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1-01-04 19:52

ㆍIP: 125.xxx.48

귀싸대기

오늘은 우리 집 김장 날이다. 다른 날 같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 겸 산책하러 나갔을 것인데 나잇살이나 먹은 집사람 혼자 밤새 배추를 저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무엇을 도와줄까 물어보니 무채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 무를 한 소쿠리 가져다 씻어 채칼로 채를 쓸어 주었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배추를 씻어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둘째 딸이 일찍 와 나는 아침에 못 한 운동을 하러 나갔다. 아마 오늘 김장은 둘째 딸 내외와 막내딸 내외가 모두 참여하는 모양이라 사위들이 껄끄럽지 않게 피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시간 산책하고 들어와 보니 예상대로 둘째와 셋째네 식구들이 총출동한 모양인데 셋째 딸과 외손자가 안 보였다. 그리고 둘째 딸 표정이 화가 나 있고 사위들은 각자 맞은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오늘 김장은 둘째네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애들이다. 그들은 지난주에 가까이 사는 시댁에서 담아 와 우리 집에서 담그는 김장은 가져가지 않고 오늘 담는 김장은 우리 집과 셋째네 김장인데 셋째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잔소리 좀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윤이는 안 보이네” 하니 셋째 사위가
“잠깐 제 엄마랑 집에 갔어요.” 한다. 그래서 집에 가서 가지고 올 물건이 있어 갔나보다 생각했는데 둘째 딸 표정이 찜찜했다.
“우 엄마는 뭐 화나는 일 있니” 하자 둘째 사위가
“우가 윤이의 귀싸대기를 때렸어요.” 한다. 우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네 아들이고 윤이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셋째네 아들이다. 두 녀석은 개구쟁이들로 한때는 만나기만 하면 장난감 가지고 싸우더니 커가면서는 떨어지면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는데 무슨 이유로 싸웠는지 모르겠다. 분명 작은 녀석이 큰 녀석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조금 있다가 셋째가 윤이를 데리고 들어와 셋째 손자를 건들러 봤다.
“윤이 형아 한 테 귀싸대기 맞았다며? 이제 괜찮아.” 하니 손자 녀석은 씨 웃으며“예.” 하고 다시 제 이종사촌 형이 핸드폰 게임을 하는 대로 가서 논다. 그러나 셋째 딸은 제 아들이 맞은 것에 대한 분이 덜 풀렸나 표정이 불어 있다. 나는 손자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주의를 준 다음 두 녀석을 내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놀게 하고 책상에 앉아 두 녀석 노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지난날 내가 귀싸대기 맞은 일이 떠올랐다.

나는 어려서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큰아들이다 보니 젊은 부모님들이라 그런지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어쩌면 그리 엄하게 다스렸을까? 의아심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엄한 어머니로부터는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벗어났다. 중학교 2학년 여름 어느 날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머니가 회초리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셔 나를 혼내는데 나는 어머니 손을 잡으면서
“어머니 아무리 때려도 나는 안 아파요. 어머니만 힘드니까 그만 하세요.” 하자 어머니는 기가 막히는지 방에서 나가시더니 그다음부터는 회초리 드는 법이 없었다. 뒤에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어이가 없었단다. 그러면서 자기는 자식 교육은 회초리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단다. 자기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엄하셔서 엄하게 하는 것이 자식 교육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아이들을 그리 혼내지 않고 사랑으로 키우신다며 나와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회초리를 잡지 않아 밑에 동생들은 회초리를 맞지 않고 자랐다.

아버지는 하도 엄하셔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말이 되면서 대학을 진학하겠다고 공부한다며 가정일손 도와주기를 원하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다. 부모님이 일손을 돕지 않는다고 혼을 내면 집을 뛰쳐나가 친구 집에서 며칠씩 보내고 들어오자 혼내는 것을 포기하셨는지 나무라지 않아 그 뒤로는 혼난 기억이 없다. 이렇게 엄한 부모님이었지만 혼을 낼 때는 꼭 회초리로 혼을 냈지 귀싸대기를 때리며 혼을 낸 적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귀싸대기를 때린 사람이 두 사람이 있다. 그 두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에게 귀싸대기 맞은 기억은 아마 죽어야 잃어질 것 같다.

내가 처음 귀싸대기를 맞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말로 기억된다. 아주 시골 초등학교로 옛날 서당과 같은 학교였다. 그해를 계산해 보니 1954년 3월 24일경인 모양이다. 그때는 학교가 3월 말에 종업식을 하고 4월 1일 날 개학식을 할 때였다. 학교라야 시골 면 단위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로 우리 큰집 대청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2학년까지만 분교에서 다니고 3학년이 되면 4km가 떨어진 본교로 가는 학교로 선생님 한 분이 1학년과 2학년을 복식 수업으로 하는 학교인데 우리 1학년은 총 22명이었다. 내가 그 기억을 하는 것은 종업식 날 전교생을 책상이 없는 학교라 대청마루 바닥에 앉혀 놓고 선생님이 학생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성적표를 나눠 주었다. 선생님이
“박 철권” 하고 호명하여
“네” 하고 앞으로 나가니
“네가 뒤에서 1등 했네”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 대 때리고 성적표를 주셨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때 꼴찌를 한 친구는 낙제를 당하여 1학년에 다시 다녔고 나는 턱걸이로 2학년에 진급은 한 것이다. 그때 선생님 존함은 전혀 기억이 없고 다만 집안 어른들이 ‘서 선생’이라고 불렀던 것만 기억이 남아 있다.

그리고 두 번째 귀싸대기를 맞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얻어맞은 것이다. 그때는 졸업식이 1월 10일경에 했는데 내가 사고를 친 것은 12월 15일경으로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사건의 발생은 12월 14일 날 저녁때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극장 초대권을 한 장 가지고 와 극장을 가자고 하여 따라나선 것이다. 그때 학교 교칙은 학교에서 보여주는 영화 이외에는 극장에 출입할 수가 없었으며 더구나 쇼를 보러 갔다 적발되면 무기정학은 각오해야 할 정도로 엄격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우리나라 최고 미녀 배우라고 알려진 「김지미」가 나오는 쇼를 구경하려 극장에 간 것이다. 학생들이 몰래 극장에 들어가면 선생님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2층 구석에 자리를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친구와 나는 계단을 걸어 2층으로 막 들어서는데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어 바라보니 젊은 음악 선생님이 버티고 서 있었다. 깜짝 놀라며 엉겁결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손짓으로 내려가라며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두말도 못 하고 되돌아 내려오다 계단 밑으로 잽싸게 숨었다. 그랬더니 우리를 따라오던 발소리가 멈추더니 다시 올라가는지 나무계단에 올라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들켰다고 생각하면서도 잠깐 숨어 있다가 쇼가 시작되자 다시 올라가 한쪽 구석에서 쇼를 관람했다. 관람하면서 극장 안을 둘러보니 교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선생님이 집단으로 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는데 2교시 수업 시간에 어제 나와 극장에 갔던 친구와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교무실로 불려 갔다. 조금 있다가 한 친구가 오더니 나보고 교무실에서 음악 선생님이 보자고 오란 단다. 나는 직감으로 극장 문제구나 하고 음악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박 철권 더 어제 극장 갔었지?
“예”
“나 봤어.”
“예”
“내가 나가란 걸 알아서 몰랐어.”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갔어, 안 나갔어.”
“안 나갔습니다.” 거짓말을 하기 싫어하는 나는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선생님이 한번 나가라고 했으면 나가야지, 숨어?” 하면서 반성문을 쓰라고
종이와 볼펜을 주었다.

나는 반성문에 【앞으로 나는 죽을 때까지 쇼는 구경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라고 쓴 다음 날짜와 이름을 썼다. 내 반성문을 받아 본 선생님은 웃으며
“앞으로 한 달만 있으면 졸업이니 그때부터는 마음대로 봐”
“절대로 저는 쇼는 보지 않겠습니다.” 하자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엎드리라고 하여 엎드리자 몽둥이로 허벅지를 힘껏 열 대를 때렸다. 그리고 일어서라더니 교실로 들어가란다. 아마 처벌이 끝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건너편 좌석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담임선생님이
“박 철권 이리 와” 해서 담임선생님 앞으로 갔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내 귀싸대기를 힘대로 두 대 올려붙였다. 그러면서
“뭐, 너 같은 놈이 대학을 가?” 하고 호통을 치신다. 그러고서
“들어가” 해서 나는 인사를 하고 교실에 들어와 귀싸대기 맞은 것이 억울해 내 자리에 앉아 책상에다 고개를 처박고 엉엉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울었는지 잘 모르지만 딴에는 엄청 억울했던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뭐 그까짓 것 가지고 그러냐면 위로를 해 주었지만, 울음이 쉽게 멈춰지지 않았었다.

그때 상황을 조금 더 이야기해 보면 나에게 극장 초대권을 구해다 준 친구는 학교에서 말썽꾸러기로 지난여름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렸다 하여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던 학생이다. 그때 내가 그 친구 가정환경을 들어가며 반성문을 작성해 주고 학생들이 용서해 달라는 진정서를 올려 퇴학 처분을 취소하고 조건부로 졸업 때까지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졸업 시켜 주겠다는 학생이었다. 그때 내가 써준 반성문을 교장 선생님이 직접 읽어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반성문과 함께 진성서를 올린 친구가 전해 주었었다. 그리고 나 대신 처음 불려간 학생은 그와 가장 친한 단짝 친구로 불량기가 있는 학생으로 알려진 친구였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음악 선생님은 학교에서 공부 좀 하고 착실한 편에 드는 나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의 친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초대권을 구해다 준 친구는 내가 반성문을 써 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나를 극장에 데리고 갔던 것이 오히려 해를 미친 것이다.

우리 담임선생님이 내 따귀를 때린 것은 선생님의 자존심 문제로 나를 때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 음악 선생님은 정규 교사가 아니라 강사 선생님이었는데 강사가 졸업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자기 반 학생들을 체벌하자 선배 교사로서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즉 내 반은 내가 엄히 다스리고 있으니 학생과에서 손대지 말라는 의미로 호통을 치며 내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나는 학교에서 가지 말라는 극장을 간 것은 잘못이지만 귀싸대기 맞은 것이 그리 억울했다. 몽둥이쯤이야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라면 얼마든지 맏일 수 있지만, 귀싸대기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몽둥이로 허벅지 맞은 곳에 파상풍이 일자 병원에 찾아가 진단서를 끊어 학교에 제출하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졸업식 이틀 전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졸업식에 꼭 참석하라는 전갈이 와 졸업식에는 참석했다. 그러나 졸업비를 내지 않은 나는 졸업장을 받아오지 못하고 졸업한 지 2년 뒤에 대학시험에 합격한 다음 담임선생님에게 인사차 가정으로 찾아가 졸업장을 찾아온 학생이 되었다.

이처럼 초등학교 1학년 때와 고등학교 3학년 때 얻어 마진 귀싸대기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공부를 못한 귀싸대기는 그 후에 공부해서 대학원까지 마치게 된 모양새가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마진 귀싸대기는 나에게 늦게까지 쇼를 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안방과 거실에 놓여 있는 TV 프로가 대부분 예능프로인데 나는 예능 프로만 나오면 TV를 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사람과 같은 자리에 앉아 TV를 보는 일이 적어 젖으며 프로 가지고 옥신각신할 때가 더러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올해같이 코로나-19로 인해 방에만 있는 시대에 TV를 틀었다 하면 트로트인데 나도 피해 갈 수가 없어 트로트를 듣는 사람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반성문이 거짓으로 변해가는 모양이란 생각이 들어 웃어 본다.

장선희 2021-01-05 17:58	김복희 작가님의 어릴 적 추억이야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때 어릴적 남자애들은 귀싸대기도 맞고 채벌로 엄청 맞았지요 저도 회초리와 또는 장작개비로 까지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친구에게 대신 써준 반성문을 교장선생님이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니 글쓰는 재주가 타고나신 듯 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약간의 채벌도 필요할 때가 있는데 한 번도 손 안대고 키웠다는 건 예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이 아닐까요? 쌀쌀한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김복희 2021-01-05 22:04	《Re》장선희 님 , 작가님 칭찬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이 눈물을 보인 것은 장사하시는 바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는 말에 교육자로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아무쪼록 코로나-19와 차거운 겨울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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