니 집안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에 진동한다.

"서방님 첫 출근이라고 맛있는 밥상을 차리나 봐."라고 웃으며 마나님에게 익살을 부려보니
"그려. 그동안 놀고먹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일을 한다니까 좋아서."라고 농으로 응수하는 70 먹은 할망구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인생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말고 어깨를 활짝 펴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당당하게 살다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봄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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