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복희
ㆍ작성일	2020-12-26 10:22

ㆍIP: 125.xxx.48

걷는 것도 팔자인가?

오늘은 넋 놓고 걷다 보니 언 듯 걷는 것도 내 팔자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내 인생을 돌아보니 걷는 데는 쾌 일가견이 이었던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최초로 장거리를 걸은 것은 여섯 살 때로 기억되었다. 나보다 세 살 만은 사촌 형하고 진안군 주천면에서 금산읍까지 걸어갔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다. 여름 어느 날 사촌 형이 금산에 사는 외갓집을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아홉 살배기와 여섯 살 먹은 나는 자그마치 16km가 되는 외갓집을 향하여 땀을 펄펄 흘리며 간 것이다. 하긴 가는 도중에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사촌 누나가 살고 있어 하루 저녁 자기는 했지만, 비포장의 신작로를 걷고 또 걸어 금산읍에 도착했는데 마침 그날따라 장날이라 시장통에 사람들이 쾌 복잡했다. 우리는 외갓집으로 가기 전에 먼저 시장 구경을 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얼음과자(일명:아이스께기) 공장을 구경하다 형을 잃어버린 것이다. 촌놈이 최초로 얼음과자를 봤으니 신기하여 넋이 나갔던 모양이다.

나는 형을 잃어버리고 혼자 울고 있으니 누가 데려다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금산경찰서에 데려다줬다. 경찰서에서 마이크로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은 경찰서로 와서 찾아가라고 방송을 하는 소리가 지금도 내 귀가에 남아 있다. 순경 아저씨가 누군가 방송을 듣고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의자에 앉자 기다리는 말을 하고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평소 순경 아저씨를 무서워하던 나는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아무도 모르게 경찰서에서 도망 나왔다. 외갓집이 큰 도로 옆에 있는 국수 공장 앞에 있다는 기역만 믿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큰 도로만 따라 걷었다. 얼마나 걸었나 읍내 외각으로 빠져나와 장을 보고 가는 시골 아저씨를 졸랑졸랑 따라간 모양이다.

늦게 알았지만, 그 길은 금산읍에서 금성면을 통하여 전주로 가는 길이었다. 시골 장꾼 아저씨는 졸졸 따라오는 나를 보고 어데 사느냐? 아버지, 어머니, 큰아버지, 외할아버지, 외삼촌의 함자는 무엇이냐? 등등 말을 시켰다. 나는 또박또박 대답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는 내가 귀여워 보였는지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얼마를 걸어 고개를 넘어가니 검문소(한국전쟁의 휴전 직후라 곳곳에 빨갱이를 색출하기 위하여 설치한 곳)가 나왔다. 그는 나를 검문소로 데리고 가려고 하자 나는 안 간다고 울며 버티자 검문소에 신고해놓고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재워줬다. 그 당시는 전화가 관공서나 있고 시골의 일반 가정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다음 날 외갓집에서 외할머니가 와서 데려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7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 집을 한 번 찾아가 보려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언덕에 있는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집이 두 채가 있는데 그중에 오른쪽에 감나무가 있는 집이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집이 없어진 것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장거리를 걸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 겨울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여덟 살 때 겨울 여느 날 큰아버지와 같이 커다란 산 고개를 두 개씩이나 넘어 금산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새벽밥을 먹고 큰아버지를 따라 주천면 용덕리에서 출발하여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를 지나 진악산에 있는 수리미 재를 넘어서 금산읍 음지리라는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다. 추운 겨울에 자그마치 14km가 되는 산길을 몸은 꽁꽁 언 체 새벽부터 걸어왔다. 지금의 내 머릿속에는 수리미 재정상에 올랐을 때 백부님이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며 저 마을까지만 가면 된다는 말에 ‘이제 살았구나.’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다음 많이 걸은 것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동생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하여 본적지에서 호적 초본을 떼어 나른다든가 동생들의 출생신고를 20km가 떨어진 주천면사무소에 당일치기로 다닌 기억들이 남아 있다. 아마 중학교 일 학년 때부터 다닌 것 같았다. 그때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정도 주천면을 지나는 버스가 있었지만, 돈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이 걸어 다니는 시절이었다. 중학생이 장장 왕복 40km를 당일에 다녀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때 걸으면서 먹던 영양갱이란 과자와 바나나 우유 맛이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리고 종종 명절 때나 할아버지 제사 때면 아버지를 따라 16km나 떨어진 고향을 찾곤 했으며 방학을 하면 큰집에 가서 사촌들하고 놀았던 기억들이 남아 있다.

그러다 1962년 가뭄에 흉년이 들어 고등학교 1학년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10월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중학교 일 학년 때부터 꼴머슴을 했던 나는 학교를 그만두자 집안일을 돕는 아기 농부로 변한 것이다. 겨울이면 낮에는 나무를 하고 저녁에는 머슴살이하는 친구 집에 찾아가 새끼를 꼰다든지 화투 놀이를 했으며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일을 거들어 준 것이다. 특히 금산이란 곳은 인삼을 재배하는 고장으로 인삼밭을 꾸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통대와 말목을 산에 있는 나무를 잘라다 했기 때문에 산에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무가 무척 귀하여 나무를 하려면 도시락이나 누룽지 한 뭉치를 싸서 가까이는 왕복 10km, 멀리는 20km를 넘게 가서 나무를 해 왔다. 나는 힘도 없는 것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검부적 나무는 하지 않고 잘 타고 화력이 좋은 싸리나무나 솔가지만 고집하여 남들보다 두 배 내지 세배 먼 곳까지 가서 나무를 해 날랐다. 이유는 어머니에게 불 때기가 좋고 화력이 좋으면서 잘 타는 싸리나무나 솔가지 나무를 고집한 것이다. 그리고 집 앞마당 구석에 나뭇가리를 싸 올 리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지금도 내가 나무를 하려 다닌 수리미 재, 보티 재, 큰 먹뱅이, 작은 먹뱅이, 저승재, 장자골, 활골, 상금리 앞산, 건천리 뒷산, 솔밭, 역평리에서도 더 가는 600 고지까지 이 골짝 저 골짝 안 가본 곳이 없으며 머릿속에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보니 죽기 전에 그곳을 한 번 더 가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나무꾼이 어른이 되어 중·고등학교 교장까지 했으니 인생의 앞날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아마 나무꾼의 끈질긴 인내심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모양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도 몸이 비실이(키 177.8cm. 몸무게 62kg 정도)였지만 깡다구로 선생님들과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헤매고 다녔으니 걷는 것이 내 천성인 모양이다.

그러다 퇴직을 하고 취미생활로 골프도 하면서 어릴 때 싫어했던 농사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에서 퇴직하고 나니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부모님께 배운 것이 농사일이라 농사를 지어보니 그리 재미날 수가 없었다. 어릴 때 괭이자루를 잡으면 성을 간다고 맹세하며 아버지에게 혼깨나 나면서 공부를 했건만 나이 들어 밭을 가꾸어 보니 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거름을 넣고 땅을 일구어 씨앗을 드린 곳에 파릇파릇 올라오는 작물의 새싹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해가 언제 갔는지 모르고 지나간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 수확하는 재미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못지않게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거름을 내다 밭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리에 탈이 붙은 것이다. 참고 참으며 고집을 부리다 더 버틸 수 없어 한의원을 찾아가 침을 맞으며 계속 일을 하는데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점점 기어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병원을 찾으니 디스크 협착증에 디스크 파열이라고 했다. 나는 디스크 파열이란 말에 겁이 나 그 즉시 시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술을 받고 집에 돌아왔으면 사후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의사 말이 가소로웠는지 여전히 헬스장에 가서 헬스를 하며 몸을 나부대니 어느 날부터인가 내 척추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즉 척추가 옆으로 휘어진 것이다. 나는 겁이 나 시술한 병원은 돌팔이라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의 말을 따라 이곳저곳 유능하다는 한의원을 찾아다니면서 침을 맞아도 보고, 척추 교정원도 다니며 치료를 받으면서 여전히 헬스장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병을 낫게 만든 것이 아니라 키운 꼴이 된 것이다. 그런 생활을 8개월 정도 하고 결국 대전에 있는 유명하다는 척추병원을 찾아 가 척추 협착증과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나서 문진 온 의사에게 내가 다시 이곳에 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그는 내가 지킬 내용이라면서 간호사를 시켜 A4용지에 자세히 기록해 주었다. 그 내용은 3개월간 앉지 말고 서서나 누워서 생활하고 매일 걷기를 꾸준히 하여 척추에 붙어 있는 속 근육을 단련시키라는 것이었다. 나는 병원에서부터 허리에 피 주머니와 무통 약병을 차고 병실 복도를 새벽, 아침 먹기 전·후, 점심 전·후, 저녁 전·후, 자기 전 등 하루 일곱 차례를 걷기 시작하였다. 아마 그때 걸은 거름 숫자가 적어도 8,000보 이상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걷는 것을 보고 척추 수술 환자들이 너도, 나도 따라서 하다 보니 식후에는 병실 복도에 걷는 수술 환자들이 북적 대는 현상이 나타났다.

퇴원 후에도 처음에는 아파트 주변을 시작으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일 만 보 걷는 것을 계속하다 어느 정도 허리가 튼튼해지자 새벽이나 오전, 오후 등 계절에 맞추어 만 보 이상 걷는 것을 생활화하였다. 명절이라고 쉬지도 않고 여행을 가도 걸었으며 그렇게 시작한 것이 내일 모래면 만 6년이 된다. 지겹게도 독하게 걸었다. 하루 만 보씩 30년을 잡고 일 억 보를 걷겠다는 것이 내 노년의 새로운 생활 목표라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니 해외여행을 가서도 새벽에 걷다가 터키에서는 굶주린 개한테 혼난 적도 있고 스페인에 가서는 새벽에 걷는데 길가에 버려진 핸드백이 눈에 띄어 불량배들이 있지 않나 겁을 잔뜩 먹기도 했다. 하긴 호찌민에 사는 딸 내 집에 가서는 오전에 만 삼천 보, 오후 만 삼천 보씩 매일 6만 6천 보 씩 한 달 동안 걷다보니 더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 잘도 흘러갔다.

이렇게 걷다 보니 허리가 튼튼해져서 그런지 젊었을 때 그리도 쩔쩔매며 오르던 지리산도 별로 힘들이지 오르는 사람이 되었고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걷는 것에 재미를 붙인 나는 걸음 숫자가 점점 늘어나 걷기 시작한지 3년 차부터는 매일 걷는 숫자를 달력에 표시하고 통계를 내다 보니 더 욕심이 생겨 4년 차부터는 하루 평균 2만 보가 넘게 걷는 사람이 되었으며 74살이나 된 늙은이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펄 처진 트레킹코스인 해파랑길을 완주하겠다고 도전하여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이면 트레킹에 나서는 반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마 내 전생이 역마꾼으로 걷는 것이 하나의 팔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도 칠백만 보 이상 걷는 것이 목표인데 혹시 무리는 안인지? 혹시 늙은이의 어리석은 자만일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아마 내 팔자가 걷는 데는 이골이 난 팔자라는 생각을 가지며 ---.

내 취미는 밭 가꾸기

걷기 위해 사는 인생